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거림이 멈추질 않아"

스토리텔링 게임들은 아주 복잡한 게임 요소가 없음에도 오랫동안 사람들 기억에 남는다. '투더문'과 같은 경우도 게임 자체는 사람에 따라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로 간단하다. 오브젝트를 모으고 스토리를 발동시키고 지문을 읽는 게 전부이지만 특유의 분위기와 몰입감 높은 스토리만으로도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좋은 게임으로 기억에 남았다.

팀 '자라나는 씨앗'의 게임들도 그렇다. 첫 작품인 '옐로우 브릭스(Yellow Bricks)'와 사이드 스토리인 '하트리스(Heartless)', 그리고 6월 출시가 목표인 차기작, '지킬앤하이드(Dr.Jekyll & Mr.Hyde)'는 스토리텔링 어드벤쳐 게임으로써, 게임 요소 자체보다는 스토리텔링에 더 중점을 둔 게임들이다.

그렇다면 게임으로서의 의의는 무엇일까? '자라나는 씨앗' 이수호 게임 디자이너의 26일 NDC에서 진행된 '스토리 전달을 위한 게임 디자인 사례와 해결법 - '하트리스' 개발 일지" 강연을 통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이수호 게임 디자이너는 보다 정확하고 효과적인 스토리텔링을 위해 '하트리스' 속 게임 디자인이 어떻게 구성되어있는지 짚어주었다.


▲ 자라나는 씨앗의 이수호 게임 디자이너

고전 문학을 게임화하는 인디게임 회사, '자라나는 씨앗'의 게임 디자이너 이수호입니다. 팀 내에서는 '쉴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경력 4년 차고요, 인디게임 '파인딩 페어리'를 개발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팀 '자라나는 씨앗'에서는 캐릭터가 세계를 돌아다니며 숨겨진 에피소드를 찾고 스토리를 전개하는 어드벤쳐 스토리 게임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스토리를 진행하면서 도감을 모으고 미니게임을 플레이하게 되지요. 첫 작품으로 원작 오즈의 마법사 스토리를 기반으로 한 '옐로우 브릭스'를 시작으로 같은 원작에서 양철나무꾼의 사이드 스토리를 다루는 '하트리스', 그리고 차기작으로 '지킬앤하이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옐로우 브릭스'와 '하트리스'는 한국와 일본에서 정식 런칭했고, '옐로우 브릭스'의 경우 중국에서도 소프트 런칭을 했지만, 정식 런칭은 현재 많은 이유로(웃음) 스탑되어있지요.

▲구글플레이와 앱스토어에 이어 스팀 출시도 준비 중이다

이수호 게임 디자이너는 발표에서 게임 내에 스토리 전달을 위해 이용된 디자인과 개발시 중요했던 점들을 설명했다.



■ 스토리 선정의 기준과 첫 단계


먼저 스토리 게임을 만들게 된 이유는 게임을 통해 재미뿐만이 아니라 명작을 봤을 때 느끼는 감동을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대부와 같은 명작 영화나 소설을 보면서 받는 감동의 느낌을 생각하면서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왜 ‘고전 명작’이냐. 이유는 고전 명작이 모든 현대 미디어와 예술, 가령 영화나 게임 등의 뼈대가 되기 때문입니다. 고전 명작에서도 어떤 작품을 다룰지 고르는 것도 중요했는데요, 우리만의 기준을 가지고 선정을 했습니다.

먼저 두 개 이상의 미디어 매체에서 리메이크되었던 작품을 골랐습니다. 그리고 모험기나 탐험 요소가 많은 정적이지 않은 흐름을 가진 명작을 골랐는데요, 하지만 언젠가는 꼭 노인과 바다와 같은 정적인 스토리를 다뤄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작권이 만료된 오래된 명작을 골랐는데, 이건 소규모 게임 회사로써 어쩔 수 없기 때문이에요.

자, 이렇게 선정되었던 첫 작품이 ‘오즈의 마법사’입니다. 명작을 고르게 되면 이제 원작 소설은 물론 이걸 다룬 모든 작품들을 보고 읽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출시 후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됐어요. ‘스토리를 다루는 게임으로써 왜 비주얼 노벨이 아닌 어드벤처 게임을 선택했는가’에 대해서요. 우리는 스토리를 전달하는 과정에 있어서 유저가 주인공에게 몰입하기를 바랐습니다. 특히 소설의 경우 세계관이나 정보들이 모두 글로 적혀있잖아요? 이걸 월드(세계)로 재현해서 보여주고 싶었고, 유의미하게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어드벤처 게임으로 구상하게 되었습니다.


미니게임과 도감 등 요소를 넣어 진행되는 이유도 주인공이 되어 체험하는 느낌이 들었으면 하는 생각에서 나온 아이디어입니다. 물론 원작을 기반으로 하는 특징을 살리기 위해서 대사를 최대한 활용했습니다. 각색을 하는 부분이 많지만, 최대한 원작에 나오는 대사들을 살렸지요. 그리고 도로시가 태풍으로 날아가는 집에서 타일을 피한다든지, 하트리스에서 양철나무꾼이 마녀의 저주 때문에 날라오는 도끼를 피한다든지하는 미니게임을 통해서 체험하도록 구성했습니다.

