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먼 타지에서 생활을 하다보면 많은 것들로 인해 쓸쓸함을 느끼게 됩니다. 보고 싶은 친구들이나 자주 먹던 음식들의 부재도 낯선 공허함을 주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가장 큰 쓸쓸함은 언어의 자유로운 소통이 되지 않는 부분에서 오는 듯 합니다. 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 있지만, 본디 수다쟁이었던 기자 역시 전에 없던 침묵을 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여러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내가 말을 했다가 틀리면 바보 같이 보이진 않을까. 뭔가 재미있는 말을 하고 싶은데 이 단어는 어색할까. 나는 그 동안 영어를 배워 오긴 했던 걸까. 그러다보면 어느새 말할 타이밍을 놓치게 되는 것이었죠.

북미에 갓 진출한 선수들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혼자 침묵해도 일이 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대화를 통해 성장해야 하는 프로게이머들에게 자유로운 소통은 더욱 절실할 것입니다. 하지만 외국 선수들과 숙소에 같이 산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영어가 늘 수 있을까요?

북미 LCS 취재를 다니며, 정말 의외의 인물과 안면을 트게 되었습니다. 타지에서 낯선 두려움을 느낄만도 한 선수들에게 대단한 의지가 되어줄 듯한 이 사람. 바로 북미에 진출한 한국 선수들이 더욱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도록, 영어를 가르쳐주는 영어 선생님이죠.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선수들의 경기력에 간접적으로 큰 도움을 주고 있는 Sophie Ahn 선생님을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 보았습니다.




▲ 영어 선생님인 Sophie Ahn. 인터뷰 사진에서 부분적인 얼굴 노출을 요청하셨습니다.



Q. 안녕하세요, 안 선생님(!). 어떻게 e스포츠, 특히 북미 LCS 소속 한국 선수들의 영어 선생님을 하게 되신 건가요?

기본적으로는 제가 대학에서 일을 해요. 그런데 미국 대학은 여름에 일을 안 하면 돈을 안 줘요. 3개월동안 돈이 없게 되니 깜짝 놀랐죠. 그래서 방학 동안 과외를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과외 사이트에 제 프로필을 올렸어요.

그랬더니 곧 피닉스 1의 매니저가 제게 연락을 했어요. 당시에 제게는 별 정보를 주진 않았어요. '한국 고등학생이 있다. 17살이다.' 정도였죠. 그래서 그렇구나 하고 갔는데, 가니까 컴퓨터가 막 놓여져 있고. 처음엔 '뭐지? 해커들인가?' 라는 생각도 들고 불안해서 안 가려고 했어요. 아무튼 그래도 이야기가 잘 되어서 'Pirean' 최준식 선수의 수업으로 영어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지금 생각해도 '프로 게이머들이 역시 머리가 좋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엄청나게 빨리 수업이 진행되었어요. 단 3개월만에 영어가 유창해졌죠.

그렇게 되니 LCS의 다른 팀끼리도 '어디 영어 선생님 없냐' 하면 팀끼리 저를 소개시켜주고. 알음알음 그렇게 되었죠.


Q. 피닉스 1이 잘 한 것이군요.

피닉스 1은 정말 좋은 Organization이에요.


Q. 이전에는 선생님 같은 역할을 하는 분이 LCS에 아예 없었나요?

네, 없었던 것 같아요. 이전에는 한국 선수도 많이 없었을 뿐더러, 그냥 알아서 하다보면 늘겠지 하는 식으로 생각이 되었나봐요. 늘긴 늘죠. 아주 오래 걸리거나, 문법이 틀리게 말한다거나.


Q. 많은 팀들에게서 영어가 게임 내 소통을 위해 엄청나게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어요. 저희 생각보다도 훨씬 말이죠. 잘 안되더라도 일단 영어를 해야 한다고 하는데, 맞나요?

영어에 능숙해지면 장점들이 많아요. 일단 팬들이 많아져요. 팬들이 많다는건 전반적인 그 팀의 인기가 높아지는 것이죠. 또한 선수의 계약에 있어서도 언어 능통자의 연봉이 더 높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본인들도 열심히 하려 하죠. 게임도 그렇지만 자신과 팀의 브랜딩 가치에 있어 언어 능력이 가지는 의미가 참 커요. 영어를 잘 못했던 '플라이' 송용준도 게임은 무리없이 할 수 있다고 하더라구요. 'Karma no flash' 정도만 해도 뭘 말하는지 아니까. 정말 중요한건 브랜딩이에요.

