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고향은 내 어린 시절 가장 무서운 드라마였다. 이 드라마를 보는 날이면 잠자리에 들 수가 없었다. 어디선가 꼭 귀신이 나올 것만 같아 등골이 오싹했다. 그럴 때마다 베개를 들고 슬며시 부모님 틈에 끼어 잠이 들곤 했을 정도다. 물론 회마다 강도의 차이는 있었다. 전설의 고향은 다양한 귀신이 출연하는 옴니버스식 드라마였기 때문이다.

다양한 귀신 중 단연 최고는 구미호였다. 사람의 간을 빼먹는 귀신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매우 무서운 캐릭터였지만, 인간 모습으로 변했을 때만큼은 엄청난 미모를 자랑했다. 어떤 여자 연예인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렴풋한 기억에는 상당한 미모의 여성이 등장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구미호는 그 미모로 인간 사내들을 홀렸다.

아리는 다들 알다시피 구미호를 모티브로 한 챔피언이다. 여러 가지로 구미호의 특징을 잘 살려냈다. 일단 등줄기에 땀이 맺히게 하는 귀신다운 스킬을 갖추고 있고, 미모 또한 제대로 구현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미모를 활용한 매혹이라는 스킬이 특히 눈에 띈다. LoL 내에서 가장 강력한 CC기 중 하나다. 여성의 미모만큼 강한 마력이 있는 것이 어디 있을까.

현재 많은 미드 라이너들이 아리한테 완전히 홀려있는 듯하다. 그들의 대화를 옅보면 주제의 대부분이 아리다. 그녀가 OP인지 아닌지, 그래서 너프를 해야 하는지 아닌지를 가지고 열띠게 토론을 펼치고 있다. 어떤 상황인 걸까? 그리고 아리는 정말 OP일까?



OP냐? 아니냐? 유저들의 찬반



OP다! 측 : 미니언 패치로 아리는 라인전 무상성이 됐다. 예전에는 아이템이 특별히 빠르게 나오지 않은 이상 원거리 미니언이 Q 한 방에 정리되지 않았다. 평타 한 대씩을 쳐서 마무리했어야 했는데, 지금은 Q 하나만으로도 원거리 미니언이 쉽게 정리된다. 라인 푸쉬가 좋아져 어떤 상대를 만나도 라인전에서 힘들지 않은 챔피언이 됐다. 게다가 다른 상위권 챔피언들이 계속 너프를 당해 아리가 더 힘을 얻었다.

결국, 라인전에서 반반만 가면 주도권을 잡는 쪽은 대부분 아리가 된다. 궁극기와 매혹 때문이다. 3단 대쉬가 가능한 궁극기와 LoL에서 가장 강력한 CC기 중 하나인 매혹의 시너지는 상대를 공포로 몰아넣는다. 갱킹 호응이 너무나 뛰어나고 2:2 교전 상황에서 먼저 선공을 하기에 쉽기 때문이다. 상대 미드 라이너 입장에서는 한 발을 내딛는 것조차 많은 생각을 해야 한다.

문제는 또 있다. 주도권을 잡은 아리는 로밍으로 다른 라인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궁극기와 매혹 덕분에 로밍 능력도 매우 뛰어난 아리다. 활동 반경이 넓어진다면 상대 모든 라인에게 큰 위협을 가할 수 있다.

아리의 상대라면 선공을 취하는 게 답이지만, 당연히 그조차도 어렵다. 아리의 궁극기 때문이다. 확정 CC기로 순식간에 녹이지 않는 이상, 아리는 대부분 상황에서 유유히 살아서 돌아간다. 라인전 무상성에다, 잘 물리지 않지만 상대를 자르기에는 좋은 챔피언. 그녀가 OP 반열에 드는 것은 당연하다. 구미호는 졸렬 그 자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통계다. 현재 아리는 픽률과 승률 모두 최상위권에 위치해 있다. 통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통계가 증명하고 있는데 왜 OP가 아니라고 우기는가? 아리는 당연히 너프 대상 1순위에 이름을 올려야만 한다.


OP 아니다! 측 : 너프를 받아야 할 만큼 OP인지 모르겠다. 과거 르블랑과 제드와 비교해서 파괴력이 있는가? 결코 아니다. OP라고 불리는 챔피언들은 혼자서 모든 것이 가능했던 챔피언들이다. 이런 챔피언들은 보통 밴 때문에 아예 볼 수조차 없었다. 하지만, 지금 아리의 밴률은 티모와 비슷한 수준이다. 바로 체감이 되지 않나?

