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럿이 한 가지 일을 할 때, 정확히 양을 나누긴 쉽지 않습니다. 누군가 힘든 역할을 맡아야 하는 상황이 찾아오게 마련이죠. 과정에서 정말 중요한 일도 결과적으로 크게 드러나지 않아 개인적으로 아쉬운 마음이 들 수도 있답니다.

히어로즈 오브 더 스톰 MVP 팀에서 그런 역할을 맡은 두 명을 만나봤습니다. 밴픽과 오더를 주로 담당하는 블랙의 '교차' 정원호와 미라클 '크레이지무빙' 한기수가 그 주인공입니다. 복잡한 리빌딩 과정에서 누군가 맡아야 할 일을 하고 있었죠. 서브 탱커 지원자가 없는 상황에서 자신이 가장 잘하는 올라운더 포지션을 버린 '교차'. 교전에 집중해야 하는 딜러지만, 오더와 주장의 역할까지 겸하는 '크레이지무빙'.

두 선수는 자신의 역할에 대해 '희생'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습니다. 개인의 기량이 조명받기보다 팀과 팀원들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일까요. 급격한 리빌딩 속에서 MVP 팀이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평소 '크레이지무빙'이 강조했던 '의리'가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두 선수의 인터뷰를 통해 느낄 수 있었습니다.



Q. 독자 여러분께 간단한 자기 소개와 인사 부탁드려요.

'교차' 정원호 : MVP 블랙에서 서브 탱커를 맡게 된 '교차' 정원호입니다.

'크레이지무빙' 한기수 : MVP 미라클 주장 '크레이지무빙' 한기수입니다.


Q. HGC KR이 끝나고 2주 정도 휴식 기간이었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보냈나요?

'크레이지무빙' 한기수 : 집에는 안 갔지만, 마음을 비우려고 '스나이퍼' (권)태훈이와 함께 '포켓몬고'를 하면서 보냈어요.

'교차' 정원호 : 저도 숙소에 남아서 휴식을 취했죠.


Q. MVP 블랙은 곧 이스턴클래시가 다가와요. 어떻게 준비할 예정인가요?

'교차' 정원호 : L5와 꾸준히 스크림을 해왔어요. 어제(7일)부터 MVP 미라클과도 연습했고, 오늘 중국의 e스타와 스크림이 잡혀있어요. 대회에서 어떤 버전으로 게임을 할지 확실해지면 본격적으로 연습하려고요. 신 영웅인 '프로비우스'가 강력하긴 한 것 같은데, 아직은 어떻게 활용될지 잘 모르겠어요.

'크레이지무빙' 한기수 : 이번 HGC KR 전반기 성적이 아쉬워서 후반기를 지금부터 준비하려고요.



Q. 이스턴클래시에 출전하는 해외 팀들 중에 주목하는 곳이 있나요?

'교차' 정원호 : e스타를 주목하고 있어요. L5도 스크림하면서 많이 졌다고 하더라고요. 전력이 크게 바뀐 것은 아닌데, 최근 메타에서 강하다는 말을 들었어요. 발라-태사다르를 L5보다 잘 활용한다고 합니다.


Q. 웨스턴클래시는 유럽이 '3강'의 자리를 차지했어요. 유럽의 경기력에 대해 평가해보자면?

'교차' 정원호 : 유럽 팀마다 색깔이 잘 드러났던 것 같아요. 미스피츠는 자신들만의 조합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프나틱은 항상 잘 했기 때문에 두 팀 중 한팀이 우승할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탱커인 '브리즈' ETC를 중심으로 프나틱이 다양한 조합을 짜죠.

그런데 유럽팀들이 그 점을 알고 집중 견제하면서 프나틱이 무너지더라고요. 프나틱이 블리즈컨 준우승팀이지만, 미스피츠와 디그니타스에게 무너지는 것을 보고 이제 그렇게 강팀은 아니라고 느꼈어요. 디그니타스는 원래 다른 팀 스타일을 급하게 따라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그런데 패자전부터 정신을 차렸는지 확실히 달라져서 우승까지 하더라고요.

'크레이지무빙' 한기수 : 프나틱은 유럽 리그에서 하던 대로 하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나 봐요. 그러다가 무너진 경우죠. 반대로, 디그니타스는 웨스턴 클래시 초반에 정신없이 경기하다가 밴픽부터 바꾸기 시작하더라고요. 두 팀의 승리에 대한 의지가 달라 보였어요. 미스피츠가 유럽 리그에서 전승을 거뒀을진 몰라도 디그니타스와 프나틱이 세계 대회에서 활약했던 경험이 있는 팀이라 결승에서 만날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Q. '사케' 이중혁이 HGC 인터뷰에서 요즘 '행복 히어로즈'를 하고 있다고 말했어요. 리빌딩한지가 얼마 안 된 상황이었는데, 두 분도 리빌딩된 현재 팀에 만족하나요?

