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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6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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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슈퍼로봇대전V, "이건 인정할 수밖에 없다"

정필권(Pekke@inven.co.kr)

"야 썬가드가 쎄냐? 다간이 쎄냐?"

돌이켜보면, 지금의 부먹과 찍먹 논란만큼이나 동네 소년들의 어그로를 가져가던 질문이었다. 20여 년 전. 코흘리개 소년들은 작품이 다른 슈퍼로봇 간의 싸움을 가정하며, 서로의 기술과 공격력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곤 했다. 지금 보면 하등 가치 없는 행위였지만, 그 당시에는 무엇보다 재미있고 가슴 벅찬 상상이었다.

세월이 지나, 소년들의 상상은 '슈퍼로봇대전(이하 슈로대)'이라는 게임을 만나며 현실화됐다. 어릴 적 만났던 슈퍼로봇들이 멋진 연출로 서로 전투를 벌이는 모습은 당시 소년들의 가슴을 뛰게하기 충분했다. 아직 소년의 감성을 가지고 있던 어른들이 이 게임에 열광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리라.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일본 게이머들에게 국한된 이야기였다. 슈로대 자체가 매니악한 측면이 있는 게임이었고 판권 문제가 이리저리 얽혀있어, 국내 출시보다는 해외 직구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도 일본어를 몰라, 대사집과 화면을 번갈아 보면서 게임을 겨우겨우 이해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최근에 들어서야 오리지널 기체만 등장하는 'OG 시리즈'가 정식 출시되었지만, 애니메이션의 로봇들이 등장하는 '판권작'의 국내 정식 출시는 그야말로 먼 나라의 이야기였다.

그렇기에 지난해 6월, 슈로대V의 발매 소식이 전해졌을 때, 많은 이들이 쌍수를 들고 반긴 것은 이해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것도 무려 '판권작 최초 한국어화', '한일 동시발매'라는 카드를 들고 나왔으니 말이다.

▲ 이게 꿈이여 생시여?



■ 슈로대 시리즈의 세 가지 매력 - "연출, 스토리, 캐릭터"

"슈로대 시리즈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이냐?"라고 질문을 던진다면, 몇몇은 '연출'이라는 답을 내놓을 것이다. 오리지널 기체나 주인공들은 물론이고,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에서 판권을 가져온 기체들의 박력 넘치고 화려한 연출은 전투에 활력을 불어넣는 존재였다. 내가 좋아하는 로봇의 박력 넘치는 기술을 감상한다는 것은 다른 게임이 따라갈 수 없는 슈로대만의 매력이었다.


그동안 슈로대의 연출은 오리지널 기체에는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많이 보여주고, 원작이 있는 판권작은 원작의 연출 + 게임에 맞는 나름의 어레인지를 더하는 방식이 대부분이었다. 판권작은 원작을 훼손하지 않아야 한다는 제한사항 때문이었을까? 오리지널 기체나 첫 참전작보다 기존 기체들의 전투 연출이 힘이 빠져있는 모습이다.

기술 자체의 이펙트는 물론이고 동화 프레임까지 확연한 차이가 느껴진다. 심지어 판권작은 3차 Z의 연출을 재탕한 연출들이 여럿 있다. 특히 몇몇 기체는 좌우 반전으로 애니메이션을 구성하여 8자 걸음을 걷는다던가, 같은 기체에서도 기술과 폭발의 동화 프레임 수가 달라서 어색함을 유발하는 측면도 있다.

▲ '아오... 플래시 애니냐' 싶은 연출도 있고, '쩌..쩐다!' 싶은 연출도 있다.

OG시리즈야 화려한 연출이 전통적인 특징이라고는 하지만, 차이가 확연하니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야마토' 같은 첫 참전작과 '마징가 ZERO' 같은 신규 참전 기체의 연출을 돌아보면 연출의 편차는 더욱 심해진다. 심지어 원작이 있는 기체라고 할지라도, 몇몇 기체는 훌륭한 연출을 보여준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못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안만드는 것'에 더 가까워 보인다. 아니면 연출 담당자의 능력 부족이거나.

일부 기체는 실망스럽지만, 적어도 신규 참전작 만큼은 '쩐다'라는 표현을 쓸 만큼 박력 넘치고, 화려한 연출을 보여준다. 해당 로봇을 알지 못해도 펑펑 터지는 연출과 빠른 호흡의 카메라 연출은 두고두고 감상해도 감동을 줄 정도다. 차이야 있지만 '보는 맛' 하나는 확실하다.

▲ 원작을 몰라도 '보는 맛'은 "역시 슈로대" 소리가 절로 나온다.

온갖 세계관을 가진 원작이 하나로 만나 섞이고, 이야기를 진행하는 크로스오버도 시리즈의 매력. 약간은 억지스러운 면도 있고, 원작의 세계관과 달라지는 부분도 있으나, 어떻게든 하나의 세계관에서 여러 작품의 로봇이 날뛰는 모습을 감상하는 게임은 슈로대 뿐이지 않을까?

