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사: 스튜디오 MDHR ⊙장르: 액션 어드벤처 ⊙플랫폼: PC, XBOX ONE ⊙발매일: 2017년 9월 29일

상상력의 끝은 어디일까? 물론 상상의 끝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지만, 새롭고 기이한 작품을 접할 때마다 이 질문을 되뇌이게 된다. 모두의 가치가 다르고 생각이 다른데, 그 속에서 제작자는 자신의 색깔과 상상력을 담아 대중을 공감시켜야 한다. 비단 순수예술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 소개할 작품은 근래 접했던 게임 중 가장 독특한 인상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친숙한 느낌을 동시에 받기도 했다.

2D 애니메이션의 첫 번째 전성기라 불리던 3~40년대의 애니메이션 양식을 모티브로 삼은 이 게임은 정말 유례없는 경험을 선사했다. 움직임은 사실적이지 않고, 화면은 노이즈로 지직이며, 조작은 불편했다. 그런데 아주 유쾌했다. 그 특유의 불친절함과 '옛날 감성'이 정말 신선하게 와닿았다.

제작자 몰덴하우어 형제는 어릴 적 즐겨본 만화 주인공이 살아 움직이길 원했다. 그림처럼, 혹은 영상처럼 수동적으로 바라만 보는 것이 아니라, 내 손에 의해 직접 뛰어다니길 바랐다. 형제는 그런 바람을 담아 게임 제작에 뛰어들었다. 80년가량의 세월의 벽을 넘어 새로운 가치를 실현시키기 위해 그들은 당대 애니메이션의 점 하나, 선 하나까지 파고들어 연구했다.

그리고 오늘날, 그들의 염원과 노력이 담긴 '컵헤드'가 탄생했다.


그 당시 그 느낌 '그대로'
"놀라운 상상력"


'컵헤드'의 가장 큰 특징은 역시나 그래픽이다. 흡사 수십 년 전의 애니메이션에서 보이던 그 색감, 그 감성이 그대로 묻어나 있었다. 배경은 약간 바래져 있고, 화면에는 시종일관 노이즈가 섞여 있다. 하지만 불쾌하거나 거슬리진 않는다. 그저 제작자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치밀하게 연구해왔는지가 느껴진다.

실제로 몰덴하우어 형제는 '옛 감성'을 살리기 위해 그 당시의 애니메이션 기법을 그대로 사용했다고 밝혔다. 그들은 한 오브젝트의 움직임을 위해 수십, 수백 장을 그려냈다. '컵헤드'를 완성하기까지 대체 얼마만큼의 작업이 필요했는기 감히 가늠조차 되지 않는 수준이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컵헤드'는 단순히 당시 느낌을 '재현'한 것에 그치지 않았다. '컵헤드'엔 상상을 뛰어넘는 상상력이 담겨있다. 그 상상력이 80년 전의 애니메이션 기법과 만나고, 런&건이라는 게임 장르와 만나 새롭디새로운 감성을 전달한다.

'컵헤드'에선 용의 입에서 불덩이가 걸어 나오고, 개구리가 슬롯머신으로 변한다. 조금은 '뜬금없는' 이런 상상력이 플레이하는 내내 유쾌함을 선사한다.


'컵헤드'의 매력은 비주얼뿐만이 아니다. 특유의 감성과 멋을 극대화시켜주는 사운드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빅밴드를 동원하여 손수 녹음한 멋들어지고 흥겨운 재즈 사운드가 플레이 내내 귀를 간질인다. 제작자의 고집과 열의가 보이는 대목이다.

게다가 플레이어의 행동이나 상황에 맞춰 등장하는 효과음들 역시 일품이다. 적당히 투박하고 어색해서 음악을 듣는데 거슬림이 없다. 심지어 게임 내 '상점'에서 돼지 주인이 들려주는 '웰컴'이란 두 글자의 대사마저 짧은 애니메이션을 보는듯한 느낌을 준다.


죽고 죽고 '또 죽고'
"그럼에도 즐겁다"


'컵헤드'는 어렵다.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체감 난이도는 결코 쉽다고 말할 수 없다.

보통 난이도라 할 수 있는 '레귤러(Regular)'를 기준으로, '컵헤드'는 생각보다 꽤 큰 인내심을 요구한다. 유사 장르라 할 수 있는 '레이맨', '록맨' 보다도 체감상 어려웠다. 그런데 어려운 이유가 다른 런&건 게임과는 다소 다르게 느껴졌다. 패턴의 문제가 아니다.

