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넥슨코리아 박웅석 디렉터

게임 개발을 막연히 꿈꾸는 이들에게 가장 만만하게 보이는 것은 아무래도 기획자일 것이다. 언뜻 보기에 별다른 전문지식이 필요해 보이지 않아 보이는 탓이 크다. 게임을 많이 해봤으면 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그러나 실제 개발에 있어 기획자만큼이나 다양한 분야에 깊은 지식이 필요한 직군도 드물다. 기획 업무는 물론이고 커뮤니케이션 능력도 필요하다. 글 쓰는 능력도 필요하다. 시장 동향도 알아야 한다.

넥슨코리아의 박웅석 디렉터는 기획자 지망생을 대상으로 그들이 기획자가 되는 데 필요한 역량이 무엇인지 짚었다. 2000년부터 클래식 RPG를 비롯 지금까지 총 9개의 프로젝트를 맡아 개발하고 있는 그가 직접 경험한, 다년간 기획자 면접 및 교육을 진행하면서 아쉬웠던 이야기들이다.


■ '우리'는 누구인가

보통 신입 기획자 면접이나 교육 때 일부러 두루뭉실한 질문을 던지고는 한다.

"게임 좋아하세요?" 그러면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네, 좋아합니다."
"게임 많이 해보셨어요?" 그러면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네, 누구보다 많이 밤새 했죠"
"게임에서 기억이 남는 것은?" 그러면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레이드가 엄청 재미있었어요"
"게임이 인기 있는 이유는?" 그러면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친구들이 PC방에 가면 많이 해요"
"어떤 비전을 가지고 계세요?" 그러면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게임 개발하고 싶습니다"

맞다 우리는 이런 사람이다. 다 게임 좋아하고, 많이, 깊게 한 게임이 있다. 그리고 개발을 하고 싶다. 그럼에도 이런 질문을 던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게임 좋아하세요?" 는 어떤 장르의 어떤 게임을 '무엇 때문에' 좋아하느냐를 물어보는 거다.
"게임 많이 해보셨어요?" 는 어떤 게임을 무엇 때문에 많이 플레이했는지를 물어보는 거다.
"게임에서 기억이 남는 것은?" 는 어떤 콘텐츠와 시스템의 어떤 요소가 기억이 남는지 물어보는 거다.
"게임이 인기 있는 이유는?" 는 시장에서 어떤 것이 어떤 의미인지 물어보는 거다.
"어떤 비전을 가지고 계세요?" 는 어떤 기획 분야에서 어떤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 물어보는 거다.

자, 그렇다면 이런 의도를 파악하고 제대로 설명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게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를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분야가 포괄적인 개념이지만 우선 게임 장르와 특성, 게임의 핵심 요소, 컨셉 디자인, 시스템 디자인, 레벨 디자인, 게임 시장 등등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잘 대답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이런 것들에 맞춰 필요한 준비와 역량 강화만 하면 된다. 그렇다. 말은 쉽다. 그러나 이 것들을 알아채기는 쉽지 않다. 솔직히 현 기획자도 놓치기 쉬운 부분이다.


흔히 기획자에게는 공통역량과 직무역량이 필요하다고 한다. 공통역량은 조직생활을 하면서 업무를 진행할 때 가져야 할 덕목이다. 이를테면 게임산업 시장 이해, 커뮤니케이션 능력, 창의성, 지식 및 학습창출, 팀 중심적 사고 행동 및 협동성 등등이 이에 포함된다. 지식 및 학습창출/전파 및 공유, 보안의식을 포함한 개발 커뮤니케이션, 구현역량, 창의성 등은 직무역량이라 할 수 있다.

기획 지망생들은 학원이나 혹은 개인적으로 상기한 역량을 키우기 위해 노력한다. 개론을 보기도 하며 역기획서를 작성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들이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있다. '창의력'이다.

맞다. 기획자에게 창의력이 요구되는 것은 맞다. 그런데 이는 어떻게 강화할 수 있을까? 단순히 게임을 많이 해야 하나? 책을 많이 읽으면 되나? 매체를 자주 보면 되나?

기획자 지망생이나 신입 기획자들은 이런 걸 구체적으로 준비한 적이 없다. 구체적으로 준비해야 역량을 강화할 수 있다.

▲ 농담이라고는 했지만, 진담같았다.


■ 기획자가 되기 위한 준비

많은 지망생이 역기획서를 쓰거나 신규 콘텐츠 혹은 시스템 기획서를 쓰며 준비한다. 습작하는 사람도 대단히 많다. 말하기나 쓰기 연습을 하는 사람도 있고 시장 및 동향을 분석하는 사람도 있다. 다 맞다. 틀린 준비는 없다. 그런데 이렇게 준비하면서도 역량 강화가 제대로 안 됐다면 그건 기획의도를 전달하거나 설득하는 부분이 부족했다고 말할 수 있다.

역기획서 샘플

1. NPC를 통해 퀘스트를 받는다
2. 아이템을 구하거나 몬스터를 잡는다
3. 특정 n개를 구하거나 n마리를 잡고
4. 다시 NPC한테 오면 퀘스트 클리어
5. M맵에 x,y 좌표에 있다
6. NPC 설정은 이쁜 '나오'이다
7. 이쁜 '나오'의 말투는 꽁냥체 이다
8. 유저는 NPC 퀘스트를 받아 A아이템을 받기 위해 퀘스트를 한다
9. A 아이템을 받아 더욱 빠르게 성장한다
10. A 아이템의 i스텟은 10이고 i 10의가치는 ii 100%다.

