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뭐하고 놀았지?"

이맘 때면 종종 생각나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시점이다보니 종종 자신이 한 해 동안 무엇을 했나 되돌이켜보게 되고, 그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저 말일 겁니다. 그 중에서 게이머들이 다음으로 생각해보게 되는 말은 바로 "올해 무슨 게임하고 놀았더라?" 일 겁니다.

기자들도 올해 있던 게임이나 업계 이슈들을 정리하다보면, 종종 자신이 무슨 게임을 했나 되짚어 보기도 합니다. 그리고는 그 게임들을 언급하면서 공유하기도 하죠.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올해에도 유명한 타이틀도 제법 나왔고, 화제가 된 게임도 나오다보니 으레 겹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조금씩 이야기를 더 하고 보니 기자들 모두 재미있게 즐긴 타이틀이 제각각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온 타이틀 중에는 출시된 지 꽤 된 타이틀도 있었습니다.

매년 수많은 게임들이 출시되고 있고, 해가 지나면 지날수록 그 수도 늘어나고 있죠. 그렇지만 모든 게이머들이 그렇게 많은 게임들을 전부 다 즐기지는 못합니다. 그 중에 몇 편 골라서 즐기고, 그러다가 정말 마음에 드는 게임에 보통 집중하게 되죠. 그것이 흔히 세간에서 말하는 '망겜'이나 '갓겜'일 수도 있고, 평범하지만 자신에게 유난히 맞아서 오래도록 플레이하는 등 경우는 다양합니다. 아니면 자신이 즐기던 게임을 계속 하느라 새로 나온 게임을 못하기도 하지요. 게이머들이라면 다들 공감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며칠 안 남은 2017년, 인벤 기자들이 올 한 해 무슨 게임을 하고 놀았는지 소개해보겠습니다.




슈퍼마리오 오디세이
추천인 - 정필권 기자

▲ 아직 580개밖에 못 모았다.

"으으 못참겠다!" 소리를 내고 바로 사버렸다. '슈퍼 마리오 오디세이'를 말이다. 홍콩에서 사온 닌텐도 스위치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젤다의 전설도 재미있게 했음은 부정할 수 없지만, 이번 마리오는 개인적으로 젤다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여서 게임을 플레이했다.

돌이켜보면 오디세이를 할 때는 약간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10월 26일 밤, 일본 e샵을 통해서 내려받고 나서 내리 5시간은 플레이하지 않았나 싶다. 정신을 차리니 이미 새벽이었고, 잘 시간은 이미 한참이나 지나가 있었다. 그리고 우리 팀 메신저에다 한마디를 남겼다. "저 내일 출근 안 하면 안 돼요?"

젤다가 자유도를 통해서 놀라움을 주는 세계였다면, 오디세이는 밀도 있게 설계된 세계다. 한계는 명확하지만, 적어도 게임을 플레이하는 동안은 매우 깊은 몰입감을 준다. 그래서 게임을 장시간 플레이하지 않아도 충분히 만족스럽게 게임을 마무리할 수 있다. 엔딩 후에도 파고들 것이 많아서 언제든 게임을 켜도 충분히 즐겨볼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그냥 굴러다니고 점프해도 재미가 있었기 때문에, 약 8백 개가 넘는 파워문 중에서 580개밖에 모으지 못했다. 하지만 아쉽지는 않다. 나에겐 아직 모아야 할 파워문이 2백 개가 넘게 남아있고, 이 밀도 있는 세상을 뛰어다니는 것 자체가 즐겁고 신이 나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올드 맨즈 저니
추천인 - 이두현 기자


올해 다양한 게임을 하는 데 많은 시간을 썼지만, 그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올드 맨즈 저니'를 한 2시간이다. 이름값 하는 시상식들의 호평을 보고 '도대체 얼마나 갓겜이길레?'라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결국 나 역시 그 호평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각 게임사에서 '대작'을 자신 있게 외치며 선보인 게임은 대부분 해봤지만, 항상 충전기를 꽂은 채 'Auto'로 진행되는 전투를 관람했었다. 반면 '올드 맨즈 저니'의 포인트 앤 클릭 방식은 단순했지만, 타 게임에서 느낄 수 없던 몰입을 경험했다.

