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hotos courtesy of LoL esports

'임팩트' 정언영은 낯선 타지 미국에서 어느새 1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한 팀에 머물고 있다.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용병으로 한 팀에 오래 생활한다는 사실은 그가 그만큼 꾸준히 좋은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2012년부터 선수 생활을 했으니 6년이나 됐다. 6년이라는 시간이 다른 프로 스포츠와 비교해보면 별 것 아닐 수 있다. 그러나 아직은 그만큼 체계적이지 못하고, 정말 어린 10대 때부터 '프로'로 생활하는 많은 프로게이머에게 짧은 시간은 아니다. 이쯤 되면 동기 부여에 어려움을 겪는 선수도 생기게 된다. 아니, 그 이전부터 이미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임팩트'는 지금도 달리는 중이다. 주위 환경에 크게 휘둘리지 않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는 묵묵한 사람. 그것이 '임팩트'에 대한 인상이었다. 아직도 자신의 한계를 시험해보고 싶다는 그와의 대화는 이번 시즌 소회로 시작됐다. 19일 펼쳐진 디그니타스와의 플레이오프 1라운드에서의 아쉬운 패배 직후였다.


시즌 초반에는 경기 출전을 못하는 등 애를 먹었다. 후보인 '레이'가 많이 출전했는데, 어떤 이유였나?

내가 당시에 갈팡질팡했고, 혼자 따로 노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다시 게임에 집중했고 폼이 돌아오니까 경기에 많이 출전하게 됐다.


팀워크 문제였다는 건가?

그렇다. 따로 논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자체적으로 복기도 많이 했고, 코치진과 리플레이도 셀 수 없이 돌려보면서 경기력을 회복했다.


동기 부여 문제에 있었던 것은 아닌지? 선수 생활도 오래 했고, 미국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았나.

나는 동기 부여에 특별히 애를 먹는 스타일은 아니다. 우승보다는 자기 관리에 많이 신경 쓴다. 실수를 했다거나, 경기를 제대로 못 했을 때, 바로 인지하고 고치려고 집중한다. '무조건 우승을 해야 한다' 이런 집착은 하지 않는다. 내가 잘하면 어차피 팀은 우승한다고 믿는다.


리프트 라이벌스 이후 팀적으로 경기력이 좋지 않았는데?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 조금 전부터 경기력이 좋지 않았다. 그게 이어진 건데, 내가 라인전을 이겨도 팀이 무너지더라. 그때부터 (복)한규 형이 '레이'를 기용하면서 변화를 줬다. 나는 당연히 형을 믿어서 아무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어쨌든 팀 전체적으로 문제가 있었다.



'임팩트' 선수는 세계에서도 최상위의 선수였고, 반면에 '레이'는 신인급이었다. 그럼에도, 교체 출전하는 경우가 꽤 있었다. 자존심이 상한다거나 그런 문제는 없었나?

그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좋은 모습을 보여주면 나를 선택할 텐데 뭐하러 그런데 힘을 쓰나'라는 생각을 한다. 딱히... 내가 더 잘하면 그만이다.


시즌 마지막에는 상승세였다. '젠슨'의 경기력이 무척 좋았다. '젠슨'이 폭발적인 경기력을 보여준 이유가 있을까?

'젠슨'이 엄청 잘했기는 했지만, 다른 미드 라이너들이 약간 못했다는 느낌도 든다. 정확히 말하자면, '젠슨'의 폼은 올라오면서 기량이 좋아졌고, 다른 미드들의 기량은 조금 내려가면서 '젠슨'이 가장 눈에 띄게 됐다.


다른 미드라고 하면 '비역슨'의 폼도?

'비역슨'은 그때도 뛰어난 미드였지만, 폼이 조금 내려갔다는 느낌은 들었다. 이상하게 죽는 등 실수가 나오는 가끔 나오더라. '젠슨'은 다른 미드보다 실수가 확실히 적었다. 쓸데없이 죽는 게 없어졌다.


예전에 '젠슨'은 기량이 좋지만, 실수가 꽤 많은 편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옛날에는 그냥 막 갖다 박고(웃음), 1:9로 붙으려고 했다. 여전히 스크림에서는 1:9 싸움을 하긴 한다(웃음). 탈리야로 점멸도 없는데 유체화를 키고 상대 5명이랑 싸우다가 알리스타 점멸 분쇄-박치기 콤보에 바로 죽는다. 하지만, 대회에서는 어떻게 해야 팀에 도움이 되는지 확실히 인지하는 것 같고, 본인이 죽을 수 있는 각을 제대로 판단한다.


다시 본인 얘기로 돌아가 보면, 이번 시즌 올-프로팀에 뽑히지 못했다. 아쉬움은 없나?

딱히 없다. 초반에 못하는 모습을 보여줘서 안 뽑힐 줄 알았다. 나는 이런 것에 정말 신경을 안 쓴다. 그냥 누가 뽑혔을지만 궁금했다. 1등이 '썸데이' 김찬호 선수라 의아해하긴 했다. '플레임' 이호종 형이 뽑힐 줄 알았다. 약간 '응?' 이라는 느낌은 있었지만, '썸데이' 선수도 시즌 동안 좋은 경기를 했다고는 생각한다.


한국 탑 라이너가 유독 많은 시즌이었다. 어땠나?

