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곽도영 AD

[인벤게임컨퍼런스(IGC) 발표자 소개] 곽도영 AD는 2006년 던파부터 시작해서 이후 캐릭터 콘텐츠가 주요 특징인 게임 프로젝트를 개발하며 게임의 활기를 넣는 작업을 맡아왔다.


RESS라는 예명으로 더 친숙한 곽도영 AD의 강연장 앞은 강연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시끌벅적했다. 엄청나게 많은 인파가 모인 탓에 인원 초과로 강연장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문밖에 서서 아쉬움을 달래는 사람이 꽤 많았기 때문이다. 새삼 곽도영 AD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네오플의 액션게임 던전앤파이터로 커리어를 쌓기 시작한 곽도영 AD는 KOG의 액션게임 엘소드로 넘어가면서부터 처음으로 게임 원화가라는 아이텐디티를 자각했다고 전했다. 다만, 여전히 경력이 짧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시행 착오를 겪었다고. 곽 AD는 이를 발판으로 나딕게임즈의 클로저스를 작업할 때는 조금 더 안정적으로 캐릭터 디자인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이날 강연에서는 그가 10년 간 아트 디렉터로 살아오면서 어떤 것들을 경험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매력적인 캐릭터를 탄생시킬 수 있는지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 내용 전달 및 편집의 용이성을 위해 곽도영 AD의 시점에서 서술합니다.


■ 강연주제 : 게임 개발에 어울리는 매력적인 캐릭터 작법 - 디자인과 설정, 그리고 개발까지

⊙ 어째서 캐릭터가 중요한가?

몇년 전부터 캐릭터가 중심이 되는 게임이 점점 늘고 있다. 엘소드를 작업할 때까지만 해도 한국에서는 그런 걸 시도하는 것 자체가 비주류였다. 우리 같은 스타일은 드물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유저 사이에서 캐릭터에 대한 니즈가 늘어난다는 느낌을 받았고, 최근에 와서는 그 시장이 굉장히 커졌다.

게임 안에서 캐릭터는 콘텐츠 중 하나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을 개발할 때 캐릭터의 비중을 얼마나 둘 것이냐는 개발사의 선택사항이다. 그런데도 왜 캐릭터의 중요도가 높아지고 있는지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겠다.

일단, 캐릭터가 있으면 처음 게임이 나왔을 때 이 게임이 어떤 느낌인지 한눈에 보여줄 수 있다. 초기 유저를 끌어들이기 편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수익의 다각화에 유리하다. 회사는 게임뿐만 아니라 캐릭터 사업을 통해서도 수익을 얻을 수 있다. 또한, 게임은 몰라도 그 게임에 나온 캐릭터를 알고 좋아한다면 해당 게임을 시작하게 될 확률이 높다. 접었던 게임을 다시 시작할 확률 역시 마찬가지다.

⊙ 디자인 : 캐릭터를 만들어 봅시다

첫 번째로 제일 중요한 점은 쉽게 기억하게 하자는 것이다. 내 모토다. 캐릭터가 딱 보는 순간 유저의 기억에 남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장 큰 예로 유희왕 캐릭터 디자인이 있다. 호불호는 가리지만 한 번 보면 절대 잊을 수 없다. 캐릭터를 기억나게 한다는 건 중요한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 클로저스의 이세하, 이슬비, 서유리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유저의 기억에 남게 할 수 있을까. 먼저, 포인트를 살리면 된다. 처음 클로저스가 나왔을 때 최초 공개했던 3인 캐릭터가 있다. 주인공인 세하는 이미 디자인이 끝났고, 슬비와 유리는 동시에 작업에 들어갔다. 유리는 방향성이 정해져 있었지만, 슬비는 완전히 안갯속에 있었다.