그리고 마치 아리가 단점이 하나도 없는 챔피언인 것처럼 말을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일단 아리는 딜이 강력한 챔피언이 아니다. 주요 스킬이 논타겟이라 딜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런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딜 총량도 높은 편은 아니다. 협공할 때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지만, 혼자서 상대를 압살하는 것이 어렵다.

또한, 궁극기 의존도가 매우 높다. 궁극기가 없다면 거의 쓸모없는 챔피언이나 다름없다. 단순히 이동기가 없어졌다는 단점뿐이 아니다. 궁극기가 없으면 매혹을 맞힐 수 있는 확률이 현저히 줄어든다. 매혹이 강력한 CC기임에는 분명하지만 투사체 속도가 빠른 편이 아니라 근접한 거리에서 사용해야 위력적이다. 때문에 궁극기로 상대에 순식간에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승률과 픽률은 예전부터 좋은 편이었는데 왜 이제서야 OP라고 주장하나? 다른 챔피언들의 너프로 조금 떠오르는 것이지 성능 자체가 OP는 아니다. 생각해보자 '아리다... 하... 졌어' 라는 느낌을 줄 정도로 압도적인 성능을 보유하고 있나? 상대편이 골랐을 때 이런 느낌을 받는다면 OP라고 하겠다. 하지만 아니지 않은가. 단점과 장점을 명확히 보유하고 있는 챔피언이다. 적당한 밸런스를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오히려 아리를 중심으로 다른 챔피언들의 밸런스를 맞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통계는? 솔로 랭크와 대회 모두 좋아. 하지만, OP인지는 물음표



■ 랭크 게임 - 승률, 픽률은 높은데 밴률 낮아
승률 53.15%, 픽률 16.26%, 밴률 1.09%(3월 30일 오전 기준)


랭크 게임 기준 통계로 보면 아리는 정말 좋은 챔피언임이 분명하다. 승률 53.15%로 미드 챔피언 중 4위고, 게다가 픽률은 16. 26%로 2위다. 승률과 픽률이 동시에 높은 챔피언이니 사실 이견의 여지가 없다. 티어를 간절히 올리고 싶어 하는 유저라면 지금은 아리를 사용해야 하는 때다.

그렇다면 'OP다!' 측의 말처럼 정말 라인전 무상성 픽일까? 통계로 봐도 타당한 이야기였다. 라인전에 중요한 지표라고 할 수 있는 솔로킬 확률이 몇 명의 암살자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아리가 우위에 있다. 재밌는 것은 아리의 전통적인 카운터인 야스오조차 아리에게 밀렸다. 매치업 승률에서도 아리에 우위인 챔피언 고작 4개 뿐이었다. 미드 승률 2위인 카서스에 우위인 챔피언이 7개인 것에 비하면, 아리는 무상성에 가까웠다.

하지만 여전히 OP인지는 의문이 생긴다. 그 이유는 밴률. 아리의 밴률은 고작 1% 정도에 불과하다. 일반적으로 OP라고 분류되는 챔피언들은 솔로 랭크에서 얼굴조차 보기 어렵다. 밴이라는 시스템 때문에 무조건 잘라버린다. 너프를 당하기 전 르블랑은 밴률이 90%가 넘을 정도였다. 물론 챔피언의 자체 성능보다는 유저들의 인식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 밴률이지만, 1%는 작아도 너무 작다. 뜨거운 대립에도 불과하고, 은연중에 다수의 유저들은 아리가 그렇게까지 위협적이지 않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 프로 대회 - 승률은 높은데 밴픽률 낮아
승률 65.2%, 픽률 12.1%, 밴률 7.8%(3월 30일 오전 기준)


몇 년 전 '페이커' 이상혁이 아리로 대회를 휩쓸 때를 제외하고는, 아리가 대회에서 좋은 픽이었던 적이 없었다. 여러 가지 단점이 대회에서는 더욱 부각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리는 이번 시즌에 확실히 좋은 선택이었다.

대회에서 10회 이상 출전한 챔피언 중에 아리보다 승률이 높은 챔피언은 카밀이 유일하다. 큰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다. 아리는 15승 8패로 65.2%고 카밀은 14승 7패로 66.7%다. 사기적인 스킬 구성을 가지고 있는 챔피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정도니 어떻게 좋은 챔피언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밴픽률이다. 일반적으로 프로들은 좋은 챔피언이라고 판단하면 밴 아니면 무조건 픽을 한다. 카밀의 대회 밴픽률이 100%인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아리의 밴픽률은 18.9%로 33위에 불과하다. 카밀과 비슷한 승률을 가지고 있는 것에 반해, 밴픽률은 완전히 대조적이다. 카밀만큼 좋은 평가를 받는 챔피언은 아니었다. 결국 통계만 보고는 아리가 OP인지 아닌지 판단하기 어렵다.



