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스포츠는 실력과 승리가 최우선이지만 예상치 못한 깜짝 세러모니나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등 관람객들에게 경기 외적으로도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한다. 한국은 자선 야구대회에서 닭싸움으로 벤치 클리어링을 벌이기도 했고, 메이저리그 역시 루키 헤이징같은 이벤트가 있다.

지난 4일 미국 LA에서 열린 스타크래프트 'Zotac Cup 마스터즈'의 이벤트 대회 결승전에서 한국의 임홍규 선수가 선보인 일련의 퍼포먼스가 큰 화제가 되었다.

임홍규 선수는 결승전에서 중국의 '레전드' 류오시안 선수를 상대로 경기를 시작하자마자 '드론' 한마리를 죽이고 1세트를 시작했으며, 2세트에서는 발을 책상에 올려 키보드를 누르는 '발컨'을 선보였다. 마지막 세트는 왼손과 오른손을 교차해 조작하거나 의자에 길게 드러눕는 퍼포먼스도 선보였다. 결과는 임홍규 선수의 3:0 승리였다.

경기가 종료된 후 다양한 커뮤니티와 SNS에서 임홍규 선수의 퍼포먼스에 대한 갑론을박이 펼쳐졌다. '이벤트로 개최된 경기였고 현장에서 주츼즉의 제지도 없었던 만큼 퍼포먼스는 문제가 없다.'는 의견도 있고, '퍼포먼스라고는 해도 상대방에게 과도한 조롱으로 느껴질 수 있으니 스포츠맨쉽에 어긋난다.'는 반론도 있다.

사실 퍼포먼스를 한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다. 상대방보다 경기 진행이 느리니 패배할 수도 있다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프로 수준의 경기에서는 불과 몇 초의 공백이나 실수가 승패의 분수령이 되기도 한다는 걸 감안하면 굳이 퍼포먼스를 해야할 이유도 없다.

결승전도 끝났고 퍼포먼스에 대한 토론도 잠잠해졌다.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아무도 강요하거나 시킨 사람이 없는데 임홍규 선수는 왜 퍼포먼스를 시도했을까? 화제의 중심이 된 임홍규 선수의 생각이 궁금했는데, 다행히 이벤트의 주최측인 조텍(ZOTAC) 관계자를 통해 직접 만날 수 있었다.

임홍규 선수는 퍼포먼스가 스타크래프트를 즐기는 팬이자 결승전에 출전한 선수의 입장에서 스타를 흥행 시키고 싶은 마음에서 시도한 행동이었고, 상대 선수를 비난하거나 악의적인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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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성호기자 (이하 송성호) : 조텍컵(ZOTAC CUP)에 초청되어 이벤트 대회에 참여한 후 오늘 한국으로 돌아온 것으로 알고 있다. 다녀온 소감이 궁금하다.

임홍규 : 조텍에서 초청을 받아 참여할 수 있었고, 현지 관계자 분들이 필요한 부분을 꼼꼼하게 챙겨줘서 고맙게 생각한다. 국내 대회는 외국인 선수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경우가 거의 없는데, 조텍컵은 전 세계 각국에서 진행되는 글로벌 대회인 만큼 외국인 선수와 많은 교류를 할 수 있는 점이 흥미로웠다.

참가했던 선수들과 같이 게임도 했고 대회 전날에는 해외의 모 선수가 생일이어서 생일 축하 파티가 진행되기도 했다. 선수들끼리 게임하면서 서로 부족한 부분을 알려주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외국 선수들과 많이 친해졌다.

Zotac Cup 이벤트
조텍컵은 2006년 부터 시작된 대회로, 매년 다양한 게임 종목을 선정해 온라인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글로벌 게임 대회이다. 결승전은 세계 각국에서 진행되는데 이번에 진행된 '조텍컵 마스터즈'는 미국 로스엔젤레스였고, 프로 선수들을 초청하는 이벤트 쇼매치도 함께 진행되었다. 임홍규 선수는 이벤트 경기에 초청되었다.


