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
2018-02-08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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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주 칼럼] 게임장애,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크다

윤서호 기자 (Ruudi@inven.co.kr)

인벤은 WHO의 '게임 장애(Gaming Disorder)' 공식 질병 목록 등재 시도에 대한 이장주 박사님의 기고문을 소개합니다. 해당 기고문은 등재 시도가 얼마나 부당한지 총 4회에 걸쳐 근거를 제시할 예정입니다.

이장주 박사님은 현재 이락 디지털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사회문화심리 분야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디지털시대, 기술을 넘어선 사람의 행복'을 테마로 게임과 e스포츠를 비롯해 디지털 문화 전반에 걸쳐 다양한 주제로 심리학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게임 장애 질병화란 광기의 질주를 멈추라!
[1부] 게임 장애, 과학적 근거가 빈약하다
[2부] 게임장애,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크다
- 게임 장애는 또 다른 심각한 문제를 불러온다. (예정)
- 게임 장애, 질병화를 저지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할까? (예정)


게임장애(Gaming disorder)

□ 정의: 다른 일상활동보다 게임을 우선시하여 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하더라도 게임을 지속하거나 확대하는 게임행위 패턴

□ 진단기준: 개인, 가족, 사회, 교육, 직업 또는 기타 중요한 기능 영역에서 심각한 장애를 초래하는 게임 행위가 12개월 이상 분명하게 나타나야 함

출처: http://www.who.int/features/qa/gaming-disorder/en/

무기력한 아기는 조금씩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며 어른으로 성장해간다. 돌 무렵의 아이는 수없이 넘어지지만 걸으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조금 더 자란 아이는 입으로 들어가는 밥보다 얼굴에 묻은 밥풀이 더 많아도 기어이 제 손으로 먹으려 용을 쓴다. 더 자란 아이들은 ‘싫어’라는 말을 달고 다니며, 미지의 세상에 대한 왕성한 실험을 지속한다.

사춘기쯤 되면 더는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애써 보이려고 위험하거나 금지된 행동을 하기도 한다.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은 아이가 성장하면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결코 세상을 망가뜨리거나 엄마를 괴롭히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한계란 안전한 곳, 이미 알고 있는 곳, 안락한 곳이다. 안타깝게도 안전한 곳은 이미 주인이 있다. 그래서 너무 안전한 곳은 지루하고 재미가 없는 곳으로 느낀다. 위험을 무릅쓰고 한계를 확장한다는 의미인 모험은 내가 주도하는 나만의 그곳을 간절히 원하는 인간의 오랜 본능이자 습관이다.

그러기에 인간의 한계 극복은 수많은 신화와 전설, 영화, 소설의 영원한 테마이며, 요즘 뉴스의 중심인 올림픽의 이상이기도 하다. 이런 맥락에서 게임은 현실적 위험을 최소화하며 한계를 극복을 경험해주기에 인류의 최첨단 문화기술이다. 이것이 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게임장애’는 과학적으로도 명확한 근거를 찾기 어려울 뿐 아니라, 인문학적으로도 문제가 크다. 그 핵심에는 ‘게임장애’가 인간의 본성과 인류 문화적 진보를 외면하는 근시안적 접근이며, 반인권적, 반문화적 폭거이기 때문이다.



게임장애, 자기결정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다
자기결정권을 제한하려 시도하는 것은 심각하고 중대한 권리침해

사람은 생리적 욕구를 충족하는 것을 넘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보이고 인정받을 때 쾌감을 느낀다. 즉 빵만으로 살 수 없는 존재라는 의미다. 다양한 재능과 성향을 지닌 사람들의 차이만큼 가치를 추구하는 방식 역시 하늘의 별만큼 다양하다. 그러기에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가의 문제는 자신의 정체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공부에 재능이 있는 아이는 공부를 통해, 운동에 재능이 있는 아이는 운동을, 대인관계나 자연이나 동물과 교감하는 재능 역시 삶에서 중요한 이정표가 될 수 있다고 가드너는 ‘다중지능이론’을 통해 주장한 바 있다. 이런 재능이나 가치에 게임은 포함되어서는 안 될 이유가 그 무엇인가? 게이머는 무게나 크기 같은 획일적 잣대로 평가되는 가축이 아니다.

▲ 인간의 지능은 서로 독립적이고 다른 9가지 유형의 능력으로 구성된다는 '다중지능이론'

게임은 그 자체로 중요한 문화적 활동이자 산업 및 경제적 활동이다. 이것이 중요하지 않다면 도대체 무엇이 중요한지를 명백하게 밝혀야 한다. 백번 양보해서 다른 무엇이 중요하더라도 그것을 강요하는 순간 더 중요한 것 두 가지를 잃어버리게 된다.