▲ 해외 인기 급상승의 상징인 애로우


라이엇에서는 한국 선수들에게 초반 신입 선수를 대상으로 컨퍼런스를 열어요. 그 때 영어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는데 왜 영어가 중요하고, 설령 틀리더라도 팬들에게 영어로 말하는 것이 어떤 이점이 있는가에 대해 굉장히 강조를 많이 해요. 올해 한국 선수들이 많이 와서 처음 시작했을 거에요. 근데 그 강의를 제가 하긴 했어요. (웃음)


Q. 그 컨퍼런스에서 주로 어떤 것을 강조하셨나요?

일단 틀리든 말든 말을 해라. 하지만 그게 쉽게 실천으로 옮겨지진 않아요. 그래서 제가 강조하는 예가 있어요.

LCK의 한국 팀들은 한국 선수들이 잘하니 당연히 한국 선수만을 뽑잖아요. 그런데 예를 들어서, 정말 엄청나게 잘하는 외국 선수가 나타나요. 비역슨이 그럴까요? 만일 그런 사람이 한국에 왔고, 같이 경기를 하려면 한국 말을 꼭 배워야 해요. 실력이 엄청나게 좋아서 모두가 데리고 있고 싶어하는 상황이에요. 만약 어느 날 그와 같이 밥을 먹게 되었어요. 그 외국 선수가 단어장을 뒤져가며 '김밥 나 사랑, 먹을래' 라고 말을 할때, 당신은 어떤 생각이 들 것 같은지에 대해 질문을 해요.

그러면 한국 선수들은 '귀여울 것 같다', '도와주고 싶다', '틀리긴 해도 이상하게 보진 않을 것 같다' 라고 대답을 해요. 제가 '그렇게 틀렸는데 바보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라고 재차 물으면, '아닐 것이다' 라고 대답해요. 저는 '그 선수가 바로 너다' 라고 해줘요. 그러니까 떨지 말고 아무 단어라도 지껄이라고 해요.

▲ "나 귀엽냐?"


Q. 그 가르침을 가장 잘 실천한 선수가 누구인가요?

(서슴없이) 애로우. 애로우가 1위죠. 무조건 1위에요. 무조건 영어로 맨날 말해요. 심지어 한국 사람들과 있을 때에도 영어로 말해요. 일부러.


Q. 역시 그렇군요. 애로우 선수는 어릴 적에도 공부를 엄청 열심히 했다고 들었어요.

네, 전교 14등이었다던가.


Q. 애로우 선수는 이젠 하나도 안 틀리고 영어를 완벽히 하나요?

지금도 엄청 틀리죠. 그래도 애교 수준이에요. 어쨌든 이런 노력이 보여서 애로우 선수는 팬도 많고 지지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Q. 그렇다면, 반면에 그게 잘 되진 않아서 답답했던 선수도 있나요?

엄청 많죠, 90%는 다 답답하죠! (웃음)


Q. 혹시 말수가 적기로 유명한 '루퍼' 장형석 선수인가요?

아뇨, 루퍼는 되게 잘해요. 루퍼는 못하는 말이 없어요. 문법도 다 맞고. 루퍼는 정말 제가 좋아하는 학생이에요.

말수가 적은 편으로는 C9의 '레이' 선수가 처음 보는 사람에게 낯을 가리고 말수가 적어요. 그래서 제가 '그래도 영어 빨리 늘려면 현지 사람과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나마 가장 편하게 대화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니?' 하고 물어보니 답변이 '잭(팀 오너)' 이라는 거에요. 그 사람이 제일 편해서 자주 이야기를 한다고 해요. 한국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죠.

▲ C9 구단주 잭의 모습. 실제로도 '큰형님' 같은 느낌이었다.



Q. 선수들의 영어 레벨이 그렇게 천차 만별인가요?

정말 다 달라요. 원하는 영어 스타일도 다르고, 배우는 목적도 다르고, 시작점도 다르고. 준비를 다 똑같이 할 수 있다면 많은 준비가 필요 없을텐데 그게 아니에요. 제가 각 팀에서 원하는 영어 레벨을 파일로 정리해놓는 것이 있어요. 레벨이 높을수록 준비하는데 시간이 정말 많이 걸려요. 한 시간 수업을 준비하는데 두세 시간 이상이 걸려요.

