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벨나인 정민섭 대표(좌), 최종헌 CTO(우)

세상은 공식에 의해 돌아간다. 학문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흔히 접하는 게임은 '문법'으로 이루어져 있다. 장르든 흥행이든 흐름이든 어느 정도 규정되어있다. 통상적으로 인류의 놀이문화는 예외발생→ 규칙파괴→ 규칙확장이라는 '규칙 재구성(Reconstruction of rules)'과정을 거치는데 게임은 '새로움에 대한 욕구' 혹은 '진부함에 대한 거부'로 이러한 형태가 나타나곤 한다.

선발주자의 경우 이러한 단계를 의도적으로 이용할 수가 있는데 LEVEL 9 Inc,(이하 레벨나인, 대표 정민섭)에서 개발 중인 '팬텀 게이트'가 그렇다.




별다른 내용이 공개되지 않은 어드벤쳐 RPG '팬텀게이트'에 주목한 이유

어드벤쳐 RPG를 표방하는 이 게임은 아직 대중에게 제대로 공개된 바 없다. 현재 공개된 정보라고는 아트워크와 짧은 플레이 영상 그리고 OST뿐이다. 그럼에도 지난 3회 NTP(Netmarble Together with Press) 때 '팬텀게이트'를 눈여겨볼 수밖에 없었다.

중국형, 일본형 등 철저하게 현지형 전략을 내세웠던 3회 NTP. 그들이 가장 잘하는 RPG로 북미·유럽을 공략하겠다는 전략도 공개했다. 판이 불리하면 바꾸면 된다는,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오만하게까지 느껴졌을만한 당당하고 공격적인 모습이 아직도 뇌리에 강하게 남아있다.

문제는 상대적으로 RPG에 대한 학습능력과 관심도가 떨어지는 북미·유럽 시장을 어떻게 공략하느냐였다. 이 의문은 전략 라인업이 어느 정도 답을 줬다 . '블레이드&소울 모바일', '테라 모바일 ',세븐나이츠 MMORPG' 등 쟁쟁한 게임 사이에 이름을 올린 '팬텀 게이트'는 유명 IP인 스타워즈, 트랜스포머, 지아이조와 비견되는 위치에서 소개됐다.

서비스사인 넷마블의 전략은 아마 이럴 것이다. 서구 시장에서 글로벌 IP를 활용하는 것과 동시에 아직 주류장르에 오르지 못한 RPG를 주류 시장에 편입시키기 위해 'RPG+ α'로 개척하려는 요량인 셈이다. α는 서구 사용자들이 익숙한 어드벤처나 전략이리라.

그러면 넷마블에게 필요한 것은 이러한 사항을 충족하면서 RPG 학습이 가능한, 그리고 룩앤필로도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킬만한 게임이었을 것이다. 그럼 전략 라인업 중에 남는 건 '팬텀게이트'다.

[취재방담] 제3회 NTP 후기-"당분간 넷마블 천하 VS 얼마 못 간다"





'팬텀게이트'는 왜 이런 포지션을 취한 것일까?

'팬텀 게이트'는 스토리 중심의 어드밴처 RPG를 표방하는 게임으로 숨겨진 길과 함정 등 다양한 탐험의 재미를 가진 게임이다. 외견상 플랫포머게임이나 '발키리 프로파일' 같은 형식을 띤다. 여기에 서구 사용자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북유럽 신화 기반의 감성적 스토리와 그래픽을 강점으로 다가간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넷마블이 잘하는 RPG와 궤가 다르다. 정민섭 대표는 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RPG를 원래 만들던 팀이라 RPG로 결정했다. 방향성은 명확했다. 지하철 노선도 마냥 펼쳐져 있는 스테이지에 들어가서 노획하고 성장시키는 그런 게임과 대척점에 서기로 했다. 비슷한 방식의 게임이 많이 있으니 우리가 게임을 다 만들고 출시할 2년 후쯤에는 차세대 RPG에 대한 욕구가 많을 것으로 판단했다.

그리고 이런 방식의 게임이 지금까지 북미지역에서 성공한 경우라고는 '서머너즈워'밖에 없으니까. 고민하던 중 콘솔의 횡 스크롤 어드벤쳐 게임들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가 RPG를 좋아하고 하던 이유가 무엇일까? 필드에서 즐기는 모험과 탐험이다. 모험과 탐험을 해가면서 시나리오를 즐기는 재미 때문에 우리가 RPG를 좋아했던 것이다. 그런데 요즘 모바일 RPG에는 이게 싹 다 빠져있다.

