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NA LCS 경기장. 플라이퀘스트와의 경기에 승리한 에코 폭스 탑 라이너 ‘후니’ 허승훈은 방송 인터뷰 자리에 섰다. 그는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감 넘치는 모습을 보여줬다. 하지만 분명 그는 긴장하고 있었다. 터질 듯이 빨갛게 변한 그의 귀가 이를 증명하고 있었다.

“기분이 정말 좋네요. 유럽이든, 한국이든, 북미든 어딜 가더라도 소속팀에서 첫 경기에 나섰을 때 진 적은 없었어요. 제 적응력도 빠른 편이고, 최대한 SKT T1에서 배운 것들을 토대로 승리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에요.”

인벤과의 인터뷰 자리에 온 그는, 방송 인터뷰를 할 때 그의 귀가 터질 듯이 빨갛게 변했었다는 말을 듣고 속 마음을 들킨 양 민망한 듯 웃었다.

“인터뷰 자리는 언제나 긴장돼요. 어떻게 하면 팬들이 좋아할지 걱정도 되고, 조심해야하는 부분도 있어서 자연스럽게 긴장하게 돼요. 북미 팬들을 다시 만난 건 정말 기분 좋은 일이에요. 오늘 경기는 제 가족들도 같이 지켜봤는데, 가족들 앞에서 승리한 것도 정말 기쁘네요.

그리고 무엇보다 저를 과소평가하는 사람들에게 저를 증명한 것 같아 기분이 좋아요. 지난 월드 챔피언십에서 결승전까지 올라갔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저에 대한 평가를 좋지 않게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거든요. 제가 안정성이 부족하다는 지적 등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북미에서 5, 6번째 탑 라이너라는 건 말이 안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번에는 다 박살내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연습하고 있어요. 이렇게 과소평가 당하고 싶진 않아요.”

자신을 증명하고 싶었다고 말하는 허승훈의 얼굴은 언제 웃었냐는 듯 진지했다.



2017년 해외에서 가장 성공한 선수로 화려하게 SKT T1에 입단했던 허승훈. 하지만 그가 보여준 성과는 지금까지의 화려한 커리어에 비교하면, 분명 아쉬웠다. 스프링 시즌 우승이나 롤드컵 결승전 진출 등은 허승훈에게 최고의 커리어 중 하나지만, 세계 최고의 팀 SKT T1과 정상급 탑솔러 허승훈의 만남이었기에 팬들은 더 많은 걸 기대한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역대 최강이었다는 2015년 SKT T1의 재림을 바랬을 것이다.

“제가 잘한 부분도 있고, 못한 부분도 있지만, 모두 아쉬움으로 남네요. 이제는 어떤 경기를 하더라도 더 잘할 수 있는 부분이 눈에 보여요. 스프링에는 제가 잘하지 못했고, 서머에도 잘하지 못했죠. 전체적으로 제가 잘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배워가는 과정이었고, 저는 분명 최고는 아니었어요. 그래도 누구에게도 질 것 같다는 생각은 안했어요. 연습도 살면서 가장 많이 한 한 해이고, 혼나기도 많이 했지만 배운 것도 많은 한 해에요. 누구에게도 뒤쳐지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SKT T1에서 배운 건 프로의식? 제가 하는 게 ‘일’이라는 걸 느꼈어요. 일이라는 생각이 들면, 이 일이 의무라는 생각도 들게 되죠. 한국은 그게 굉장히 강한 것 같아요. 게임, 스크림을 하는 게 일이라는 개념이 머리속에 박혀있어서 더 열심히 하게 돼요. 해외에서는 그 느낌이 확실히 줄어들어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고. 한국이 90% 정도라면 해외는 70%라는 느낌이에요.“

허승훈은 많이 달라져 있었다. 2015년, 프나틱 월드 챔피언십 4강 진출이라는 성과를 올리고 인터뷰를 했을 당시의 허승훈은 자신감과 패기로 모든게 설명이 가능한, 겁없는 로열로더였다. 그리고 2017년, SKT T1과 결승까지 오르며 자신의 최고 커리어를 갱신하고 북미 LCS로 화려하게 복귀한 허승훈은 배운게 많다고 했다. 그 차이를 만들어낸 것은 무엇이었을까?



“김정균 감독님은 다시는 만나지 못할 최고의 감독님이에요. 저는 유럽에도, 한국에도, 북미에도 있었지만, 김정균 감독님을 만난 건 다시는 느끼지 못할 경험이었어요. 그렇게 대단한 코치는 만나기 힘들 것 같고, 항상 그 분에게 감사해요. 제가 팀을 나오고 미국에 오기 전까지도 김정균 코치님은 저를 챙겨주셨어요. 제가 사는 곳까지 와서 진지한 이야기도 많이 하고, 술도 같이 마셨어요. 제 인생에 엄청난 인연을 얻은 것 같고, 정말 많은 것을 배웠어요.

SKT T1 이전의 저와, SKT T1 이후의 저는 많이 다를 거예요. 해외팀에서는 제 위주로 한 경기가 많았는데, SKT T1에서는 다른 라인에도 대단한 선수들이 많아서 제 역할만 해도 되는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어떤 것이 제 역할인지, 그걸 어떻게 이뤄내야 하는지를 많이 배웠어요. 선수 한 명, 한 명의 중요도가 굉장히 높다는 걸 알았고.”

몇몇 팬 분들은 ‘피넛’ 한왕호나 ‘후니’ 허승훈 같은 선수는 팀의 주인공 역할을 줘야 더 잘할 수 있는 선수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SKT T1에서는 두 선수 모두 주인공 역할을 원하는 만큼 자주 주지 않은 것 같아요. 그게 아쉽지 않나요?

“팬 분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 그냥 제가 못한 거라고 생각해요. 제 역할만 하면 되는데 그렇지 못한 경기도 있었고, 제가 주인공 역할을 맡았는데 못한 경기도 있었어요. 픽밴에서도 감독님 능력이 워낙 출중하셔서 제가 원하는 대로 픽밴을 이끌어주셨고. 항상 같이했고, 즐겁게 한 결과물이기에 제가 잘 못했다고 생각할 뿐, 감독님이 제 역할을 한정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김정균 감독에 대해 이야기하는 허승훈의 모습 속에는 그에 대한 존경이 어려 있었다. 선수들이 때로는 코치의 의견을 무시하거나 존중하지 않은 많은 사례들을 생각해보면, 김정균 감독을 생각하는 허승훈의 모습은 어색하게도 새롭게 느껴졌다.

“이번 MSI에서 SKT T1을 만나 꼭 이기고 싶어요. 감독님에게 국제 대회에서 SKT T1을 만나면 꼭 이기겠다고 했거든요. 제가 잘하지 못했을 때, 감독님께서 저를 많이 혼냈어서 그 느낌을 알고 있거든요. 제가 SKT T1을 이기면 SKT T1의 있는 선수가 혼날 거 잖아요. 제가 받은 느낌을 그 선수도 느끼게 만들고 싶어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