전반적으로 시공의 폭풍을 떠올리게 만드는-다차원 우주, 폭풍 때문에 다른 세계로 오는 인물 등- 진행 방식임에도, 각 세계관의 인물들은 생각보다 자연스레 엮이게 된다. 스토리를 이리저리 섞는 섞어찌개인 상태지만, 나름 맛깔나게 완성됐다. 얼렁뚱땅 넘어가는 부분도 적고, 원작을 몰라도 스토리를 감상하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다.

각자의 세계관이 다르므로, 원작과는 다른 느낌의 대사와 행동을 보여주는 것은 덤. 그로 인해 진행되는 대사 등은 원작 애니메이션을 경험한 유저에게는 흐뭇한 광경으로 다가온다.

▲ 원작을 몰라도 스토리를 봐줄 만하고, 알면 더 재미있는 구성.

크로스오버 외에도 배드 엔딩을 맞이한 원작이 해피 엔딩으로 바뀌는 요소도 있다. 나데시코 극장판의 엔딩 이후 이야기라던가, 건담 시리즈의 엔딩 이후가 게임에 반영되어 있는 등 원작 팬이라면 감동의 눈물을 흘릴만한 전개가 계속해서 펼쳐진다.

무엇보다 좋은 점은 한국어화 덕분에 스토리에 몰입할 수 있다는 것. 대사 번역집이나 공략집을 곁에 두고 화면과 인쇄물을 번갈아가며 플레이하던 시대에 종언을 고했다. 슈로대 사상 '첫 한국어화 판권작'이라는 장점은 스토리에 몰입할 수 있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인터미션을 스킵하던 유저들도 스토리를 차근차근 읽게 되었으니, 결과적으로 플레이타임이 늘어나는 것은 긍정적이라 볼 수 있을 것 같다.

▲ 특히 24화 즈음은 원작 팬에겐 감동. 블랙사레나도 울고 나도 울었다.

시스템 측면에서는 25주년 기념작을 맞이하며 원작 팬과 SRPG 자체의 재미에서 균형점을 잡은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전반적으로 시스템을 고민하고, 매니악함 보다는 입문작 성격으로 시스템이 재편됐다. 시리즈의 역사가 깊어질수록 '자신이 좋아하는 기체'를 주로 육성하는 편이었고, 필연적으로 팬서비스 차원의 게임이 될 수밖에 없는 한계점을 인식한 것이다.

그래서 이번 슈로대V에서는 기존의 단점들을 개선하려는 노력의 편린들을 찾아볼 수 있다. 좋아하는 기체를 육성하고자 하는 팬들의 소망과 실제 성능의 간극을 시스템을 통해 좁힐 수 있도록 했다. '소대 시스템의 삭제'와 '스킬 루트' 등의 신규 시스템이 그것이다.

스킬을 포인트로 구매하여, 캐릭터에게 장착시키는 파격적인 스킬 시스템을 채택하면서, '키우고 싶은 것만 키워도 크게 아쉬운 것이 없는' 수준까지 캐릭터와 기체를 육성할 수 있게 됐다. 장비처럼 변한 스킬 시스템 덕분에 굳이 성능에 목메이지 않더라도 무리 없는 진행이 가능하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소대 시스템은 전면 삭제되었으니 그냥 원하는 기체만 사용하면 된다.

▲ 저력, E세이브 등등 특수 스킬을 만들어다가 장착하면 끝.

한편으로는 게임의 난이도가 낮다는 점도 자유로운 육성에 도움을 준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부분이지만, 개인적으로는 SRPG로의 정체성보다는 팬들을 위한 게임에 더 가까운 만큼, 이 정도의 난이도는 적당한 편이지 않을까? 어려운 난이도를 원하는 사람은 SR포인트를 모으는 것으로 조금이나마 조절할 수 있으니, 나름대로 도전 욕구도 챙길 수 있다. 정체성을 SRPG보다 캐릭터 게임에 맞춘다면, 자신이 원하는 기체로도 자연스레 엔딩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만하다.

여담이지만, 일괄적으로 적용되던 BGM도 커스텀 기능도 유지하여 곡을 입맛대로 바꿀 수 있도록 배려해뒀다. 내장 BGM들도 충실하게 갖춰둔 데다, 외장 BGM까지 적용할 수 있으니 원하는 배경음을 적절히 고르면 게임의 몰입도가 대폭 상승한다. 어디까지나 팬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요소지만, 공격 무장과 기체, 인터미션마다 곡을 다르게 설정할 수 있어 커스텀 BGM의 자유로움이 한껏 상승했다.