유저 경험 자체를 과거 RPG에 모험과 탐험을 통해 시나리오를 '뚫는'재미가 있던 시절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레이맨'마냥 필드를 상하 좌우로 움직이는 형태로 꾸몄다. 꾸미다 보니 감성적으로 꾸미고 싶다는 욕구가 들었다. '저니'나 '모뉴먼트 밸리'와 같은 감성을 전달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래픽적으로 로우폴리아트 스타일을 택했고, 음악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게임이 아무리 재미있고 좋아도 초반 룩앤필이 좋지 못하면 접하지를 않으니까.

▲ 지금까지 공개된 유일한 인 게임 영상,
실제 빌드는 더 많은 것을 해볼 수 있는 단계까지 진행되어 있다.

스토리는 북유럽 신화에 기반을 뒀다. 미국은 특성상 그들만의 신화라고 부를 수 있는 부분이 없다. 그래서 그들은 북유럽 신화를 자신들의 신화인양 받아드리는 경향이 있다. 마블의 어벤저스 등을 통해 오딘, 토르 등 자연스럽게 노출돼있기도 하다.

난 북유럽 신화에서 발키리의 캐릭터를 좋아했다. '별의 눈동자(Topelius, 1818~1892)'와 같은 북유럽 동화들이 가지고 있는 톤앤매너(Tone & Manner)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고 있는 동화의 행복한 결말과는 다르다. 북유럽 동화는 우울하고 음습하며 애잔하다. 이러한 정서가 발키리가 가지고 있는 캐릭터 와 잘 맞아서 발키리를 중심으로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어드벤쳐 형태의 필드에서 자연스럽게 스토리를 즐길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북미에서는 스토리의 개연성이 없으면 저급하다는 판단을 내리기도 하니까.

그래서 그들이 익숙한 어드벤처 게임처럼 즐기면서 스토리를 하나하나 이어나가다 보면 어느새 RPG가 가지고 있는 요소들, 이를테면 성장, 진화 과정을 자연스럽게 연계 학습할 수 있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토리 베이스의 어드벤처 게임이라고 느끼게 하는 게 중요했다.

시나리오 중심으로 초반부터 헷갈리지 않게 북미의 대중에게 RPG를 교육 하러 가는 거다. 콘텐츠 오픈 속도와 타이밍도 국내와 다르게 잡고 천천히 차례대로 열 생각이다."


▲ 이것만 보면 교육용 만화 느낌도 나는 것 같다.





그들의 문화와 감성에 눈을 맞춘 룩앤필(Look and feel)

그래픽과 음악이 게임을 판단하는 모든 요소는 아니지만, 초반 모객에 상당 부분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특히 우리와 감성이 다른 국외를 염두에 둔다면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모바일 게임이 발달한 동아시아 3국은 거리도 가깝고 문화도 공통부분을 향유(享有)하고 있지만, 아트 리소스 색채가 명확히 다른 것이 그 좋은 예다. '팬텀 게이트'는 아직 게임 쪽에서는 조금 생소한 로우폴리아트와 북유럽 느낌이 물씬 풍기는 음악으로 다가간다.

▲ 로우폴리아트 스타일은 광고 및 일러스트 뿐만 아니라 팬 아트 쪽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출처: pikachu-hat)

"그래픽적으로도 연구·개발을 많이 했다. 중국이나 일본 등 동양권에서 선호하는 스타일과 북미·유럽이 선호하는 스타일은 매우 다르다. 그래도 어느 한 쪽으로 치우기는 또 싫었다.

북미는 진보된 디자인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북유럽의 디자인 패턴이 친숙하며 이러한 패턴은 이케아 등을 비롯해 동양에도 들어와 있다. 그래서 실내장식, 건축 등에서 스칸디나비아식 해석을 부지런히 공부했다. 자연을 이용한 소재 등 각이 지면서도 저급해 보이지 않는 것을 연구했다.

로우폴리아트 스타일은 광고나 삽화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는 기법으로 게임에는 아직 널리 퍼져있지 않은 방식이다. 사실 아리송했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로우폴리아트 스타일로 프로토타입을 만들고 해외 업체와 이야기할 기회가 생기면 항상 물어봤다.

