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메이드는 한때 모바일 시대를 주도적으로 준비하면서 업계를 호령한 기업이기도 했지만, 꼭 성공해야 했던 게임이 줄줄이 패퇴한 상황이었다. 미르의 전설 때문에 중국에서 꼬박꼬박 들어오는 로열티, 카카오의 상장으로 인해 거둔 막대한 시세차익 등으로 현금 보유는 충분했지만, 성공의 기억이 너무 오래되었기에 속칭 말하는 비전이 잘 보이지 않는 기업이기도 했다.

그런 위메이드의 장현국 대표를 대면한 건 지난해 7월 매체 데스크 오찬에서였다. 한 숟가락 뜨기도 전에 장 대표가 입을 열었다. “위메이드가 과거에는 다른 메이저 개발사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큰 회사였지만 이제는 작은 회사가 됐다. 겸손한 마음으로 회사를 운영하려고 한다” 어쩐지 공기가 무거워졌다. 밥 먹던 숟가락을 놨다. 분위기가 그랬다.

돌이켜보면 위메이드 전성기는 2013년이었다. 모바일게임 격변기 시절, 향후 10년 먹거리를 내다보고 전략적으로 모바일게임을 육성했다. 윈드러너의 성공으로 모바일 시대를 열어젖힌 기업 중 하나로 평가받았을 뿐만 아니라, 이를 기반으로 많은 게임들에 대한 투자와 개발을 이끌기도 했다.

2011년 500명 안팎이었던 직원은 회사를 구로에서 판교로 이전하면서 2년 만에 1,700명으로 늘었다. ‘판교의 등대’라는 말도 이쯤에 생겨났다.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은 회사. 지금은 부정적인 의미로 퇴색되었지만 당시엔 소위 말하는 잘나가는 회사의 상징적 의미도 있긴 했다.

기대작들이 참패하기 전까지 위메이드의 분위기는 관도전투를 앞둔 원소군의 위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업계를 리드한다는 이미지도 있었고 PC온라인게임이 하락하면서 구조조정이 한창이었던 시절, 위메이드는 적자에도 불구하고 감축은 커녕 오히려 인력을 더 늘렸다. 무리한 확장이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덕분에 구조조정 소용돌이에 있었던 많은 개발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위메이드로 향했다. 한 다리 건너면 다 위메이드 출신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당시 위메이드 이미지는 넥슨, 엔씨소프트, 넷마블, 네오위즈, NHN 한게임 등 이른바 5N 시대의 체제를 무너뜨리는 연합군처럼 비쳐졌다. 조직이 거대화되면서 이를 운영할만한 막강한 리더쉽이 필요했고 박관호 의장을 위시한 김남철, 남궁훈 대표(위메이드 엔터테인먼트), 조계현 대표(위메이드 크리에이티브), 김창근 대표(조이맥스 대표) 체제를 구축하면서 맨파워 중심의 합종연횡 움직임을 보여주는 듯했다. 대표급만 5명이었기 때문에 회사 경영에 문제는 없을지 설왕설래 말도 나오기도 했을 정도였다.

실제로 2012년 12월 20일 모바일 통합 브랜드 ‘위미(weme)’의 등장은 글로벌로 나가기 위해 출항 전 술병을 깨고 시작하는 진수식처럼 숭고하게 여겨졌다. 밥상은 제대로 차린 셈이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해외 시장진출의 첫발을 내딛는 <슈가팡>과 함께, <캔디팡>, <과일나라 앨리스>, <리듬스캔들>, 2013년 <달을삼킨늑대>, <히어로 스퀘어>, <아틀란스토리>, <히어로스리그>, <렛츠 피싱>, <바이킹 아일랜드>, <펫 아일랜드>, 2014년에 <아크스피어>, <별에서 온 그대>, <에어헌터>, <신무>, <드래곤헌터>, <블러드스톤>, <윈드러너2> 까지 거짓말처럼 줄줄이 흥행에 참패했다. <윈드러너>처럼 국내에서 의미있는 성적을 거둔 게임도 더러 있었지만 힘 쏟은 글로벌 무대에서는 처참한 성적표를 받았다.

