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이먼 드레이크 스틸미디어 매니저

한 때 VR 게임은 SF 속에서나 등장하던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오래 전부터 개발자들은 이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고, 그 노력이 점차 결실을 맺어가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연구소에서만 사용이 가능할 정도로 거대한 기기가 필요했지만, 현재 VR 기기는 가정에서도 사용 가능할 정도로 소형화 되고 상용화됐습니다. 또한 과거에 시도됐지만 무산된 VR 아케이드, 테마파크도 하나둘 생겨나고 있죠.

국내에서도 이미 VR 테마파크와 아케이드가 들어왔으며, 오큘러스나 HTC Vive, PS VR를 구매하고 관심을 보이는 유저층도 존재합니다. 아울러 VR 게임을 개발하는 개발자들을 게임쇼 등에서 만나볼 수 있기도 하죠. 한 편으로는 VR 게임의 현 상황에 대해서 회의감을 표하기도 합니다. VR 게임이 아직까지 소비자의 니즈에 부합하지 못하고, 기술적으로도 더 발전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현재 출시됐거나 출시되는 콘텐츠의 질이나 양에 대해서도 기존의 게임에 비해서 부족하다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해외에서는 VR 게임의 현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으며, 어떤 전망을 갖고 있을까요? 영국의 게임미디어인 스틸미디어에서 VR 관련 분야를 담당하고 있는 사이먼 드레이크 매니저는 이번 KGC 2017에서 VR의 역사와 현 상황에 대해서 말하고자 합니다.


※본 강연 기사는 내용 전달 및 편집의 용이성을 위해 강연자의 시점에서 서술했습니다.




VR 시장에 대해서 말하자면, 올라갔다 내려왔다 성쇠를 반복하는 양상(Ebb and Flow)이라고 본다. 또 VR 게임에 대한 개념 중 많은 부분은 아직까지 SF에서 나올 법한 것, 혹은 꿈처럼 여기기도 한다. 그만큼 상상했던 것들이 완전히 구현되진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지금은 사람들은 어느 사이에 꿈이라고 여겼던 부분을 하나하나 현실처럼 구현해나갔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단계별로 말하자면, 처음에 VR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추구해왔던 꿈이었다. 이 개념을 통해서 여러 가지 영감을 얻어나가면서 시도를 거쳤으며, 그것들을 실제로 구현하는 과정을 거쳤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의 VR을 정의하자면, 전자 장비를 통해서 전자 기기로 구현한 또 다른 세계에 전적으로 몰입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한 관점에서 VR을 볼 때, VR의 역사는 생각보다 더 오래됐다.

이러한 의미에서 VR을 조명했을 때 VR의 시작은 50년대부터라고 할 수 있다. 센서라마(Sensorama)라고 불리는 장비가 이 당시에 연구가 됐는데. 이 장비에서 사람들의 몰입을 위해서 구현하고자 하는 효과들은 현대 VR에서도 시도되고 있는 방식이었다. 센서라마라는 이 장비는 3면에서 나오는 화면을 통해서 시각 전체에 이미지를 구현하고, 스테레오 사운드를 통해서 청각적 몰입감을 줬으며, 의자의 진동과 상자 내에 삽입된 기기를 통해서 촉각 및 후각적인 몰입감을 주고자 했다.

방법 자체는 간단했다. 실제로 상자 안에는 해당 장면에 맞는 냄새를 풍길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어있었으며, 영상 타이밍에 맞춰서 그 냄새를 흘려보내는 식이었다. 이렇게 단순한 기계였지만, 크기와 관리 문제 때문에 제한된 장소에만 설치가 가능했다. 따라서 이 기계는 상용화되지 못하고 일부 장소에만 설치됐으며, 곧 사라지게 되었다. 다만 가상현실의 개념에 대해서 이미 이전부터 실현하고자 시도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 50년대에 연구가 진행된 '센서라마'

60년대에는 다모클레스의 검이라고 불리는,천장에 매달린 형태의 HMD가 등장했다. 컴퓨터에 연결되어있다는 점, 얼굴 전체를 파묻는 것이 아니라 착용한다는 점 등 구조적인 측면에서 현대의 HMD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그렇지만 비용이 굉장히 비싸서 상용화가 될 수 없었으며, 가장 큰 문제는 기술적 한계로 인해 소형화가 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천장에 고정한 채 케이블 및 다양한 기재와 연결해야만 했으며, 자연히 무게도 무거웠기 때문에 안전의 문제도 제기되곤 했다.