'올드 맨즈 저니'를 시작하면 별다른 조작 설명 없이 진행된다. '왼쪽 하단의 방향키를 눌러 이동해봐!'와 같은 친절한 설명은 없다. 캐릭터가 더 강해지도록 안내해주는 다양한 광고 팝업도 뜨지 않는다. 단지, 할아버지가 이동하고 언덕 높낮이를 바꿀 수 있을 뿐이다. '올드 맨즈 저니'는 대사 한마디 없이 진행되지만, 틈틈이 전개되는 할아버지의 회상은 충분히 유저에게 이야기가 전달된다. 장면마다 인상적인 그림 한 컷들은 마치 성인을 위한 동화책 같다.

명작은 세대마다 주는 감동이 다르다고 한다. 어릴 적 읽은 '어린 왕자'는 성인이 돼서 다시 한번 읽어보라고 권유된다. 만약 요즘 나온 게임 중에서 50년 뒤에 다시 해보고 싶은 게임을 꼽으라면, '올드 맨즈 저니'를 선택하겠다. 노인이 되어 '올드 맨즈 저니'를 할 때 어떤 느낌을 받을지 기대된다.


로보토미 코퍼레이션
추천인 - 허재민 기자


올 한해 접한 게임들 중에서 '로보토미 코퍼레이션'이 가진 의미는 특별했다. 얼리억세스가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플레이했었고, 인벤에 입사한 후 처음으로 직접 인터뷰 질문지를 만들었던 '내가 좋아하는' 게임이었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수줍게 "저, 이 게임 알아요... 괴물을 경영하는 게임인데..." 하면서 속으로 "제.가.가.고.싶.습.니.다.만."이라고 외쳤던 그때가.

'로보토미 코퍼레이션'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점은 아트였다. 우리나라 개발사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디자인을 보고 당연히 외국 개발사 작품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아트워크. 초기 버전에서는 환상체마다 그림체가 제각각이긴했지만 그런 점까지도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로 눈에 띈 점은 괴물경영이라는 콘셉트. 괴물들을 시설에서 관리하고, 처음 보는 괴물은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관찰하고, 각각 괴물마다 사연과 특징이 있어 이 부분을 잘 캐치해야한다. 억압당하는 것을 좋아하는 환상체가 있다는 것도 재밌다.

출시 후 1년이 지난 현시점, '로보토미 코퍼레이션'은 여전히 얼리억세스 단계다. 아직 정식 출시는 하지 못했지만, 업데이트는 꾸준히 진행됐다. 안젤라도 인간 외형을 가지게 됐고, 게임 UI는 세련되고 깔끔해졌다. 특히 게임 플레이가 한눈에 이해되도록 변한 점이 눈에 띈다. 각 환상체에게 어떤 관리방식이 적합한지 이제 PE 포인트를 쓰면 확인해볼 수 있다. 그래도 능력치도 잘 확인해야 하지만.

▲UI가 깔끔해지고 워드아트가 많아져서 이해하기 쉬워졌다!

예전 디자인보다 깔끔해졌지만 조금 '너무 정돈된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안젤라가 인간형을 갖추게 되면서 예전과 같이 섬뜩하면서 신비했던 느낌이 퇴색되었다는 점, 그리고 게임 튜토리얼이 있으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 같다는 몇 가지 아쉬운 점은 있다. 하지만 계속해서 유저와 소통하고 개선해나가는 모습에 믿고 기다리는 게임이기도 하다.

정식 출시까지 꾸준히 환상체 업데이트와 UI개선, 게임플레이 변경을 진행하고 있는 개발팀 프로젝트문. '로보토미 코퍼레이션'이라는 멋진 마라톤을 무사히 완주하기를 바란다.


헬블레이드
추천인 - 강민우 기자


역시 닌자시어리. 헬블레이드다. 깔았다. 지웠다. 또 깔았다. 또 지웠다. 정신병에 걸린 주인공 세누아처럼 그렇게 게임을 깔았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세누아의 정신병이 극에 달할 때가 되면 시각적, 청각적으로 플레이어를 괴롭힌다. 밤에 불을 끄고 집중해서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세누아에 빙의돼 지옥 같은 모험을 떠나야 한다. 게임이라고 하기엔 재미가 없고 영화라고 하기엔 너무 길고 고통스럽다. 플레이 타임은 약 8시간. 내가 왜 이걸로 고통받고 있지라는 생각 때문에 삭제를 여러 번. 그래도 두 달에 걸쳐 기어이 깼다.

