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가 성공했냐는 물음에 확답을 내놓긴 힘들지만 적어도 아프리카TV, 즉 ASL 리그 흥행만큼은 고공행진 중이다.

일각에서는 여전히 추억팔이라며 놀림을 당하기도 하지만, 아프리카TV 내에서 스타크래프트 BJ 숫자는 꾸준히 늘어갔고, 스타크래프트 리마스터를 계기로 정점을 찍었다. 택뱅리쌍은 물론이고, 그에 버금가는 A급 선수들, 그리고 더 예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올드 게이머들까지 개인 방송을 시작했다.

꾸준히 방송을 진행했던 BJ와 잘나가던 선수들, 그리고 초창기 올드 게이머까지. 바야흐로 스타1 BJ들의 전성시대다. 'BJ 홍구'는 프로게이머 시절 그저 그런 2군이었지만, 꾸준히 성장해 현재 택뱅리쌍과 실력을 견줄 만큼 성장한 보기 드문 케이스다.

방송에서 늘 쾌활하고 가끔은 우스꽝스러운 모습도 보이고, 구설수에 오르내린 적도 있지만, 이번 인터뷰를 앞둔 그는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매체와 단독 인터뷰는 처음이라며 아이처럼 들떴고, 동시에 긴장과 부담감이 동시에 찾아온 모양이다. 전프로게이머 임홍규보다 'BJ 홍구'가 더 익숙해진 그. 생각했던 것보다(?) 예의 바른 모습이었고, 꽤 진지하고 차분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Q. 매체와 단독 인터뷰는 처음이라고 들었다.

맞다(웃음). 이런 인터뷰가 처음이라 굉장히 떨리고 솔직히 내가 해도 되나 싶다. 지금도 떨린다.


Q. 'BJ 홍구'의 전신인 프로게이머 임홍규. 그가 궁금하다. 2011년 SKT T1에 지명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2011년 3월 상반기였을 거다. 사실 원래는 이스트로팀 연습생이었다. 그런데 당시 팀들이 하나씩 해체되어 가는 추세였고, 이스트로도 해체됐다. 이때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해체된 팀들의 프로게이머들을 대상으로 드래프트 자리가 마련됐는데, 나에게도 연락이 왔다.

당시 나는 연습생 신분이라 엄밀히 말하면 프로게이머 드래프트에 참가할 자격이 없었다. 그런데 나에게 연락이 와서 의아했고, 당일 막상 가보니 역시나 내가 명단에 없었다. 주최 측의 실수로 벌어진 해프닝이었고,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나를 어떻게 할 것인지 논의한 끝에 연습생 신분으로 SKT T1에 이적하게 된 것이다.


Q. 그 당시 연습생과 프로게이머의 격차는 넘을 수 없는 벽과 같은 수준으로 알고 있는데, 막상 부딪혀보니 어땠는지 궁금하다.

정윤종 선수가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절이었다. 이제 막 1군으로 올라간 정도? 그런데 정윤종 선수랑 100판을 하면 정말 한판도 이기지 못했다. 처참했고, 충격이었다. '나는 정말 재능이 없나, 이대로 포기해야 하는 건가'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포기할 수 없었다'가 맞는 것 같다.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기에는 집안 형편도 좋지 않았고, 이 길밖에 없었다.


Q. 그러나 약 1년 만에 은퇴했다. 많은 일들이 있었을 것 같은데?

당시 함께 생활하던 다른 연습생 형이 방출을 당했다. 개인 방송을 통해 얘기한 적도 있는데, 숙소 생활을 못했던 부분도 인정하고, 당시 화승-MBC게임-위메이드의 해체로 타팀 에이스급 선수들이 남아 있는 팀에 들어오면서 내가 살아남기는 더욱 힘들었다. 자의와 타의 반반으로 은퇴를 하게 된 것 같다. 스타2를 해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게임이 나와 잘 맞지는 않는다고 생각했다.



Q. 모든 프로게이머가 비슷한 고민을 할 거다. '은퇴 후 뭘 해야 하지?' 게다가 프로게이머로서 성공했다고 보기 힘든 선수일수록 더욱. 본인은 어땠나?

나도 그랬다. 막막했다. 게다가 은퇴 직후 놀이공원에 놀러 갔다가 디스코팡팡을 탔는데, 허리가 골절됐다. 그래서 당장 막노동이나 아르바이트 같은 것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 돼버렸다. 그래서 그냥 집에서 게임을 하고 있는데, 소닉 올스타전에 섭외를 받았고, 거기서 오영종, 샤이니, 이민호(현 LoL 크라운), 손찬웅을 상대로 올킬을 기록했다.

방송을 시작했던 때는 아닌데, 올킬을 하고 관심을 받으니 개인 방송에 대한 호기심과 욕심이 생겼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외부 활동을 하기 힘든 상황에서 뭐라도 해서 돈을 벌어야 했고, 그게 개인 방송이었다. 처음 방송을 준비할 때 마음가짐은 '클린, 또 클린!'이었다. 그런데 하루 만에 생각을 바꿨다(웃음).

