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공개였다. 모바일 게임으로 '건그레이브' IP를 활용한 게임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공개되었으나, 어느새 VR까지 개발하고 있었음은 예상하기 어려웠다. 그것도 FPS와 TPS를 오가는 독특한 모습으로 말이다.

덕분에 유나이트 서울 2017에서 부스를 마련한 '건그레이브 VR'은 많은 이들의 관심이 쏠렸다. PS2로 출시된 첫 타이틀과 후속작 이후 약 12년. 유나이트 행사를 통해서 최초로 공개된 건그레이브 VR을 체험하고, 개발자와의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다.


이기몹의 '건그레이브 VR' 부스에서는 17년 1월에 완성된 빌드와 유나이트 서울 2017에서 시연되는 버전까지 두 번의 시연이 진행됐다. 먼저, 1월 빌드는 1인칭 시점과 3인칭 시점을 전환하며 진행되는 형태다. 열차 위에서 게임을 시작하여, 익히 생각하는 VR 슈팅 게임의 형태로 게임을 시작하게 된다.

스테이지에서 날아오는 적들을 고개를 돌려가며 조준하고, 그레이브의 트레이드 마크인 대형 권총 켈베로스를 발사하는 방식이다. 열차 자체가 앞으로 나아가기 때문에, 자리를 잡아서 날아오는 적을 격파하거나, 고개를 좌우로 숙여서 장애물을 피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사실, 여기까지는 스테레오 타입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플레이 방식이었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별도의 컨트롤러가 아니라, 게임 패드를 이용한다는 점과 성우 더빙을 통해서 게임 방법을 설명한다는 것 정도. 하지만 열차 씬을 지나면서 '건그레이브 VR'의 특징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 시연은 딱 앉아서. 패드를 잡기만 하면 된다.

1인칭에서 3인칭으로 바뀌는 순간, 전반적인 조작이 달라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날로그 스틱으로 캐릭터를 조종할 수 있게 되면서, 액션 게임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날아오는 적이나 탄환을 등에 멘 관으로 날려버리는 것도 가능하다. 많은 적이 등장했을 때는 불렛타임으로 시간을 느리게 만들고, 적을 공격하는 것도 가능하다.

3인칭 시점도 1인칭과 마찬가지로 고개를 돌려가면서 조준해야 한다. 약간은 불편할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시야가 넓어진 덕분에 조작이나 상황 판단을 하기 좋다는 느낌을 받았다. 플레이 방식도 피하거나 맞기 전에 쏘는 것보다는, 튕겨내고 회피하는 움직임 위주로 게임이 진행된다. 조작하는 맛 하나는 액션 게임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시연은 곧 3인칭과 1인칭 시점으로 전환되면서, 스테이지의 최종 보스를 맞이하게 된다. 이전까지의 시연에서 자연스레 습득한 튕겨내기, 회피, 불렛타임 등 모든 조작을 활용하여 공략한다. 거대 보스가 등장했을 때의 연출과 카메라 워킹에도 신경 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패턴은 직관적이고 단순했지만, 불렛타임을 사용하는 타이밍이 중요했다. (사실, 타이밍을 못 맞춰서 고생을 좀 했다.)

▲ 이후 시연 버전도 마찬가지다. 3인칭 시점은 조작하는 맛이 있다.

두 번째 시연에서는 오직 3인칭으로만 진행되는 버전이 실행됐다. 전체적인 모습과 조작 방법은 1월 빌드의 3인칭 시점과 다르지 않지만, 우측 아날로그로 화면을 돌릴 수 있기 때문에 스테이지 곳곳에서 등장하는 적들을 상대하기 편한 모습을 보여준다.

VR의 발목을 잡는 멀미 문제는 '건그레이브 VR'에서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3인칭 시연에서 화면을 돌릴 때에는 살짝 뚝뚝 끊어져서 움직이기 때문이다. 모니터 가까이서 캐릭터를 조작한다는 느낌에 가깝고, 집중도가 높아 어지럼증을 느끼기는 어렵다. 1인칭과 3인칭을 전환하는 것도 멀미의 방지를 위해서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멀미가 오기 전에 시점을 전환하여 유저의 집중을 환기하기 위한 목적이지 않을까 한다.

분명히 화면을 이리저리 돌리는 복잡한 조작임에도 어지럽다는 느낌이 없다. 어쩌다 보니 화면 조작과 회피를 하면서 공격할 일이 있었는데, 어색하거나 불편하지 않고 자연스레 게임이 진행됐다. 심지어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 조준하고, 화면까지 좌우로 움직이는데도 말이다.