송성호 : 퍼포먼스 이후 다양한 기사나 분석 글이 올라왔는데, 경기 현장에서 일부 의사 소통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 있다.

임홍규 : 퍼포먼스를 준비하면서 사전에 스태프에게 미리 이야기를 한 것은 맞다. 현장에서 경기 중에 퍼포먼스를 해도 되는지 확인을 했다. 다만 '발컨'이나 다른 퍼포먼스를 어떻게 해야겠다고 미리 생각했던 것은 아니고 즉흥적으로 이루어 졌다.

만약 퍼포먼스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면 화면 클로즈업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중간에 어떤 형태로든 경고나 제지를 받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벤트 매치였기 때문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송성호 : 원래 퍼포먼스를 즐기는 편인지 궁금하다. 조텍컵에서 퍼포먼스를 했던 이유도 궁금하고.

임홍규 : 경기 외적으로 퍼포먼스 자체를 즐기는 성격은 아닌데, 필요하다면 언제든 할 수 있다. 프로 선수 혹은 BJ 둘 다 남들의 앞에 서야 하는 직업이니 팬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다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스타크래프트가 게이머들의 화제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측면도 있다. 특별한 이슈가 없기 때문에 대회도 적은 편이고, 전성기처럼 화제성도 부족하다. 순수하게 실력만으로 스타를 보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는 것 같다. 실력은 이미 상향 평준화 되고 있으니 경기 외적인 이슈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퍼포먼스를 시도했다.


▲조텍컵 마스터즈 논란이후 유튜브를 통해 입장을 발표하기도 했다


송성호 : 경기 이후의 입장 발표도 그렇고, 퍼포먼스에 대한 나름의 신념도 있는 것 같은데 개인적인 생각이 궁금하다.

임홍규 : 개인적으로 UFC를 자주보는 편인데 물론 실력이 중요하지만, 다양한 퍼포먼스를 펼치는 선수들을 보면 멋있다는 생각을 한다. 특히 코너 맥그리거의 열혈 팬인데 그는 멋진 실력과 함께 다양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팬들을 즐겁게 한다.

아무리 이벤트 경기라도 지면 즐거울 리 없다. 퍼포먼스는 나 역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퍼포먼스가 과하다는 팬 분들의 의견은 내가 기꺼이 감당해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향후에도 퍼포먼스를 허용하는 대회가 있다면 팬 분들이 즐거울 수 있는 퍼포먼스를 할 생각이다.


송성호 : 임홍규 선수의 평소 성격은 어떤지 궁금하다. 사실 퍼포먼스를 하고 싶다고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행동을 부끄럽게 생각하거나 과도한 관심이 두려우면 못하니까.

임홍규 : 좋아하는 편이다. 친구들과 있으면 행동이 크고 유쾌한 편이고 관심을 받는 것도 좋아한다. 그래서 지금 BJ로도 활동을 할 수 있는 것 같은데...(웃음). 프로 시절에는 퍼포먼스를 할 기회가 별로 없었고, 다만 1군 선수들과 함께 퍼포먼스를 위해 무대에 올라간 적은 있다. 2군 선수로는 처음 아닐까.


송성호 : 상대방이 비슷한 퍼포먼스를 시도한다면 어떨 것 같은지 궁금하다.

임홍규 : 상관없다. 즐거움을 준다는 측면에서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나라면 오히려 오기가 생겨서 더욱 열심히 경기를 할 것 같다. 실력에 퍼포먼스까지 더해서 되갚아주려고 하지 않을까?


송성호 : 경기 이후에 류오시안 선수와 연락은 했는지 궁금하다.

임홍규 : 퍼포먼스 이후 논란에 대해 알게 되었고, 불편함을 느끼는 팬들도 적지 않다고 생각해서 개인적으로 사과를 하려고 했다. 그런데 류오시안 선수가 사과를 거절했고 이후 SNS에도 글을 올렸더라. 이후 특별히 연락은 받은 적 없다.