세하는 외견상의 커다란 특징이나 개성이 적어도 주인공 어드벤티지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 유리 같은 경우에는 인기가 많을 타입으로 제작이 됐다. 흑발 롱헤어라는 아이템은 이상할 정도로 한국에서 잘 먹힌다. 이 두 캐릭터를 디자인해놓고 보니까 슬비가 붕 뜨기 시작했다. 슬비의 성격은 이미 나와 있었다. 반장이고, 딱딱하고, 고지식하다. 신체적인 특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유저들을 끌어당길 만한 포인트가 없었다.

클로저스는 처음에는 서울을 무대로 했다는 것에 중점을 둬서 쓸데없는 리얼리티를 추구했다. 진짜 서울의 학생들처럼 머리색도 흑발이나 톤 다운된 컬러로 맞췄다. 그런데 그렇게 되니까 오히려 세 캐릭터 모두 개성이 묻혀버렸다. 그래서 큰맘 먹고 슬비에게 분홍 머리를 입혔다. 슬비의 성격 자체가 모범적이기 때문에 화려한 머리 색을 넣어주기만 해도 눈에 확 들어오는 효과가 있었다.

▲ 처음 공개된 최초의 유리

왼쪽에 있는 게 최초의 유리다. 흑발 롱헤어에 초점을 맞춰 캐릭터를 만들어 놓고 보니까 유리는 클로저스에 나올 수도 있지만, 다른 어떤 작품에서도 한 번쯤은 봤을 듯한 이미지였다. 개인적으로 유리라는 캐릭터를 특화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넣게 된 게 오른팔 프로덱터다. 한쪽 팔이 검다는 것만으로도 유저들이 유리를 알아차릴 수 있도록 특징을 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또, 교복 말고 다른 복장도 많이 입혀봤는데 스탠다드 타입이 가장 잘 어울린다는 걸 인정해 유지하게 됐다.

▲ 오른쪽 상단이 최초의 제이다

제이 디자인의 모티브는 일본 가수 각트와 영화 X맨에 나오는 사이클롭스였다. 잘생긴 청년을 넣자는 기준으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위의 그림처럼 그려놓고 보니까 너무 평범했다. 그래서 극단적으로 바꾸어보자 해서 풍성한 흰색 머리를 입혔다.

▲ 다양하게 시도된 레비아의 헤어 스타일

레비아는 처음 출시됐을 때 이마의 부적이 거슬린다는 피드백이 많았다. 레비아를 디자인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레비아가 굉장히 소심하고 움츠려 들어있는 성격이기 때문에 화려하거나 밝은 헤어 스타일을 선택하면 그 성격과 충돌한다는 점이었다. 여러 가지로 고민을 하다 나온 결과물이 부적이었다.

레비아가 가지고 있는 은발 롱헤어 타입의 캐릭터도 사실 굉장히 많다. 물론 그런 캐릭터들과 옷이나 무기의 디자인이 다르긴 하지만, 얼굴 쪽에 차별화를 주고 싶었다. 개인적으로는 좋다고 생각하는 부분이다. 이 부적은 멀리서 봐도 은발 롱헤어 캐릭터들을 모아 봐도 레비아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요소가 됐다.


캐릭터 디자인이 거의 완성되면 피드백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나에게 오는 피드백은 너무 심플한 것 같다는 이야기가 주다. 단순한 면과 선으로 이뤄진 걸 선호하는 개인적 성향이 많이 반영된 거다. 그림을 처음 시작한 만화 쪽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만화에서는 한 페이지에 많은 인물이 등장하고, 한 캐릭터가 계속해서 등장하기 때문에 캐릭터 디자인이 복잡하면 좋지 않다.

게임에서도 필요 이상으로 디테일과 밀도에 사로잡힐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TCG 카드 장르는 예외다. 유저들이 상위 등급으로 갈수록 화려함을 원하기 때문에 그 니즈를 맞춰야 한다. 하지만, 액션 게임은 시작부터 복잡할 필요가 없다. 최초 캐릭터 디자인을 할 때는 그런 부분의 부담감을 놓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시간이 흐르면 캐릭터는 점점 복잡해지게 된다. 처음에는 디자인을 예쁘게 뽑아내는 것에 집중하는 게 좋다.