▲ 바쁘게 움직이다 보면, 캐릭터가 화면 정중앙을 자주 벗어나곤 한다. 하지만 어지럽지는 않다.

▲ 총격, 회피, 반격, 불렛타임으로 액션도 확실하다.

스테이지 내의 오브젝트는 대부분이 파괴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서 적들에게 대미지를 줄 수도 있다. 자동차나 드럼통 등 '아. 이거 터지겠구나' 싶은 것은 대부분 터진다. 적의 수가 많아서 게임에 화면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플레이해야 하고, 캐릭터의 액션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도 중요해진다.

움직이지 않고 연사를 하면 공격속도가 점차 빨라진다거나, 적들이 발사하는 유탄을 관으로 튕겨내는 등 복합적인 조작도 매력적이었다. 플레이어에게 빠른 판단을 요구하고 캐릭터의 스타일리시한 액션까지 충분히 감상할 수 있었다.

▲ 제자리에서 총을 연사하면 춤추듯 발사하며, 공격속도도 빨라진다. 신이 난다.

스테이지 구성은 잡몹 - 보스로 이어지며, 보스 등장 시에는 짧은 연출을 통해서 '아! 보스구나!'를 느끼게 한다. 일단 생긴 것부터가 범상치 않다. 보스는 기본적인 패턴이 있고, 이를 피하거나 반격하며 공략하게 된다. 난이도는 높지 않은 편이었으며, 반격이나 회피 판정도 여유로운 편이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점은 보스가 방패를 들었을 때, 뒤로 돌아가면 공격을 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옆에서 시연을 돕던 개발자가 "방패를 부수셔야 해요"라고 말은 했었지만, 왠지 돌아가서 때려도 대미지를 입힐 수 있을 것 같았다. 시도를 해보니, 뒤에서도 대미지를 줄 수 있었고, 정해진 패턴 외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공략할 수 있을 것이란 가능성을 봤다.

▲ 딱 봐도 보스처럼 생겼다. 원래 대머리 캐릭터는 다 강해 보인다.

▲ 방패를 파괴하라고 말하는데, 돌아가서 때려도 공격이 된다.

두 번의 시연을 마치기까지 소요된 시간은 30분. 계속 헤드마운트를 장착하고 있었던 점을 고려하면 꽤 오랜 시간 플레이를 진행했다. 하지만 어지럼증을 느끼기는 어려웠다. 시연에서 진행한 게임 플레이는 생각보다 밀도가 있었고, 몰입해서 게임을 마칠 수 있었다. 갑작스레 공개한 느낌과 달리, 충실하게 만들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다면 1인칭과 3인칭을 오가는 플레이는 어떻게 해서 탄생하게 되었을까? 그리고 어디에 목적을 두고 개발을 진행하게 되었을까. 시연을 돕던 이기몹의 김준호 팀장을 만나 '건그레이브 VR'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 이기몹의 이근호 팀장(좌측)과 김준호 팀장(우측)


Q. 이미 모바일 게임을 개발 중인데, 갑자기 VR 게임을 개발하게 된 이유가 있나?

= 모바일 게임을 개발하면서 다양한 회사들과 미팅을 진행했고,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다 콘솔로 도전한은 것은 어떠냐는 제안을 받았다.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일반적인 콘솔보다는 VR로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시행착오 끝에 개발을 시작하게 됐다.

그렇다고 모바일 게임인 '건그레이브 G.O.R.E'의 개발은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개발을 병행하고 있으며, VR에 조금 더 집중하고 있다고 보시면 된다. 모바일 버전에 대한 것도 조만간에 이야기 가능할 것 같다.

▲ 플레이엑스포 2016에서 공개한 '건그레이브 모바일' 플레이 영상


Q. 여러 엔진이 있었을 텐데, 유니티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 유니티는 VR 쪽에서 가장 발빠른 움직임과 지원을 보여주고 있다. 다양한 모듈도 갖춰뒀고, 인프라도 충분하다. 에셋스토어를 통해서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에셋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Q. 원작이 있는 게임인지라, 부담감이 있을 것 같다. 원작을 살리기 위해서 신경 쓴 부분은?

= 일본에서 원작자와 시나리오 라이터를 만나면서 서로 관통했던 키워드는 '우선적으로 팬들부터 만족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부담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편으로는 우리도 건그레이브 시리즈의 팬이기 때문에, 스스로 만족할 수 있을만한 게임을 목표로 열심히 개발하고 있다.

▲ PS2 '건그레이브'의 스크린샷. 10년이 넘은 시리즈 팬을 만족시키기 위해 개발하고 있다.