상황이 악화되자 위메이드 장현국 대표는 2014년 8월 컨퍼런스콜에서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없을 것”이라 말했지만 사실 말장난에 불과했다. 위메이드의 구조조정은 QA 등 계약직 인원을 재계약하지 않거나 퇴직자 충원을 하지 않은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또한 게임 출시와 함께 개발팀을 독립, 분사시키는 형태로 인원 감축을 시작했다. 일부 조직은 ‘고용승계’라는 조건을 내걸었지만 쫓겨나듯 나가는 건 매한가지였다.

그 결과 계열사 포함 1,700명에 육박했던 직원들은 독립성을 강화하겠다는 이유로 위메이드 아이오, 위메이드 넥스트, 위메이드 플러스, 이보게임즈 등으로 뿔뿔이 흩어졌으며 위메이드 본사 인원은 100명 안 되는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퍼블리싱 사업을 접고 자체 개발 위주로 전략을 개편하면서 현재 위메이드 본사는 미르의 전설 IP를 관리하는 것이 주 업무가 되고 말았다.


앞서 이런 구구절절한 설명을 늘어놓는 이유는 최근 논란이 된 ‘크런치’ 사태가 위메이드의 현주소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절박하고 절실하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냥 돌아가는 모양새가 그렇다는 말이다. 크게 베팅하고 안되면 ‘다이’하는 경영 방식은 전략이라고 하기보다는 도박에 가깝다. 숫자로 하는 경영 놀음은 인재를 육성하고 R&D로 기술발전을 해야 하는 게임사업과 애초에 맞지 않은 전략이며 이 늪에서 탈출하기 위해 선택한 출구전략도 동네 화투판의 ‘올인' 전략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편으로는 모바일 게임 초창기 시절 넷마블과 함께 양분했던 위메이드가, 이제는 자회사의 게임을 넷마블과 퍼블리싱 계약을 체결했다는 모습도 어딘지 씁쓸해 보인다. 특히나 크런치 사태의 명분 중 하나가 퍼블리싱 계약상 정해진 기한을 맞추기 위해서였다는 설명은, 연이은 흥행실패로 위상이 하락한 위메이드의 현 상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이기도 했다.

업계의 화두로 떠오른 위메이드 아이오의 크런치 사태 역시 “올게 왔다”는 반응이었다. 7개월간의 긴 크런치 기간도 이슈였지만 식사시간 30분, 일정을 맞추지 못했을 때 수당 반납도 도마 위에 올랐다. 일관된 비판 의견과 달리 PD의 말 못 할 속사정도 있었지만 박관호 의장의 48억 원 배당 문제가 불거지면서 블랙홀처럼 이슈를 흡수했다.

결과적으로 위메이드는 오너가 수십억 원의 배당 잔치를 벌이면서 개발자는 7개월 크런치로 내모는 회사가 되고 말았다. 이 거대한 농담 같은 상황은 굳이 회사의 구성원이 아니라도 충분히 공분할만한 내용이다.

사실 크런치는 이미 업계의 오래된 관행이고 또 국내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라스트오브어스, 언차티드 개발사로 유명한 너티독도 크런치로 악명이 높고, 글로벌 게임 퍼블리셔인 EA, 블리자드도 마찬가지다. 개발자 갈아서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이미 농담이 아니고 글로벌 공통이기도 하다.

