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고향은 그야말로 '깡시골'이었다. 무언가를 사려면 3Km를, 가장 가까운 초등학교는 5Km를 걸어가야 했던. 동네에는 족제비와 두더지, 너구리가 자주 나오는 그런 장소였다. 그래서 '시골'이라는 코드에 다른 이들보다 먼저 반응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달려라 할배'의 첫 이미지를 보자마자 느낀 것은 놀라움이었다. 첫인상부터 이렇게 강한 느낌을 줬던 게임은 간만이었다. 게임 내에서는 대사 하나하나가 시골 출신의 감성을 자극했다. 특히 "이 동네에서 제일 막내라니" -실제로 고향에서는 곧 환갑인 기자의 아버지가 가장 어리다-라는 대사는 더더욱 말이다. 그만큼 담요 스튜디오의 '달려라 할배'에는 묘한 매력이 있었고, 이렇게 독특한 감성과 메시지를 담아낸 이에게 관심이 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 메인 화면부터 '느낌이 왔다'

독립 영화의 감독으로 시작하여 어느덧 게임사의 대표라는 직함을 단 장진성 대표는 '달려라 할배'를 출시하며 더 큰 뜻을 게임 내에 담고자 했다. 도시화로 잊혀지는 농촌과 노인 문제 같은 사회적인 메시지를 게임 내에 자연스레 녹여내려 했다.

담담하게, 때로는 격정적으로 '달려라 할배'를 설명해나가는 그의 눈빛에서는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이를 풀어나가기 위한 매체로서의 게임이라는 생각을 읽어볼 수 있었다.

▲ 담요 스튜디오의 장진성 대표


Q. 영화 및 광고 분야에서 수상했었던 이력이 독특합니다. 게임과 전혀 관련 없던 분야에서 게임업계로 넘어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인데, 어떤 계기로 게임 개발을 하게 되셨나요?

중학교 때부터 게임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시나리오 작업을 할 때도 그 이외의 시간은 게임을 플레이하는데 할애하곤 했고요. 영화 시나리오를 2년 동안 써왔고 29초 영화제 수상 후에는 투자 지원을 받았지만, 중간에 투자가 엎어지면서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때 아내가 "좋아하는 게임을 한 번 개발해봐라" 이렇게 말을 하더군요.

사실, 그땐 광고 쪽으로 취업할 생각이었지만 마지막으로 도전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서른넷이라는 나이에 러닝센터에서 유니티를 배우기 시작했죠.


Q. 서른 넘어 전혀 관련이 없는 분야라... 배우기 힘들셨을 것 같습니다.

물론 코딩을 배우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냥 다 외워버렸어요. 과제를 제일 빨리 내기도 했고요. 그리고 사실 저의 목표는 거기서 프로그래밍을 정말 잘하는 친구를 사귀어야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Q. 아! 게임 대사에서 '잘생겼다'고 나온 그분인가요?

아. 그때 만난 것은 아니고요. 처음엔 직접 만들어보겠다고 생각했었지만, 프로토타입 이상의 단계는 혼자서는 힘들겠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그 잘생긴 프로그래머 친구와 같이하게 됐죠. 작년 3월부터 시작해 게임을 2개 정도 출시했었습니다. 하지만 이게 마음에는 들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간단한 것부터 만들어보다가, 그 친구랑 경기게임아카데미로 자리를 옮겨 나온 것이 '달려라 할배'입니다.

▲ 정말로 잘생겼다는 그 프로그래머.

Q. 경기게임아카데미에서는 많은 지원을 받았었나요?

게임 개발과 그 외의 단계에서 도와주시는 멘토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래픽디자인이나 프로그래밍을 가르쳐주시는 분들도 있고요. 1기 중에서는 최초로 퍼블리싱 계약을 하게 되었는데 그것도 모두 혼자서는 불가능했을 겁니다. 최적화 같은 부분들은 여기 와서 많이 배우기도 했고요.