시청자들이 다 재미없다고 뭐라 하더라. 개인 방송이 처음인 나에게는 재미없다는 한마디가 상처였고, 그날 이후로 방송 롤모델을 100%는 아니지만, '철구'로 잡았다. 그랬더니 시청자가 조금씩 늘기 시작하고, 뭔가 내 이름을 걸고 하는 방송을 키워나가는 재미가 있더라. 방송 시작 후 4개월 정도 후에는 어느 정도 혼자 먹고 살만큼은 됐던 것 같다.


Q. 2군이었던 본인이 프로였을 때 넘지 못했던 벽을 방송을 하면서 넘었다. 비결이 뭔가?

무엇보다 승부욕이 강하고, 정말 열심히 했다. 하지만 혼자서는 확실히 한계가 있다. '단순히 열심히'만으로는 말이다. 그런데 잘했던 저그 선수들이 BJ로 넘어올 때마다 그들의 장점을 흡수하려 했다. 프로게이머 시절에는 같은 팀 선수들의 개인 화면밖에 못 본다. 노하우도 그렇고. 그런데 다른 팀 소속 저그 선수들의 개인 화면을 보면서 정말 많이 배웠다. 특히 김명운 선수와 김정우 선수 방송을 많이 봤다.

근데 내가 느끼기에 실력이 확 늘게 된 계기는 얼마 되지 않았다. 방송을 시작하기 전에는 냉정하게 예전 피시서버 래더로 치면 C~D정도? 그러다가 저그 선수들 방송을 보고 좀 늘긴 했지만, 뭔가 깨달음을 얻은 건 5월쯤? 한 달 정도를 이영호, 김성현 선수랑 100판을 넘게 했다. 초반에는 붙었다 하면 졌다. 그럴수록 이겨보고 싶었다. 오기가 생겼고, 내 사비를 동원해서라도 스폰빵(아프리카 내 별풍선을 걸고 하는 게임)을 신청했고, 하다 보니 내가 이기는 횟수가 조금씩 오르더라. 원래 프로게이머 시절에는 원래 프로토스전이 제일 자신 있었다. 2군 중에서 유일하게 김택용 선수 파트너였다(웃음). 근데 이영호, 김성현 선수와 대결을 통해 테란전이 더 자신 있어졌다.



Q. 그럼에도 유독 방송 경기에서는 실력 발휘를 하지 못하고 빠르게 탈락하는 경우가 많았다.

원래는 긴장을 크게 안 하는 타입이었다. 그런데 예전에 픽스 스타리그였나. 김택용 선수와 8강 경기를 하는데, 관중이 정말 많이 왔었다. 대부분이 김택용 선수 팬이라 위축이 되면서 긴장됐고, 그때 2:3으로 패배하고 약간 트라우마가 생겼다.

집에서는 편안하게 할 수 있는 컨트롤도 안 돼고, 나의 제일 강점은 피지컬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100% 발휘가 되지 않으니 힘을 쓰지 못하더라.


Q. 그래도 지금은 재미와 실력, 두 마리 토끼를 다잡은 BJ가 된 것 같다.


앞서 말했지만, 이영호, 김성현 선수와 엄청 연습을 많이 할 때 내가 아무리 해도 이기질 못했다. 승부욕은 강한 편이라 스스로에게 정말 화가 났고, 이런 점들을 그대로 표출했다. 그런데 그 모습들을 팬들이 좋아하더라. 지금 생각해보면 좀 과한 게 있었는데, 관심이 많아지다 보니 부담감도 자연스레 따라왔고, 경기에서 지면 화를 내야 될 것 같은 분위기가 되더라. 시청자들을 만족시켜줘야 할 것 같은 사명감 같은 거 말이다. 그래도 이대로 가다가는 내가 정신병에 걸릴 것 같아서 자제하긴 했다(웃음).


Q. 그래도 지금은 저그에 탑급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지 않나? '홍구'가 생각하는 테란, 프로토스 3대장은 누구인가?

테란은 이영호, 김성현 고정에 마지막 한 자리는.. 음.. 원래는 염보성 선수라고 생각하는데, 요즘은 스타 방송보다 다른 콘텐츠를 많이 하다 보니(웃음). 박성균 선수나 최호선 선수가 아닐까 싶다.

일단, 이영호 선수는 속도가 정말 남다르다. 일반 테란과는 확실히 다른 뭔가가 있고, 언제나 반박자 빨리 앞서나가는 느낌이라 정신을 못 차리겠더라. 그리고 심리전도 능하다. 원래 사람 심리가 자신보다 약한 상대와 붙으면 안전하게 하기 마련인데, 이영호 선수는 정석뿐만 아니라 변칙적인 빌드를 아무거나 꺼내도 숙련도가 100%인 느낌?

반면, 김성현은 정말 단단하다. 정석이지만, 굉장히 묵직하고, 무게감이 일반 테란과 다르다. 그리고 박성균 선수도 정석적으로 잘하는 느낌이고, 최호선 선수는 뭘할지 모르는 변칙 테란의 대표주자 같은 느낌이라 까다롭다.

