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kt 롤스터의 역사라 할 수 있는 이지훈 감독의 사임 소식이 전해졌다. 프로게이머 출신으로 18회 우승, 그리고 10년의 지도자 생활을 끝으로 감독직을 내려놓은 것이다. 이지훈 감독은 kt 롤스터 그 자체였기에 믿기 어려운 결정이었다.

kt 롤스터는 '스멥' 송경호, '데프트' 김혁규 등 슈퍼 팀을 구성해 호기롭게 도전했지만, 2017시즌에 준우승 1회를 거두는 데 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지훈 감독의 사임을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 다수의 팬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으나, '설마 사임할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이지훈 감독은 자신의 책임을 통감하며 팀에 사의를 표명했고, 선수들은 이 같은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 전부 이지훈 감독이 아니었다면 kt 롤스터라는 이름 아래 뭉치기 어려웠을 테니 말이다.

kt 롤스터와의 동행은 여기서 끝났으나, 이지훈 감독은 잠시 떠나는 것뿐이라고 담담하게 소감을 전했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kt 롤스터의 안녕을 바라며, 인터뷰를 통해 'e스포츠인'으로서 팀원들 그리고 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성적이 좋지 않으면 사임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아마 모든 감독이 늘 그런 생각을 가지고 시즌에 임할 거예요. 원래는 롤드컵 진출전이 끝난 직후 사임 의사를 전달하려 했는데, 팀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에 조금 시간을 가지고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됐죠."

이지훈 감독의 말에 여러 감정이 느껴졌지만, 현 상황이 좋지도 싫지도 않아 보였다. 현재 감독이 아닐 뿐, 여전히 관계자들과 만나고 롤드컵을 시청하니까 말이다. 그리고 많아진 여가 중 일부는 배틀그라운드를 즐기며 여전히 e스포츠에 자신의 시간을 쏟아붓고 있었다.

"요새 그냥 사람들 만나는 낙에 살아요. 그런데 일을 관두고도 계속 롤드컵을 보게 되네요. 와이프가 뭐하냐고 물어보면 롤드컵 본다고 해요. 그럼 또 속상하게 왜 보냐고 천상 e스포츠인이라고 구박하죠. 해오던 일이니까 안 보면 너무 답답해요.

딸은 아직 어려서 아빠가 그만둔 지 잘 몰라요. 오히려 와이프는 좋아하죠. 감독하던 해에 연애를 시작했으니 제가 여유롭게 챙겨준 적이 없었잖아요. 아마 와이프만의 위로 방법이겠죠. 악플 때문에 저 대신 울기도 하고, 가슴 아프다며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권유한 적도 있어요. 그러다 사임 기사를 보고, 많은 분이 좋은 글을 남겨 주시니까 그래도 당신이 열심히 잘 한 걸 인정받는 것 같다고 말하더라고요."




사실 이지훈 감독뿐만 아니라 kt 롤스터도 큰 변화를 맞이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늘 함께했던 이지훈 감독의 자리를 오창종 코치가 대행하게 됐으며, 선수들도 감독을 떠나 보내면서 많은 부분에서 위기의식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이지훈 감독은 "마타와 둘이 술 한잔 하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고,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 그러면서도 마지막으로 사무실을 나설 때만큼은 느낌이 묘했다고 한다.

"'스코어'는 그 누구보다 가장 먼저 말해줬더니 절대 안 믿더라고요. 나중에 알았던 선수들도 거짓말하지 말라고 웃어넘겼어요. 그러다 진짜인 걸 알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묘하더라고요. 마지막 자리에서 선수들한테는 팀에 남아서 만회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조언했어요.

(이)영호는 제 소식을 접하고, 이제 홀가분 할거라고 잘 결정했다 말하더라고요. 그제야 천하의 이영호도 늘 압박감에 시달렸구나 싶더라고요. 본인도 그랬지만, 처음에는 걱정이 될거래요. 그래도 늘 해오던 일을 벗어나 새로운 경험이 많을 거라고 조언을 해줬어요.

이후 짐을 정리하면서 매번 선수들, 코치들이 짐 싸는 모습만 보다 이제 제가 이곳을 떠나게 되니 정말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었어요.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그런 게 아니라 처음 느끼는 기분이더라고요."


떠나는 와중에도 이지훈 감독은 시종일관 팀에 대한 걱정을 내려놓지 않았다. 그만큼 미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자신과 오래 호흡한 오창종 코치를 향한 응원을 부탁했다.