인디 개발을 하시는 분들이 게임은 잘 만들었는데도 이를 제대로 보여주질 못한다고 할까요? 마케팅 측면을 어려워하는 면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영화와 광고를 했던 경험을 살려서 인디게임 개발자들만을 상대로 하는 홍보기업을 해보는 것도 좋을 거 같다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Q. 그렇다면 홍보와 관련해서 ‘달려라 할배’는 어떤 마케팅을 염두에 두고 있으신가요.

현재 ‘달려라할배’의 홍보 영상도 제가 직접 편집하고 목소리도 과거 무성 영화의 변사처럼 녹음해 넣은 것입니다. 몇 달 후에 여건이 된다면, ‘달려라 할배’에 관해서는 앞으로 CF 영상도 촬영할 생각입니다. 대학로에서 연극을 하고있는 지인들과 게임처럼 경운기를 타고, 할아버지의 동료 복장을 한 다음에 말이죠.

TV에는 나가지 않더라도, 유투브에서 사람들이 좋아한다면 괜찮다는 판단입니다. 영화와 광고에 대해 제가 아는 것이 있는 만큼 최대한 활용할 생각입니다. 좀 더 관심을 끌기 위해 할배 코스프레를 하고 돌아다닌다든가 하는 마케팅까지도 생각 중이고요.


Q. 인디 개발은 항상 어렵다는 말이 나옵니다. 이외에도 개발하며 힘들었던 경험은 없으셨나요.

영화와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영화를 30편 정도 찍어오면서 느낀 점인데, '감독은 한 배를 책임지는 선장' 같다고 생각합니다. 항해를 하다 보면, 배가 난파되거나 암초를 만날 수도 있죠. 때로는 굶기도 하고요. 이런 경험들을 영화를 만들 때 경험했었습니다. 상금을 받으면 이를 돌려주고 하는 경험들요.

언제나 자금적인 문제가 생기면 게임이든 영화든 완성을 시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영화와 달리 게임 개발은 한 장소에서 각자 컴퓨터를 가지고 작업하기 때문에 나름의 장점이 있지만, 반대로 사람과의 교류가 없다는 단점도 있습니다.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어요. 돈을 많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Q. 아... 죄송스런 질문지만, 그런 어려움은 어떻게 해결하셨는지...?

어느 날 프로그래머가 친구가 그러더군요. 차비가 없다고. 그때 돈을 어떻게 벌어서 이 개발팀을 이어나갈 수 있는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유니티 학원 전단지를 돌려 학원비로 이어가기도 했고요. 결국에는 돈을 마련해서 버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버틸 수 없으면 팀원들이 다 떠나가버릴 수밖에 없으니까요. 대표가 책임지고서 팀원들을 믿고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믿고 하면서 완성 시킨 것 같습니다. 안 그랬으면 1년 넘게 개발해도 완성을 못 시켰을 거에요.

▲ 게임 개발도, 영화도 '선장'과 같았다는 장진성 대표

Q. 경기게임아카데미로 오면서는 무슨 변화가 있었을까요?

여기 와서는 프로토타입이 정말 자주 바뀌었습니다. 한 6번 정도? 처음에는 아주 단순한 클리커류 게임이었거든요. 전문가분들이 이를 보면서 많은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사실, 처음 왔을 때는 우리 게임이 제일 별로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아이디어만으로 승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팀원들에겐 미안하지만, 프로토타입을 자주 바뀌고 넓혀갔죠. 그러면서 차차 우리가 완성할 수 있는 범위를 정하게 되었습니다. 욕심 같아서는 더 많은 것을 구현하고 싶었지만, 예산에 맞는 영화 시나리오를 쓰듯이 우리의 역량에 완성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었죠.