'교차' 정원호 : 저도 이렇게 리빌딩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어요. 사실, 지난 시즌까지 너무 급하게 달려와서 이번 시즌에는 쉬어가자는 생각도 있었죠. 그런데 예상보다 성적이 잘 나오고 분위기도 괜찮아서 중혁이 형이 그렇게 말한 것 같아요. L5와 대결할 때도 크게 부담감을 느끼진 않았어요.

'크레이지무빙' 한기수 : 팀원들은 마음에 들어요. 그런데 급하게 팀을 맞추다보니까 힘든 점도 있더라고요. 그리고 '3강' 팀에 밴픽과 오더를 맡은 핵심 선수가 있어요. MVP 블랙 '교차', L5 '노블레스', 템페스트 '사인'이 그런 역할을 하는데, 솔직히 세 명에 비해 제가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밴픽과 오더를 보완한다면, MVP 미라클 역시 더 나아질 거예요.



Q. '교차' 정원호는 넓은 영웅 폭과 밴픽을 담당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런데, 리빌딩 후 서브 탱커를 맡으면서 본인의 장점을 발휘하기 힘들어 보여요.

'교차' 정원호 :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게임 구도상 개인 실력보다는 팀워크가 더 중요하거든요. 지금 포지션에서 역량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팀워크로 채울 수 있는 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서브 탱커도 꾸준히 하다보면 될 것 같은데, 오래전부터 해왔던 선수들보다는 개인 기량면에서 확실히 부족하긴 해요.

'리셋' (임)진우가 팀에 들어왔는데, 예전부터 원거리 딜러를 하고 싶어 해서 제가 대신 서브 탱커를 하기로 했어요. 진우한테 물어보니까 자신이 '리치' (이)재원이 같은 뛰어난 선수들과 비교되는 것을 힘들어하더라고요. 원거리 딜러로는 자신이 가장 잘한다는 자신감이 있어서 그렇게 하게 됐습니다.

'크레이지무빙' 한기수 : 미라클 시절에도 진우가 원거리 딜러를 하고 싶었지만, 할 선수가 없어서 희생했어요. 미라클에서도 충분히 잘 해줬다고 생각하고 어디에 가서든 잘하리라 믿어요. 기본적인 게임 이해도가 높은 친구예요.


Q. '교차'의 필승 카드였던 '교레이서'를 인정하는 선수들과 팬들이 많아요. 트레이서를 활용하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요?

'교차' 정원호 : 지금 트레이서가 굉장히 강력한 카드죠. 말퓨리온이나 태사다르를 같이 썼을 때 가장 활약할 수 있는 픽이에요. 요즘에는 제가 원거리 딜러 영웅을 잘 안해서 지금 활용하는 것은 무리인 것 같아요. 다른 팀원들이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을 겁니다.

'크레이지무빙' 한기수 : HGC KR에서는 트레이서를 활용하지 않았지만, 저희도 준비해놓은 상태에요. 중국 골드리그할 때 저와 진우, 태훈이까지 준비한 상태였고, 가장 오랫동안 연습했던 태훈이가 꺼내서 승리한 경험이 있죠.




Q. MVP 블랙은 전반기 동양 최강팀을 가리는 이스턴 클래시를 앞두고 있어요. 이번 대회에서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교차' 정원호 : 일단 현상 유지가 목표입니다. L5에게는 질 수 있더라도 e스타에게는 절대 밀리지 않을 거예요. 우리 팀이 오랫동안 합을 맞추진 않아서 과도한 욕심은 오히려 독으로 작용할 것 같아요.


Q. 팀원 개인 수상 경력만 따져보면 MVP 미라클 역시 만만치 않아요. HGC KR 후반기를 어떻게 준비할 건가요.

'크레이지무빙' 한기수 : 다섯 명의 합도 중요하지만, 전반기에는 '다르비시' (민)성민이와 '홍코노' (이)대형이가 대회 때 많이 긴장하더라고요. 대형이는 오랜만에 히어로즈를 했고, 성민이는 자신만 우승 경력이 없다는 것 때문에 부담감이 있는 것 같아요. 두 명이 스크림 때처럼만 해주면 충분히 후반기에는 폼이 올라올 거라고 믿습니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자유롭게 해주세요.

'교차' 정원호 : 요즘에는 L5가 넘기 힘든 '벽'처럼 느껴지는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 자리는 원래 MVP 블랙의 것입니다. 쫓아갈 테니 더 열심히 하길 바라요(웃음).

'크레이지무빙' 한기수 : 팀원들한테 말하고 싶어요. 너네 충분히 잘하니까 부담감 내려놓고 편하게 했으면 좋겠어.




사진 : 박채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