해답은 프로게이머! 그들에게 정답을 물었다.



■ 논란의 종지부! '페이커' 이상혁, "너프할 정도는 아니다"


LoL 역사상 최고의 선수 '페이커' 이상혁은 "너프가 필요한 정도는 아닌 것 같아요. 잘 쓰기만 한다면 좋은 성능을 내는 챔피언은 맞아요"라고 답했다. 다소 모호한 의미일 수 있어 재차 물었다. 성능 자체는 OP인데 성능을 끌어내기 어려운 것이냐고. 이 질문에 OP 논란을 잠재울 수 있는 답을 내려줬다. "OP까지는 아닌 것 같고 괜찮은 픽인 것 같아요"라고. 이는 솔로 랭크와 대회 모두에 해당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장, 단점을 간단하게 한 문장으로 표현했다. 조금이라도 잘 크면 좋은데, 또 조금이라도 못 크면 별로라는 것. 전통적으로 이어지는 아리의 특징이었다. 이어서 카운터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페이커'는 "카운터도 물론 있어요. 하지만, 자세하게는 말씀드릴 수가 없어요"라며 조심스럽게 답했다.


■ 왕께서 말하시길... 킹라운 '크라운' 이민호, "OP라는 느낌 없어"


현재 최고의 주가를 달리고 있는 미드 왕, '크라운' 이민호에게 물었다. 그의 답은 간단하고 명료했다. "OP는 아니에요. 변수를 줄 수 있는 카드 정도인 것 같아요. 상황에 따라 엄청 좋기는 하지만, 또 어떤 상황에서는 함정카드에요"라며 대회 기준에서 답을 줬다.

그러나 솔로 랭크에서도 OP는 아니라고 말했다. "언제든 무난하게 뽑을 수 있는 그럼 챔피언? OP라는 느낌은 없어요. OP라는 게 대처가 거의 불가능한 완벽한 챔피언 같은 거잖아요. 그런데, 상대할 때나 제가 플레이할 때나 그렇지는 않았어요." 게다가 무난하다고는 말했지만, 의외로 카운터도 여러 가지가 있다고 답했다.

결론적으로 너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지금 딱 적당한 것 같아요. 대회나 솔로 랭크에서나 그렇게 승률이 좋은 챔피언인지 몰랐네요"라며 아리에 대해 다시 한번 평가했다. 장, 단점은 '페이커'의 의견과 비슷했다. "장점으로는 푸쉬력이 좋아 먼저 행동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능동적인 픽이죠. 하지만, 망하면 뒤가 없고 무난하게 가면 나중에 5:5 한타에서 상대에게 밀릴 가능성이 크죠."


너프? 더 지켜봐야

프로게이머 중에서도 최상위 선수들의 대답이 통일됐으니, 현재로써는 OP가 아니라는 것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적어도 이 게임에 가장 높은 숙련도를 자랑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렇다. 그럼에도 아리가 밸런스 조정의 대상이 될 가능성은 남아있다. 리그 오브 레전드는 최하위권 유저부터 대회에 참가하는 프로게이머까지 모두를 염두에 두고 밸런스를 조정하기 때문이다.

리그 오브 레전드의 게임 밸러스를 담당하고 있는 그렉 스트릿은 '브론즈부터 벵기까지 모든 플레이어를 위한 리그오브레전드 밸런싱'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진행했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렉 스트릿은 게임 밸런스의 초점을 최상위권 플레이어들에게만 두지 않는다고 밝혔다. 브론즈를 포함한 솔로 랭크 플레이어들이 게임을 즐기는 데, 방해되는 챔피언이 있다면 밸런스 조정을 염두 한다는 것. 따라서, 아리 또한 충분히 조정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조정을 하기 전에 유저들에게 현재 상황에 적응하고 대응해 나갈 시간을 주는 것은 어떨까. 프로게이머들의 얘기처럼 충분히 대처할 수 있고 약점도 존재하는 챔피언이라면 말이다. 게다가 아직 유저들이 아리를 밴이라는 감옥에 넣어두지도 않았으니 그녀를 처형하기에는 이르지 않을까. 만약에 당장 너프를 해야 한다면 정말 살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