그리고 책을 보면 캐릭터들의 정보가 변화하잖아요? 예를 들어 찌질했던 주인공이 주로 가면서 성장을 통해 멋진 영웅이된다든지 말이에요. 이러한 캐릭터의 상태가 변화하는 정보 ‘업데이트’를 캐릭터 도감을 통해서 성격 업데이트를 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캐릭터뿐만 아니라 세계의 변화도 세계관 오브젝트 도감을 통해 세계관 이해를 돕고자 했지요.


그래서 정리하자면 이런 형식이 됩니다. 스토리를 메인스토리의 대화와 연출을 통해 전달하되, 미니게임과 도감으로 보충하는 식입니다. 미니게임으로 체험을 하도록 하고 도감을 통해 메인스토리에서 전달하지 못한 서술적으로 표현된 캐릭터나 세계관의 내용을 보충하지요.

이렇게 출시를 한 후의 반응은 만족스러울 정도로 좋았습니다. 감정이입을 하고 슬퍼서 울었다는 평가나 다시 원작을 읽겠다는 분도 있었고요. 그리고 BJ분이 방송에서 제가 쓴 오글거리는 대사를 읽어주시는 걸 보고 글 쓰는 공부를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모두 차기작을 만드는데 좋은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 원작 텍스트에서 게임으로

자, 이제 개발 당시에 중요하게 여겼던 과정들에 대해서 설명하겠습니다.

먼저 기반으로 하는 원작이 있는 만큼 원작을 분석하는 과정이 중요했습니다. 원작의 책을 다루기 때문에 대화 문장과 묘사, 서술 문장으로 분류하는 것이 중요했지요. 물론 묘사와 서술은 경계가 모호하긴 한데 분류가 가능합니다. 이 기준에 맞춰서 소설의 문장을 분류하는 작업을 거치지요.


이렇게 분류된 문장들을 각각 메인스토리, 미니게임, 도감에 각각 맞게 분류합니다. 대화의 경우 스토리의 흐름을 다루기 때문에 메인스토리로써 게임 내 대화와 연출로 표현하고, 서술 문장은 미니게임을 통해 비주얼로 보여주지요. 그리고 객관적인 묘사는 도감을 통해 전달했습니다.

먼저 메인스토리로 전개되는 대화는 작은 사건 단위로 세분화해요. 배경과 인물, 오브젝트를 명확하게 분리하는 것이 중요하고, 유저 플로우에 맞춰서 재결합합니다. 하나의 에피소드를 각각 구성한 후 전체가 모여 큰 스토리가 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서술의 경우 미니게임으로 제작하여 정보를 전달합니다. 예를 들어 원작에 ‘양귀비밭이 넓게 펼쳐져 있고, 꽃들이 많이 모여 향기가 너무 강력해서 냄새를 맡으면 잠에 빠져버린다. 도로시는 일어날 수 없을 거야’라는 내용이 있어요. 이 내용을 미니게임을 제작하여 게임 내 재현되어있는 양귀비밭에 잘못 들어가면 주인공이 잠들어버린다든지 하도록 했습니다.

▲'하트리스'의 캐릭터 도감

그리고 마지막으로 세밀한 묘사는 도감을 통해 표현했습니다. 객관적인 정보라 대사로 표현할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도감에서 전달하는 것이 효과적이에요.



■ 스토리에 알맞은 코드, 그에 따른 게임 디자인

그리고 ‘코드’를 맞추는 게 중요합니다. 코드는 물론 컴퓨터 소스 코드나 플러그 코드도 있지만(웃음),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코드는 ‘우리 코드가 맞다’ 할 때 의미의 코드를 말해요. 개인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코드가 맞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코드가 게임 내의 아트나 사운드, 연출의 방향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죠.


예를 들자면 옐로우 브릭스의 도로시는 호기심 많고 궁금해하는 모험적인 스토리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그 코드에 맞춰 파스텔톤의 색감을 사용하고 발랄한 이미지와 음악을 이용합니다. 하트리스의 경우 이루어질 수 없는 슬픈 사랑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색상이 비교적 어둡고 슬픈 음악을 사용하는 게 맞지요. 차기작인 지킬박사와 하이드의 경우 물론 이중인격에 대한 철학적 내용도 있지만, 자신의 선택에 서글퍼하는 지킬박사의 심리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그래서 서글픔이라는 코드를 전달하는 식으로 아트와 음악을 구성한 것을 보실 수 있을 거에요.

▲'옐로우 브릭스'

▲'하트리스'

스토리는 대화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대화와 묘사, 서술을 게임 속에 녹여내야 스토리를 전달할 수 있어요. 그리고 게임으로 스토리를 진행하면서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그 부분에 대해서 계속 생각하게 되고,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감동을 통해 사람들의 기억에 남도록 노력하고 있지요.