Q. 레드 엔터테인먼트와의 협력은 어떻게 진행되었나.

= 좋고 나쁨을 떠나서, 처음에는 한국식이라는 부분에서 서로 차이가 있었다. 문화적인 차이를 이해시키고 계약을 진행하다 보니 전반적으로 어려움이 덜하다. 그리고 만들고자 하는 방향에 대해서 서로 합의가 잘 되었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다고 본다. 여담이지만 시리즈의 정체성이 액션에 있었으니까, RPG 장르를 만든다고 했으면 협의가 되지 않았을 것 같다.


Q. 플랫폼은 어디로 출시될 예정인가.

= 일단은 PS로 먼저 출시하고, 이후에는 오큘러스, 바이브는 물론, MS나 텐센트 등도 생각하고 있다. 이후 시장상황을 보면서 퍼블리셔가 진출 플랫폼을 설정할 것이다. 가능한 모든 기기에 대응하고자 한다.


Q. 출시 계획은 어떻게 잡고 있는가.

= PS VR로 올해 안에 출시할 예정이다. 글로벌 출시를 염두에 두고 있지만, 자세한 일정은 퍼블리셔가 결정한 문제일 것 같다. 확정되면 추후 공개하지 않을까 한다.


Q. 패드 조작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VR 플랫폼마다 다양한 콘트롤러가 있을 텐데?

= 패드를 선택한 이유는 시리즈 팬들을 만족시키기 위함이다. PS로 따지자면 듀얼쇼크로 플레이하던 조작감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애초에 VR을 내세우고 게임을 개발했다기보다는, 건그레이브 시리즈를 우선시하되, VR을 양념으로 곁들이자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체험형 콘텐츠는 맞지 않다고 생각했고, 액션을 강조하기 위해서 패드를 중심으로 플레이하는 형태가 됐다.

▲ 패드조작을 선택한 것은 '액션'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Q. 시연을 해보니 한 스테이지 당 20분 정도가 될 듯하다. 타이틀 전체 분량은 어느 정도가 될까.

= 정확한 분량은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짧다는 이야기가 들리지 않도록 충분히 제공할 예정이다. 게임이 스테이지 방식이고, 체험형이 아니므로 분야가 다르다고도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다. 정식 출시 이후에는 랭킹 모드도 제공할 계획이다.


Q. 플레이 시 1인칭과 3인칭이 전환되는데, 이러한 구조를 선택한 이유는?

= 일단 재미를 위해서 한 것이라고 설명해 드릴 수 있다. 실제로 테스트를 해봤을 때 그레이브의 컨셉과도 어울리고, 신선한 느낌을 줄 수 있어서 시도하게 됐다. IP 측면에서 뭔가 새로운 도전이 될 것이고, 각 모드의 비중은 개발하면서 조정할 예정이다.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유저들이 피로도가 높아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유저가 느끼는 피로도와 플레이 지속 시간을 고려해서 시점 간의 밸런스를 맞추고자 한다.


Q. 건그레이브 O.D에서는 플레이할 수 있는 캐릭터들이 더 있지 않았나. 추가 계획은 있는가?

= 새로운 캐릭터는 당연히 추가될 예정이다. 로켓빌리, 군지는 물론이고 O.D판의 그레이브도 계획 중에 있다. 이런 부분에서는 열어놓고 작업하는 상태다.

▲ O.D에서 등장했던 캐릭터들이 출시 후 추가될 예정이다.

Q. 블루사이드와의 퍼블리싱은 어떻게 체결하게 되었나.

= 전부 다 말씀드리자면, 이야기가 길어지니 간단하게 설명해 드려야 할 것 같다. 개발 초에는 VR을 처음 만드는 것이라 개발진들 모두가 '누구에게 물어보고' '어디서 답을 찾아봐야 하는가'를 고민했었다. 유니티, 에픽 등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개발사를 만나면서, 블루사이드와 연락이 닿았다. 그러다 호감을 느끼게 돼서 퍼블리싱을 결정하게 됐다.

블루사이드 측에서 퍼블리싱을 진행하면서, 일정보다 퀄리티를 지켜달라는 이야기를 남기기도 했다. 이런 부분에서 신뢰도가 쌓였다.


Q. 게임을 기대 중인 유저들에게 전할 말이 있다면?

= 개발 PD가 건그레이브 시리즈의 팬이기도 하다. 팬들에게 있어서 실망을 드리지 않은 작품으로 개발하고 있다. 원작자, 성우 등 레드 엔터테인먼트와의 협업도 진행되는 만큼, 많은 기대를 부탁드린다. 출시까지 많은 기대를 해주셨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