이 고통의 여정을 끝내고 나면 타 게임에서 느낄 수 없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는데 마치 병에 걸렸다가 나은 것처럼 '완치'된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고난도 게임을 클리어 했을때 느끼는 '달성'의 쾌감과는 너무나 다르다. 아직 이 게임을 플레이해보지 못했다면, 어서 게임을 깔고 세누아의 고통을 해방시켜주자. 동시에 당신도 치유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로켓리그
추천인 - 박태학 기자


누군가 내게 인디 게임의 미래를 묻는다면, 고개를 들어 '로켓리그'를 바라보게 하겠다. 판매량, e스포츠화, 외국 인기 BJ들의 충성도까지. '로켓리그'는 게임이 갈 수 있는 거의 모든 방향에서 꼭지점을 찍었다. 억 소리 나올 만큼 돈을 쏟아부어도 이 중 하나도 못 하는 경우가 태반인데.

게임은 심플하다. RC카를 조작해 공을 차서 상대편 골대에 넣으면 된다. 축구와 레이싱, 아케이드가 어우러졌다. '조작은 쉽지만 마스터는 어렵다'는 게임의 모범 사례다. 분명한 건, 장르나 게임플레이 방식이나 주류는 아니다. 그런데 이거, 어렸을 적 미니카를 갖고 놀며 누구나 한 번 쯤 생각해봤을 소재 아닌가. 이런 유치한 상상을 잘 다듬었을 때 얼마나 재미있는 게임이 나오는지 보여줬다. 워낙 게임플레이 방식이 특별하다보니 유사 게임도 안 나왔다. 천재적인 발상이다. 해본 사람은 안다.

내 스팀 라이브러리에서 플레이 타임 1위 찍은지는 한참 됐다. 기자는 최근에 스위치를 샀다. 스위치에도 로켓리그가 있다. 내년에도 이런 기획이 있다면 아마 또 '로켓리그'를 적지 않을까 걱정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이렇게 재밌는데.


디제이맥스 리스펙트
추천인 - 양영석 기자


어떤 게임을 하고 놀았나 하고 일 년을 돌이켜보니 참 한거도 많았다. 올해 초부터 굵직한 대작들도 많이 나왔고. 매년 그렇긴 하지만 올해는 특히 더 많은 게임들을 구매해 즐기고, 그동안 사놓고 안 했던 게임도 하고...그렇게 1년을 돌이켜보니까 리스트가 너무 많아서 고민됐다. 올 한 해가 정말 알차게 다양한 게임을 하긴 했더라.

그중 인상 깊게 남은 게임을 골라보자니, 딱 하나 떠오르는 타이틀이 있었다. 바로 'DJMAX RESPECT'. 거의 무조건반사적으로 하는 '패시브' 게임 말고, 각 잡고 재미있게 즐기면서 오래 플레이한 '액티브'게임을 따지자니 디제이맥스다.

팬들을 위한 타이틀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DLC도 좋았고 업데이트도 적절했다. 무엇보다도 이전 시리즈 곡의 가격도 생각보다 저렴했고. 거의 모든 부분에서 '만족스러움'을 느낀 타이틀이 거의 없었는데, DJMAX는 나도 과거의 망령이 되어서 그런지 대부분이 만족스러웠다. '혼자서' 하는 동안 정말 즐거웠으니까.

물론 주변에 하는 친구들은 별로 없었지만 리듬게임인데 뭐 어떤가? 어차피 혼자 하는 게임이고 나만 재밌으면 된다. 가끔 심심하면 온라인 플레이로 상대방하고도 같이 연주해볼 수도 있고. 뉴-비 배려만 잘해주면 흥미 붙인 사람은 오래 플레이하는 장르다. 이 장르 오래 해본 사람들은 다 안다. 소위 "그게 보여요?" 장르들의 공통점이 뉴비 배려가 매우매우매우 중요하다는 거다.

근데 진짜 열심히 하긴 했던 것 같다. 버튼을 하도 누르다 보니 구매한지 1년도 채 안된 듀얼쇼크 한 분은 수명을 달리하셔서 새로운 듀얼쇼크를 구매했을 정도니까. 마침 기사가 올라가는 오늘, 명곡이 즐비한 또 하나 DLC가 나왔으니 오늘도 집에가서 해야겠다.