■ Q&A

이어진 QA에서는 강연을 들은 사람들이 궁금한 점을 질문하고 답변을 듣는 시간이 이어졌다.

=동양 고전이 아닌 서양 고전을 선정한 이유가 있나요?

동양 고전도 다룰 생각이 있어요. 다만 서양 고전들이 글로벌하게 잘 알려진 작품들이 많아서 먼저 다룬 것입니다. 나중에 역량을 키워서 동양 고전을 다뤄볼 생각입니다.

=스토리 게임 개발에서 인디 개발팀인 만큼 우선순위를 정하는 게 중요할 거 같은데 스토리와 리소스, 작업 순위가 있나요?

작은 회사다 보니 애자일방식으로 개발하고 있습니다. 프로토타입을 계속 만들면서 필요한 부분을 덧붙이는 방식이에요. 작은 팀에게 어울리는 방식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스토리 상 게임으로 구현하기 어려웠던 부분이 있나요?

하트리스에서 마녀의 저주를 받은 도끼가 닉의 팔다리를 자르려는 부분이 있습니다. 총 세 번에 걸쳐 팔다리, 얼굴, 몸통을 자르는데 책에서는 이 사건이 연속적으로 일어나거든요. 게임에서 이 부분을 미니게임으로 표현했는 데 같은 미니게임을 세 번이나 플레이하는 것이 지루하다는 평이 많아서 이 부분이 어려웠던 것 같아요. 앞으로 해결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코드를 잡을 때 유저 타겟층은 어떻게 잡으셨나요?

먼저 옐로우 브릭스의 경우 모든 연령이 플레이 할수 있는 방향으로 타겟을 잡았습니다. 차기작 지킬앤하이드의 경우 스토리 특성상 조금 더 나이가 있는 층을 타겟으로 하고 있지요. 게임에 따라 그때그때 대상 연령과 코드를 다르게 가져가는 편입니다.

=원작의 러닝타임이 길 경우 어떻게 하나요?

필요에 따라 생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지킬앤하이드의 경우가 특히 그런데요. 스토리가 길어서 모두 메인스토리로 다루기보다는 다른 추가적인 방법을 이용해서 전달합니다. 파트1, 파트2 등으로 나눠서 각각의 파트가 파트만 봐도 하나의 이야기로 스토리가 완성되고, 전체가 모여 큰 스토리를 완성시키는 방식으로 풀어갈 예정입니다.

=개발기간은 어느정도 였나요?

체계가 아직 구성되지 않았던 첫 작품 옐로우 브릭스의 경우 1년이 걸렸습니다. 그 후에 게임 개발 틀이 생긴 후에는 한 작품당 2-3개월이 걸렸어요.

=수익모델은 어떻게 구성하셨나요?

먼저 무료 작품과 유료 작품으로 나눴습니다. 그리고 추가 유료 DLC가 있는데 국가마다 조금 다르게 설정되어있습니다. 북미와 한국만 해도 조금 다르게 책정되어있지요. 앞으로도 필요에 따라 섞어서 구상될 것 같습니다. 작은 작품의 경우 바로 구매해서 할 수 있도록 하고 큰 작품의 경우 무료로 먼저 한후에 추가 DLC를 구매하는 방식으로요.

=스토리 연출에서 자본이 제한되어 구현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제한이 참 많습니다. 욕심으로는 3D로 구현하고 싶기도 하고, 많은 캐릭터를 넣고 싶은데 불가능한 부분이 많거든요. 기획자와 프로그래머, 디자이너가 제한되어있는 만큼 그 코스트에 맞춰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버리는 부분이 많을 순 있지만 스토리 전달에 꼭 필요한 부분이라면 절대 포기하지 않는 편입니다.

▲ 세계의 모습과 캐릭터의 감정변화를 확인하기에 용이한 쿼터뷰 형식

=쿼터뷰 형식을 채택한 이유가 있나요?

먼저 세계를 한눈에 보여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양귀비 밭 같은 경우 얼마나 펼쳐져 있는지 잘 보여줄 수 있거든요. 탑뷰도 세계를 잘 보여줄 수는 있지만, 캐릭터 얼굴이 보이지 않아 쿼터뷰를 채택하게 되었습니다.

=연출 중에서 가장 신경쓴 부분이 있다면?

차기작에는 빠졌는데 전작에는 작은 캐릭터들이 대화하면서 표정이 바뀌고 반응하는 애니메이션을 넣었거든요. 이런 상호작용이 유저들에게 중요하게 작용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그런 애니메이션 요소보다는 대사에 더 집중하는 것을 보고 대사에 치중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코스트를 줄일 수 있는 부분에서는 최대한 줄이고 필요한 부분에 더 투자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에요.

=스토리에 수정을 많이 하게 되나요?

스토리 중간중간 이거 이상한데? 싶은 장면이 있으면 그 부분을 잘라내고 다른 방식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편입니다. 스토리에서 자른다면 미니게임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도감으로 만들 수 있을까, 하면서 다른 방법을 모색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