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전드'. 스포츠 종목에서 가장 위대한 선수에게 붙는 칭호 중 하나다. 3D 대전 격투 게임의 대표주자 철권에서도 '레전드'라는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선수가 있다. 그는 바로 철권 e스포츠의 태동기부터 활약하며 수많은 우승을 차지한 '무릎' 배재민이다.

곧 30대 중반을 바라보고 있지만, 그에게 있어서 나이 따윈 아무것도 아니다. 무르익은 실력과 노련함으로, 그리고 다양한 시도와 고민으로 여전히 그는 성장을 거듭하고 있었다. 최근 자카르타에서 펼쳐진 'Abuget cup'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다시 한 번 전성기를 누릴 준비를 하고 있는 '무릎' 배재민.

그의 청춘과 열정을 바쳤던 철권에 대해서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그는 철권의 발전을 위해서 기존의 철권 유저들에게 "신규 유저를 위한 배려가 필요하다"며 당부를 전했다.




Q. EVO 2013 우승 이후로 오랜만에 인벤과 인터뷰를 하게 됐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철권 게이머 '무릎' 배재민이라고 한다. 인벤과의 인터뷰는 두 번째인데, 다시 찾아줘서 감사드린다. 그동안 다양한 활동을 하며 지냈다.


Q. 외모가 한결 깔끔해진 것 같다.

과거에는 머리를 내리고 다녔다. '샤넬'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하는 무속인 동생이 "형은 머리를 올려야 일이 잘 풀린다"고 해서 머리를 올리고 다닌다. 그 덕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건강 관리 때문에 운동도 열심히 했는데, 최근에는 운동을 쉬고 있다.


Q. 철권을 모르는 사람도 '무릎'이라는 닉네임을 알 정도다. 철권 '레전드'라는 평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꾸준히 오랫동안 활동하면서 성적을 냈기 때문에 그런 평가를 해주는 것 같다. 최근 인도네시아, 필리핀, 미국 대회를 다녀왔다. 거기서 나를 '레전드'라고 소개해서 놀랐다. 물론 기분은 좋지만, 최근에 우승보다는 2위와 3위를 많이 해서 과분한 칭호라고 생각한다.


Q. 닉네임 '무릎'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무릎'으로 닉네임을 지은 이유는?

철권 커뮤니티 가입을 위해서 닉네임을 정해야 하는 순간이 있었다. 어떤 닉네임이 기억에 쉽게 남고, 신비감을 줄 수 있을지 고민했다. 마침 사람들이 나의 브라이언을 보고 "무릎! 무릎 기술 대단하다"는 말을 자주 한 것이 떠올랐다. 그렇게 무릎이라고 닉네임을 지었는데, 오늘까지 그 닉네임을 사용하고 있다.




Q. 최근에 철권7 콘솔 버전이 출시됐는데, 흥행 가능성은 어떻게 보나?

처음에는 소위 말하는 '오픈 빨'이 있어서 폭발적인 인기였다. 지금은 조금 식은 감이 있다. 아무래도 진입 장벽이 높은 게임이라서 그런 것 같다. PS4는 온라인 매칭이 잘 안되고 반응 속도가 느리다. 그래서 스팀 게임으로 철권을 즐기는데, 철권의 참 맛을 알기 위해서는 스틱을 구매해야 한다. 아무래도 그 점이 진입 장벽을 높이는 것 같다. 물론, 키보드로도 충분히 게임을 즐길 수 있지만, 정교한 플레이를 하거나 대회에 나가기 위해서는 스틱이 필수다.


Q. '철권 월드 투어'가 생기면서 최근에 철권 리그가 풍성하게 열리고 있는데?

철권 리그는 지금까지 얇고 길게 가고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 철권을 본격적으로 e스포츠화 시키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그랜드 파이널 개념인 '철권 월드 투어'가 생기면서 그에 따른 다양한 리그가 생기고 있다. 이번 주 일요일에는 '한국 지역 철권 월드 투어'가 열리는데 전 세계 철권 고수들이 모일 예정이다. 사실 예전부터 "철권 리그가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염원했다. 이런 날을 기다렸는데, 막상 리그가 많아지니까 체력적으로 힘들더라(웃음). 7월에는 해외 대회만 세 번이나 출전했다.