프로토스는 고르기가 쉽다. 과거 SKT T1 출신의 3토스. 김택용-도재욱-정윤종이다. 김택용 선수는 커세어에 비중을 많이 두면서 한방 병력 타이밍이 남들보다 빠르고, 도재욱 선수는 역시나 물량. 정윤종 선수는 김택용과 도재욱을 섞어 놓은 느낌이다.



Q. BJ로 탄탄대로를 걷고 있는 것 같았지만, 시련이 크게 찾아왔다. 올해 4월 방송을 통해 방광암에 걸린 것을 공개했었는데?

다행히 초기에 발견해서 지금은 5년 동안 3개월마다 한 번씩 추적검사만 하면 된다. 처음에는 요로결석 때문에 병원을 찾았다. 보통 레이저 시술로 7~8회면 돌이 깨진다고 하는데, 깨지지 않아서 수술을 받았다. 수술하면서 의사 선생님이 혹이 있어서 제거했다고 하더라. 20대에 방광암에 걸릴 가능성은 굉장히 희박하지만, 혹시 모르니 조직 검사를 해보자고 했고, 방광암이었다.

하필 그때 타이밍도 아기가 태어나기 직전인데,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나 싶고, 억울하면서 현실을 부정했다. 그래도 좌절할 시간도 아까웠다. 곧 태어날 아기가 있고, 내가 지켜야 할 아내가 있으니까. 상심해봤자 스트레스로 이어질 테고 건강에 좋지 않으니 빨리 잊으려 노력했고, 일상생활에서 딱히 변한 것도 없다. 3개월에 한 번씩 받는 추적검사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아프긴 하지만..

가족도 가족이고, 응원해주는 시청자들을 위해서 앞으로 방송을 열심히 해나갈 생각이다. 그리고 부모님께 차도 사드리고, 사업 자금 지원 등 이것저것 지출이 많아서 정말 열심히 일해야 한다(웃음).


Q. 그럼 분위기를 바꿔서 다시 스타 이야기를 해보자. 실력이 늘면서 별명들도 굉장히 많아졌다. '집황상제'라는 별명에 대한 생각은?

예전에 못할 때는 피지컬만 좋다고 '뇌 없는 이제동'이라고 많이 불렀는데, 실력이 늘면서 팬들이 집에서만 잘한다고 옥황상제의 앞글자만 바꿔 '집황상제'로 불러줘서 기쁘다. 그런데 뭔가 황제 같은 느낌이라 부담스럽다. 황제는 임요환 선수의 타이틀 아닌가.



Q. 실력도 늘고, 외모도 맥그리거 컨셉을 잡으며 훨씬 멋있어진 것 같다.

별명은 계속 바뀌어야 한다. 집제동, 뇌 없는 이제동, 집황상제 등등 방송 컨셉에 따라 변화하는 게 별명이다. 당분간은 홍그리거 컨셉을 유지하겠지만, 팬들이 질려 한다면 다음에는 메이웨더 컨셉으로 머리를 밀 수도 있지 않을까?


Q. ASL 16강에 진출했다. 진출 당시 방송 인터뷰를 본 이영호 선수가 본인을 지목하겠다고 농담 식으로 이야기했었는데?

나도 다시 보기로 봤다. 아마 농담 반, 진담 반 같은데, 솔직히 16강에서 만나기는 싫다. 다전제라면 상관없는데, 단판으로는 솔직히 못하겠다. 무대 경험이 부족해서인지 판짜기를 잘 못하겠더라.



Q. 붙게 된다면 응원하겠다(웃음). 그런데 스타1을 그들만의 리그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에 대한 생각은?

아프리카TV 덕분에 이런 콘텐츠를 볼 수 있다는 점을 항상 말하고 싶었다. 한 두번 이벤트성으로는 어디서든 할 수 있겠지만, 아프리카TV의 지원이 있어서 지금의 씬이 형성됐다고 생각한다. 스타 BJ들이 예전 프로 시절 못지않게 대회 준비도 정말 열심히 하며, 책임감을 느끼고 리그에 임하고 있으니 좋게 봐주셨으면 좋겠다. 그들만의 리그라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분명한 건 '그들'의 숫자가 생각보다 꽤 된다는 점이다.


Q. 'BJ 홍구'로서 힘든 점은 무엇인가?

나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안티들이 많다. 프로게이머 시절 별 볼 일 없던 선수가 잘나가는 걸 용납하지 못하는 것 같다. 뭐, 나를 싫어하는 건 그들의 취향이니까 악성 댓글 정도는 이해하지만, 없는 사실을 만들어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부탁이다.


Q. 마지막으로 이번 ASL에 임하는 각오와 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

일단 ASL은 솔직히 얘기하면 아직 살짝 불안하긴 하다. 그래도 재밌는 모습, 이기는 모습을 보여드리려 노력할 테니 지켜봐 달라. 그리고 항상 팬들에게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내가 표현을 잘 못했다. 이 자리를 통해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사진= 남기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