"제가 너무 오래 한 상태에서 팀을 나왔잖아요. 그럼 기존 시스템을 잘 알고 있는 오창종 코치가 꼭 남아있는 게 좋다고 생각했어요. 당장은 내년 시즌 계획을 구상해야 하니까 부담이 무척 클 거예요. 그래도 제가 여태까지 본 코치 중에 가장 앞만 바라보고 열심히 하는 친구예요. 팬분들이 많이 응원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대개 10년 이상 몸담았던 직장을 떠나기 쉽지 않다. 가뜩이나 이지훈 감독은 자진 사임했으니 팬들은 그의 선택이 더 아쉽게 느껴졌을 것이다. 분명 20대와 30대의 대부분을 보낸 곳을 떠나 새로운 환경을 맞이하기란 무척 큰 용기가 필요하다. 이지훈 감독과 잠시 회상에 잠기며, 과거 그리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고민이 참 많았던 게, 선수 생활 뒤에 군대를 다녀왔거든요. 이후 kt 롤스터에서 제의한 코치 제안을 두 번이나 거절했어요. 선수 때도 직업이라 생각한 적은 없었기에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는데, 세 번은 거절하기 힘들어서 5년 정도 도전하기로 했어요. 그러다 이렇게 빨리 10년이 흘렀고, e스포츠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네요.

이제 1, 2년 뒤면 마흔인데, 대한민국에서 남자 나이 마흔이면 고민이 무척 많을 시기잖아요. 한 곳에만 있다 보면 심리적으로 마이너스 요소가 많지 않겠냐는 고민도 되고, 지금쯤 새로운 도전을 해보는 것도 좋겠다 싶었어요. 다만, kt 롤스터라는 시스템 안에서만 살았으니 한편으로는 두려움도 있어요.

대부분 저한테 갈 곳을 정해놓고 그만둔 게 아니냐고 하는데, 절대 그럴 수가 없죠. 그럼 선수들이나 팀한테 무척 미안한 일이니까요. 그만두고 나서 측근들한테 조언을 구하며, 앞으로의 계획을 구상하고 있어요. 어디선가 저를 필요로 한다면 연락 주시지 않을까요?

그런데 다시 생각해봐도 kt 롤스터에서 겪었던 순간 중 참 행복했던 기억이 많아요. 스타크래프트 감독 시절 두 번째 우승할 때가 가장 행복했어요. 중국 상해에서 태풍 때문에 결승전이 취소된 적이 있어요. 하필 다음 일정으로 공지된 게 제 결혼 날짜인 거예요. 회사에서는 난리 났죠.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 걸린 문제인데, 고려해달라고 요청했죠. 그래서 전날에 결승이 열려 우승까지 하고, 다음날 결혼식을 올렸거든요. 결승 진출 과정까지도 극적이어서 잊을 수가 없네요."




아마 다수의 팬이 예상하면서도 궁금했을 것이다. 슈퍼 팀이라고 화제를 모은 팀이 어째서 더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는지 말이다. 확실히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적어도 이지훈 감독은 팀을 단합시키는 데 있어서 일가견이 있는 인물이니까.

"우선 스타크래프트는 종목별 코치가 있어서 1:1 교육이 가능해요. 그런데 LoL은 개인 기량보다 선수들끼리 마음이 맞아야 하니까 그게 무척 어려워요. 포지션별로 사이가 나쁘면 밴픽부터 플레이까지 영향을 받아요. 그럴 때는 그냥 내가 책임질 테니 해보자고 해요. 그리고 실제로 패했을 때, 지도한 내 탓이니까 마음에 담아두지 말라고 하죠.

워낙 쟁쟁한 선수들이 한 곳에 모였고, 하고자 하는 의지들은 강했어요. 그런데 당장 1년 안에 하나의 팀으로 완성이 될까 하는 걱정은 했어요. 면면으로 따지면 슈퍼 팀이 맞지만, 그만큼 개성들이 뚜렷해서 서로 양보해야 할 것들도 많아 조화를 이루려면 시간이 걸리니까요. LCK가 단순히 개개인의 능력만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잖아요."


꿈의 라인업이라는 타이틀, 모두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심했다. 그래서 야간 연습까지 진행할 정도로 게을리하지 않았다. 연습 시간이 끝나도 가정이 있는 이지훈 감독과 오창종 코치는 쉽게 퇴근하지 않으면서 팀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러나 냉정한 프로의 세계이기 때문에 똑같은 노력 속에서 누군가는 패자가 되기 마련이다.

"세계 최고 수준에 있던 선수들이니까 의견을 하나로 모으기가 진짜 힘들어요. 이게 선수들 탓은 아니에요. 왜냐하면, 영입된 선수들 모두 우승을 맛본 친구들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오랜 경험이 몸에 배어서 스타일을 바꾸기 쉽지 않죠. 자신의 색을 버리는 게 상당히 어렵고, 서로의 판단이 달라서 콜 미스가 일어나기도 해요. 그래서 하나의 팀을 강조하고, 바뀌는 시간이 필요했어요.