농담이 아니라, 커스텀 BGM을 이것저것 설정하다 보면 한두 시간은 훌쩍 지나갈 정도. 덕분에 진겟타의 스토나 선샤인에 용장 BGM을 설치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끈적끈적해서 짜증나는 격납고의 색소폰 BGM까지 내가 원하는 대로 고민하고 설정할 수 있다.

▲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스토나 선샤인은 역시 용장이지!"



■ "그래도 이런 부분은 아쉽다." - 편애, 설명, 그리고 진동

판권작 첫 한국어화에 의미를 둘 수 있는 타이틀이고, 편의성과 자유도 면에서 큰 발전을 이루었지만 아쉬운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앞서 언급하긴 했지만, 기체마다 연출의 편차가 크다는 점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 첫 참전작의 연출에 많은 노력과 시간을 보여주던 것이 시리즈의 전통이었으나, 이번 V에서는 '차이가 나도 너무 많이' 났다. 시리즈 전작의 연출을 재탕한 것은 물론이고, 스토리도 기체마다 비중이 크게 갈린다.

'우주전함 야마토 2199' 편애로 시끌시끌했던 것도 여기서 기인한다. 야마토라는 이름 자체가 한국 유저들에게는 약간은 불편할 수 있는 부분인데다, 기체의 연출이 다른 기체보다 화려한 것은 물론이고 스토리에서도 비중 있게 다뤄지면서 묘하게 불편한 감정을 낳는다. 특히, '인류의 희망과 미래를 짊어진 야마토' 같이 비장한 장면이면 더더욱.

▲ 묘하게 불편한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별다른 설명 없는 단축키도 불편한 점으로 지적된다. 시리즈를 계속해서 플레이했던 사람이라면 크게 어색할 것이 없겠지만, 입문자에게는 게임 내에서 설명을 찾을 수 없어 난해한 측면이 있다. 단축키 등은 게임 내 도움말에서 볼 수 없고 오직 전자 매뉴얼로만 제공된다. 퀵리셋이나 퀵로드같이 은근히 사용할 일이 있는 기능의 단축키가 'L1 + R1 + 옵션'이라는 것은 시리즈 팬이 아니고서야 모를 만한 것들이다.

또한, VITA와 동시 발매되었기 때문인지, 공격 및 피격 시에 진동이 빠진 점도 아쉬운 부분이다. 한 턴씩 느긋하게 플레이하는 턴제 게임인데, 이렇다 할 자극이 없어 종종 집중력이 떨어지곤 한다. 2차 OG에서 공격 횟수마다 적의 체력이 감소하고, 그때마다 진동을 전달했던 것과는 반대의 모습. 가뜩이나 정적인 게임에 진동이 빠지면서 손맛을 느끼기 어려워진 것은 매우 아쉽다.

▲ "드르륵"할 부분에 진동이 없다. 그래서 손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졸립다.



■ 장점과 단점? - "사실... 다 상관없다. 한국어화 판권작이니까!"

일반적으로 팬들을 위한 캐릭터 게임들이 그렇듯, 슈로대V도 명확한 장단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원작을 아는 만큼 몰입하고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게임이지만, 반대로 '원작을 아무것도 모르는' 유저에게는 완전히 취향 밖의 무언가로 남을 뿐이다. 장르적인 완성도에 비중을 두기보다는 캐릭터를 살리는 데에 신경 썼으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번 슈로대V는 입문작으로던, 25주년 기념작으로던 의미를 남길만한 작품이다. 수많은 난관(아마도 마크로스)을 넘어 동시 발매된 것은 물론이고, 시스템적으로도 캐릭터 게임으로써의 정체성을 살리는 데에 집중했다. 단편으로 끝나기에 스토리도 자연스럽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판권작 최초로 '한국어화'가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 일본어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존재 의의가 없었던 스토리가 의미를 가졌으며, 텍스트를 보고 울고 웃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기존 슈로대 팬들은 대사집과 화면을 번갈아가면서 볼 필요가 없어졌고, 시리즈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에게는 후속작을 기대하며 입문할 수 있는 작품으로 다가간다.

▲ 시리즈 역사상 최초 '한국어화'라는 무게감.

그렇기에 25년이라는 긴 세월을 맞아, 시스템을 일신한 '슈로대V'가 갖는 무게감은 클 수밖에 없다. 한국어 폰트로 디자인된 '슈퍼로봇대전'이라는 타이틀이 보여준 충격과 감동은 물론이고, 시스템적으로도 앞으로의 방향성을 제시했다고 본다.

단점이 없는 게임은 아니지만, 오랜 시간을 기다린 국내의 팬들에게 이만한 선물은 없으리라 생각한다. 또한, 점차 나이를 먹어가며 '내 게임 취향이 최신 트렌드를 못따라가는 것은 아닌가?'라고 생각하던 시점, 이만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중해서 즐길만한 타이틀이 출시되었다는 것에 그저 감동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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