전 세계적으로 '철권 월드 투어'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국 월드 투어만 해도 일본, 미국 등 세계 고수들이 출전할 예정이다. 나라마다 월드 투어를 하는데, 해당 나라 거주 선수만 포인트를 주고, 타 지역 선수는 상금만 획득할 수 있다.


Q. 선수 활동뿐만 아니라 개인 방송과 해설 활동도 왕성하게 하고 있는데?

개인 방송은 2013년부터 시작했다. 원래 회사를 다녔는데, 내 길이 아닌 것 같아서 회사를 나오게 됐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개인 방송을 시작하게 됐다. 처음에는 무작정 잘 될 줄 알았는데, 예상과는 달랐다. 바닥부터 시작해서 처음으로 100명의 시청자가 방문했을 때 기분이 굉장히 좋았다. 오기가 생겨서 베스트 BJ를 따내보자는 생각으로 정말 열심히 했다. 결국 자리를 잡으면서 베스트 BJ가 됐다. 물론, 철권7 출시 '오픈 빨'이지만 2만 3천 명을 찍은 적도 있다.

해설 같은 경우는 개인 방송을 많이 하면서 다져진 것 같다. 개인 방송에서 대회를 직접 열기도 하는데, 그때 진행과 해설을 많이 했다. 해설을 하면서 선수의 심리가 잘 보였다. 그렇게 감을 익힌 상태에서 나이스 게임 TV에서 해설을 했는데, 호평을 받아서 신기했다. 인벤 대회 해설은 3인 중계라서 걱정을 했지만, 박동민 해설과 최광원 캐스터가 워낙 잘 해줘서 잘 풀린 것 같다.


Q. 오랫동안 우승이 없었는데, 최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펼쳐진 'Abuget Cup'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예전에는 우승을 많이 했는데, 최근 들어 우승이 아닌 2위와 3위를 계속했다. 마음고생을 했다. 이번 대회에서 오랜만에 우승을 차지하면서 우승의 달콤함을 새롭게 느끼게 됐다. 최근 마인드가 많이 바뀌었다. 이제는 모든 대회에 진지하게 임하고 있다. 방심하거나 상대를 쉽게 생각한 적도 있는데, 요즘에는 무조건 상대 선수를 인정하고 플레이한다. 주변에서 많은 응원을 해줬는데, 큰 힘이 됐다.


Q. 가장 상징성 있는 대회인 EVO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작년에는 2위를 차지했고, 올해는 3위를 차지했다. 아쉬움이 남을 것 같은데?

에코 폭스 소속 친구들('JDCR' 김현진, '세인트' 최진우)이 워낙 잘해서 상위 라운드에서 만날 것 같았다. 자주 대결했던 친구들인데, 이번에 만났을 때는 느낌이 달랐다. 그들은 해외 대회 경험이 점점 쌓이면서 플레이에 안정감이 더해졌다. 내가 그들보다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느꼈다. 올해 EVO 철권 종목은 메인 스테이지에서 진행됐는데, 나는 긴장을 많이 해서 플레이가 잘 나오지 않은 반면, 그 친구들은 정말 잘했다. 스스로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Q. 85년생 게이머인데, 적은 나이가 아니다. 피지컬의 한계를 느끼진 않나?

물론, 반응속도 같은 것은 옛날보다 떨어진다. 하지만, 현재 철권 고수들을 보면 다들 나이가 많은 편이다. 앞서 언급한 에코 폭스 선수들도 30대 언저리다. 물론 철권은 반응 속도 같은 피지컬 요소가 중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 이 있다. 철권은 심리전이 무엇보다 중요한 게임이다. 경험이 쌓이면서 노련한 플레이와 심리전으로 게임을 풀어 나가는 능력이 생긴다.