많은 사람이 기획의도 없이 '기획자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명확한 기획의도가 없다면 과연 사용자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명확히 기획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콘텐츠를 만들 수 있을까?

물론 그중에는 기획의도를 쓰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의도가 매우 모호하다. 기획서 마지막에 목표나 의도를 써서 그랬을 것이다.

역 기획서를 쓰면서 이를 포트폴리오처럼 준비하는 사람들을 틀렸다고 말할 수 없다. 행위는 맞다. 그러나 이게 의도가 무엇이냐고, 얻는 것은 무엇이느냐고 하면 대답할 말이 없다. 즉 완성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

이런 실수를 하지 않고, 좀 더 효율적으로 기획자가 되기 위해 우리가 하는 행위가 어떤 영향이 있고 어떤 결과가 있는지 명확히 이해하고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 특별한 기획자 되기

아주 당연한 말이지만, 훈련이 필요하다. 앞서 처음 언급한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기 위해서는 우선 게임을 많이 해야 한다. 단순히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깊게 해봐야 한다. 게임을 단 하나만 하더라도 굉장히 깊이 있게 모든 콘텐츠를 경험해보고 기획의도, 구조,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장르에서 요구하는 생각과 관점을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런 단계에 이른 후에야 해당 장르에서 다양한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A 게임은 관점과 어떤 해석이 있는지 B 게임의 관점과 해석은 어떤지 C게임은, D 게임, E게임은 어떤지 확장해나가야 한다. 많은 게임을 보고 다양한 관점과 생각을 갖춘 후에야 다른 장르의 게임까지 섭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각종 매체를 활용해 견문을 넓히고 정보를 획득하는 것도 훈련의 일환이다. 무엇을 하든 간에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해보는 게 중요하다. 상상도 좋고 공상도 좋고 망상도 좋고 허상도 좋고 환상, 몽상도 좋다. 각종 생각은 모두 다 좋다. 다만, 생각하는 것에서 끝내면 안 된다. 그로 발생하는 영향과 결과를 반드시 구체적으로 생각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사람이 생각할 때, 대충 보면 말이 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를 다른 사람에게 설득하거나 전달하려면 막연히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굉장히 어렵다. 본인이 생각이 완전히 정리된 게 아니기 때문이다. 기획자는 정리해서 전달하는 훈련을 거쳐야 한다.

즉 모든 것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생각하여 다양한 관점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지 다양한 관점의 질문을 소화할 수 있다.

훈련이 필요하다

의도 정하기& 파악하기
무엇보다 읽고 & 써보기
잘 요약 정리하여 &전달하기(문서포함)
구성 & 룰 이해하기
결과 분석 & 정리하기
목표 역량 설정 & 강화하기

현업 기획자를 포함하여 굉장히 많이 놓치는 것 중의 하나가 '구성과 룰을 이해하기'다. 보이는 것만 이해하는 데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모든 구성을 보고 이 구성으로 어떤 룰을 만들어 서비스하는지 이해할 줄 알아야 한다.

콘텐츠를 분석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콘텐츠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 이후 어떤 요소를 활용해 구성했고 각 요소는 어떤 이해와 영향을 주는지 판단해야 한다. 이를 통해 유저들이 어떻게 플레이하기를 원하는지, 실제로는 어떻게 발생하는지, 왜 이 차이가 발생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만약 변경 점이 생겨서 리뉴얼한다면 우선 콘텐츠의 기본 룰을 확실히 하고 시작해야 한다. 기본 룰을 유지하면서 변경할 수 있는 요소는 무엇이 있는지, 이로부터 파생되는 콘텐츠는 무엇이 있는지 혹시 기본 룰을 바꾸면 어떤 결과가 되고 무엇이 파생되는지 생각해야 한다.

하지만 보통 지망생이나 신입 기획자가 들고오는 기획서, 역기획서는 이러한 고민이 없다. 구성과 룰에 대한 고민이 없으므로 기획의도를 파악하기 어렵다. 상기한 내용을 모르고 쓰는 역기획서는 의미가 없다. 그래서 수정을 하다 보면 처음에 무엇을 의도했는지조차 희미해져 버린다. 새로운 구성, 요소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만약 콘텐츠가 의도가 바뀌었다면 활용하는 구성, 의도는 당연히 고려해야 하며 실제 유저들은 어떻게 플레이할지도 새로 생각해야 한다. 바뀐 내용이 어떤 변화를 가져갈까도 고민해야 한다. 최종적으로 이 모든 내용을 고려하여 어떤 내용들이 유효한지 잘 골라낼 필요도 있다.

구체적으로 콘텐츠를 이해했고, 이를 베이스로 수정, 보완에 대해 고민을 해본 사람의 기획서는 이 모든 게 담겨 있다.

▲ 계속 순환하며 창의적 기획을 해야 한다.

목표를 설정하는 것도 특별한 기획자가 되는 방법이다. 본인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파악하고 어떤 기획에 강점이 있고 이를 행하는 데 필요한 역량이 무엇인지 알고 강화시켜나가야 한다. 단순히 파악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계획도 세워야 한다. 이 모든 것은 고민, 설정, 안정으로부터 출발한다.

사실 기획에 관련하여 강연하자면 '주제 잡기'로만으로도 몇 시간을 강의할 수 있을 정도로 깊은 내용이다. 그러나 신입 기획자나 지망생들에게 그보다 더 중요하게 전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모든 기획 지망생들은 개인마다 훌륭한 강점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나만 느끼는 강점을 모두가 아는 강점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계획적인 훈련이 필요하다. 그러기에 먼저 자신을 이해하고, 기획자를 이해해야 한다. 나는 여러분과 '함께' 더 재미있는 게임을 만드는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