▲ 사과를 거절하고, SNS에서 임홍규 선수를 비판한 류오시안 선수


송성호 : '조텍컵' 이후 팬들의 반응은 어땟나?

임홍규 : 팬 분들의 반응은 예상했던 것보다 좋았다. 유튜브 구독자도 만명 이상 늘었다. 물론 부정적인 반응도 있었고, 특히 중국에서 일부 팬이 욕설로 가득한(?)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퍼포먼스가 과하다는 의견도 맞다. 다만 이건 미국에서 진행된 이벤트 경기였고 로마에 가면 로마 법을 따르라는 말처럼 미국이라면 충분히 용인될 수 있는 퍼포먼스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경기 중에 캐스터들도 웃으면서 받아들였고 댓글 역시 호의적이다.

경기 이후에 현장의 분위기도 굉장히 좋았다. 더 해보라는 의견도 많았고. 게이밍 기어 전문업체인 커세어는 이번 경기를 패러디해서 트위터에 "K95 플래티넘 키보드를 쓰면 다른 사람들보다 '한 발' 더 앞서나갈 수 있습니다"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다만 미국이 아닌 한국에서 진행된 이벤트 경기였다면 한국의 전반적인 정서를 생각해서 적절히 조절했을 것 같기는 하다.


▲ 게이밍기어 전문업체인 커세어는 경기 이후 '발컨' 퍼포먼스를 패러디 하기도 했다.


송성호 : 오늘 한국으로 복귀했는데 향후 계획을 알려달라.

임홍규 : 오랫동안 스타 개인 방송을 했고, 어느새 6년 차에 접어 들었다. 최근에는 대회에 참가하면서 방송을 많이 쉬었는데, 앞으로 더 열심히 개인방송을 이어갈 계획이다. 앞으로 스타크래프트 대회가 좀 더 많이 개최되었으면 하고, 또 내가 흥행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기꺼이 노력할 예정이다.

송성호 : 분위기를 바꿔서 BJ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재미와 실력 두마리 토끼를 다잡은 BJ라는 평이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임홍규 : 개인적으로 꾸준한 상승세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스타를 보는 팬 분들도 많이 줄어서 조금 더 열심히 준비하고 노력해야 할 것 같다. 실력은, 이영호 선수 빼고는 다들 비슷한 것 같다. 이영호 선수는 여전히 이기기 힘들다.

다양한 컨텐츠를 위해 배틀그라운드같은 최신 게임도 해봤는데 FPS 게임은 안맞는 것 같다. 최근 이슈가 되었던 항아리 게임(Getting over it)은 조회수도 잘 나오고 팬 분들의 평도 좋았지만 역시 좀 안 맞는다. 다양한 게임들을 해보겠지만, 앞으로도 스타를 열심히 하는게.. (웃음)


송성호 : 개인적인 바람이나 목표가 있다면?

임홍규 : 조텍컵같이 다양한 선수나 게이머가 참여할 수 있는 대회와 이벤트 전이 좀 더 늘어났으면 한다. 팬 분들도 경기를 보는 재미가 있고, 또 나도 경기력은 물론 퍼포먼스까지 즐거움을 드릴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

이벤트 대회에서 이영호 선수처럼 뛰어난 실력의 선수들을 만나서 퍼포먼스를 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물론 경기를 망치면 안되니까 누가 봐도 멋진 경기라고 할 만큼 충분한 실력을 갖춘 상태로. 욕 안 먹으려면 더 열심히 연습해야 겠다(웃음).


송성호 :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말해달라.

임홍규 : 당장 흥행하는 게임들에 대한 관심도 좋지만, 스타처럼 꾸준한 팬들이 있는 대회가 열릴 수 있도록 다양한 관심을 가져 주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퍼포먼스 자체를 너무 부정적으로만 보시지 말고, 흥행을 위한 노력이라는 측면도 함께 바라봐 주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