레벨이 높은 류나 애로우가 있는 피닉스 1에 가려면 캐스터들이 하는 말이나 인터뷰 등을 5분 정도? 영어로 모두 받아 적어요. 그걸 선수들한테 들려줘서 받아 적게 하기도 해요.


Q. 캐스터들의 스크립트를 계속 들으시면, 오히려 선생님이 더 많이 배우시기도 하겠네요.

몰랐던 용어도 많이 배우죠. 리그오브레전드에 대한 용어 공부를 많이 했어요. 같은 장면을 두고 LCK 캐스터들이 하는 말과 LCS 캐스터들이 하는 말을 다시 듣고 비교해보는 식으로 공부했는데 정말 힘들었어요. 1년 정도 하고 있는데 박사 공부보다 더 어려웠어요. 너무 생소해서. CS 같은 말도 몰랐고...


Q. 저는 영어를 배우며 문법이 정말 힘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문법의 중요성이나 문법에 능숙한 선수들에 대해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제가 문법에 대한 박사 학위를 받았기 때문에 그 쪽에 관심이 많아요. 그런 쪽에 또 관심이 많은 선수가 딱 두 명 있는데, 신기하게 '플라이'와 '매드라이프'에요.

매드라이프는 처음 만났을 때 영어를 하나도 못했거든요. 지금은 영어를 진짜 잘해요. 매드라이프에게는 제가 문법책을 하나 줬어요. '이걸로 공부하자' 라며. 그런데 그 후로 심심하면 그 책을 읽었어요. 재밌다고 하면서. 그렇게 혼자 문법을 다 뗀거에요.

▲ 매멘...


Q. 매멘... 아니 천재네요.

그리고 오프 시즌에 한국에 가서도 '선생님, 저 문법 질문이 있어서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은데, 스카이프로 할까요' 라며 일주일에 한 번씩 꼭 공부를 같이 했어요. 그리고 그 시간을 굉장히 좋아했고. '뭐 이런 애가 다 있나' 했는데, 플라이가 오고 나니 더 심하더라고요. (웃음) 플라이를 아직 두 번 밖에 만나지 못해서 앞으로 얼마나 빨리 늘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민기가 정말 빨리 늘었어요.


Q. 저희도 매드라이프 선수가 코치와 영어로 말을 하는 걸 봤는데, 단문이긴 해도 정말 말을 다 하더라고요.

(홍)민기가 1월에 왔거든요. 그 때 어떤 생각을 했냐면 '이걸 어떻게 가르치지? 많이 모르는 것 같은데... 못한다고 할까' 라고 생각할 정도로 정말 영어 초보였어요. 그런데 지금은 전혀 아니죠. 그래서 나는 매드라이프를 천재라고 불러요. 근데 플라이도 그래요. 가르치기 쉽죠.


Q. 현재 수업을 나가는 구단이 어디인가요?

한국인이 있는 팀 중에서 팀 리퀴드와 팀 엔비어스, CLG를 빼고요. 엔비어스는 시간이 안돼서 못하고 있고, 다음 시즌부터 하기로 했어요. 팀 리퀴드는 잘 하는 것 같던데요. 아직 잘 모르겠어요.


Q. 구단마다 수업 분위기가 다른가요? 다르다면 인상깊었던 분위기가 있으신가요?

많이 다르죠. 특히 지난 시즌에 디그니타스를 제일 많이 갔어요. 그 아이들(썸데이, 체이서)은 정말 기초부터 시작해야 할 정도였어요. 그런데 둘 다 많이 늘었고, 특히 썸데이가 정말 많이 늘었어요. 정말 영어를 좋아하고 잘 하고 싶어해요. 열정도 있고 착한 선수들이다보니 다 같이 모여 소파에서 편하고 즐겁게 수업을 할 수 있었어요.

피닉스 1은 제가 가장 마음 편하게 진짜 친정에 가듯이 가는 팀이에요. 가장 오래되기도 했고 분위기도 정말 좋아요. 류나 애로우도 펜 하나 안 가지고 편하게 수업에 와요. 걔네들한테 얼마나 많은 펜을 줬는지 몰라요.


