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AG’ 가득한 패션과 걸음걸이, 날카로운 인상, 헐렁한 옷 아래로 느껴지는 근육들. '전띵' 전상현을 처음 본다면, 그를 게이머라고 생각하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와 이야기를 나눈다면, 게임에 대한 열정에서 그 역시 한 명의 열혈 게이머라는 사실을 금세 알 수 있죠.

전상현은 철권7에서 '약캐'로 평가받는 럭키 클로에와 꾸준히 플레이해온 에디 골드(이하 에디)를 주력으로 국내외 철권 대회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빠른 스텝을 바탕으로 화려한 플레이를 펼쳐 관객들의 환호를 자주 끌어내죠. 전상현의 플레이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그 매력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울 것입니다.

따뜻한 가을볕이 내리쬐던 오후, 한 오락실 근처에서 전상현을 만났습니다. 경기 외의 인터뷰는 처음이라고 밝혔지만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적극적으로 인터뷰에 응해준 그. 대회 비하인드부터 철권에 대한 열정과 아쉬움까지, 전상현의 이야기를 지금 바로 시작합니다.







Q 안녕하세요! 먼저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철권 플레이어, 트위치 스트리머 전상현입니다. 반갑습니다.


Q 옷 아래로 느껴지는 기운이 보통이 아니에요. 혹시 어떤 일을 하시나요?

저번 달까지 헬스트레이너를 했어요. 이번 달부터 방송에 집중하기 위해 일을 잠시 그만둔 상태입니다.


Q 헬스트레이너 게이머라니, 대단하네요. 혹시 어떻게 그 직업을 갖게 되셨나요?

20살 때 운동을 처음 시작했어요. 친구 따라 별생각 없이 시작한 건데. 하다 보니 재밌어서 꾸준히 하게 되더라구요. 그러다가 다니던 헬스장 트레이너분이 일을 그만둬서 관계자분께 추천을 받아 23살 때부터 트레이너로 활동하게 됐습니다. 지금도 일은 그만뒀지만, 운동은 계속하고 있어요.


Q 대단하시네요. 운동은 계속하실 건가요?

운동은 자기만족이니까요. 제 몸에 큰 문제가 없으면 평생 할 생각입니다(웃음).


▲ 카포에라를 위해 키운 몸은 아니라고 합니다. (출처 : 전상현 SNS)


Q 최근 스트리머로 활동 중인데, 방송에서는 주로 어떤 걸 하시나요?

당연히 철권을 주력 게임으로 플레이하구요, 그 외에도 스트리트 파이터나 스타크래프트, 리듬게임, 운동 등 다양한 콘텐츠를 보여드리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Q 철권 외 다른 게임도 수준급으로 플레이하는 모습을 봤어요.

어린 시절부터 게임을 좋아했어요.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이것저것 플레이했는데, 특히 스타크래프트를 좋아해서 어린 시절에서는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가 꿈이었죠. 철권은 좀 나중에 시작했는데... 물론 지금은 철권을 가장 잘 합니다.


Q 그럼 철권은 언제 처음 시작하셨나요?

아주 어린 시절 철권 태그 토너먼트를 했던 걸 제외하면, 철권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20살 때네요. (첫 대회에 출전한 게 20살 때였던 것 같은데요) 맞아요. 동네 오락실에서 같이 게임 하던 형들이랑 '테켄크래쉬 시즌5'에 출전했죠. 예선은 뚫었지만 16강에서 바로 탈락했어요(웃음).


Q 철권을 시작하자마자 바로 대회에 출전하다니! 전형적인 ‘재능형’ 게이머시네요.

아니에요. 그 당시에 정말 철권에 빠져 살았어요. 처음에는 동네 오락실에서만 철권을 했는데, 계급을 올리다 보니 동네 오락실에서는 더는 비슷한 계급을 만날 수가 없더라구요. 그래서 검색을 해서 유명 오락실에 가게 됐어요. 그때 제가 철권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재밌어한다는 걸 알았어요. 그 이후로 매일같이 오락실에 가서 게임을 하고, 주변 고수들 플레이를 구경하고, 밤도 여러 번 새 가며 연습했습니다. 그래서 실력이 빨리 늘었던 것 같아요.


▲ 옆에서 직접 본 광속의 손놀림. 연습의 결과라는 것이 놀라울 뿐입니다.