첫째는 ‘게임장애’는 인간으로서 지녀야 하는 자기 삶에 대한 자기결정권의 침해다. 사람 특히 아이들은 실수와 실패의 경험을 통해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발견하고 키워나간다. 실패를 반복하면서 무언가 성장하는 느낌을 받을 때, 그리고 노력 끝에 성공을 거둘 때 무엇으로도 바꾸기 어려운 희열을 느끼게 된다. 가끔 이런 희열은 평생을 잊을 수 없는 중요한 삶의 나침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나침반을 따라 살 때, 사람들은 행복과 자신의 존재감을 실감하게 된다. 즉 살맛을 느낀다는 의미다.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 헌법 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이것으로도 부족하여 헌법 37조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는 헌법에 열거되지 아니한 이유로 경시되지 아니한다”고까지 밝혔다.

만일 이것을 제한하려면, 헌법 37조 2항에서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해 필요한 경우로 한정하고 그마저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고 명백히 밝히고 있다.

그렇기에 게임장애를 이유로 국민의 일원인 게이머의 자기결정권을 제한하려 시도하는 것은 심각하고 중대한 권리침해다. 만일 그래야 한다면, 게임이 어떤 측면에서 ‘국가안전 보장, 질서유지 혹은 공공복리’를 침해하는지 밝히는 것이 우선이다. 과장되거나 근거 없는 추론 말고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객관적인 근거 말이다.

자기결정권은 있으면 좋고 없으면 할 수 없는 '조커' 같은 항목이 아니다. 잘 된 결정이건 잘못된 결정이건 자기가 자신의 결정을 내리지 못하면 우울해지고 무기력해진다. 아무리 애써봐야 아무 소용도 없을 때 느끼는 절망감이 만성화되어 나타나는 현상을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이라고 셀리그만(Seligman)이란 심리학자는 불렀다. 타고난 무기력이 아니라 상황의 요인에 의해 후천적으로 얻은 무기력이란 의미다.

▲ 애써봐야 소용없는 상황이 만성화될 때 나타나는 '학습된 무기력'

모든 생명체가 자기 회복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무기력한 사람도 자신의 건강을 회복하기 위한 시도를 본능적으로 한다. 통제력을 회복하려는 시도다.

베트남 전쟁포로로 7년 동안 운동은커녕 앉아있기조차 어려운 공간에서 수용소 생활을 해왔음에도 건강을 유지한 채 귀환한 네스미쓰(Nesmith) 소령의 비법은 평소에 즐겼던 골프코스를 매일 4시간 동안 상상 라운딩을 즐긴 결과라고 한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통제력을 잃지 않았기에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다.

요양원에 계신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하버드 랭어(Langer)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화초를 키우는 노인이 그렇지 않은 노인들보다 건강했다고 한다. 그만큼 통제력은 몸과 마음의 건강에 필수적인 요소다. 그마저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때 최후의 통제방법을 사용한다. 바로 자신의 목숨을 통제하는 ‘자살’이다. 죽음으로라도 통제감을 지키고자 하는 존재가 바로 사람인 것이다.

이 시대의 많은 청소년과 젊은이들이 게임에 과도하게 빠져든다는 우려가 높은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런데 왜 게임에 몰두하는지에 대해 조금만 진지하게 살펴보면 금방 원인을 알 수 있다. 통제력 회복이다. 통제력을 느끼려는 자기치료행위인 것이다.

생각해보자. 건강하게 살기 위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자유 시간이 얼마나 되어야 할까? 보통 선진국에서는 일하는 시간보다 많은 것이 일반적이다. 과연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온전한 자유시간은 얼마나 될까? 학교와 학원, 인터넷 강의를 넘나드는 빡빡한 일정에서 1~2시간도 구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런 뺑뺑이를 초중고 12년도 부족해서 대학에 와서도 취업준비로 4년을 훌쩍 넘는 기간을 포로처럼 지낸다.

▲ 온전한 자유시간이 없는 청소년들(출처: KBS)

누구라도 자율성이 박탈된 생활을 오래 하다 보면 인내력이 바닥나고 포악해질 수밖에 없다. 괜히 우리나라가 OECD 자살률 1위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도 12년째 1위다. 그나마 정신줄을 놓지 않고 버틸 수 있게 만드는 요인이 게임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이것마저 ‘치료’라는 이름으로 막겠다는 것은 치료가 아니라 죽으라고 등을 떠미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런 상황은 부모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평생직장은 이미 오래된 전설이 되어버린 불안정한 고용환경, 쓸 곳은 많은데 아무리 아껴도 늘어날 기미가 없는 은행 잔고에 시달리면서 우울하고 무기력해진다. 그래도 정신줄을 놓을 수 없는 이유는 미래를 기대할 수 있는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필사적이게 된다. 너희만큼은 이렇게 살지 말라고 말이다. 그런 이유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한다.