Q. 그러면 다소 딱딱한 분위기의 팀도 있나요?

일단 제 스타일이 그렇질 않아요. 그래서 그런 적은 별로 없지만, 골드 코인 유나이티드가 그런 스타일을 좋아하긴 해요.

하지만 그렇게 하면 절대 수업이 안 되는 선수가 있는데, 바로 '플레임' 이호종이에요. 절~대! 안돼요. '서어흐은생니이힘~ 피히곤해요오~' '왜?' '오늘 스크리임~ 너어무 많았어허요오~' 이런 대화를 하다가 일단 수업을 하는데, 10분 정도가 지나면 '어 잠깐만요, 명상! 집중력이 떨어지고 있습니다.'라며 진짜 명상을 해요. 플레임은 정말 사랑스러운 성격이에요. 'Ang~ 서언생님~ I'm bored~' 하면서 앵겨붙으니 더 애정을 많이 주게 되고. 올레도 붙임성이 정말 좋고. 코치 쏭님도 재밌고 열심히 하시고, 임모탈스는 다 좋아요.

▲ "서으허언새앵니이히임~" 상상이 안 된다.


▲ 딱 봐도 사람 좋아 보이는 올레 선수


Q. 보다 게이머에게 실질적인, '라이너의 콜은 이렇게 해야 한다' 식의 학습도 이루어지나요?

네 그렇죠. 그런데 제가 그런 표현을 알고 있어도 각 팀마다 쓰는 표현이 다를 수 있어요. 어떤 팀은 'Be careful'을 쓰고, 어떤 팀은 'Watch out!'을 하기도 하듯 말이에요. 영어 레벨이 낮은 선수들이 자신의 표현과 다른 표현을 듣게 되면 당황을 할 수 있어요. 그런 팀을 가르치기 전에 꼭 해당 팀의 경기 로그를 받아서 들어요. 이 팀은 어떤 용어를 쓰는지 미리 파악을 하는 것이죠. 왜 제가 스스로 미리 듣고 알아보냐면, 어떤 표현을 쓰는지 궁금해서 해당 팀의 선수 앞에서 물어봐도 당장 기억을 못 하는 선수도 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나서 팀마다 다른 그런 표현들을 정리해놔요.

디그니타스 같은 경우에는 팀원끼리 짝을 지어 게임하며 대화를 하게 하고, 거기서 나온 말이나 용어를 미국 선수들에게 요청하여 체이서나 썸데이에게 퀴즈를 내게 했어요. 자신들의 콜을 알아 듣는지. 그런 수업은 굉장히 빨리 끝나요. 게임을 하루에도 몇 시간씩 하고, 제 도움보다는 자기들끼리 대화를 하며 점차 들리게 되는 부분이 더 많기 때문이죠. 영어 수업에서는 초반에만 하면 되는 일이에요. 썸데이 체이서 선수는 북미 선수들과 3-4명이 그룹으로 공부한 적도 많았어요. 마치 토크쇼처럼 진행되죠.


Q. 다양한 팀을 다니며 힘들거나 불편한 점이 있을 것 같아요.

팀에서 가끔 이런 걸 물어봐요. 만일 A팀과 B팀이 싸울 때, 너는 어딜 응원하니? 같은 질문이요. 이런 질문을 그 팀들의 매니저, 코치, 선수, 다 물어봐요. 예전에는 A팀에 가면 A팀을 응원한다 해주고,
B팀에 가면 B팀을 응원하고 있다고 해 줬어요. 그런데 정말 힘든 매치가 있잖아요. 가령 플레이오프 진출 여부가 갈리는 경기라던가.

저는 '아무 팀도 응원하지 않는다.' 라고 해주기도 해요. 대부분의 팀에서 제게 팀 유니폼이나 모자 등을 선물로 주시기도 해요. 그런데 이것도 입을 수가 없어요. 어느 날은 오전에 A팀 유니폼을 입다가, 경기가 끝나면 다음 B팀 경기를 위해 B팀의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적도 있어요. 다 장난으로 하는 말인데, 이게 정말 웃기기도 하고 힘든 일이에요.


