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롤드컵 선발전 이전까지 kt 롤스터와 삼성 갤럭시의 상대 전적은 19:0, 올해 역시 4승 1패-세트 스코어 10:4로 벌어진 상태였다. 롤드컵 진출과 연관되는 스프링 플레이오프, 섬머 스플릿 대결에서 kt 롤스터가 모두 승리했다. 작년 롤드컵 선발전이라는 예외를 제외하고 수많은 데이터가 다시 한번 kt 롤스터의 편을 들어주고 있었다.

삼성 갤럭시도 섬머 후반으로 갈수록 아쉬운 점이 점점 보이기 시작했다. 스프링 스플릿에서 MVP를 휩쓸며 팀 승리의 주역이었던 '크라운-하루'가 부진했고 '앰비션'마저 해답이 되지 못했다. 게다가, 롱주 게이밍을 시작으로 SKT T1까지 공격적인 경기로 수비 위주의 삼성 갤럭시를 무너뜨렸던 시점. kt 롤스터 역시 공격적인 스타일을 잘 구사하는 팀으로 유명한 만큼 상성에서 앞설 것만 같았다.

그런데 문득, 작년 롤드컵 선발전이 끝난 후 '앰비션' 강찬용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저는 '상성'이란 말을 믿지 않았어요. 한 번, 두 번 패배하다 보니 그게 쌓여서 이렇게 됐다고 생각해요. kt 롤스터와 고동빈 선수가 잘하지만, 무섭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었습니다. 상성과 천적이라는 단어는 경기에서 지다 보니 붙은 말일 뿐이죠."

그리고 1년 전에 했던 말을 다시 증명이라도 하듯이 삼성 갤럭시와 '앰비션'이 마지막 롤드컵 주자로 합류하게 됐다. '앰비션'과 다른 팀원들도 자신들이 했던 말을 지켜왔다. 위기와 부진이 있을지언정, 팀원들을 믿었기에 큰 그림을 완성할 자신감이 있던 것은 아닐까. 삼성 갤럭시 팀원들이 한 시즌 동안 했던 말을 통해 자신감의 흔적을 돌아봤다.


■ '큐베' : "특정 선수가 못 했다는 말이 있는데, 우린 팀이기 때문에 한 명이 못한 게 아니라 전체가 못 한 것이다."


리프트 라이벌스에서 돌아온 후 진행했던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다. 당시 '큐베'는 팀이 전체적으로 중국팀에게 밀리는 상황에서도 값진 솔로 킬을 연이어 내며 자신의 역할 그 이상을 해줬다. 하지만 자신의 활약보다 팀적으로 힘이 되지 못한 것을 더 안타까워했다. 그렇게 팀원들의 부족한 부분을 서로 어떻게 채워나갈지에 대한 고민을 하는 팀이 삼성 갤럭시였다.

섬머 포스트 시즌 이후까지 이런 상황이 이어졌다. 스프링을 주도했던 '크라운-하루'가 포스트 시즌 이후 경기에서 전패를 기록했다. 특히, '크라운' 이민호가 SKT T1 '페이커' 이상혁에게 무너졌고, 경기력을 회복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위태로워 보였다.

하지만 '크라운'은 롤드컵 선발전 1일 차부터 팀원들과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예전처럼 폭발적인 화력을 발휘하던 AP 딜러 챔피언을 내려놓고 카르마-갈리오로 팀원들을 지원할 수 있는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미드 딜러의 빈자리는 나머지 팀원들이 채워줬다. 미드 카르마의 지원을 받은 '룰러' 박재혁의 자야가 트리스타나-코르키를 압도하는 딜을 발휘했다. 마지막 5세트에서는 롤챔스 섬머에서 단 한 번 꺼냈던 갈리오로 사이드 라인에 힘을 실어줬다. '큐베' 이성진의 나르가 갈리오를 믿고 '마린' 장경환을 시종일관 압박할 수 있었다. '앰비션'의 카직스마저 딜러 역할을 톡톡히 해내며 기존에 볼 수 없었던 스타일로 승리를 거둔 것이다.



부담감을 조금씩 떨쳐낸 것일까. '크라운'은 마지막 kt 롤스터전에서 다시 자신의 주 무기를 꺼냈다. 마지막 경기에서는 최근 3연패를 기록 중인 오리아나가 등장했다. '크라운'에게는 SKT T1 전에서 유리했던 경기가 자신의 연이은 죽음으로 뒤집힌 아픈 기억이 있다. 이번 kt 롤스터전에서는 잘 성장한 '스멥' 송경호의 자르반 4세가 오리아나를 노리고 있는 상황. '크라운'은 침착하게 공격과 생존을 모두 해내며 이전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다.