Q '전띵'하면 역시 그 경기를 빼놓을 수 없죠. 2014년 철권 태그 토너먼트 마스터컵7, 한국팀과 일본팀의 결승전. 3:0으로 한국팀이 지던 상황에서 '역올킬'로 우승을 이끌었어요.

아직도 생생하죠. 먼저 출전한 세 선수('세인트' 최진우, '온리 프랙티스' 조완호, '무릎' 배재민) 모두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고수들인데, 일본 선봉인 '카게마루'에게 모두 패배해서 멘탈이 조금 흔들리고 긴장도 많이 됐죠. 처음엔 주변에서 '동점만 만들어 달라'고 했어요. 그런데 '카게마루'를 이기고 나니 긴장이 풀리면서 '이거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 뒤로는 플레이도 잘 됐고, 운도 많이 따라준 것 같아요. 질 뻔한 상황에서, 상대 선수가 실수로 버튼을 잘못 눌러 역전한 경기도 있었구요. 저한테는 평생 최고의 경기로 기억될 것 같아요.


Q 대회 관련해서 조심스러운 말이지만, 개인 대회에서는 우승과 거리가 멀어요. 가장 최근 마닐라컵도 준우승에 그쳤구요.

맞아요. 지금까지 준우승, 3등은 많이 했지만, 우승은 한 번도 못 했어요.


Q 개인적으로 '전띵'님 실력이면 충분히 여러 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처음엔 철권 고수들은 실력이 모두 비슷해서, 그날의 컨디션이나 운에 따라 승패가 갈리고, 그래서 저도 충분히 우승이 가능할 거로 생각했어요. 그런데 철권을 하면 할수록 그게 아니란 걸 깨닫고 있어요. 고수들 사이에도 분명히 차이가 있고, 그 차이가 우승을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최)진우 형이나 'JDCR' (김)현진이 형이 대회에서 여러 번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것처럼요.


▲ 작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어요.


Q '세인트'와 'JDCR'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최근 두 분이 'ECHO FOX'에 입단해 후원을 받고 있어요. '무릎'도 후원을 받고 있구요.

아주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철권 e스포츠 시장이 워낙 작다 보니, 후원을 받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에요. 셋은 커리어도 오래 꾸준히 쌓아왔고, 실력도 출중하기 때문에 입단을 한 것 같아요. 저는 세 사람에 비하면 많이 부족하죠. (만약 입단 제의가 온다면요?) 당연히 입단해서 후원을 받을 것 같아요. 물론 성적에 대한 부담도 생기겠지만, 그만큼 책임감을 느끼고 더 열심히 해야죠.


Q 철권7 대회에서 거의 유일하게 럭키 클로에를 사용하고 있어요.

철권7이 처음 나올 때 에디가 없었잖아요. 그래서 어떤 캐릭터를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최)진우 형이 럭키 클로에 기술이 에디랑 비슷한 것 같으니 한번 해보라고 추천해 줬어요. 그런데 문제가 있었죠. 럭키 클로에는 하면 할수록 약한 거에요(웃음). 그래도 이왕 시작한 거 끝을 보자고 꾸준히 플레이하고 대회도 출전했는데, 생각보다 잘 통하는 거예요. 그래서 에디가 나온 지금도 대회에서 럭키 클로에를 꾸준히 사용 중입니다.


Q 그럼 앞으로도 대회에서 럭키 클로에를 계속 볼 수 있는 건가요?

네. '인생은 잠입' 이선우님이 이번 마닐라컵 스트리트 파이터 대회에서 주리로 우승하셨듯이, 철권 국제 대회에서 럭키 클로에로 우승하는 걸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사실 에디보다 럭키 클로에가 성적이 더 좋아요(웃음).


Q EVO 2017 하니까 생각났는데, 'JDCR' 김현진과의 경기가 결승급 명경기로 꼽히고 있어요.