Q. 퍼블리셔와 계약하고서는 어떤 장점이 있었을까요?

처음에는 몰랐지만, 퍼블리셔가 최적화나 운영 부분에서 노하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처음엔 게임 출시를 하면 마케팅을 바로 시작하려고 했었습니다. 그래서 퍼블리셔에게 전화해서 끊임없이 괴롭히기도 했어요. "이런 이런 것들을 할 건데, 마케팅은 어떻게 할 것인가"같이요.

하지만 퍼블리셔 쪽에서 말해준 게, "초반에는 마케팅을 하는 것이 아니다. 게임의 안정화가 확보된 이후에 하는 것이다" 이렇게 말해주더군요. 그리고 게임을 출시하고 나서 게임 카페도 개설한 후에 달린 첫 글을 보고 퍼블리셔가 옳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첫 글이 게임에 버그가 있다는 글이었거든요. 퍼블리셔와 대화를 잘해보고 옳으면 따르고 인정하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아 엎어지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Q. 그럼, ‘달려라 할배’ 게임에 대해서 여쭤보고 싶습니다. 게임의 기획의도가 있다면 어떤 부분에서 공을 들였는지 궁금합니다.

영화를 만들 때도 언제나 주제 의식을 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달려라 할배'는 게임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노인과 농촌 문제를 다룬 게임은 없거든요. 노인자살률 1위, 농촌의 고령화, 쌀 가격의 하락 등 이런 이슈들이 사회적으로 논의가 되어야 한다고 봤습니다. 젊은이들의 고달픔과 노인들의 고달픔이 극과 극으로 치닫게 되는 문제점은 우리가 꼭 해결해야 할 숙제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주제의식을 직접 이야기한다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달려라할배’ 에서는 주제가 은연 중에 등장하도록 다뤘습니다. "11월 11일은 농촌의 날이다", "우리 마을에서 내가 제일 막내라니!" 같은 식으로요. 게임의 첫 퀘스트가 '보릿고개 버티기' 인 것도 의도한 부분이에요. 퀘스트를 통해서 젊은 유저들이 노인들이 겪어왔던 경험들을 알게 되는 것으로 거부감과 거리감을 좁히고자 했습니다.

▲ 은유와 비유, 코드화로 담은 메시지들

Q. '가족들과 밥 먹기'라는 마지막 퀘스트 명칭이 짠하더라고요.

게임 카페의 자유게시판에 처음 올라간 글이 마지막 퀘스트가 짠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농촌의 노인들은 가족들과 밥을 먹기 위해서 명절만을 기다리죠. 이것을 꼭 마지막에 등장시키고 싶었습니다. 노인과 농촌 문제에 대해서 유저들이 알 수 있도록 하는 것, 사회적 메시지를 비유적으로 담고, 재밌게 플레이하는 와중에 이를 발견하는 거죠.

백 명 중 한 명이라도 그 의도를 알아채 준다면 개인적으로는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더 많은 유저들이 할수록 이를 알아채는 유저들이 늘어날 테니까요. 유저들이 즐겁게 게임을 하는 와중에도 자연스레 알게 된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Q. 게임에 은근하게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낸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캐릭터가 외치는 대사만 쓰는 데만도 6개월이 걸렸습니다. 농촌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와 심금을 울릴 수 있는 내용을 담아내고 싶었거든요. 제 고향이 전라남도 고흥인데 거기는 아직도 돌로 쌓은 집도 많이 있습니다. 스스로의 경험과 공부를 통해서 내용을 담아내고, 디자이너님을 설득해서 게임내에 표현하는 데에 노력했습니다.

▲ 포장되지 않은 길, 대사, 적벽돌 버스정류장 같은 것들도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도구들

Q. 이러한 사회적 이슈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와 소재를 얻는 창구는 무엇인지 질문드립니다.

영화, 특히 단편영화를 제작하는 사람들은 모두 사회적 이슈에 대해 언제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도 그런 문화 속에서 살아왔고요. 사회적 문제점에 대한 주제 의식과 코드화, 은유 등은 항상 고민하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게임이나 영화 시나리오 아이디어는 언제나 게임을 하면서 얻는 편입니다. 전 콘솔 게임을 특히 좋아하는데 '라스트 오브 어스'나 '져니' 등을 플레이하다가 갑자기 떠오를 때가 많습니다.