▲ '팬텀게이트'에서 사용된 로우폴리아트 스타일


'나는 오리엔트 개발자인데 너희를 타겟으로 게임을 만들고 있어. 나는 이러한 그래픽이 북미 타겟으로 먹힐 것으로 예상하고 만들고 있는데, 솔직히 어색한 거 없니?'는 질문을 정말 꼬박 꼬박했다. 블리자드가 한복을 그릴 때 아무리 고증을 열심히 했다고 해도 어색한 것처럼 우리가 그들의 문화와 감성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 나도 같은 문제에 부딪히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미국에서 만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로우폴리아트 스타일로 만든 게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퍼즐이나 런 게임 등 가벼운 게임만 있었지 본격적으로 RPG에서는 아마 우리가 처음이지 않을까 한다. 게임 자체뿐만 아니라 외형적인 모습에서부터 그들이 어떻게 하면 좀 더 쉽고 이해하기 편하게 다가갈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다.

음악도 많은 공을 들였다. 북유럽 리듬이라고 했을 때 떠오르는 멜로디들이 있다. 북유럽 정통 민요들의 코드와 멜로디를 판타지에 맞게 재구성했다. 음악 작업은 '스튜디오 도마'의 양승혁 감독이 맡았다. 음악을 상당히 중요하게 여겼는데 텐센트 제일의 음악감독이라 그런지 확실히 마음에 든다(웃음)."


▲ 북유럽 감성이 듬뿍 들어간 OST





그들은 우리와 라이프 스타일이 다르다.

GDC(Game Developers Conference)를 비롯한 해외 유수의 콘퍼런스를 갈 때마다 듣는 이야기가 있다. 태블릿 PC와 스마트폰이 게임 플랫폼으로서 PC와 콘솔에 비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 하지만 국내 실사용자들의 반응은 정 반대다. 왜 집에 와서 모바일 게임을 하느냐는 의견이 대다수다.

그럼 인사이트를 가진 세계적인 연사들이 시장을 잘 모르는 것일까? 아니다. 우리가 사는 삶과 그들이 영위하는 삶이 만든 차이가 이해의 차이를 만들었다.

"RPG로 자연스럽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다. 작년 초부터 넷마블 북미지사에서 FGT 등 크고 작은 테스트를 5, 6번 진행했다. 현지인을 모집해 그룹별로, 개인별로 지켜보면서 분석했다. 북미에 맞는 게임을 만들기 위해 폴리싱하고 폴리싱하고 있다. 데이터 부분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현지 생활에 대한 의견이 정말 큰 도움이 됐다.

북미 시장은 수동 전투에 대한 요구가 훨씬 강하다. 그래서 그들이 익숙한 어드벤처 게임처럼 즐기면서 스토리를 하나하나 이어나가다 보면 어느새 RPG가 가지고 있는 요소들, 이를테면 성장, 진화 과정을 자연스럽게 연계 학습할 수 있게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토리 베이스의 어드벤처 게임이라고 느끼게 하는 게 중요했다.

필드에 아케이드 요소와 퍼즐 기믹을 배치했더니 확실히 몰입하는 효과를 줄 수 있었다.

▲ 필드 디자인에 상당히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미국은 한국, 일본 등 아시아권 국가들과 생활 패턴이 다르다. 미국 길거리를 잘 보고 있으면 길거리에서 스마트폰을 보는 사람들은 별로 찾아볼 수 없다. '스몸비(smombie)'가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스마트폰을 보고 길거리를 걸어다니는 사람들이 적었다는 말로도 해석할 수 있다.

때문에 일본 게임에서는 아주 당연한 '지하철 역 한 정거장' 분량에서 굉장히 자유로울 수 있다. 북미 사용자들은 일상을 마치고 집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게임을 즐긴다. 태블릿 PC 나 스마트폰을 들고 게임을 즐긴다. 그러므로 99% 이상이 우리가 지칭하는 '수동 진행'을 선호한다.

아시아권 사용자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라이프 스타일이라 처음에는 나도 많이 충격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서는 바쁘니까, 자동전투를 돌려놓고 한참 후에 결과물로 무언가를 하는 데 반해 이들은 우리가 PC 게임을 즐기듯 모바일 게임을 즐긴다. 이들에게는 하나의 플랫폼이다.

▲ 이런 느낌이랄까 (출처: Shutterstock)

서구권 사용자 중 원래 RPG들을 즐기는 사용자들은 별다른 허들 없이 시스템에 적응하는 모습을 확인했다. 어드벤처를 즐기는 층은 필드가 이런 식으로 꾸며져 있는 것에 호감을 느꼈고, 캐주얼 게이머들은 그래픽을 즐겼다. 확실히 이미지는 잘 접근하고 있다고 본다.

국내 FGT 반응도 진짜 진짜 신기했다. 굉장히 신기했다. 모바일에서 없던 형식이라 되게 신기하다는 의견이 제일 많았는데, 소위 말하는 '아저씨 게임'을 하는 사람들도 신기하고 재미있다는 말을 해줘서 놀라웠다. 다만 '손이 많이 간다'라는 의견은 항상 따라왔다 (웃음).