레인보우식스 시즈
추천인 - 정재훈 기자


지금이야 그럴 일이 없지만 어렸을 땐 컴퓨터 한 대로 둘이서 게임을 하는 일이 잦았다. 그리고 당시 꽤 재밌게 즐겼던 게임 중 하나가 '뿌요뿌요'다. 여기서 재밌는건 연속 콤보를 달성할 때 상대에게 엄청난 블록 폭탄을 던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상대에게 똥을 던질 때 조잡하게 들리던 사운드 이펙트가 아직도 기억난다. "빠요엔~ 빠요엔~"

'레인보우식스: 시즈'를 산 후, 2년간 쳐다보지 않다가 다시 켰을 때, 머릿속에 저 소리가 다시 울렸다. 걸어가다 사망. 문 넘어가다 사망, 카메라 보다가 사망. 왜 죽었는지 영문조차 몰라 '뭐임??? 뭐임??' 하고 있으면 킬캠이 재생되면서 마술의 비법이 나온다. "이제부터 니가 왜 죽었는지 설명할거야. 잘 봐두렴." 다시 시작하고 첫 날은, 욕만 하다가 껐다.

2년 간 파문 없이 고여 있던 이 고인물들은 고이다 못해 썩은물이 되어 간간히 유입되는 뉴비들을 증발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무료 주말과 할인으로 뉴비의 유입은 끝이 없었고, 그 중에는 '나보다 뉴비'도 있었다. 재미가 붙어 버렸다. 수없이 죽고 죽으며 배운 '죽음의 법칙'을 내가 상대에게 퍼부을 때 느껴지는 카타르시스는 어떤 게임도 쫓아올 수가 없다. 그렇게 나도 고여버렸다. 이래서 니체가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자신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했던 거다.


디비니티: 오리지널 씬2
추천인 - 이현수 기자


커플 데이트로 즐길 수 있는 4인 코옵플레이 추가 등 콘텐츠와 외형 발전 외에도 전작의 훌륭했던 요소를 훌륭하게 계승했다. 여전히 난해한 지문과 생소한 단어, 작가주의에 찌든 유머들 때문에 신속한 진행은 힘들지만, 세계를 탐험하고 한수 한수 생각하며 진행하는 전투는 게임을 그만두지 못하게 한다. 그만두기 전에 산재한 버그들이 현실 세계로 돌려보내는 것도 장점.

▲ 오랜만에 느껴보는 구식...아니 고전의 향기란

요즘 같이 엄청나게 친절하고 직관적인 게임들이 난무하는 때 전통 CRPG에 그나마 가까운 작품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커다란 즐거움 이었다. 전작처럼 밸런스와 버그 등을 잡은 EE가 나왔으면 좋겠다.


인왕
추천인 - 윤홍만 기자


솔직히 말해 처음에는 시큰둥했다. 본가인 프롬소프트웨어가 아닌 곳에서 나온 소울라이크 게임들이 잘 된 사례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부분 어설프게 따라 한 수준이었고 결과도 신통찮았다. 그래서 '인왕'을 처음 보곤 나도 모르게 생각했다. 이 게임도 그저 그런 소울라이크류 게임일 거라고. 하지만 그 생각은 이내 사라졌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왕'은 소울라이크 시스템에 팀 닌자 특유의 액션을 절묘하게 버무렸다. 한 두 방만 맞아도 죽기 일쑤며 죽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여기까지만 보면 소울 시리즈와 똑같다. 하지만 '인왕'은 여기에 속도감 있는 전투 및 인술, 음양술, 그리고 자세 따른 전투 동작을 추가함으로써 소울 시리즈와는 차별화를 꾀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스토리텔링 역시 놓칠 수 없다. 소울 시리즈가 프롬뇌라고 불리는, 유저들이 스토리를 구축해야 하는 장점이자 단점을 가진 데 비해 '인왕'은 그냥 보여준다. 유저는 보고 즐기면 될 뿐이다.

여기에 아이템 파밍이라는 콘텐츠를 추가한 것에도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사실, 소울 시리즈가 어려운 이유는 단순하다. 아무리 장비가 좋아도 컨트롤이 안되면 소용없기 때문이다. '인왕'도 이러한 소울 시리즈의 근본을 벗어날 순 없지만, 아이템 파밍을 통해 해결법을 제시했다. 도저히 못 이길 것 같은 적도 좋은 아이템이 나올 때까지 몇 차례 파밍을 반복하면 될 뿐이다. 그렇게 파밍을 끝마치면 방금 전까지만 해도 터무니없이 강력했던 적들도 한결 수월하리라.