성적은 아쉽지만, 그래도 후회가 남지는 않아요. 누가 이런 꿈의 라인업을 갖춰보겠어요. 다들 한 번씩 상상해본 조합 아닐까요? 데프트-마타 조합에 대한 로망도 있었고, 스멥과도 해보고 싶었는데 전부 한곳에 모였잖아요. 아마 후회가 남았다면 찝찝했을 거예요. 물론 이렇게 좋은 선수들로 성적이 좋지 않았으니 팬들에게는 죄송한 마음을 가지고 떠나는 거죠. 저는 딱 떠나야 할 시기를 잘 잡았다고 생각해요."


떠나야 할 시기였다고 하지만, 종목을 불문하고 이지훈 감독이 kt 롤스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컸다. '스멥'부터 '데프트', '마타' 전부 이지훈 감독이 직접 뛰어다니며 영입한 사례다. e스포츠 프로게임단 중 다수는 감독이 직접 선수와 만나 1차 협상 시간을 가지는데, 선수들이 가장 부담스러워 하지 않는 대상이 이지훈 감독이다.

"저는 선수들의 사고방식을 따라가려 노력해요. 신기한 게 종목별로 선수들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가 달라요. 선수들의 연령층이 비슷하더라도 전부 같은 세대의 게임이 아니다 보니까 눈높이를 맞추는 데 많이 노력했어요. 걸그룹의 뮤직비디오도 함께 보고, 커뮤니티 용어도 열심히 배우죠.

프로지만, 어쨌든 어리잖아요. 팀원들 간의 소통만큼, 지도자와 선수들의 관계도 정말 중요하거든요. 그래야 고민이 있을 때, 보다 편하게 저한테 먼저 말하기도 하고 저도 하나라도 더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생기니까요. 그런데 페이커는 농담이 잘 안 먹히더라고요. "상혁이 오늘 적당히 해야지"라고 하면, "저 오늘 열심히 해서 이길 거예요" 이렇게 답변이 와요. 금강불괴에요."




선수들과 소소한 에피소드, 행복했던 10년의 순간을 이야기하면서 빠르게 시간이 흘러갔다. 이제 앞으로의 10년 혹은 그 이상의 시간에 대해 이지훈 감독은 걱정보다 기대에 가깝다고 말했다. 단, 발전하는 e스포츠 속에서 프로게이머들과 팬들에게 부탁과 인사를 남겼다.

"개인적으로 프로게이머들이 무너지는 경우가 첫 번째로 여자친구, 두 번째로 차라고 생각해요. LoL에서는 다들 여자친구 사귀는 데 자유롭고, 교제하면서 잘 하는 선수가 많잖아요. 그 친구들은 성숙한 나이에 자기 앞가림을 알아서 하는 선수들이에요. 저는 보통 여자친구는 개인사로 인정해주고, 네가 잘하면 여자친구 덕이라고 말해요. 대신 잘하다 못하면 어디에서 문제점을 찾아야 하는지 본인이 깨우쳐야 할 때가 있을 거예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지금 선수들이 무척 안타까워요. 그 어느 때보다 경쟁이 심한 사회잖아요. 스타크래프트 시절이야 여러 핑계를 대고 여자친구 만나러 가는 경우가 있었어요. 개인전이기 때문에 알고도 눈감아 주고는 했죠. 그런데 LoL은 팀게임이라 연습을 절대 빠질 수가 없어요.

시즌 초에 팀끼리 모든 연습 일정을 잡아요. 얼마나 개인의 시간이 없겠어요. 아파도 약 먹고, 링거 맞아가면서 일정을 소화해야 하니 어른으로서 속상하죠. 하지만 모든 팀이 이렇게 열심히 경쟁하고도 누군가는 져요. 그럼 악플에 시달리고, 몸과 마음이 다 상처를 입어요. 프로이기 때문에 포기해야 하는 부분도 있는데, 어느 부분에서만큼은 인간적인 시선으로 봐주시면 어떨까 싶어요.

또 열심히 안 하는 팀은 없어요. 응원하는 팬 입장에서는 패하면 화가 나니까 쓴소리를 하는 게 당연해요. 그게 프로의 숙명이죠. 대신 격려의 말도 함께 해주시면 반성과 함께 더 많은 힘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저야 지금은 잠시 내려놨고, 떠나면서 많은 팬분께 위로를 받은 기분이에요.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이 따뜻한 말로 응원받았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