아이가 게임을 통해 통제감을 느끼는 것과 같은 이치로 부모는 아이를 통제하는 것을 통해 존재감을 느끼는 것이다. 얄궂게도 아이가 게임을 통해 통제감을 느낄수록 부모의 통제감은 메말라 간다. 반대로 부모의 아이에 대한 통제감이 완벽할수록 아이는 몸과 마음이 피폐해지게 된다. 서로를 위한다는 이름으로 부모와 자녀가 서로 잡아먹으려는 이런 형국은 지옥 중의 가장 악랄한 지옥이리라. 나는 ‘게임장애’가 이런 생지옥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리라 확신한다.


게임장애, 다양성을 위협하다
사회적 건강을 유지하는 다양성을, 제거해야할 질병으로 만들어 버린다

두 번째는 게임장애는 공동체와 문화적 다양성을 위협하는 처사다. 다양성은 번거롭고 무질서하다. 그러나 그만큼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양성보다 효율성을 강조하는 산업사회의 표준화는 인류역사상 어떤 시기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성장을 가져왔다.

하지만 그만큼 환경과 사회적 잠재력의 고갈도 빨랐다. 자원고갈, 환경오염, 전염병 발생에서 저출산, 고령화, 세대 간 갈등 같은 사회문제까지 전방위적으로 효율성의 한계에 도달했다. 비싼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다양성의 가치에 대해서 눈을 뜨기 시작했다. 전에는 무질서와 비효율적이라고 무시하던 그 다양성의 가치 말이다.

▲ 다양성은 일견 혼란스러워보이지만, 높은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다

과거 독일은 생산성이 높은 단일 종의 나무들만 관리하게 좋게 줄을 맞추어 심는 과학적 조림 정책을 폈다. 결과는 첫 세대에 목재 생산량과 관리가 수월하여 놀라운 성과를 나타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한 세대가 지나지 않아 일부 수종의 벌목량이 30%가량 감소했다. 말라 죽는 나무들이 늘어났다. 이유는 토양이 공급할 수 있는 양분보다 나무들이 흡수하는 속도가 더 빨랐기 때문이다. 목재생산만 생각했지, 목재가 자라는 생태계에 대해서 완전히 무지한 탓이었다. 자연은 사람들의 얄팍한 계산으로 다룰 수 있을 만큼 단순하지 않았다.

이런 효과는 인간사회에서도 나타난다. 네거리의 신호등으로 유도되는 교차로보다 서로 엉켜서 조심스럽게 빠져나가야 하는 로터리가 교통사고율이 절반으로 줄어들고, 차량정체도 덜 하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즉 무질서가 오히려 효율을 높인 것이다. 이런 연구결과를 반영하여 국내선 2010년대부터 전국에 회전교차로를 설치한 뒤 교통사고 58%, 사상자 수 67% 감소라는 놀라운 결과를 얻기도 하였다.

어디 이뿐이랴? 고대 로마와 현대 미국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던 힘은 인종과 문화의 다양성이었다. 다양성은 원치 않는 부작용을 늘 가지고 있다. 하지만 세상을 바꾸는 천재와 괴짜는 그런 부작용 속에서 함께 자라났다. 천재만 모아놓고 노벨상을 받도록 지원하는 것은 천재를 평범한 연구자로 만드는 역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결국, 다양성의 수용 여부는 부작용이 아니라 그 속에 들어있는 가능성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적 역량의 문제였던 것이다.

게임장애는 사회적 건강을 유지하는 결정적인 요소인 다양성을, 제거해야 할 질병으로 만들어 버린다. 당장은 질서 있고, 효율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한 세대를 지나기도 전에 고갈되어 사회를 황폐화하리라는 것은 앞선 독일의 산림정책이나 강대국의 역사를 통해서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게임과 관련된 부작용은 병리 현상으로 제거해야 할 것이 아니라 다른 영역들과 조절하고 조화를 시키려는 생활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한다. 쉽지는 않겠지만, 오로지 그 방법밖에 없다.

‘왜 이런 무리한 진단명을 결사적으로 추진할까’에 대한 힌트는 DSM 개발에 참여하였던 앨런 프랜시스(Allen Frances)가 잘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저서 ‘정신병을 만드는 사람들(Saving Normal)’에서 열정을 중독으로 바꾸고 있다고 ‘정신건강 산업’을 신랄하게 비난한다.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생활방식의 선택을 장애로 둔갑시켰다는 것이다.