이와 같이 VR의 개념은 이미 50, 60년대부터 있었으며, 이를 구현하기 위한 시도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태초부터 한계가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과학계, 기술계 외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점이다. 본격적인 투자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산업화, 즉 소비자들에게 관심을 끌어야 했는데 소비자들에게 아직 VR은 생소한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자연히 산업계에서는 관심이 없었다. 다만 당시에 연구자들 중에 혁신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있었으며, 그들은 지속적으로 VR에 대해서 연구를 해왔다.

그 관심의 결실이 70년대에 또 다른 형태로 나오게 된다. 70년대에 등장한 어스펜 무비 맵이 그 사례다. MIT에서 만든 이 VR 콘텐츠는 군사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진 시범작으로, 어스펜 지역을 배경으로 지금의 구글 로드뷰를 적용했다고 보는 게 이해를 돕기에 편할 것이다. 해당 지역의 지도에서 일부 지역을 클로즈업하면, 마치 그곳에서 실제로 길거리를 보는 것처럼 모니터에 디스플레이되는 형식이었기 때문이다. 어스펜 무비 맵은 어느 정도 성과를 보였지만, 그 기술을 모든 지역에 적용하기에는 당시에 기술적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일부 지역에만 시범적으로 적용됐다.


80년대로 건너왔을 때는 아타리에서 VR 게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아타리는 VR이 아케이드의 미래라고 생각했으며, 그에 따라 다양한 VR 아케이드 기기에 대해서 기획했다. 앞에서 보았던 센서라마와 유사하게, 머리를 아케이드 기기의 홈에 들이밀었을 때 눈앞에 마치 게임기 속에서 실제 게임 세계가 펼쳐지는 것 같은 착각을 느끼도록 하는 기계를 기획했던 것이다. 이러한 원대한 기획을 실현하기 위해 82년 아타리는 VR 연구소를 만들었지만, 결국 아케이드 시장이 침체하고 아타리 역시도 부진하게 되면서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80년대 초까지의 VR을 되짚어보면 가정용보다는 상업용 등 다른 용도에 더 관심이 많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이 시기에도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기계 자체의 비용 문제도 있고, 기술적인 한계도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 뒤로 가정용으로 상용화하기 위한 VR 기기에 대해서 연구는 이어졌다. 마텔 사의 자론 라니어가 84년에 만든 VR 기기는 현대의 VR 기기와 비교했을 때 구조상 많은 부분에서 유사했다. HMD뿐만 아니라 플레이어의 움직임을 포착하기 위해서 현재의 모션캡처용 옷과 유사한 장비를 구현해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옷에 부착된 센서들을 통해서 플레이어의 움직임을 포착하고, 컴퓨터에 전송해서 반영하는 상호작용 과정까지 현대의 모션캡처 장비와 유사한 메커니즘을 보여준 장비였다.

다만 이 장비를 개발한 마텔 측도 이를 상업화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가격도 비싼 데다가, 이러한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콘텐츠가 없었기 때문이다. 당장에 80년대 초중반의 게임들을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마텔 사는 그 뒤로도 VR 및 다양한 분야에 시도를 했지만, 결국 99년에 파산하게 됐다.