▲ 으아아아! 와뉴도 극혐!

아무튼, 이러한 요소 덕분에 다회차 게임을 즐기지 않음에도 '인왕'은 썩 재밌게 즐겼다. 파고 팔수록 새로운 재미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DLC도 전부 클리어했고 강자의 길이나 무간지옥도 적당히 돌아서 쉬고 있지만, 그럼에도 '인왕'은 나에게 여러 의미를 지닌 게임이다. PS4 게임 중 몇백 시간을 플레이한 최초의 게임이니 말이다.


포탈 시리즈
추천인 - 박광석 기자

▲ 3을 모르는 밸브 너란 녀석은.......

언제부턴가 패시브처럼 딸려있던 외국어 공포증에 30대를 앞두고 자연스레 체득하게 된 만성 '귀차니즘'이 더해지니, 이제는 기본으로 한국어를 지원하는 게임이 아니라면 쉽게 손을 뻗기 힘들게 되어버렸다. 그런 상황에 만나게 된 밸브 코퍼레이션의 1인칭 퍼즐 게임 '포탈' 시리즈. 문이 열리는 소리부터 무언가 장치가 작동하는 소리까지 게임 속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사운드를 한국어로 전부 표기해준다. 참 친절하기도 하지.

처음에는 그저 매 시즌 적용되는 80%이상의 높은 할인율과 '한국어 대응'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동했다. 하지만 실제로 게임을 플레이해보니 왜 '포탈'이 명작이라는 평가를 듣는 게임이 됐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퍼즐 장르의 게임을 플레이하다 보면 진행이 막히는 구간에서 스트레스를 느끼는 경우가 많은데, 포탈 시리즈는 퍼즐 장르에 익숙지 않은 유저라도 조금만 고민하면 충분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꾸며졌다. 방을 이동할 때마다 새롭게 등장하는 다양한 퍼즐들은 모두 풀릴 듯 안 풀리는 절묘한 난이도를 가지고 있어서 매번 유저의 도전 욕구를 자극하고, 더 어려운 퍼즐을 원하는 유저들을 위해 추가 콘텐츠도 준비되어 있다. 여기에 멀티 플레이로 즐기는 '트롤링'의 재미는 덤이다.

내가 느낀 포탈 시리즈의 백미는 역시 인공지능 '글라도스'와의 알콩달콩한 신경전으로, 이는 연애경험이 없는 기자에게 신선한 자극이 되었다. 아마 겉으로는 강한척하면서 속으로는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하지만 나를 좋아하는 마음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솔직하지 못한 성격의 여자친구가 있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포탈 시리즈는 출시된 지 10년이 넘은 오래된 게임이라도 계속해서 회자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해준 작품이다. 이미 포탈 시리즈와 글라도스의 팬이 되어버린 지금은 오는 21일에 출시될 예정인 '브릿지 컨스트럭터 포탈(Bridge Constructor Portal)'을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 글라도스의 매도는 왠지 기분이 좋다. 왠지 챙겨주는 것 같달까?




호라이즌 제로 던
추천인 - 김규만 기자


'호라이즌 제로 던'은 하필이면 세계에서 가장 큰 게임 개발자 컨퍼런스인 'GDC 2017'이 진행되던 바로 그 주에 출시됐다. 현장 취재를 나갔던 당사자였기 때문에 바로 게임을 할 수는 없었지만, 한국에 돌아가면 이 게임을 할 수 있다는 희망 덕분에 GDC의 살인적인(?) 취재 일정을 버틸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한국에 돌아와서 플레이해본 게임은 말 그대로 '취향 저격'. 원시 부족으로 돌아간 인간과 기계 동물이라는 세계관과 썬더죠의 모습은 미취학 아동 시절부터 공룡 이름만은 달달 외웠던 기자의 마음에 불을 지폈고, 궁수가 안나오는 RPG는 쳐다도 보지 않는 성미를 '호라이즌 제로 던'은 보란듯이 다양한 종류의 활과 화살로 만족시켜 줬다. 거기에 오픈 월드와 사냥이라니, 일찍이 이렇게까지 개인적인 취향을 세세하게 저격한 게임은 본 적이 없었을 정도다.