업계 특성상 크런치도 종종 있을 수밖에 없다. 게임의 출시나 오픈베타 때, 대규모 업데이트 때는 크런치를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다. 언제 어떤 버그가 터질지, 언제 서버가 다운될지 모르는 상황은 크런치를 옵션이 아니라 필수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역으로, 가끔 써먹어야 하기 때문에 크런치다. 필요할 때 가끔 한 번씩, 제한적으로 사용해야 비로소 크런치가 되고 마지막 마무리가 완성되는 것이다. 크런치가 일상이 되면 더 이상 크런치가 아니라 사람을 갈아 넣는 거대한 공장이 된다. 위메이드 사태가 특히 문제가 되었던 것은 크런치의 일상화 때문이기도 했다.

개발자를 갈아 넣어서 만드는 것이 게임이라는 자조가 넘쳐나지만, 적절한 잉여 시간과 휴식 시간을 확보해줘야만 적절한 퀄리티가 보장되는 것이 게임이기도 하다. 필받았을 때의 한 시간 결과물이 크런치 모드 일주일의 결과물을 훌쩍 뛰어넘을 수도 있는 것이 게임이라는 장르가 가진 특성이기도 하다. 마라톤 레이스처럼 장기적으로 계획하고 컨디션 관리를 해줘야 롱런할 수 있다. 이마저도 여력이 안 된다면 애초에 말이 안 되는 스케줄을 짠 것이다. 돈 없는 스타트업이라면 혹시 모르되, 위메이드는 일단 가진 자금은 많지 않은가.


오너와 경영진의 조직 운영 전략이 없다면, 크런치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남들과 똑같이 먹고 자면 어떻게 성공할 수 있나”라는 궁색한 시각이 개발자를 크런치라는 불편한 골짜기에 밀어 넣는다. 특히 국내에서는 개발 일정을 맞추거나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크런치를 하기보다는 개발에 대한 의지를 '윗선'에 보여주기 위한 퍼포먼스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 오너들이 말하는 “개발팀 의지의 표현”이 그런 맥락이다.

위메이드 장현국 대표는 크런치 논란 이후 사내 메일을 통해 크런치 모드 전면 백지화를 선언했다. 강제적 크런치, 휴일근무수당 반납, 식사 시간제한 등은 앞으로 없을 거라고 못 박았다. 아울러 동기부여를 위해서 도입되었던 휴일근무수당, 인센티브는 약속한 그대로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이어진 보이저엑스 투자 취소 건도 이슈로 떠올랐다. 수차례나 확언하고 법인 설립과 인력 채용까지 마친 상태, 투자금이 늦어지기 때문에 투자금 중 10억을 먼저 빌려주는 형식으로 지원해주겠다고 할 정도였기에 투자가 취소되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가진 자산도 많고 미르의 전설이라는 IP가 워낙 탄탄하기에, 앞으로도 중국에서 들어올 막대한 로열티가 오랜 시간 지속될 것이기에 위메이드라는 회사의 흥망을 논하는 것은 사실상 별다른 의미는 없다. 현 상태로도 충분히 흑자를 보면서 유지될 수 있는 회사이기도 하다.

문제는, 업계 내에서 위메이드에 대한 신뢰가 상당히 손상되었다는 점이다. 사실 모바일 게임의 선도자에서 판교의 등대가 되었을 때부터 회사에 대한 업계인들의 신뢰도는 금이 가기 시작했다. 몇 년간 지속된 등대에 크런치와 투자취소가 왕창 끼얹어진 셈이니, 당분간 위메이드라는 이름은 업계에서 백안시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낮아진 신뢰도로 위메이드가 새로운 인력을 수혈하려 할 때, 새로운 게임을 개발하려 할 때, 새로운 게임에 투자하려 할 때, 새로운 사업에 진출하려 할 때 지금처럼 쉬이 진행이 될 수 있을까? 떨어진 신뢰도는 그만큼 더 많은 출혈, 더 많은 대가를 요구하게 마련이다.

당장 회사의 회계적, 재무적인 숫자에는 이상이 없고 앞으로의 자금 흐름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게임을 개발하고 출시하고 흥행시키면서, 사람들이 오고 싶은 회사가 되어야 한다는, 게임 개발 기업의 근본적인 속성 자체가 바닥부터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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