상용화를 위해 등장한 또 다른 장비는 파워글로브라 일컬어지는 장비였다. AGE 사가 디자인하고 마텔 사에서 제작했으며, 닌텐도에서 라이센스를 준 이 장비는 75달러로 다른 장비에 비해 비교적 저렴했으며, 손에 끼워서 컨트롤한다는 독특한 컨셉을 보여줬다. 슈퍼 패미콤에 대응할 수 있었으며, 손으로 조작해서 마치 게임 내의 사물을 실제로 쥐거나 하는 등의 액션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소비자들에게 어필했다. 이 역시도 당시 패미콤에 출시됐던 게임 중 호응되는 게임이 없었기 때문에 도태됐다. 당시 패미콤에서 유행했던 게임인 마리오 등을 떠올리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다만 어느 정도 가격 인하를 이루어냈다는 점에서 앞으로의 VR의 가능성에 대해서 보다 낙관적으로 전망하게 했다.


뒤이어 찾아온 90년대는, 게임의 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는 다양한 콘솔들이 속속 등장했으며, 게임에 관련된 기술이 폭발적으로 발전하게 된 시기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차세대 게임 양식인 가상현실 게임에 대해서 업계에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VR 시장의 가능성에 대해서 재조명하기 시작했고, VR 게임이 곧 가능한 현실일 것이라고 여기게 됐다.

▲ 가정용 콘솔에서 큰 진전을 보였던 90년대

그때 출시된 게임보이, 세가 제네시스, 슈퍼 패미콤 등의 성공은 게임을 보다 많은 사람이 즐기는 매체가 되게 했으며, 게임 산업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게 한 것은 분명했다. 그렇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VR이 그때부터 현실이 될 것이라고 조명하는 것은 조금은 섣부른 생각이긴 했다.

어찌 됐든 당시 세가에서는 1993년에 세가 VR을 만들어냈다. 메가 드라이브가 장착된 이 세가 VR은 CES 93에서 공개됐으며, 이후 200달러 가격으로 출시됐다. 그렇지만 94년에 시장에서 모습을 감춘 비운의 기계가 되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많이 언급됐던 문제는 안전과 건강상의 유해 문제였다. 소비자들은 어지러움증을 호소했으며, 시력 저하 등의 문제를 제기했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200달러의 비싼 비용에 비해 퀄리티도 좋지 못해 결국 세가 VR은 시장에서 사라지게 됐다.

이후 세가는 세가 새턴에 적용할 후속 VR 기기를 만들지만 이마저도 사라졌으며, 세가 VR-1의 경우 아케이드 형으로 제작됐지만 이 또한 사라지게 됐다.

닌텐도에서도 당시 게임 디자이너였던 요코이 군페이가 버추얼 보이라는 VR 기기를 기획했다. 179.95달러의 이 기기는 1995년과 1996년에 일본과 미국에서만 판매되고, 그 뒤로 자취를 감춘 기기가 됐다. 당시 야마우치 히로시 사장은 슈퍼 테크놀로지를 보여주는 시도였다고 평가를 했지만, 게임보이가 99달러였던 것을 고려했을 때 소비자들에게 굉장히 비싼 기기로 인식되면서 판매가 부진했다. 아울러 단 22개의 게임만이 플레이 가능했다는 단점도 있었다.


IBM 연구소에서는 조나단 월든 등이 아케이드용 VR인 버추얼리티 그룹이라는 것을 만들었지만, 당시 게임업계는 아케이드보다는 가정용 게임으로 넘어가는 과정이었다. 따라서 6만 5천 달러의 생소한 기기를 섣불리 구매하려는 업체는 적었다. 97년에 프로젝트 엘리시움이라는 것으로 다시 시도했으며, 기기를 추가로 팔려고 했지만 전세계적으로 5만 5천 대 가량 판매하는 것에 그쳤다.


위와 같은 실패의 요인을 분석하자면, 당시 게임기 가격을 고려했을 때 굉장히 비싼 가격을 책정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아울러 소비자들을 고려하지 않은 개발 과정도 문제였다. 게임을 즐기기 위해서는 소프트웨어가 필요한데, 소프트웨어를 갖추지 않고 하드웨어를 출시했기 때문에 소비자가 활용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울러 당시의 게임이, VR을 구현할 수 있는 게임 수준이 아니기도 했다.