▲ 활은 언제 봐도 멋진 무기다

물론 아쉬운 점이 없었던 건 아니다. 초반에는 강력한 기계 동물들 눈치를 보며 돌아다녀야 해야 마치 사냥감이 된 듯 한 긴장감을 느낄 수 있지만, 조금만 게임을 더 진행하면 상당히 빠르게 먹이사슬에 정점에 오르게 된다. 게다가 동물들의 종류도 한정되어 있어 생각보다 금새 루즈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흠이라면 흠. 그래도 전투에서 생각보다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해볼 수 있기 때문에, 회차를 거듭하며 사냥을 통해 더 강한 부품을 모으는 재미로 꽤 오래 즐기게 된 것 같다.

지금은 맵 전역에 걸쳐진 동력 전지를 찾아 '실드위버' 갑옷도 얻었고, 사냥꾼의 오두막 같은 미니 게임 콘텐츠도 모두 정복한 지 오래. 먹이 사슬의 꼭대기에 오른 뒤 이제 게임에 남은 콘텐츠는 고대의 머그컵 찾기 정도일까? 그래도 아직 최근에 나온 '프로즌 와일드' DLC를 시작하지 못했기 때문에 '몬스터헌터 월드'가 출시되기 전까지는 계속 '호라이즌 제로 던'을 즐기게 될 것 같다.

▲ 잠시 쉬었던 활을 다시 잡고 가야겠다



엑스컴2
추천인 - 정수형 기자


지구를 지키는 세계 최정예요원의 실력이 군시절 내 사격 실력보다 못하다는 바로 그 게임. 애지중지 아끼던 요원이 한순간의 전략적 판단 오류로 세상을 등질 때면, 삶과 죽음의 고뇌에 빠져 모든 걸 놔버리고 싶어진다. 하지만, 뒤를 돌이켜보면 이만큼 집중해서 한 게임이 없던 것 같다.

전작이 외계인에 맞서 싸우는 지구방위대의 사령관이었다면, 엑스컴2에서는 외계인에게 빼앗긴 지구를 되찾기 위해 혁명군을 모집하는 리더가 되어 싸움을 이어나간다. 당연히 나라에서 지원받아 물자가 풍족하던 좋은 날은 다 가고, 외계인의 물자를 빼앗거나 혁명군 마을을 찾아 보급품을 모아야 한다. 스토리의 변화는 이렇듯 세세한 부분까지 영향을 미쳐, 플레이어로서 진짜 혁명군이 된 것만 같은 몰입감을 선사한다.

늘어난 콘텐츠만큼 전략의 폭이 넓어진 전투시스템도 빠질 수 없다. 처음으로 등장한 근접무기와 함께 새로운 병과, 무기, 임무는 게임의 재미를 더해준다. 단, 바로 코앞에 있는 외계인도 맞추지 못하는 명중률까지 계승했어야 했느냐는 의문은 여전히 남아있다. 정말, 저런 실력으로 최정예요원 노릇을 하고 있었다니. 외계인에게 지구를 빼앗겼다는 스토리를 저런 식으로 맞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이런 상황에도 충분히 나오는 '감나빗'

아무튼, 극악의 명중률도 사실 높은 난이도에서나 그렇지 평범한 난이도라면 전략 시뮬레이션을 어려워하는 사람들도 재미있게 즐길 수 있다. 게디가 폭파 무기와 근접무기는 빗나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니 이를 잘 활용한다면 높은 난이도에서도 전략적인 플레이가 가능하다.

본편만큼이나 다양한 콘텐츠가 추가된 DLC는 외계인과 혁명군이라는 1:1 구도를 벗어나 1:1:1도 즐길 수 있게 되니, 다양한 변수를 생각하며 플레이하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추천할만하다. 이제 사악한 외계인의 손에서 우리의 지구를 되찾아보자. 혁명군은 언제나 인재에 목말라있으니...


컵헤드
추천인 - 원동현 기자


"애니메이션이야? 게임이야?"

컵헤드의 첫인상은 당혹스러웠다. 내가 보고 있는 게 애니메이션인지 게임인지 구분이 가질 않았다. 익살스럽고 과장된 움직임, 화면에 가득한 노이즈 등 3~40년대 애니메이션을 감상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게 웬걸? 막상 해보니 플랫포머 장르 게임이더라.

