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게임을 즐기는 사람에게 있어서 유럽은 매우 큰 시장이자, 꿈과 같은 땅이기도 하다. 수많은 보드게임 인구가 존재하고, 매년 신작 보드게임이 출시되고, 매년 10월에는 세계 최대의 보드게임 박람회인 '에센 슈필(Essen Spiel)'이 열리는 곳이니 말이다.

전 세계의 보드게임 디자이너가 매년 10월에 독일의 에센을 찾고, 서로의 게임을 공유하며 유럽 시장으로의 진출을 노리기도 한다. 그만큼 크고 수많은 디자이너를 만날 기회기도 한, 가능성이 넘친 장소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막상 반문을 거친다면, 유럽 보드게임 시장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우리가 스스로 던지던 물음들에 단서를 제공하기 위해, 스마트 쿠키 게임즈'의 미하엘 치걸 (Michael Tschiggerl) 매니징 파트너가 '2017 보드게임 디자인 라운드테이블 인 부산'을 찾았다. 마이크를 잡은 그는 유럽 시장의 현황과 진출 가능성을 청중들에게 풀어냈다.

▲ 스마트 쿠키 게임즈의 '미하엘 치걸 (Michael Tschiggerl) 매니징 파트너

미하엘이 재직 중인 '스마트 쿠키 게임즈'는 보드게임 전문 퍼블리싱 에이전시다. 디자이너를 대신해서 퍼블리셔와 라이센스 계약을 맺는 역할의 회사라고 할 수 있다. 유럽 시장에서는 보드게임 디자이너가 유명해지기 전까지, 개인의 게임을 개별적으로 평가하지는 않는 상태다. 그렇기에 스마트 쿠키 게임즈와 같은 에이전시를 통해서 라이센스 계약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면 되는 셈이다.

스마트 쿠키 게임즈는 게임 디자이너이자, 게임 제작사 협회 회장으로서 큰 발자취를 남겼던 故 '알렉스 랜돌프'의 게임(웜 업, 홀스 데어 가이어, 마해, 챠오챠오, 데어 이쎄스! 등)을 담당하고 있는 회사이기도 하다.

▲ 간단하면서도 깊이 있는 보드 게임을 만들어낸 작가, 알렉스 랜돌프


■ EU의 시장 현황

회사에 대한 간단한 소개가 이어진 뒤, 본격적인 시장 분석이 시작됐다. 미하엘은 EU가 28개의 국가와 25개의 언어 , 5억 명의 사람들과 19개의 나라가 유로화를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공통된 시장과 가치관, 정부 구조, 역사 일부를 공유하는 한편, 다른 언어와 문화, 사회, 교육 체계를 가지고 있는 곳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이렇게 같은 사회 구조 속에서도 나라마다 특징이 다른 EU의 모습이 현재의 보드게임 시장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봤다.

또한, 전세계 매출에서 27%를 차지할 정도로 가장 큰 장난감 시장을 가진 곳이기도 하다. EU에서는 매년 60%의 장난감이 새로운 상품들로 채워지며, 독일, 프랑스, 프랑스, 영국 등에 경제적으로 성장한 나라들에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 이들 또한 대부분의 판매가 부모님을 통해, 크리스마스 시즌에 집중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 독일의 시장 현황

EU의 시장 상황이 이렇다면, 조금 더 세부적으로 파고들어 가보자. 에센 보드게임 박람회가 열릴 정도로 보드게임이 대중화된 독일에서는 보드게임 구매에 '교육적인 가치'에 중요도를 둔다. 독일 내에는 14세 이상의 플레이어가 500만 명 정도로 구성되어 있고, 세부적인 장난감 판매 비율에서는 장난감 자동차가 11%, 야외용 장난감이 11%, 퍼즐 게임이 12%, 액션 피겨와 전자 장난감은 2% 정도의 비율로 구성되어 있다.


독일 장난감 시장 내부의 '게임 & 퍼즐 시장'의 현황은 현재 5억 유로 이상의 규모로 성장한 상태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16년에는 10% 이상 성장했으며, 판매량은 4천만 개에 이른다. 세부적인 판매량 분류에서는 가족용 보드 게임이 22%, 아동용 보드 게임이 21%,카드 게임이 16%, 미취학 아동용 게임이 13%, 트레이드 카드가 7%를 차지한다.

작년인 2016년에는 1,500개의 게임이 만들어졌고, 독일 시장에서 독일어로 출시되었다. 이는 1990년부터 2000년까지 10년간 출시된 게임의 수와 비슷한 규모다. 혹자는 이러한 결과를 두고 게임 시장이 과열되어 있고, 거품이 끼었다는 평가를 하기도 한다. 이렇게 많은 수의 게임을 3,000개가 이상의 장난감 가게에서 전부 소화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퍼블리셔 현황은 현재 110개가 넘는 게임과 퍼즐 제작사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자체 퍼블리싱이나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하는 개발자들도 다수 존재하는 상태다. 독일에서는 게임 디자이너(작가)가 만들어낸 게임들을 퍼블리셔의 에디터가 관리하며 게임을 출시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역할을 맡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에디터는 게임을 테스트하기 전에 개발자가 만든 룰을 파악하고, 필요에 따라 직접 만나 테스트를 진행하기도 한다. 대형 퍼블리셔의 경우, 에이전시와 계약을 통해 게임을 받는 형태다. 에이전시가 고른 게임들을 테스트하여 퍼블리싱을 결정한다. 이 과정에서 테스트 비용은 디자이너가 지불하는게 보통이다. 따라서 디자이너들은 좋은 창구를 가지고 있는 에디터와 계약하고자 한다.