또한 업계에서도 기술 보호를 중시한 나머지, 다른 업계와의 협력 및 연계도 부족한 상황이었다. 또한 90년대는 가정용 게임기가 점차 널리 보급되면서 게임과몰입 등의 부작용에 대해서 조명되기 시작한 시점이기도 했다. 따라서 소비자들에게 새로운 게임에 대해서 광고하기가 어려웠다. 특히나 기술적으로 부족해서 건강 문제를 유발할 수 있는 기기를 어필한다는 것은 더욱 더 어려운 상황이었다. 따라서 업계 차원에서 긍정적으로 보고 본격적인 시도를 해보았지만 준비가 안 됐다, 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 셈이었다.

다만 2000년대 들어오면서 이러한 상황에는 변화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특히나 콘솔 등 기기의 성능에 있어서 비약적인 발전이 있었다. 특히나 이때부터 시작된 플레이스테이션의 발전은 지금까지도 진행중이기도 하다. 콘솔의 가격이 드라마틱하게 떨어지는 일은 없었지만, 비슷한 가격대에서 보여주는 퍼포먼스의 질은 이전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발전했다.

이 상황에서 린든 랩이라는 회사에서 새로 등장한 기기에 맞는 VR 게임을 시도했지만, 당시 콘솔이나 기계에 맞는 VR 하드웨어가 구축되지 않았다. VR 게임에 대해서 이미 실패를 겪었던 업계에서 하드웨어에 대한 개발이 미진했기 때문이다.

▲ 2000년대 린든랩은 야심찬 도전을 했지만 당시엔 VR 하드웨어가 뒷받침되지 않았다

그런 것이 바뀌게 된 것은 2010년대부터였다. 로니 아보비츠가 설립한 매직립이라는 회사에 구글과 알리바바가 투자했으며, 루카스필름과도 협력 관계를 맺었다. 이 회사는 HMD와 광학 디스플레이에 집중했지만, 그 과정에 대해서는 협력사와 비밀스럽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크게 밝혀진 바는 없다. 다만 거대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VR에 투자하기 시작한 시점을 이때부터로 보고 있다.

그 뒤를 이어 하이피델리티가 240만 달러를 구글과 트루 벤처스로부터 투자 유치를 받았으며, 현재 VR의 한 축을 맡고 있는 오큘러스가 2012년 설립되고 킥 스타터 모금 등 각지에서 투자를 받기 시작했다.
그 뒤 2016년에 오큘러스 리프트가 완성됐으며, 최초 시가 600달러에 판매되면서 현재의 VR 시장이 시작됐다고 할 수 있겠다. 오큘러스 리프트는 기존에 출시됐던 VR 기기보다 더 높은 해상도와 주파수로 보다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디스플레이에 담아냈으며, 가격도 주기적으로 낮추면서 소비자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이후 페이스북에 매각된 뒤로 연계된 프로젝트들도 진행 중에 있다.

VR의 고질적인 문제인 가격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스마트폰용 VR인 기어 VR도 제작됐다. 15년 11월 17일부터 판매됐으며, 가격도 그때까지 출시된 VR 기기 중에서 저렴한 편이었으며 마인크래프트 등 소위 잘나가는 게임과도 연동이 되는 등, 괜찮은 조건을 갖고 있었다. 다만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플랫폼의 제약이 크다는 점이었다. 그래도 500만 대를 파는 등 성과를 올렸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었다.

HTC Vive도 빼놓을 수 없는데, HTC Vive의 경우는 회사 차원에서 Vive X 엑셀러레이터라는 VR 콘텐츠 제작사 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함으로써 콘텐츠 확보 및 파트너십을 구축하고자 했다. 또한 스팀 VR과 협력해 다양한 VR 게임을 공급받는 데에도 성과를 올렸다.

프로젝트 모피어스로 처음 알려졌던 PS VR의 경우, 현재까지 200만 대 가량 판매됐으며 PS VR용 게임은 전부 합쳐서 1200만 장 이상이 팔리면서 현재 고가 VR 기기 시장에서 제일 판매량이 높은 기기로 꼽을 수 있다.