▲ 주인공의 뺨을 때리며 등장한 엘소드의 이브(좌)와 클로저스 이슬비의 기술

생김새 외에도 붙일 수 있는 차별화 요소들이 있다. 예전의 엘소드는 스토리를 만들어내기가 힘들었고, 이브는 처음 등장했을 때 기존의 캐릭터와 접점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만나자마자 주인공의 뺨을 때리는 등의 강한 등장 효과를 의도했다.

오른쪽은 슬비의 스킬이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슬비는 특징을 살리기가 어려웠다. 흔한 마법사가 아닌 차별화를 주고 싶었다. 처음에는 슬비가 파이어볼이나 메테오 등의 기술을 사용하기로 했는데, 나는 이게 클로저스의 세계관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차에 나온 아이디어가 버스다.


캐릭터를 롱런하게 하기 위해서는 깊이를 만드는 작업이 필요하다. 나는 항상 캐릭터에 반대되는 속성이나 약점을 하나씩 만들어서 그 부분들을 유저가 인식할 수 있도록 한다. 그렇게 되면 스토리가 흘러가면서 자연스럽게 캐릭터의 약점이 나오게 되고 갈등 요소가 된다. 유저들을 그 갈등 요소를 보면서 캐릭터가 성장을 통해 이를 이겨내길 바라게 된다. 자연스럽게 캐릭터의 생명이 길어진다.

게임에 맞춰 캐릭터를 다듬어야 할 필요도 있다. 엘소드에 나오는 이브는 최초에 쿨계열의 과묵한 캐릭터였다. 그런데 예전 엘소드는 게임 내에서 스토리를 풀어낼 수 있는 공간이 부족했기에 캐릭터가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 했다. 이브는 쿨계열의 컨셉대로라면 게임 내에서 대사를 통해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이 너무나 한정적이었기 때문에 쿨 계열을 포기하고 대사량을 늘렸다. 아무리 처음에 설정을 짜고 만들어놔도 게임에 맞춰 정리해나가는 순서가 필요하다.

▲ 클로저스의 레비아(좌)와 엘소드의 레이븐

3D 액션 게임은 디자인을 예쁘게 뽑아 뒀는데 변경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레비아를 예로 들면, 레비아는 사람들에게 붙잡혀 연구소에서 실험을 당한 스토리를 가지고 있었기에 처음 디자인 포인트 중 하나로 잡았던 게 수갑이었다. 그런데 클로저스가 3D 액션 게임이었기 때문에 다른 아바타를 만들 때 이 제한적 디자인이 문제가 됐다. 게다가 수갑을 전제하에 움직여야 해서 모든 액션에 제약이 생기기 때문에 그런 컨셉들은 결국 사용되지 않았다. 엘소드의 레이븐 같은 경우도 왼손의 기계 팔 때문에 아바타를 만들 때 개발 코스트가 굉장히 높아지는 문제가 생겼다.

⊙ 디자인 : 캐릭터를 다듬어 봅시다

다음은 다듬기다. 가장 주의할 부분은 약점의 보완보다는 강점의 강화에 중점을 두는 것이다. 작업을 마무리하고 리뷰를 할 때 우리는 습관적으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먼저 생각한다. 그렇게 되면 다듬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점점 초안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래서 캐릭터를 다듬을 때는 처음에 우리가 잡았던 이 캐릭터의 매력이 잘 살아있는지를 봐야 한다. 그다음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마이너스 요소, 단점이 아니라 장점을 살리기 위해 감수해야 하는 부분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 개발 : 캐릭터를 다 함께 만들어 봅시다


다음은 팀 작업이다. 캐릭터 작업을 할 때는 거의 모든 개발 인력들이 한 번씩은 참여하게 된다. 때문에 파트별 협업과 각 파트의 캐릭터 이해도가 중요하다. 팀원들부터 캐릭터를 쉽게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다른 팀원들이 나의 캐릭터에 대해서 아예 모른다는 전제하에 이야기를 진행하고 공유해야 한다.