셀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즐기는 플랫포머 게임이라니! 개인적으로 머리가 '띵' 울리는듯한 충격이었다. 캐릭터의 움직임에서 장인정신이 느껴졌다. 한 발짝 움직일 때마다 제작자인 몰덴하우어 형제가 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었는지 가늠을 할 수가 없었고, 그저 감탄사만을 연발할 뿐이었다.

▲ 매력이 넘쳐 흐르는 아트

사운드 역시 예술 그 자체였다. 플레이하는 내내 매력적인 재즈 사운드가 귀를 간질인다. 앞서 언급한 셀 애니메이션 기법과 어우러져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술 한잔 마시지 않았는데도 괜스레 취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 정도로 컵헤드는 아름다웠다.

아쉬움이 있다면, 생각보다 어려웠다는 점. 아니 사실 좀 많이 어려웠다. 개인적으로 플랫포머 장르 게임을 참 못 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컵헤드의 난이도는 분명 만만한 편이 아니었다. 워낙 캐릭터들의 디자인이나 움직임이 익살스럽다 보니 패턴을 예측하기가 너무 난해했다. 정말 셀 수도 없을 만큼 죽고 죽고 또 죽었다.

웃긴 건 그런데도 재밌더라. 게임의 분위기가 너무 절묘하게 조성되어있어서 내가 실수를 연발하며 죽어도 애니메이션의 한 부분처럼 느껴졌다. 어릴 적 넋 놓고 바라보던 애니메이션 속으로 내가 빨려 들어간 것 같은 이 느낌, 정말 반할 수밖에 없었다.


소녀전선
추천인 - 윤서호 기자

▲ 최근 바쁘다는 핑계로 일퀘와 거지런을 자주 거른 탓에 레벨 120도 안 된 소린이가 되었다

"이게 중국 게임이라고?"

늘 가던 일러스트 커뮤니티에 뜬 소녀전선 사전예약 광고를 보고 놀랐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물론 중국에도 흔히들 말하는 '덕후'들이 있다는 사실은 이미 팔로우하고 있는 일러스트레이터들이나 일러스트 교본 등을 통해서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설마 이런 게임까지 있을 줄이야.

사실 언급해야할지 일순 망설여지기도 했다. 막고라가 열릴 것이 분명하니까. 이런 유형의 게임이 일부 유저층에게만 어필할 수 있으며, 정말로 이런 부류를 싫어하는 사람도 많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예전에 그 세계(?)에 한 번 발을 대봤었고, 그래서 호와 불호 간의 온도 차가 어떤지 직접 겪어보기도 했기 때문이다. 냉담한 유저층의 반응은 마치, 요즘 날씨 같다고 해야 할까.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사무실 창문이 열려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다만 소녀전선은 '미소녀만' 있는 게임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미소녀의 비중은 크다. 당장에 나도 미소녀 캐릭터들이 없었다면 사전예약을 안 했을 것 같으니까. 하지만 플레이하면서 미소녀 외에도 유저들을 계속 붙잡아둘 또 다른 요소들도 갖추고 있다고 느꼈다.

확률형 아이템과는 다르게 인게임 재화를 활용하고 변수를 입력할 수 있게 만든 제조식도 그렇지만, 보급과 배치, 수복 등 다양한 전술전략적 요소를 도입해 플레이어가 개입하고 매니지먼트하는 재미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오토에 의존해 불편함을 줄이기보다는 모의작전, 작전보고서, 요정 등 유저가 직접 시스템을 활용해서 불편함을 극복하는 과정을 살렸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재미에 가속도가 더 붙었다.

▲ 개인적으로 육성을 속칭 '뻠삥'해주는 고급 모의작전을 굉장히 선호한다

물론 미소녀 게임을 싫어하는 사람에겐 절대로 권하지 않는다. 또 소녀전선이 엄청난 명작, 혹은 올해의 게임 이런 정도의 수준이라고 말하는 것도 물론 아니다. 다만 편견이나 미소녀에 대한 애착 등을 내려놓고 평가했을 때에도 흔히 말하는 'X겜'은 아니었다는 것? 미소녀라는 양념이 좀 세게 가미된, 그럭저럭 괜찮은 게임이라고 해야 할까.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리뷰를 쓰고 있었고, 심지어 종종 굿즈도 검색하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이런 경험, 개인적으로 정말 오랜만이다.

▲ 실제로 운동할 때 요긴하게 쓰고 있는 타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