그 외에도 안드로이드 기반 기기를 위한 구글 데이드림 등 다양한 VR 헤드셋이 최근 출시되고 있는데, 이러한 것들은 VR 시장에 대한 관심을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라고 할 수 있다. 다만 현재 예상으로 2020년까지 VR 시장 규모는 170억 달러 규모가 될 것이라고 보고 있는데, 이는 현재까지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간의 불균형 문제가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울러 개발자들은 VR에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투자가 최근 들어서 줄어들고 있는 추세인 것도 이렇게 전망하는 원인 중에 하나다.

▲ 시중에 잘 알려진 VR 기기 외에도 다양한 VR 기기들이 출시되고 있다

이 시점에서 VR 시장이 활성화되기 위해 고려해야 될 문제를 꼽자면, 가격과 장비, 공간, 접근성의 문제가 있다. 가격의 경우는 주기적으로 줄고 있기 때문에 시간의 문제겠지만, 장비와 공간의 문제는 아직 획기적인 해결책은 등장하지 않았다. 제한된 공간 속에서 무한한 가상세계, 혹은 더 큰 가상세계 속을 다니는 것을 어떤 식으로 표현할 것인가? 사소할 수 있지만, HMD나 다른 장비들을 착용했을 때 종종 케이블이 문제가 되기도 한다.

또 일각에서 문제 삼는 것은 사회와의 단절 문제다. 게임 자체가 사회와 단절되어버린다는 인식이 일부 있기도 한데, VR 게임은 그런 오해를 받기가 더더욱 쉬운 구성을 갖춘 상황이다. 또 다른 현실에 몰입하기 위해 현실의 감각을 일부 차단하는 셈이고, 이런 것들이 일부에서는 사회와 단절될 우려를 표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시장의 상황에 대해서 언급하자면 성장하고 있다고는 말할 수 있지만, 무언가 폭발적인 성장을 이룩하기에는 뒷받침될 것들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개발자들의 관심은 굉장히 크지만, 여전히 하드웨어나 기술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다만 일반 소비자들이 생각지 못했던 분야에서 다른 식의 성장이 일어나고 있다. 8, 90년대에 시도했던 아케이드형 VR이 성과를 올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VR 기기를 구매하고자 하지 않는 소비자층도, 아케이드형 VR이나 테마파크형 VR에는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보다 본격적인 형태의 아케이드형 VR과 테마파크형 VR이 생기고 있다.

광고에서도 VR이 나오는 등 일부 부정적인 소비자들의 인식을 바꾸려는 시도도 있으며, 그간 언급됐던 사회와의 단절이나 공간 활용 문제, 장비 문제 등을 해소하기 위한 올인원 HMD 등이 나오고 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또 다른 변화를 예고한다고 본다.

다만 한 가지 명심해야 할 부분은, VR 분야는 예로부터 과열과 과신이 잦았다는 점이다. 열성적으로 도전한다는 의미도 있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볼 여지가 있긴 하지만, 너무 지나친 나머지 시장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해왔다는 의미라고 볼 수 있겠다. 실제로 이전 VR 기기의 실패를 살펴보면,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지 않고 무모한 도전을 반복한 것이 실패의 원인이었다.

▲ 그 외에도 다양한 문제 요인은 존재한다

그러지 않기 위해 명심할 것은, VR이 과거에도 이미 있던 것이라는 점이다. 즉 완벽히 새로운 경험, 새로운 기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완벽히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과신이나, 그런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 무모할 정도로 기술에만 집착하는 것은 소비자들에게 외면 받는 지름길이다. 이미 과거의 실패에서 이런 점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가격 문제나 상용성 등, 소비자들이 고려하는 요소들에 대해서 보다 현실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VR 시장이 어떤 식으로 성장하게 될지는 확신을 할 수 없다. 다만 개인적으로 게임 업계가 어떠한 특이점을 계기로 폭발적으로 성장해온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VR도 이와 유사한 과정을 거치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측한다. 마치 90년대 가정용 게임기의 붐이 일어났던 것이나, 모바일 게임의 급격한 성장처럼 VR 게임 시장도 어떤 계기를 통해 획기적인 성장을 이룰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 강연자와 인터뷰


