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 게임의 대표적인 성공 신화로 기억되는 '마인크래프트'부터 범상치 않은 기운을 내뿜는 '염소 시뮬레이터'. 그리고 검증된 액션으로 FPS 팬들의 큰 사랑을 받는 배틀필드 시리즈. 서로 통하지 않을 것 같은 이 게임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깊이 있는 몰입도? 세계적인 흥행? 이런 점들 역시 맞는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 바로 이 게임들이 만들어진 국가가 모두 스웨덴이라는 점이다.

인구 700만 명한 스웨덴은 어떻게 글로벌 인기작을 쏟아내며 세계 게임 산업의 핵심 국가로 떠오른 것일까? 1996년 게임 업계에 발을 들였고 이제는 스웨덴 게임 개발과 경영에 핵심 인물이 된 스웨덴 게임 산업 대변인 '페르 스트롬백'은 스웨덴에 일고 있는 게임 붐이 왜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를 30분 남짓한 시간 동안 질서정연하게 정리해 설명했다.

특히 스웨덴과 비슷한 특징을 가진 캐나다, 영국, 호주, 일본, 그리고 한국을 예로 들며 스웨덴과의 차이점을 명확히 알면 자국 게임 산업의 강점을 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말로 한국 업계 종사자들에게도 참고할만한 이야기를 남겼다.

▲ 강연을 진행한 '페르 스트롬백' 스웨덴 게임 산업 대변인

타임스퀘어 전광판에 자신의 얼굴을 드러낸 한 남성. 그는 저스트코즈 등으로 잘 알려진 아발란체 스튜디오의 공동 설립자, 크리스토퍼 선버그다. 자본주의 첨단인 뉴욕 한 복판에 게임 개발자가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이례적인 일. 그것도 유럽의 작은 국가인 스웨덴 출신이라는 점에서 스웨덴 게임 시장의 위상을 드러내는 단편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 스웨덴은 춥고 습기 찬, 어두운 국가로 기억되는 나라다. 물론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게임 산업으로 주제를 돌리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마인크래프트부터 브라더스, 염소 시뮬레이터 같은 대중적 인기를 얻은 인디 게임부터 배틀필드, 배틀프론트, 미러스엣지 등 소위 AAA급이라 부르는 게임들. 그리고 앵그리 버드, 캔디 크러쉬 사가 등 모바일 시대에 먼저 앞서 나간 게임 등 수많은 게임이 스웨덴에서 개발되었거나 스웨덴의 기업들이 제작한 것들이다.

이들 게임을 즐기는 유저는 단순히 계산해도 7억 명 이상. 성장세를 바라보면 가까운 시일 내에 10억 명을 넘어서리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용자 수치 외에도 산업적인 측면의 스웨덴 게임 가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스웨덴 게임사에서 가장 역사적인 순간이기도 한 마이크로소프트의 마인크래프트 개발사 모장 인수. MS가 모장 인수에 들인 금액은 25억 달러다. 어느 정도 수치인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면 과거 스웨덴의 자동차 브랜드이자 포드가 인수했던 볼보의 매각 금액을 비교하면 좋을 듯하다. 중국 지리가 포드로부터 볼보를 인수한 가격은 18억 달러. 모장 인수의 약 70% 수준이다. 게임 속 작은 블록이 만든 변화는 상상 이상이다.

스웨덴 업계 역사상 2번째로 큰 인수 합병인 액티비전-블리자드의 킹 59억 달러 인수 역시 스웨덴 외에도 세계 게임사에 큰 반향을 남긴 사건이다. 이외에도 액티비전이 스톡홀름에 스튜디오를 열고 EA는 스웨덴 개발사들에 적극적인 투자와 퍼블리싱 계약을 맺고 있다. 스웨덴 개발사 역시 고품질의 게임과 FIFA18 등에 사용되는 프로스트바이트 엔진을 개발하는 등 해외 투자자들의 선택 이유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런 성공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스웨덴의 게임 산업은 1990년대, 2000년대, 그리고 2010년대로 크게 3분 하여 발전해왔다.

1990년대는 멀티미디어를 활용한 게임 시대다. CD-ROM 매체를 이용한 게임들이 적극적으로 도입되며 전에는 없던 고품질의 더빙 음성이 사용됐다. 하지만 일부 게임을 제외하고는 국내 시장을 대상으로 한 교육용 한 타이틀이 주를 이었는데 이는 당시 스웨덴 국가의 지원책과 맞닿아 있다. 스웨덴 정부는 CD-ROM과 고속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고사양 컴퓨터를 적극적으로 장려했고 이를 기반으로 멀티미디어 게임이 등장한 것이다.

2000년대는 배틀필드1942나 저스트코즈, 유로파 유니버셜 등 본격적으로 해외 시장에서도 인기를 끈 게임이 등장한 시기다. 이는 플레이스테이션2 등 차세대 게임기가 등장하고 고품질의 게임 개발이 요구되는 시대적 흐름에 동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몇몇 게임을 제외하면 해외 시장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게임들이 많았다.