▲ 앨런 프랜시스는 ‘정신병을 만드는 사람들'를 통해 과도한 중독 진단명 추진에 대해 비판했다

이런 방식으로 정신장애의 영역은 정상의 영역을 침범해 가서 앞으로 인터넷(게임), 쇼핑, 섹스, 골프, 조깅, 태닝, 집 청소, 요리, 스포츠관람, 서핑, 초콜릿이 중독 예비 목록이라고 밝히기까지 하였다. 도대체 세상이 미쳤는지, 정신건강 산업이 미쳤는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반세기도 전에 헉슬리(Huxley)는 이런 경고를 한 바 있다. “의학이 너무 발전해서 건강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말이다.

알파고의 하사비스와 애플신화의 잡스, 페이스북 주커버크와 같은 세계적인 혁신가들은 게임개발자거나 게임개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수많은 시간 게임을 붙잡고 고군분투하던 시간은 그냥 시간 낭비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는 혁신의 밑거름이었던 것이다. 미래의 하사비스, 주커버크 후보자들에게 정신장애 꼬리표를 붙이고, 정신병동에 가둘 수도 있는 ‘게임장애’ 질병목록화는 위험하다 못해 공포스럽게 느껴진다.


게임장애가 은폐하는 것들
청소년들이 왜 게임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을까에 대한 문제에 집중해야한다

게임장애는 특수한 상황에 있는 개인에 대한 의학적인 진단에 머물지 않는다. 문제의 근원이 되는 불편한 진실들을 깔끔하게 감추어주는 가림막의 역할을 한다.

첫째, 게임장애를 앞세우면, 학교와 부모는 젊은이들의 새로운 경험을 지지, 지원하고 심화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지 않아도 된다. 단지 이들이 몇 시간 혹은 얼마 동안 지속적으로 게임을 하는지 모니터만 하면 그뿐이다. 또 미숙한 아이가 성인으로 자라는데 필요한 조화와 조절의 노력을 하지 않고 의료보험으로 간단하게 아웃소싱이 가능해진다. 아이를 키우고 후속세대를 양성하는 일이 편리해진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거 아는가? 편리함의 종착지는 쓰레기통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주변의 편리함을 강조하는 일회용품들이 마지막에 죄다 어디 가 있는지 살펴보시라. 내 아이를 내 동생과 조카들을 쓰레기통으로 보내고 싶은 사람은 아마 없으리라. 정상적이라면 말이다. 게임장애는 이런 비극적인 일을 마치 첨단의 진단과 처치기법인 양 가리고 있다.

당연히 게임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무슨 일이 발생했으며, 어떤 기분을 느꼈는지 묻지도 따질 필요도 없다. 게임장애를 질병 목록화를 할 때 하더라도 먼저 게이머들에게 그들의 경험을 묻고, 듣고, 그런 경험을 어떻게 확산시킬 수 있을지 고민한 다음에 해야 순리에 맞다. 이런 순리를 무시한 ‘게임장애’ 질병 목록화는 고민을 깔끔하게 날려버린다. 이렇게 추진되는 게임장애의 치료 효과가 좋을 리 없다.

둘째, 국가와 사회가 마땅히 져야 할 환경개선의 노력이 은폐된다. 게임밖에 할 것이 없는 청소년들이 만들어지는 환경을 고치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과 장기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다양한 재능을 펼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활동과 시설 같은 것들 말이다. 그리고 이런 이들이 모여서 더 큰 꿈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공동체 활동 지원이 대표적이다.

▲ 청소년들이 게임말고도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가는 것도 필요하다

‘게임장애’는 이런 사회와 국가의 책임을 가뿐하게 개인과 가정의 문제로 돌리는 회피수단이 된다. 마치 마술사가 관객의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 트릭처럼 말이다. ‘게임장애가 맞다, 틀리다’에 매몰되지 말고, 이 땅의 청년들이 왜 게임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을까에 대한 문제에 더 집중해야 한다. 이제 나무 말고 숲을 봐야 한다. 그동안 게임이라는 나무는 너무 지겹게 보지 않았는가 말이다.

나는 게임장애를 추진하는 그룹이 진정성이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좋은 의도로 추진한다고 해서 결과까지 좋은 것은 절대 아니다. 진정 건강한 시민의 보호를 위해 게임장애를 추진할 요량이라면, 게임장애가 나타날 수밖에 없는 환경을 개선하고, 게이머들의 일상을 애정 어린 눈으로 관찰하고, 그들에게 의견을 구해야 한다. 그래야 최소한의 결과를 얻을 수 있으리라.

그렇지 않고 무리하게 질병 목록화를 추진하다가는 건강도, 미래도, 문화도 다 놓치는 최악의 결과밖에 남지 않는다. 이런 중차대한 결정을 보건의료계가 주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믿는다. 범정부적 차원에서 건강과 인권, 미래전략 차원에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왜냐하면, 잘못된 결정이 몰고 온 부작용은 어떤 방식으로도 회복이 불가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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