Q. 스틸미디어가 어떤 매체인지 소개 부탁한다. 아울러 소개에서 매니저라고 했는데, 주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묻고 싶다.

드레이크: 현재 스틸미디어에서 개발자 관련 매니지먼트를 주로 하고 있으며, 또한 VR 분야에 대해서 이것저것 담당하고 있다. 그 중에서 특히 스틸미디어에서 주관하는 VR/MR/AR 산업 컨퍼런스인 XR 커넥츠에 관련된 업무를 주로 하고 있다. 또한 회사에서 인디 게임 행사 및 개발자 지원 등을 하고 있는데, 이쪽 분야에 대해서도 관여하고 있다.

스틸미디어는 다양한 게임 관련 웹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는 회사다. 우리 회사가 운영하는 사이트 중 가장 유명한 것은 포켓게이머(http://www.pocketgamer.co.uk/)로, 이 사이트는 주로 모바일 게임 쪽을 다루고 있다. 그렇지만 그 외에도 비디오 게임, VR 등 다양한 게임을 소개하는 또 다른 사이트들도 있다. 아울러 게임과 연관한 BTB, BTC 사이트들도 관리하고 있으며, 게임 관련 이벤트를 소개하고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Q. 보통 VR의 시초라고 하면 '다모클레스의 검'을 많이 언급하는데, 센서라마라는 기기를 언급한 관점은 흥미롭다. 보통은 60년대 초를 VR의 태동기로 보는데, 그 관점과 다르게 언급한 것도 인상 깊고.

드레이크: 사실 센서라마 자체도 60년대 초에 나오긴 했지만, 연구 자체는 50년대에 시작했기 때문에 50년대로 정의했다. 센서라마의 그 기술은 사실 컴퓨터에 연결하는 지금의 VR과는 다르게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VR에서 요구하는 '몰입'을 위해서 사용된 기술과 그것이 적용되는 방식은 현재의 VR 기술과 유사한 점이 많다.

기계가 구현하는 이미지나 세계에 몰입한다, 이런 과정이 가상현실이라고 보자.또 현재 VR의 경우도, 기계 속에서 재생되는 시각 이미지에 몰입하고, 영상에 맞춰서 각종 감각에 자극이 오면서 그 이미지가 마치 실제로 영향을 미친다고 여기지 않는가? 그런 점에서 보자면, 비록 방식은 구식이고 약간 다르긴 하지만, 이런 개념을 실현하려고 했던 센서라마도 VR 기기의 시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Q. VR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조심스레 전망하기도 했는데, 일각에서 VR 게임은 특성상 콘텐츠의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드레이크: 현재 VR 게임으로서는 확실히 그런 면이 있다. 무엇보다 시점에서 제약이 크다. 유저가 직접 가상현실을 체험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1인칭의 콘텐츠가 많다. 그러다보니 FPS 등 1인칭으로 구현하기 쉬운 장르에 편중되는 느낌이기도 하다. 다양한 시도를 하기 어렵다고 해야 할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개발자들이 해결할 문제이기 때문에 크게 언급하긴 그렇지만, 좀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고착화된 시도 외에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이건 사견이긴 하다.


Q. 그런 의미에서 아동을 위한 캐주얼 VR 등, 기존에 시도하지 않았던 영역에 대해서 도전하는 개발자들도 있다. 이에 대한 어떻게 생각하는가?

드레이크: 확실히 블루오션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현재 VR 콘텐츠를 보면, 어느 정도 성장한 게이머를 위한 콘텐츠가 많은 상황이고, 아이들은 신기한 경험에 더 몰입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다만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우선 가격의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아동을 위해 구매하기에 하드웨어는 아직까지 비싸다. 또한 부모들이 그러한 기기들을 사줄까? 하는 문제도 있다.

아울러 부모들이 어린아이들이 게임을 하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사회와 단절되는 문제에 대해서 우려가 심할 것 같다.