■ EU의 보드게임 문화 형성

미하엘은 EU 전체에 있어, 보드게임 및 전반적인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나라마다 특징을 가진다고 설명했다. 기후와 시간대가 달라, 놀이 문화 또한 다른 양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스칸디나비아 반도는 혹한기에 해가 뜨는 시간이 짧아, 아이들이 집에서 놀이활동을 즐기는 모습을 보인다. 반대로 몇몇 나라에서는 해가 오랜 시간 떠있으므로, 외부에서 활동하는 놀이 문화가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다.

이와 같은 차이 때문에 EU 내에서도 몇몇 나라의 보드게임 시장이 더욱 중요해지며, 더 큰 성장률과 규모를 가지게 되었다고 분석했다. 생활 양식과 문화가 달라, 시장 자체의 선호 종류와 크기가 달라지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 독일의 보드게임 문화 형성

독일의 제품 구성 및 라이센스 현황은 '다양함'과 '복잡함'으로 정리할 수 있다. 다양한 종류의 게임이 출시되고 있으며, 단순한 게임보다는 복잡한 형태의 게임이 더 많은 상태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교육적인 가치'를 중요하게 판단하여 구매하고 있다.

또한, 품질이 좋고 튼튼한 제품을 만드는 것이 구매와 생산에서 중요한 가치로 다뤄진다고 한다. 카드 게임을 플레이한다고 가정하면, 100번 넘게 게임을 즐기더라도 카드에 손상이 없기를 기대하는 모습을 보인다.

보드게임 선호도에서는 16~29세의 연령층에서 47%가 보드게임을 더 좋아한다고 대답했다. 보드게임을 여전히 플레이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젊은 층에서도 한 달에 최소 1회 이상 보드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인 또는 가족 단위로도 1개월당 1회 이상 플레이하는 사람의 비율은 30%에 달했다.

미하엘은 이러한 높은 비율의 이유를 독일의 전통에서 찾았다. 독일은 15세기부터 장난감을 만들기 시작했을 정도로 역사가 깊으며, '게젤샤프트스피엘(Gesellschaftsspiele, Gesellschafts + spiele, 사회 + 게임, 소셜 게임의 의미)'라고 부르는 개념이 존재했다. 사람들이 모여서 플레이하는 게임들이 문화적으로 자리잡혔기에 가능했다는 분석이다.


또한, 교육적인 가치를 중요시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19세기에 보드 게임이 중요한 교육 수단으로 작동했기 때문이라고 봤다. 당시 교양시민(Bildungsburgertum) 계층은 더 많은 교육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고, 아이들의 교육에 중점을 뒀다. 이 계층에서 보드게임이 교육에 일부 사용되었기 때문에, 현재까지 교육적 가치에 중점을 두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예측이다.

1차세계대전 당시에는 참전 군인들에게 '화내지마'라는 뜻을 가진 보드게임을 보내는 것으로 마케팅을 진행하기도 했으며, 이 게임이 1920년 즈음에는 대중화되어 가족 전체가 즐기는 보드 게임으로 자리 잡기도 했다. 이러한 문화 때문에 가족과 함께, 친구와 함께 즐기는 문화가 형성되었다고 봤다.

이후 발전하던 독일 보드게임 문화는 1995년 클라우스 토이버가 '카탄(KATAN)'을 만들면서 가정용 전략 게임 장르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된다. 카탄은 총 2,200만 카피가 판매되었으며, 전 세계 30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카탄은 모노폴리와 달리, 운에 지배받던 요소를 줄이고 전략을 강조한 것이 특징이었다. 어떤 플레이어도 게임이 끝나기 전에 탈락하지 않았다. 파티게임보다는 더 많은 생각과 계획을 요구했지만, 쉽게 배울 수 있고 상대적으로 빠른 시간에 플레이가 가능한 것도 장점이었다.

미하엘은 '보드게임 디자이너'라는 단어도 독일에서는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고 알렸다. 독일에서 보드게임을 제작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작가(Author)'라고 부르며, 스토리 텔러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보드게임 디자이너는 독일에서는 보드게임의 시각적인 요소를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를 의미하는 단어다.

그만큼 보드게임은 북유럽의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대중적으로 퍼졌으며, 디지털 매체가 있어도 보드 게임이 인기가 많은 상태다. 문화 일부로도 받아들여졌고, 27개가 넘는 장난감 박물관이 설립되기도 했다. 올해의 보드 게임을 선정하기도 하며 많은 이들이 행사장을 방문하기도 한다.




■ 유럽 지역 진출을 원한다면 명심해야 할 것들

미하엘은 시장의 특징과 대표적인 박물관과 행사를 소개한 뒤, 유럽 시장 진출에서 신경 써야 할 것들을 청중들에게 전했다.

먼저, 유럽 시장에서 보드게임은 인기가 좋고, 전문화된 시장과 다양한 기관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이다. 소비자와 퍼블리셔, 시장 모두가 개발 단계부터 고퀄리티를 요구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모으고 있는 상태라고 정리했다.

하지만, 과열된 양상을 보이고 수많은 경쟁자가 존재하는 것도 현실이다. 그렇기에 미하엘은, 수익 면에서는 기대하기가 어려우며, 유명한 그룹을 벗어나서 개인적으로 유명해지기는 어렵다는 사실도 동시에 지적했다. 단적인 예로 '카탄'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만,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는 것과 같은 셈이다.

주의점을 정리한 뒤, 강연의 끝에 미하엘은 "개인적으로 성공하기는 어렵지만, 신선하고 유니크한 아이디어가 있다면 성공할 수 있다"고 전한 뒤, "유럽과 독일 스타일의 게임이 20년 뒤에는 한국, 대만, 중국 스타일의 게임으로 바뀔 수도 있다"며 청중들의 도전을 강조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