마지막으로 2010년대는 본격적으로 스웨덴 게임이 세계 시장에서 성과를 보인 시기다. 모바일, PC게임, 콘솔 게임 할 것 없이 괄목할 성적을 보였는데 세 가지 특징이 발현된 시기다.


우선 스마트폰의 등장은 터치스크린 UI와 모바일 레이아웃에 빠르게 적응한 스웨덴 게임이 앞서나갈 수 있는 기폭제가 됐다. 또한, 고속 인터넷의 대중화로 일찌감치 고속 인터넷을 사용해왔던 스웨덴 개발사들이 멀티 플레이 기반 게임을 만드는 데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마지막 특징은 유럽 전체의 경제 침체다. 이로 인해 글로벌 퍼블리셔가 스웨덴 게임에 투자하기 시작했고 외국 자본을 바탕으로 기술력을 더욱 끌어올릴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이런 특징은 스웨덴만이 가진 것이 아니라 세계 대다수 국가가 겪은 변화다. 그렇다면 스웨덴이 빠르게 변화에 적응한 이유는 무엇일까?


스웨덴의 6가지 일반적인 게임 산업 특징을 살펴보면 이를 대략 확인할 수 있다.

우선 국가적인 지원으로 고성능 PC 등 빠른 하드웨어 보급이 가능했고 여타 유럽 국가보다 월등히 앞선 고속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국제공항 등 글로벌 허브로서 작동하며 세계적인 인재와 정보를 빠르게 수집할 수 있었다.

이 외에도 높은 수준의 교육을 쉽게 받을 수 있는 교육 환경이 마련되어 있었고 정부가 게임 산업에 딴죽을 걸지 않는 자유분방한 개발 환경도 보장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미국 등 국제 문화와 네트워크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되어 있었다.

이러한 6가지 특징이 있는 나라는 꽤 많다. 크게는 캐나다부터 영국, 호주, 일본, 그리고 한국 등이 그 예다. 실제로 커다란 내부 마켓을 가진 중국이나 일본의 게임 산업 발전이 더뎠던 이유는 빠른 기기 도입이 가능했지만, 국가적인 제한이 심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앞서 설명한 6가지 특징이 부각될 수 있었던 스웨덴만의 특성은 무엇일까? 앞서 설명한 국가들과의 문화, 지리적 차이가 그것이다.

우선 길고 춥고, 어두운 겨울 기후다. 스웨덴의 심각할 정도의 날씨는 국민이 야외 활동보다는 집에서 취미 활동을 즐기도록 했다. 그리고 전국에 널리 보급된 하드웨어를 통한 게임이 그 취미 활동의 주를 이루었다.

두 번째는 복지다. 앞서 설명한 수준 높은 게임 교육도 이수할 수 있는 학생이 없다면 무용지물일 터다. 하지만 스웨덴은 이들에게 무료 교육을 지원해 경제적인 걱정 없이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사회 보장 시스템도 잘 갖춰져 수익이 적은 국민도 여가 생활을 쉽게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마련했다.


세 번째는 직업 안정성이다. 독일에서는 고용인이 여러분을 해고할 수 있지만, 스웨덴에서는 그것이 법적으로 훨씬 어려운 구조다. 그 덕에 피고용인들이 다른 국가보다 더 자유롭게 자기 의사를 표현할 수 있고 참신한 아이디어 표출도 많은 편이다.

네번째는 어릴 때부터 꾸준히 배워온 단체 활동이다. 스웨덴에서 학생들은 개인이 아닌 그룹으로 토론을 하고 이는 곧 직장 생활에서까지 이어졌다. 특히 개발자들은 함께 개발에 나서고 서로의 의견을 시시각각 교환하며 더 나은 결론을 얻을 수 있게 된다.

스타플레이어에 의존하기보다는 특유의 팀워크로 2016 리우 올림픽 준우승을 차지한 스웨덴 여자 축구 대표팀이 이를 잘 보여준 예다. 이브라히모비치 원맨팀인 남자 대표팀이 정말 예외적인 케이스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스웨덴 사람들이 철칙처럼 느끼는 ‘얀테의 법칙’이다. 이를 통해 쌓인 스웨덴인들의 서로를 존중하고 자신을 부각하기 보다는 신뢰하는 특성이 게임 개발에도 작용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얀테의 법칙

1. 네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2. 네가 다른 좋은 사람들같이 착할 것으로 생각하지 마라.
3. 네가 다른 사람보다 똑똑할 것으로 생각하지 마라.
4. 너 자신을 우리보다 낫다고 생각하지 마라.
5. 네가 다른 사람보다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 마라.
6. 네가 다른 이들보다 중요할 것으로 생각하지 마라.
7. 네가 뭐든지 잘할 것으로 생각하지 마라.
8. 다른 이를 비웃지 마라.
9. 다른 사람이 너를 신경 쓴다고 생각하지 마라.
10. 네가 다른 이를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