'크라운'이 다시 살아날 수 있었던 밑바탕 역시 팀원들이었다. 승자 인터뷰에서 "팀원들이 잘해주고 있어서 큰 걱정은 없었다. 오늘은 나 자신과 싸움이라 생각하며, 마지막 경기이기 때문에 흔들리지 말자고 되새겼다. 미션은 클리어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삼성 갤럭시의 핵심이었던 '크라운'의 부진에 나머지 팀원들마저 동요했다면, 삼성 갤럭시의 롤드컵 진출 역시 확신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흔들리는 팀원을 잡아주는 팀원들이 있었기에 삼성은 다시 살아날 수 있었다.


■ '룰러' : "나와 (조)용인이 형은 봇 라인전에서 어떤 팀에게도 절대 밀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 '코어장전' 조용인

삼성 갤럭시의 봇 듀오에게 기량과 관련된 질문을 하면 한결같이 이런 답변이 나온다. 스프링 정규 스플릿에서는 SKT T1과 롱주 게이밍을 상대로 승리했기에 그럴 수 있다. 하지만 플레이오프 2라운드에서 kt 롤스터 봇 듀오에게 무너져본 두 선수가 다시 붙어도 실제로 자신감이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당시 봇 라인전에서 kt 롤스터가 압도했고 이후 롤드컵 선발전 전까지 kt 롤스터전에서 패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의 자신감은 마지막 순간에 플레이로 드러났다. kt 롤스터가 라칸을 먼저 가져가며 선공권을 쥐려고 하자 '룰러'의 날렵한 무빙과 '코어장전' 조용인의 잔나가 깔끔하게 받아치며 반대로 라인전 킬을 만들어냈다. 스프링 플레이오프에서 kt 롤스터 봇 듀오에게 내줬던 킬을 더 큰 무대에서 갚아준 것이다.



3세트에서는 스프링 플레이오프 당시 나왔던 '데프트' 케이틀린이 다시 등장했다. 초반 단계에서는 kt 롤스터가 포블을 비롯한 이득을 많이 챙겼다. 마지막 한타 단계에서 양 팀 모두 원거리 딜러를 노리는 상황. '룰러'는 끝까지 살아남았고, 반대로 '데프트'의 케이틀린이 자크에게 끌려가는 장면이 나왔다. 후반 한타의 핵심인 원거리 딜러 간 생존 싸움에서 '룰러'가 살아남아 롤드컵으로 향하게 된 것이다.

자신감 넘치는 말을 하기는 쉽다. 그것을 현실로 실현하는 게 어려울 뿐이다. '룰러-코어장전'은 어떤 상황에서도 그 자신감을 잃지 않았기에 극적인 결과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의 뛰어난 호흡과 자신감이 롤드컵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기대하게 된다.



■ '앰비션' : "단 한 세트만 이기면 올라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섬머 포스트 시즌과 롤드컵 선발전 첫 경기. '앰비션'은 0:2로 밀리는 상황에서만 교체 투입됐다. 상위 라운드와 롤드컵까지 달려있는 경기이기에 웬만한 프로게이머도 그 부담감을 감당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앰비션'은 아프리카 프릭스전에서 실력으로 밀리는 게 아니라는 답과 함께 등장해 극적인 3:2 역전승을 일궈냈다. 극적인 승부였지만, '앰비션'과 삼성 갤럭시에게는 자신들의 스타일과 실력에 대한 확신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삼성 갤럭시의 선발전 승리 공식은 특별하지 않았다. 기존에 해왔던 수비 위주의 스타일로 승리했다. 최근 경기에서 롱주 게이밍과 SKT T1의 공격적인 운영에 한 세트도 따내지 못했기에 불안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스타일이 통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변화보단 더욱 견고하게 전략을 갈고 닦는 데 집중했다. 수비를 중심으로 하더라도 적절하게 받아치며 승리. 3억제기가 파괴되고, 바론과 장로 드래곤을 내주는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침착하게 기회를 노린 것이다.



'앰비션'이 출격해 자크로 상대 공격을 받아치는 이 장면부터 롤드컵까지 여섯 세트 연속 승리가 그대로 이어졌다. 단 한 번의 자신감을 회복할 기회만 있으면 귀신같이 살아날 수 있는 팀이 삼성 갤럭시였다.

삼성 갤럭시는 한 선수의 캐리력만 믿고 가는 팀은 아니다. 그보다 팀 전체를 믿었기에 세트 스코어 0:2, 상대 전적 0:19라는 극적인 확률을 돌파해내지 않았을까. 극적인 일을 확신할 수 있는 삼성 갤럭시, 그들의 행보는 세계 최고 팀들이 만나는 롤드컵에서 더욱 흥미로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