사실 서로 컨디션이 좋은 상태에서 펼친 경기가 아니었어요. 첫 번째 경기에 손도 안 풀린 상태라서 실수도 잦았고 수준 높은 경기가 아니었죠. (김)현진이 형도 인터뷰 때 얘기했구요. 하지만 경기가 팽팽하게 진행되다 보니 관객들 입장에서는 매력적인 게임이 된 것 같아요. (마지막 라운드에서 정말 아쉽게 패배했어요) 네. 마지막 공격을 하면서 이긴 줄 알았는데, 체력이 1도트 남아서 마음이 급해졌어요. (김)현진이 형이 레이지 상태에서 하단 흘리기를 잘 노리는 걸 알고 있었는데... 긴장감에 저도 모르게 하단 기술을 사용했죠. 아쉽긴 하지만, 제가 부족했던 거니까 어쩔 수 없죠.


▲ 다시 봐도 명경기. 정작 당사자들은 불만족했다고 합니다. (출처 : 유튜브)


Q 이번에 제9회 e스포츠 월드 챔피언십 대표로 선정된 것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 대회에 아쉬움이 많아요. 먼저 홍보가 너무 부족했던 것 같아요. 문자로 연락이 안 왔으면 대회가 있는지도 몰랐을 거에요. 시설 문제도 컸어요. 예선을 플스방에서 진행한 거에요. 게임용 모니터가 아니어서 화면도 엄청 버벅대고, 제대로 된 의자도 없이 비치된 소파에 앉아 게임을 해야 했어요. 또 예선이 서울에서 열렸는데, 지방에 있는 철권 플레이어들에 대한 배려도 부족했던 것 같아요. 지방 플레이어들은 하루 예선을 위해 서울까지 와야 해요. 그런데 주최측에서 그에 대한 아무런 지원도 없었어요. 아무리 철권 e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고 해도, 대회를 개최한다면 선수들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Q 그런 비하인드가 있는 줄은 몰랐네요. 확실히 개선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럼 혹시 철권의 고질적 문제인 '고인물'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철권이 점점 신규 유저 유입이 줄어드는 건 사실이에요. 정말 아쉽죠.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음... 아무래도 오프라인 대전이 비활성화된 게 문제인 것 같아요. 제가 철권을 처음 시작할 때는 온라인 대전도 PC 버전도 없어서, 특정 오락실에는 항상 사람이 많았죠. 그래서 오락실에 가서 계급이 맞는 사람과 게임을 하며 배우고 성장할 수 있었어요. 또 주변 고수들 플레이를 구경하면서 배우고, 커뮤니티에서 팀 활동도 하고, 철권을 정말 재밌게 플레이하고 배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그게 불가능하죠. 저부터 철권7 PC버전을 구매하고 나서 오락실에 간 적이 없으니까요.


Q 저도 예전에 오락실에서 철권을 즐겼던 플레이어로써 많이 아쉬워요.

플레이 환경이 바뀌면서 장단점이 명확하게 갈린 것 같아요. 집에서도 플레이할 수 있으니 입문 자체는 쉬워졌지만, 깊게 배우고 성장하기 어려워졌죠. 그래서 지금 기존 유저분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 것 같아요. 기존 고수 유저분들이 낮은 계급의 캐릭터를 플레이할 때, 신규 유저분을 만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럴 때 신규 유저분이 실력을 키울 수 있도록 적절하게 플레이하면서 도움을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방법은 생각해보지 못했지만, 커뮤니티도 다시 활성화되면 좋겠구요.


Q 철권 시리즈가 거듭되며 진입장벽이 더 낮아지고 있어요. 신규 유저 유입을 위해 다음 시리즈에서 진입장벽을 더 낮추는 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지금도 진입장벽은 적당히 낮다고 생각해요. 지금보다 더 낮추면 철권의 정체성을 잃어버릴 거에요. 이건 신규 유저 유입을 위해 전혀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이 외에 신규 유저 유입을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저나 다른 선수들같이 대회에 참가하는 철권 플레이어들이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더 박진감 있는 경기를 보여주고, 이기고 지고 해서 라이벌 구도도 만들고. 시청자들의 흥미를 끌 만한 것들을 계속해서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철권을 처음 보는 사람도 '재밌어 보이네?'라고 느끼고 입문할 수 있게요.


Q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팬분들께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가장 먼저 해외 대회에 참가할 수 있도록 후원해 주시는 팬, 시청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대회에서 매번 2, 3등만 하는 것도 질렸습니다. 최근 연습도 많이 하고 대회도 많이 참가하고 있으니, 올해 내로 꼭 우승하는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앞으로 '전띵' 전상현의 활약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