아직 미국 무대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인데, 내가 그들에 뒤처지면 안 된다는 생각은 했다. 내가 더 잘해야 한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이번 플레이오프 경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오늘 경기가 많이 아쉬웠을 것 같다. 경기에 대해 자체 평을 한다면?

상대 전략이나 밴픽이 우리의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다. 마오카이를 거의 매 경기 선픽으로 뽑은 게 조금 의외였는데, 마오카이가 경기에 미치는 영향이 엄청 컸다고 생각하지 않아 큰 문제는 아니었다. 그런데, 우리 쪽에 실수가 더 많았다. 실수 싸움이었다고 생각한다.

오늘 경기에서 초가스를 사용했으면 어떨지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상대가 이동기가 없는 딜러들을 많이 뽑았는데, 초가스가 이런 챔피언들에게 큰 압박을 줄 수 있다.


오늘 경기에 C9이 패배하니, '비역슨'이 트위터에 "이러면 우리가 롤드컵에 가는 건가?"라는 글을 남겼다.

몰랐다. 나는 대회 날에는 핸드폰을 아예 가지고 오지 않는다. 예전에는 가져왔었는데, 자꾸 눈이 가더라. 게임을 하러 왔으니 게임에만 집중하려고 핸드폰을 무조건 숙소에 두고 온다.


미국 생활이 이제 엄청 오래됐다. 그만큼 C9이라는 팀에 애착이 많이 생겼을 것 같은데?

그렇다. 1년 반을 C9에서 보냈다. 벌써 인생에 많은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다. 팀원들, 관계자들과도 친하게 지내고 있고... 좋은 팀이다.

미국은 살기 좋은 데가 있고 그렇지 않은 데가 있기는 한데... (웃음)날씨가 일단 제일 좋다. 정말 편하다. 한국에 있을 때는 겨울에는 너무 춥고, 여름에는 너무 덥다. 다만, 아쉬운 게 있다면 편의점이 별로 없고, 코인 노래방이 없다는 것 정도다.

쇼핑은 약간 애매하다. 한국에는 정말 저렴한 것부터 고가 제품까지 품질이 좋은 거로 다양하다. 하지만, 미국은 그런 게 많이 없다. 좋은 옷은 비싸서 카드 내밀 때 망설여 진다(웃음).


오랜 프로게이머 생활로 많은 돈을 벌지 않았나(웃음)?

돈 쓰는 게 약간 손이 떨린다. 제닉스 때부터 이어져 온 습관인 것 같다. 그때는 내가 돈을 못 받았다. 그렇게 1년을 지내다 보니 그 이후부터 돈을 잘 못 쓰겠더라. 지금도 적금 말고는 하는 게 없다.


진에어 그린윙스 '코맷' 임혜성 코치(전 인벤 기자, 전 제닉스 서포터)와는 여전히 연락도 자주 하나?

그 형이 먼저 "언영아 인터뷰 준비됐냐?"라고 연락을 해온다(웃음). 지금은 진에어 코치로 간 거로 아는데, 그 문제에 대해 얘기를 나눈 적도 있었다. 프로 생활도 했으니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한번 도전해보면 좋을 것 같다고 조언했던 기억이 난다.



가끔 한국이 그립지는 않은지?

가끔 가니까 괜찮다. 그래도 LCK에서 다시 뛰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든다. 내가 어느 정도인지, 아직도 통하는지 시험해보고 싶다. 한국에서 연습했을 때도 딱히 밀린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아직 살아있네' 이런 느낌이었다. 내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계속해서 시험해보고 싶다.


정말 만약에 간다며 어디로 가고 싶나?

나가기 전에 SKT T1 아니면 안 간다고 얘기했다. 지금도 SKT 아니면 웬만하면 가지 않을 것 같다. 그나마 kt 롤스터에서 오퍼가 오면 고민할 것 같다. 그 외에 다른 팀의 경우 실제로 뛰어보면 다를 수 있지만, 지금은 느낌이 잘 안 온다.


승부욕이 남다르다는 느낌이 많이 든다.

지면 '샷 건'치고 그랬다(웃음). 그래도 마음가짐이 조금 바뀐 것 같긴 하다. 제닉스 때만 해도 승부욕을 밖으로 많이 표출했는데, '꼬마' 김정균 코치님이 많이 도와주셨다.

좀 다른 얘기인데, 개인보다는 팀 위주로 경기를 하는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꼬마' 코치님이 미국 가기 전에 "너에게 집중하는 게 더 좋을 것 같다"고 말해줬다. 그래도 처음 왔을 때는 팀 위주로 많이 플레이했다. 하지만, 도저히 답답해서 안 되겠더라. 그때부터 나에게 집중했더니 폼도 올라오고 팀 성적도 좋아졌던 것 같다.


조금 이르지만 앞으로 롤드컵 선발전이 남아있다. 각오가 궁금하다.

아직은 시간이 많이 남아있어서 자세히 얘기할 건 없을 것 같다. 하고 싶은 말은... 잘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뿐이다. 이번 플레이오프 경기에서는 연습 때 기량의 절반도 발휘하지 못한 것 같다. 선발전에서 실력만 제대로 보여줄 수 있다면 좋은 결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번 플레이오프에서 패배해 아주 아쉽다. 좋지 않은 모습을 보여준 것 같다. 한국 팬들은 LCS보다는 확실히 LCK나 월드 챔피언십에 관심이 많을 것 같다. 그래서 꼭 월드 챔피언십에 가고 싶고, OGN이나 스포TV 화면을 통해 인사드리고 싶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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