철권 오래 한 고수들은 상대를 분석하는 것이 굉장히 빠르다. 상대가 어떤 식으로 하는지 스타일을 빠르게 파악하고 여지를 주지 않는 플레이를 한다. 물론, 어린 선수들 중에서 피지컬이 뛰어나고 노련한 선수가 등장하고 있다. 센스가 좋고 어려운 커맨드를 잘 쓰는 선수가 일본에 많다. 하지만, 충분히 경험으로 이길 수 있는 상대라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피지컬로 게임을 했다면, 요즘에는 머리로 게임을 하고 있다고 느낀다. 물론 나이 때문에 체력적으로 힘들어서 운동도 열심히 하고 몸에 좋은 것을 챙겨 먹는다. 그러니까 체력이 점점 좋아져서 게임도 잘 된다.


Q. 과거에 브라이언과 데빌진을 주력으로 사용했는데, 최근에는 어떤 캐릭터를 주력으로 사용하나?

랭크 게임을 돌릴 땐, 여전히 브라이언, 데빌진, 카즈야 등을 많이 한다. 하지만, 대회는 다르다. 대회의 하위 라운드는 2선승이라서 빠르게 끝난다. 1판만 져도 압박감이 크다. 브라이언이나 풍신류 캐릭터는 실수 없이 플레이하는 것이 어렵다. 간혹 실수가 나올 수 있는데, 그런 실수가 2선승 게임에서는 바로 패배로 직결된다.

실수를 안 하는 것과 실수를 캐치해서 역습하는 것이 대회에서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쉬운 커멘드로 상대의 실수를 캐치하기 좋은 캐릭터가 대회에서 자주 사용되고 있다. 그런 캐릭터는 드라고노프, 카즈미, 잭 등이 좋다. 특히, 현재 메타에서 드라고노프가 대회용으로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공격, 방어, 벽 공격 등 모든 면에서 좋다. 드라고노프를 안 할 수가 없어서 나도 드라고노프를 자주 사용하고 있다.




Q. 과거부터 이어진 라이벌 'JDCR' 김현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예전부터 라이벌 혹은 양대 산맥이라고 불렸다. 어떻게 불리던 상관은 없다. 역대 전적은 내가 밀린다. 사실, 현진이와 예전에 앙금이 생긴 적이 있었는데, 내가 먼저 사과를 하고 풀었다. 좋은 경쟁자라고 생각한다. 해외 대회에서 자주 만나는데 서로 상대하면서 성장하는 느낌을 받는다. 7월에 필리핀에서 펼쳐진 'Rev Major Phillipines' 결승전에서 현진이에게 지고 준우승을 차지한 적이 있다. 그때 내가 먼저 악수를 신청했는데, 주변에서 박수와 환호를 해줬다.


Q. 철권의 발전을 위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들었다.

철권의 기존 유저들이 새롭게 입문하는 신규 유저들에게 자비를 베풀었으면 좋겠다. 상대가 못한다고 생각하면 철저하게 짓밟는 경향이 있다. 커뮤니티를 보면 "오늘도 철린이(철권 신규 유저) 한 명의 인생을 찾게 해줬다"고 농담을 하곤 한다. 소위 말하는 '고인 물' 현상이 나오지 않도록, 신규 유저에 대한 배려를 해줬으면 좋겠다.

신규 유저가 모르는 것에 대해서 친절하게 설명해주고 도와주는 문화가 필요하다. 배척 현상이 없어져야 판이 더 커지고 발전한다고 생각한다. '철권 월드 투어'도 생기고 많은 것이 바뀌고 있으니까 유저들끼리 '리스펙트'하는 분위기를 형성해서 신규 유저 유입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Q.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해달라.

최근에 성적을 못 내서 마음고생을 했는데, 나뿐만 아니라 팬들도 마음고생을 했을 것 같다. 팬들의 마음을 잘 알기 때문에, 앞으로 더 열심히 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 드리겠다. 지난 EVO를 출전하기 위해 개인 방송에서 여행 경비 도네이션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3일 만에 경비가 모였다. 개인 방송 시청자들에게 정말 감사드린다. 곧 좋은 소식을 전해드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