팀원들에게 캐릭터를 이해시키기 위해 사용했던 방법을 몇 가지 소개하겠다. 간단하고 기본적인 건 캐릭터를 나타내는 2~3개의 키워드를 정해 공유하는 것이다. 두 번째로 캐릭터를 상징하는 포즈 또는 다양한 애니메이션을 잡아 시각적으로 이해시키는 방법이다. 의외로 큰 효과를 얻었다. 그것만으로 불충분할 때는 가능한 빠르게 캐릭터의 '서사'를 제작해 공유한다. 클로저스로 예를 들면 이 캐릭터의 1지역 1부분에 해당하는 스토리를 완성해보는 것이다.

각 파트 작업자들의 캐릭터 이해도를 높일수록 완성도 높은 캐릭터가 된다. 캐릭터는 절대 혼자 만들지 못한다. 좋은 디자인을 만들 수는 있어도 그 캐릭터가 움직이고 게임에 들어가서 서비스가 진행되는 것까지는 팀이 없으면 안 된다. 특히나, 모두가 캐릭터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아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캐릭터를 이해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 가장 좋은 것은 역시 대화다. 회의가 아닌 대화가 필요한 이유는 회의는 비평적으로 들어갈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 서비스 : 캐릭터를 세상에 내보냈습니다


그렇게 캐릭터가 출시됐다. 캐릭터를 만들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그 후가 굉장히 중요해진다. 캐릭터성은 유저에게 보여지기 시작하면서부터 소모되기 시작한다. 그래서 아바타나 전직, 추가 스토리 같은 요소들이 필요한 거다. 캐릭터 게임은 생각보다 유지보수 비용이 굉장히 크다. 어떻게 해야 이 캐릭터가 계속 매력적으로 보이게 할 수 있을까가 중점이 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캐릭터를 서비스하는 건 아이돌 그룹을 프로듀싱하는 감각과 굉장히 비슷하다. 캐릭터가 많은 이유는 다양한 계층에 어필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그런 캐릭터들이 서로 시너지를 낼수록 매출도 올라간다. 지속적으로 캐릭터의 매력을 발굴하고 끌어올려야 한다.

⊙ 마치며 : 변화하는 캐릭터 트렌드


지금까지 게임 캐릭터에 대해 쭉 설명했는데, 결국 캐릭터는 게임의 한 부분일 뿐이다. 아무리 좋은 캐릭터라고 해도 게임의 평가를 뒤집을 수는 없다. 게임 개발 자원은 언제나 한정이 되어있기 때문에 캐릭터 개발 비중이 높아지면 게임 자체 개발의 진행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항상 이 부분을 잘 저울질하면서 가야 한다. 플랫폼, 장르, 개발 인력에 맞는 고민과 밸런스 유지가 필요하다.

예전 같으면 소수 정예로 잘 다듬어진 캐릭터 몇 개를 만들어 최대한 매출을 뽑는다는 전략이었다면, 최근엔 캐릭터 수집 게임이라고 불릴 정도로 인해전술이라는 방식을 쓴다. '이 중 한 명쯤은 네 마음에 드는 캐릭터가 있겠지, 그렇게 되면 우리 게임도 하게 될 거고 다른 캐릭터에도 관심이 생길 거야' 라는 전략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는 오늘 쭉 이야기 했던 캐릭터 제작의 방법론이 요즘 트렌드에 맞지 않는 낡은 방법일 수도 있다. 그래도 오늘 했던 강연이 도움되는 부분도 있을 거라 생각한다. 캐릭터 게임은 앞으로도 쭉 지속될 것이다. 모든 개발자 여러분들의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