원래 슈팅, 런&건 장르는 악랄한 난이도로 유명하다. 끊임없이 도전하고 패턴을 파훼하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컵헤드' 역시 마찬가지다. '보스전'이나 '런&건 스테이지'에 끊임없이 도전해 패턴을 파악하면 이후에 크게 어렵게 느껴지진 않는다. 문제는 직관적이지 못하다는 점이다.

▲ 피하기 어려운 건 아닌데...

기본적으로 패턴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어느 부분'에서 '어떤 공격'이 올지, 저 오브젝트는 '어떤 역할'을 할지 직관적으로 와닿는 게 있어야 한다. 다만, '컵헤드'는 그런 면에서마저 너무 많은 상상력을 부여했다. 직접 맞거나 죽지 않는 이상 사전에 알아차리기 힘든 패턴이 많다.

다행인 것은 '그런 재미'가 있다. 패턴이 기괴하더라도 한 편의 애니메이션을 보는듯한 재미가 있어서 죽더라도 크게 아쉽지는 않다. 고양이가 갑자기 공중에서 갈라져도, 새가 갑자기 심장을 꺼내 공격해도 "컵헤드니까" 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가끔 억울한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뻔하지 않아 'Fun 하다'
"매력 넘치는 캐릭터와 스토리"

▲ "옛날 옛적에 잔머리 형제들은 노름을 하다 패가망신했답니다."

세계를 구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주인공이 일방적으로 억울한 것도 없다. 본작의 주인공인 '컵헤드'와 '머그맨' 형제는 카지노에서 악마의 꼬임에 넘어가 영혼을 건 도박을 하게 된다. 그리고 내기에서 져버린 형제들은 악마에게 목숨을 구걸한다. 간신히 목숨만은 부지한 형제들은 악마의 부탁을 받아 악마에게 빚을 진 '채무자'들을 쫒아다니게 되는 것이 '컵헤드'의 줄거리다.

아주 파격적인 설정이다. 결과적인 뼈대는 '권선징악'이 맞지만, 시작이 참신하다. 지겨울 정도로 순수하고 죄 없는 주인공이 아니라 더욱 유쾌하고, 이런 다소 '맛이 간' 설정 덕에 재즈가 한층 흥겹게 들린다.

이런 스토리뿐만 아니라 게임 전반에 등장하는 캐릭터 모두가 개성과 매력이 넘친다. 단 하나의 캐릭터도 뻔하지 않고, 몰덴하우어 형제의 상상력이 듬뿍 들어가 아주 강렬한 인상을 남겨준다. 실제로 현재 레딧을 비롯한 각종 커뮤니티에서 '컵헤드' 관련 팬아트가 쏟아져나오는 중이다.


애니, 재즈, 런&건 '성공적'
"기분 좋은 혁신"


개인적으로 '컵헤드'는 인디 게임의 아주 좋은 모범 사례라고 생각한다. 자본에 잠식되지 않고 제작자의 욕심과 고집을 한껏 담아 만들었다는 것이 플레이하는 내내 느껴진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그 욕심과 고집이 새로운 가치를 보여줬다는 점이다.

단순히 30년대 고전 애니메이션 그래픽을 구현해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컵헤드'가 놀라운 건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완전히 따로 자리 잡고 있던 두 가지 장르(애니메이션, 게임)를 조화롭게 묶어냈다는 것이다. 수동적으로 시청하던 애니메이션을 능동적으로 놀 수 있는 게임이란 매체로 탈바꿈시켰다는 점은 가히 혁신이라 부를 만 하다.

이런 기분 좋은 혁신, 상상을 뛰어넘는 상상이 필요하다. 뻔하게 재미있는 게임은 이미 너무나 많다. 게임은 종합예술로 언급될 정도로 폭넓은 잠재력과 수용력을 지니고 있다. 그 무엇을 상상하든 구현해낼 수 있고, 그 어떤 것이든 담아낼 수 있다. '컵헤드'는 그런 용기를 보여줬고 보란듯이 성공했다.

'컵헤드'는 정말 여러 가지 의미에서 재밌는 게임이다.

번외 - 문제의 '그' 스테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