Q. 강연에서도 그렇고 유달리 '사회와 단절'이라는 부분에 대해서 포커스를 놓는 것 같다. 영국에서는 게임과 관련된 가장 큰 문제로 사회와 단절을 꼽고 있는지 궁금하다.

드레이크: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한국과 영국이 게임이라는 단어에서 서로 연상하는 것이 다르다는 점을 먼저 말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PC 게임, 온라인 게임이 굉장히 강세다. 그렇지 않은가?


Q. 그렇다.

드레이크: 그래서 게임하면 온라인으로 접속해서 즐기는 그런 게임을 많이 떠올릴 것이다. 그렇다고 친다면 컴퓨터 앞에 앉아서 채팅하면서 게임하는 그런 걸 연상할 것이고......즉 어쨌든 남과의 상호 소통하는 과정을 어쨌든 상상하고 있기 때문에 완전한 단절이라고 보긴 어렵지 않은가?

반면 영국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콘솔이 강세다. 물론 PC 게임을 즐기는 유저는 있지만, 게임을 안 하거나 잘 접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게임'하면 보통은 콘솔 게임을 먼저 떠올린다. 그리고 콘솔 게임하면 아무래도 집에서 혼자 하는 것을 떠올리지 않는가. 종종 친구를 불러서 같이 하기도 하지만, 보통은 TV에 연결해서 혼자 즐기는 이미지가 있다. 즉 여기서 사회와 단절이란 아예 남과 소통하지 않은 채, 완전히 단절되어버린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가정용 게임기가 붐이었던 90년대에 게임에 몰입해서 사회와 단절해버린 여러 사례들이 있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게임하면 혼자 동떨어져서 즐긴다는 인식이 아직 기성세대에 일부 남아있기도 하고, 또 그런 문제에 대한 우려도 기성세대에서 어느 정도 있는 편이다. 적어도 내가 취재해온 것들을 돌이켜보면 그런 우려를 표해온 사람이 많았다.


Q. 즉 멀티플레이 등의 개념에 대해서 생소하게 느낀다는 것인가?

드레이크: 게임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에 한정되어있긴 하지만, 어쨌든 그렇다. 게임을 즐기는 사람은 콘솔도 멀티플레이가 지원되고 있다는 걸 당연히 알고 있지만, 관심 없는 사람이면 아직도 콘솔이 멀티플레이를 지원하는 것을 모르고 있기도 하다. 심한 경우에는 아직도 90년대 콘솔 게임을 연상하는 사람도 있다.


Q. 유럽에도 e스포츠 선수들도 있고, 리그도 있는 상황인데 그런 말을 들으니 왠지 생소하다.

드레이크: 어디까지나 게임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게이머를 바라볼 때 주로 갖는 편견이나 인식 등을 이야기한 것이랄까. 이전에 비해 게임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어도, 부정적인 사람들은 쉽게 인식을 바꾸진 않는다.


Q. 강연에서도 고전에 대해서 굉장히 많이 설명했던 것이 떠오른다. 그만큼 영국에서 고전 게임들의 영향이 큰 것 같다.

드레이크: 확실히 그렇다. 비단 영국뿐만 아니라 유럽, 북미도 고전 게임들에 대한 향수라고 할까, 그런 것이 아직도 유저들 사이에 남아있는 편이다. 실제로 이런 것들이 영화 등에서 묘사되고 있고, 게이머들이나 개발자들을 만나면서 그런 사람들이 아직 꽤 많이 남아 있다고 느낀다. 특히 이런저런 행사를 준비하면서 인디 게임 관련자들과 만나는데, 그런 사람들은 확실히 더한 편이기도 하고.


Q. 단절 문제가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최근 VR 게임 중에도 멀티플레이 기반의 VR 게임들이 시도되고 있다. 이런 게임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는가?

드레이크: 기술적인 문제 등을 차치하고 본다면 가능성은 높게 친다. 특히나 VR에 대해서 부정적인 인식을 걷어내는 데에 도움이 클 것 같다.