Q. 하지만 우선 순위는 가르치는 학생이 있는 팀이겠죠?

무조건이죠. 그리고 그 중에서도 수업을 많이 가는 팀. 그리고 돈 더 많이 주는 팀(웃음). 하루는 임모탈즈에서 '우리와 피닉스 1 중 어디를 더 응원하냐'길래, '피닉스 1이다. 가장 오래 되어서 고향 같은 팀이고, 돈을 많이 주거든!' 이라고 답하니 '오 그래 인정. Money talks.' 하며 웃으며 넘긴 적도 있어요.


Q. 구단 간의 또 다른 에피소드가 있나요?

서로의 대회가 예정된 A, B 팀에서 각자 수업을 할 때, 먼저 진행한 A 팀에서 '이따가 네가 B팀 수업을 할 때 Forward를 Backward로 가르치고, Backward를 Forward로 가르쳐 줘. Sophie, 할 수 있겠지?' 하고 하고 제게 말해요. 저는 'Yes, I can do it.' 이라고 사뭇 진지한 척 말해주곤 하죠.

가끔은 밴픽에 대한 전략적 질문을 장난삼아 던지곤 해요. '그들이 어떤 챔피언을 많이 얘기하던가요?' 같은 것. 그러면 저는 항상 같은 대답을 해주죠. '아 정말 보긴 봤는데 게임을 몰라서 모르겠다.'. 실제로도 모르기도 하고...


Q. 패배한 다음 날에 수업을 할 때는 어떤 분위기인가요?

정말 팀마다 달라요. 패배를 하면 수업을 취소하는 팀이 있어요. 반면에 이기면 캔슬하는 팀도 있어요. '기분 너무 좋아요, 나가 놀거에요!' 하는 거죠.


Q. 연습할 땐 완전 집중해서 하고 놀 땐 노는 것 같은, 자유분방한 이미지의 C9도 왠지 그런 분위기일 것 같아요.

C9은 완전 성실의 극치에요. 무슨 일이 있어도 무조건 수업을 해요. 레이 선수와 레퍼드 코치님은 엄청 성실하시고, 임팩트 선수는 몇 번 안 해봤지만 자신있게 뭐든지 말하는 편이에요. 레이 선수는 정말 착하고, 제가 맨발일 때는 자기 슬리퍼까지 챙겨줄 정도로 세심한 면이 있어요. 영어에도 점점 자신이 붙고 있어서 기뻐요. C9은 팀 하우스도 예쁘고 분위기가 따뜻해서 갈 때마다 기분 좋아요.

▲ 성실팀 C9


Q. 졌을때 수업을 하면 선수들이 집중을 잘 못하거나 그런가요?

선수마다 다른 문제에요. 예를 들어 C9은 경기 결과랑 상관없이 열심히 하는 성실팀이에요. 그런데 한국 동료가 많이 없는 팀 중에는, 너무 힘들었던 것들을 제게 털어놓듯 얘기해 주는 선수들도 있어요. 그런 선수들은 패배했을 때 스트레스가 너무 크니까 저를 만났을 때 경기를 하며 힘들었던 이야기를 쭉 해요. 그러고 나면 수업을 잘 하기도 하고요.

보통 시합을 지거나 스크림 성적이 안 좋으면 오히려 말을 더 많이 해요. 그런 경우엔 스트레스도 풀게 하려고 처음 10분 정도는 한국말로 여러 말을 하게 해요. 하지만 그게 너무 길어지면 수업도 안 하고 돈 받는 것처럼 보이게 되니까, 잘 들어주다가 '그럼 그 심정을 영어로 말해보자' 라고 제안을 해요. 그러면 또 선수들이 바로 영어로 이야기를 이어나가요. 상황 봐서 돌리는 것이지요. 오히려 말을 더 하고 싶어서 어떻게든 영어로 말해요.