캐주얼 게임을 하는 여성 사용자들은 게임 자체에 대한 호감보다는 귀여운 캐릭터를 수집하고 키우는 것에 많은 점수를 줬다. 해외랑 비슷한 동향이었다. 이를 고려해서 콘텐츠를 배치하고 있다.

북미·유럽 사용자가 주 타겟이지만, 한국에도 서비스할 게임이기 때문에 자동 전투를 넣기는 했다. 하지 전투 그 자체에만 넣었고 탐험은 100% 조작을 해야만 한다. 탐험에 까지 자동을 넣으면 게임이 이상해질 것 같았다. 정체성 문제도 생길 것 같고."





빨리 베껴서 내지 왜 북미, 유럽 시장에 도전하는 걸까? 이렇게 어려운걸.

나는 '미투 게임'은 훌륭한 사업 모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훌륭한 창작자로 보기는 힘들지만. 1970년대 일본 기업들과 90년대 국내 기업들의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 전략은 세계적 반열에 기업과 국가를 올려놓는 데 성공했다. 흥행 산업이자, 창작 산업인 게임에서도 이와 같은 모습은 자주 찾아볼 수 있다. 좋게 말하면 '흐름'이고 그렇지 않게 말한다면 '모방'이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레벨나인은 그렇지 않았다. 그림만 북미풍으로 그리고 시스템은 여기저기서 따와 빠른 시일 내에 게임을 만들 수 있었음에도 필드를 구성하고 BM을 폴리싱하고 학습 능력에 맞춰 콘텐츠도 재배치했다. 꽤 공을 들이며 먼 길을 택한 셈이다.

"처음부터 대놓고 'RPG야!'라고 하면 북미에서 경쟁력이 많지 않다고 판단했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지하철 노선도식 뺑뺑이 자동사냥 말이다.

사실 중국 시장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다. 가장 큰 단일 시장이니까. 그러나 중국 색채를 잘할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서구 취향에는 자신 있었다.


'도탑전기'의 성공 이후 많아진 도탑류 게임으로는 터프한 시장을 제대로 공략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게임 내 적인 것도 있지만, 개발을 시작할 때도 지금도 중국은 게임 외적인 정서가 잘 맞지 않는다. 사업하는 데 있어 변수가 너무나 많은 시장이다. 차라리 그럴 거면 북미·유럽 시장을 공략하자고 마음을 먹고 프로토타입을 만들기 시작했다.

서구 시장은 아직 열려있다고 봤다. 우리가 잘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그 누구보다 서구 마켓의 감성과 문화를 잘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사무실도 독일에다가 낼까 고민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는 '한국 사람' 이잖나. 개발자들이 움직이기 힘들더라. 제주도 가는 것도 힘든 마당에. 현실성이 없었다. 그래서 연남동에 사무실을 내고 개발 중이다. 우리가 처음 개발을 시작할 땐 연트럴파크도 없는 조용한 동네였다 (웃음)."

처음에 북미향 게임을 만든다고 했을 때 우려했던 사람이 많았다. 지금까지 북미향 게임이라고 하면 그림만 북미 취향에 맞게 그려놓은 게임이 많았는데 '팬텀 게이트'는 필드가 있는 게임이고 이것이 중심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필드를 구성하는 데 상당 시간을 소요해야 했다.

게임을 만들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게임을 보여주면 돌아오는 대답은 항상 부정적이었다. '누가 귀찮아서 하겠냐?'라는 말이 참 많았다. 그러나 우리가 세운 목표를 보고 구체적으로 할 일을 정립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지금까지 왔다. 지금 빌드를 보여주면 다들 '이게 가능하구나!'라면서 놀라고는 한다.

▲ 전투는 실시간 방식과 턴 방식이 결합한 방식이다. 파이널판타지의 ATB 방식과 비슷하다.

솔직히 전혀 지금까지 없던 타입의 게임은 아니다. 하지만 실패했다고 들었다. 넷이즈에서도 모바일 어드벤처 게임을 만들기는 했으나 RPG 요소와 접목은 하지 않았다.

사업을 이끌어나가려면 RPG화 된 시스템이 없이는 안 된다고 봤다. 상당히 부담스럽고 힘든 과정이었지만, 인제 와서는 많은 응원과 격려를 받고 있다.