가정용 VR에 대해서 영국의 기성 세대들이 크게 우려하는 부분은, 아이들이 사회에서 단절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완전히 현실에서 단절되지 않을까 하는 부분이다. 그렇지만 같이 하는 VR 게임이라고 하면, 적어도 누군가와 연결고리는 있는 것 아닌가. 완전히 단절되어 혼자가 되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실제로 VR 게임을 광고할 때 누군가와 같이 즐기는 모습을 종종 포착해서 보여주는데, 이런 광고가 던지는 메시지도 기성 세대가 갖고 있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조금 이해하기가 어렵겠지만, 사실 게임에 대한 인식은 사람이나 국가별로 천차만별이라는 점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적어도 내가 만나본 사람들 가운데엔 그런 인식이 강한 사람이 꽤 있었다.


Q. 영국의 VR 시장은 그렇다면 어느 정도라고 보고 있는가?

드레이크: 다른 곳에 비해 소비자는 비교적 적다고 본다. 콘솔 VR의 경우라면 어느 정도 유저층이 있지만, PC VR의 경우는 다르다. 일단 게임을 위해 고사양 PC를 구매하고자 하는 유저의 비중이 아직은 콘솔 유저에 비해 적기 때문이다. PC VR은 필연적으로 고사양 PC를 요구하게 되는데, 그 수준을 맞출 유저층이 점차 늘고는 있지만 크지는 않다고 여기고 있다.

개인적인 견해지만, 지금 보기에 VR 시장이 큰 곳을 중국, 미국, 일본, 그리고 한국이라고 보고 있다. 한국은 특히 PC VR쪽에서 잠재력이 있다고 보고 있다. 일단 고사양 PC에 대한 관심이 높을 것 아닌가. 적어도 PC VR을 구현할 수 있는 여건 자체를 마련하기 쉽다는 점을 높게 보고 있다.


Q. VR 시장을 부스팅하기 위해서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있다. 바이브 X 등이 그 사례인데, 그런 것들이 영국의 게임 업계에도 영향을 주고 있는가?

드레이크: 실제로 인디 게임 개발사에서 많이 VR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기술적인 부분에서 소모되는 비용이 적어지다 보니, 아무래도 도전하기가 쉬워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XR 커넥츠에 참가하는 회사들도 많아지고 있고, 그에 따라서 행사 규모도 커지고 있다. 그만큼 일이 많아지고 있지만(웃음).

다만 이런 투자 프로그램이 과열을 불러올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든다. 실제로 참가한 인디 스튜디오에서 투자를 받기 위해서 무언가 부풀려서 내놓는 것들도 종종 보았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는 비단 VR뿐만의 문제는 아니긴 하지만, VR은 아무래도 신기술이다보니 보다 객관적으로 보기가 어렵다는 점에서 문제가 더욱 많이 발생하는 것 같다.


Q. 마지막으로 영국의 게임계에 대한 소견을 듣고 싶다.

드레이크: 영국의 게임 유저에 대해서 설명하자면, 현재 콘솔과 모바일 게임 유저가 주류라고 보고 있다. PC 게임 유저도 지속적으로 늘고 있고, 전통이 있는 PC 게임 제작사들이 있긴 하지만 전통적으로 유저들은 주로 콘솔 게임을 즐겨왔다. 최근에는 세계적인 추세가 모바일 게임 유저가 급속하게 늘고 있는 추세인데, 영국도 이 흐름에 맞춰가고 있다고 본다.

한 가지 더, 영국에는 꽤 전통 있는 게임사, 그리고 상당히 많은 인디 게임사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특히나 인디 게임 행사는 다른 곳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편이다. 우리가 진행하는 빅 인디 피치(the Big Indie Pitch)도 그 행사들 중 하나인데, 다른 인디 게임 행사와 다른 점을 어필하기 위해서 계속 노력해야 해서 종종 힘들다(웃음).

VR 게임 시장에 대해서 언급하자면 VR 게임 유저의 규모는 비교적 작은 편이다. 하지만 VR 게임에 도전하는 인디 게임사들은 많고, 이런 업체들이 XR 커넥츠 등 다양한 VR 행사에서 자신들의 게임을 선보이고 있다. 언젠가 이런 것들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정식으로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