Q. 랭커들에게 쌀을 지급한다는 마케팅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게임 컨셉과 이렇게 잘 어울리다니! 하고요

사실, 우리나라 쌀이 가격이 굉장히 저렴한 편입니다. 이러한 문제점을 시사할 겸 마케팅에 도움이 될 방안을 생각하다가, ‘그래! 쌀을 주는 것은 어떨까’하는 생각에 시도하게 됐습니다. 실제로, 쌀을 받기위해서 밤을 새워 플레이하는 유저들도 나왔습니다. 쌀 기부 시스템도 있지만, 그보다 사람들에게 동기부여가 될 수 있는 요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 오오...쌀... 오오...

Q. 게임의 디자인이 소위 B급 감성이 물씬 나온 것이 개인적으로 좋았거든요. 특히, 무기를 업그레이드했을 때, 기름때가 끼는 것을 보고 감탄했어요. 이런 독특한 디자인이 나오게 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네요.

경운기는 처음에 농촌과 노인들에 대하여 게임을 개발하고 싶어 하던 저를 보고 아내가 경운기 해봐, 이렇게 말해줘서 떠올린 겁니다. 프로토타입으로 경운기를 탄 노인을 구상해보니 재미있었거든요. 처음 캐릭터 초안에는 아내가 힘을 써줬습니다. 서양화를 전공한 아내를 괴롭혀서 경운기나 동료 캐릭터 초안들을 얻어냈죠.

그다음에는 이를 디자이너에게 넘겨서 최종 작업물을 완성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아내도 디자이너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죠. 특히, 디자이너님은 그림을 멋지게 잘 그리시는 분인데 소위 병맛 그림을 그리게 부탁한 상황이었습니다. 원래 잘 그리는 사람이 반대로 못 그리려니까 매우 힘들어하기도 했고요.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군요. 완성할 수 있게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 숙련되면 기름때가 생긴다. 숙련된 자의 징표니까.

Q. 앞으로 다른 게임에서도 사회적 메시지를 담을 생각이신가요?

이미 ‘달려라 할배’ 이전에는 흙수저 청년들을 다룬 ‘버거 대학교’라는 게임을 출시하기도 했습니다. ‘달려라 할배’에서도 중간마다 대사로 언급이 되는데, ‘달려라 할배’의 주인공인 할아버지가 사장으로 나오는 게임입니다.

여기서는 흙수저인 알바생이 주인공인데, 할배에게 구박을 받으면서 진행됩니다. 이게 또 엔딩에서는 '달려야 할배'와 연관되는 구조였고요. 앞으로는 ‘달려라 할배’에서 등장하는 동료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든가 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이야기와 메시지를 담아볼 생각입니다.

▲ 그 할배가 여기서의 할배였다.

인디게임은 뭐가 성공할지 모른다고 봅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아이디어들을 모아보는 중입니다. '달려라 할배'가 좋은 결과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동료 캐릭터들을 이용해서 '천하제일 모내기 대회' 이런 식으로 활용할 수 있는 요소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여건이 안되더라도 다른 게임을 통해 사회적 메시지를 다뤄보는 것도 좋을 것 같고요.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인디 게임은 생존과 개발이 어려운 만큼 스스로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잘되었을 때, 다른 이들도 잘 될 수 있도록 구조를 잡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봅니다. 쌀 기부 같은 경우도 퍼블리셔는 처음엔 좋아하지 않았지만, 의도를 좋게 봐주었고 결과적으로 업무가 많아지더라도 이해해주고 계시거든요.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만날 수 있었다는 게 다행인 것 같습니다.

▲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사회적 메시지를 게임에 담아낼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