미투게임으로는 우리같이 작은 개발사가 살아남기는 매우 힘들다. 비용과 규모에서 경쟁이 될 수가 없다. 더 위험하다고 생각해서 독특한 게임성만이 살길이라고 생각했다. 우려도 컸다. 주위에서 자꾸만 '차라리 빨리 베껴서 만들어라'라고 말할 때마다 솔직히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난 굽히지 않았다. 그게 우리 레벨나인의 개발 철학이다. 우리와 같은 개발사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고 잘됐으면 좋겠다. 그러면 큰 회사들이 지원해 주는 생태계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출시를 가늠하고 있는 지금, 진짜 어려운 건 우리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이다.

아직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지만, 레벨나인과 넷마블은 출시 일시를 가늠하고 있다. 게임 개발은 후반 폴리싱 단계 진행 중이다. 출시 직전 작업을 하는 상황에서 지금껏 가장 힘들었던 점을 물었더니 놀랍게도 어디서도 듣지 못한 답변이 나를 덮쳤다.

"타겟이 북미이다 보니 한국 냄새가 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현지 유명 성우들이 녹음할 때 디렉팅하고 빌드에 반영해보니까 한국 게임이 아닌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

가장 어려운 건 우리가 한국 사람이라는 거다. 개발하면서 끊임없이 '이게 과연 북미향일까?'라는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만드는 사람도 한국인이고 주위에 있는 사람도 한국인이니까 의견, 피드백 자체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과연 이렇게 판단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에 대해 계속 의심을 하다 보니까 빨리 달릴 힘이 있어도 빨리 달리지 못해 어려웠다.

물론 계속해서 현지인의 의견을 듣고 넷마블 쪽에서도 많은 데이터를 제공해주고 있다. 그러나 현재 폴리싱하는 단계에서 우리가 잘하는지 못하는지 의구심이 든다. 현실적으로 타겟 사용자들의 피드백을 받는 게 좋은데 이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물론 한국 흥행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북미·유럽을 중점적으로 접근하고 있지만, 한국사람들도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게 만들고 있다. 근래의 게임에 지쳐있는 사용자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분명히 한국에서도 반향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한다."







레벨나인의 철학 - 도전하지 않는 개발은 재미없다, 60세까지 재미있게 만들자

레벨나인의 구성원들은 제법 오랜 시간을 함께 해왔다. 그 원동력은 '개발 철학'. 도전을 통해 재미 욕구를 충족하고 있었다. 재미가 없다면, 도전이 없다면 일반 회사원이랑 다를 바가 없다는 정민섭 대표. 나아가 오래오래 함께하며 환갑잔치까지 회사에서 해주는 직장이 되고 싶다고 했다.

"워크숍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곤 한다. '난 팬텀게이트를 작품성과 흥행성을 다 잡는 게임으로 만들 거고, 자신 있다. 그렇게 만들 것이다'라고. 주위에서 정말 걱정을 많이 해줬다. 너무 작품성 위주로 가는 거 아니냐고. 난 작품성과 흥행성을 함께 잡는 게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못하면 어려운 거지만 나는 할 거니까.

사실 개발하는 처지에서는 쉽지 않은 거 잘 안다. 질러놓는다고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지 않은가. 그래도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개발사가 되고 싶다. 도전하지 않으면 재미없다.

우리회사는 오래된 인연들이 얽히고설킨 곳이다. 우리가 업계에 투신한 지 20년쯤 됐는데, 어렸을 때부터 줄곧 듣는 이야기 중의 하나가 '마흔 살이 되면 개발은 그만둬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런데 우리부터가 이미 마흔 줄이다.

우리 팀원 중에는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너무 코딩이 너무 하고 싶어 다시 회사로 돌아온 쉰 살을 바라보는 개발자도 있다. 정말 60세까지 개발을 할 수 있는 그런 회사를 만들고 싶다.

현재 회사에 40여 명의 구성원이 '팬텀 게이트'를 개발하고 있다. 팀장급 위는 최소 5년 이상 함께 호흡을 맞춰왔던 사람들이다. 지금처럼 앞으로도 오래오래 다 같이 함께 했으면 좋겠다.

사실 대한민국의 개발자들을 모아놓으면 100명이면 99명이 마음속에 새로운 것을 하고 싶어하고 도전하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다 엮여 있으니 고비와 장벽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해내고 싶다. 60세까지 함께 도전하는 개발사. 앞서도 말했지만 도전하지 않는 건 재미가 없다. 이런 재미가 없으면 그냥 직장 생활일 뿐이지 않겠나?"


▲ '팬텀 게이트'는 보물 상자를 볼까, 미믹(mimic)을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