Q. 다양한 스타일로 접근을 시도하시네요. 선수마다 특성을 세심하게 고려하시나요?

저는 제가 가르칠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의 성격이나 취미, 관심사같은 성질을 파악해요. 미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애로우 같은 경우에는 미드를 가끔 수업 자료로 쓴다던가 말이죠. 류와 매드라이프, 썸데이 선수는 팝송 듣기를 좋아해서 팝송으로 공부도 하고요. 플레임은 의외로 학교 시험 같은 걸 좋아하고요. 플레임은 또 자신에 대한 반응을 즐기는데, 커뮤니티 등에서 자신에 대해 어떤 말을 했는지 아주 궁금해해요. 수업을 가면 '캐스터가 저에 대해 뭐라고 하던가요, 선생님~?' 하고 물어봐요. 그러니 제가 그걸 다 찾아서 듣고, 그걸 토대로 수업을 하면 엄청 잘 해요. 그러다보니 제 컴퓨터에 자주 검색한 결과를 보면 플레임이 꼭 있어요. 루퍼, 레이나 임팩트 선수는 어떤 걸로 해도 다 열심히 수업해요.

▲ 실화였다


아이디어가 계속 필요해요. 게이머가 스트레스 속에 살아가는 직업인데, 영어 공부도 '공부' 잖아요. 어떻게든 재미있게 해야할까 고민을 정말 많이 해요. 실력 좋은 영어 선생님들은 정말 많아요. 그런데 프로게이머를 가르치려면 정말 다방면을 생각해야 하는 것 같네요.

선수가 힘들 때는 제가 떡볶이 같은 걸 사 가서, 공부보다는 같이 먹으면서 힘들었던 이야기도 나누고 그래요. 예를 들어 플라이가 아직 없던 매드라이프 같은 경우, 혼자 있을 때 너무 적응을 못 할까봐 제가 데리고 나와서 짜장면도 먹이고 하며 친해졌어요. 그렇게 해야 이것을 너무 공부라고 느끼지 않아 하는 것 같아요.

Q. 적응과 안정에 도움이 되니 구단도 좋아하겠네요.

교육적인 차원에서 보면 영어로서 아주 성공적인 선수들이 있어요. 특히 Pirean과 매라, 썸데이, 이제 북미에 없는 '픽서' 정재우같은. 매드라이프는 정말 제 인생에서도 전설적인 속도로 늘었어요. 이들의 공통점은 문법을 정말 좋아했다는 것이에요. 저 조차도 답이 어려운 부분을 계속 질문했고요.

다른 선수들도 영어가 많이 늘긴 했어요. 제 영어는 처음 레벨이 낮을수록 실력이 붙는 속도가 훨씬 빨라요. 영어를 거의 못 했던 썸데이도 이제는 거의 대부분 영어를 알아들어요. 모르는 단어만 가끔 있을 뿐이지. 대답은 아직 조금 서툴지만, 리스닝은 3개월이 지났을 때부터 거의 다 알아듣게 되었어요.

반면 본인들이 원래 실력에 자신이 있는 사람들이 있어요. 애로우나 류, 루퍼, 올레와 같이. 올레는 정말 잘했죠. 본인들이 잘하는 걸 알기에 말을 더 많이 했고, 그래서 더 늘었어요. 이런 경우보다는, 아까 말씀드렸던 처음 영어 레벨이 낮았던 선수에게 제 영향이 더 컸지 않았나 싶네요.

▲ 놀라운 발전의 두 선수


Q. 영어를 배우는 학생들이나 이스포츠 해외 진출을 꿈꾸며 영어를 배우려는 선수들에게 한마디 해주실 수 있나요?

'사람들은 알아듣는 만큼 이해한다' 라는 말이 있어요. 사람들이 미국 드라마나 만화로 처음 영어를 접하라 하기도 하는데, 제 생각에는 초보자에겐 시간낭비라 생각해요. 혹시 영어 공부에 관심이 있다면... 이렇게 말하면 지루한데... '언어에는 완성이 없다'고 하잖아요. 저도 아직 완성이 되지 않았는데. 하지만 완성이 되는 것이 딱 하나 있어요. 바로 문법이에요. 문법에는 완성이 있어요.

문법 책은 하나를 뗐다 하면 끝이에요. 초보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기본 문법이라 생각해요. 너무 무거운 책으로 공부하는 것이 아닌, 주어 바로 다음에 동사가 온다는 식의 쉬운 문법부터 익히고 있으면 여기서 적응하기 쉽다는 것이에요. 한국어와 영어가 왜 이렇게 다른 문법을 가지게 되는지 호기심과 재미를 느낄 수 있다면, 여기에 와서 중급 레벨까진 아주 쉽게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