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2018 LoL 챔피언스 코리아(이하 LCK) 스프링 스플릿은 각 팀의 이적생들의 활약 소식으로 뜨겁다. 특히, bbq 올리버스의 '이그나' 이동근, 아프리카 프릭스의 '기인' 김기인 그리고 킹존 드래곤X의 '피넛' 한왕호는 팀의 중심축으로 자리매김했다. 보통 이적생들의 평가는 팀의 성적과 객관적인 지표로 결정된다. 그중 한왕호는 LCK 내에서 가장 완벽에 가까운 정글러이자 우수한 이적생으로 손꼽힌다.

말 그대로 한왕호는 경기 초반부터 후반까지 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니달리와 같이 성장 격차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서는 '칸' 김동하와 '비디디' 곽보성의 강력한 라인전을 이용한다. 라인전 주도권을 잡은 '칸'-'비디디'의 백업 플레이가 빠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상대 정글 캠프에 진입할 수 있고, 자연스레 시야 확보가 된다. 이런 정보를 바탕으로 봇 라인에서 '프릴라' 듀오가 완급 조절을 한다. 반대의 경우에는 예리한 갱킹 타이밍으로 팀원들의 성장을 돕는다.

그러나 한왕호가 늘 팀원들을 이렇게 잘 활용하거나 서포팅 했던 것은 아니다. 락스 타이거즈와 SKT T1에서는 여러 단점을 지니고 있었고, 팀의 중심이 아니었음에도 본인의 독단적인 플레이를 지적받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킹존 드래곤X에서는 자신의 단점을 보완하고, 과거 팀에서 보여줬던 장점을 고스란히 유지한 모습이다. 그러다 보니 한왕호는 자연스럽게 팀 운영의 중심에 서게 됐다.



■ Chapter 1. 최고의 요람 락스 타이거즈.



한왕호의 기량이 만개하기 시작한 때는 락스 타이거즈 시절이다. '호진' 이호진을 대체할 정글러가 필요했던 락스 타이거즈는 한왕호를 영입하며, 팀의 전력을 강화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한왕호는 씩씩하고, 피지컬이 좋은 어린 선수로 분류됐다. 아직 보여준 게 많지 않은 신인이었기에 딱 그 정도의 평가를 받았다.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한왕호는 락스 타이거즈 소속 데뷔전을 성공적으로 치렀다. 2016 스플릿은 탑과 정글 중심의 메타였고, 그레이브즈-킨드레드-엘리스-니달리 등이 득세하던 시기였다. 자연스럽게 '스멥' 송경호와 함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팀을 이끌 수 있는 단계는 아니었다.

아직 팀플레이가 무엇인지 깨닫기 이전이었으며, 한왕호도 여느 신예 정글러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정글링이 우선이었다. 상대 정글러보다 반드시 더 성장해야 했으며, 시야를 중심으로 팀에 도움을 주기보다 육탄전을 선호했다.

확실히 폭발력은 있던 정글러였다. 그래서 '쿠로' 이서행과 '프릴라' 듀오는 백업 포지션을 자처해 한왕호가 캐리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하지만 이러한 팀원들의 희생이 따랐음에도 한왕호는 체계적인 운영보다 돌발 플레이가 더 잘 어울리던 선수였다. 아직 가공되지 않은 원석이었던 셈이다.

한왕호를 지도했던 정노철 감독은 "나이에 비해 성숙했고, 솔로 랭크 1위를 할 정도로 재능은 확실한 친구였다. 하지만 초반 정글 운용법, 시야를 바탕으로 풀어가는 방법, 팀원들과 소통하는 방식이 많이 부족했다"고 회상했다. 이 때문에 경험 많은 락스 타이거즈 선수단과 코칭스태프는 집중적으로 팀플레이를 가르쳤고, 영리했던 한왕호는 금세 익혀 그해 LCK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게 된다.



■ Chapter 2. SKT T1에서 익힌 '해야 하는 것과 하지 않아도 되는 것'



어쩌면 락스 타이거즈는 신예 선수에게 최고의 환경이었을지 모르겠다. 경험과 실력 모두를 겸한 팀원들과 코칭스태프 그리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한왕호를 성장시켰으니 말이다. 그러나 락스 타이거즈와의 동행은 그리 길지 않았다. 2017년, 한왕호는 라이벌이었던 SKT T1으로 이적하게 된다.

SKT T1은 락스 타이거즈와 팀 분위기와 경기 운영이 완전히 다른 팀이었다. SKT T1은 상대적으로 정적인 플레이를 선호하고, 기계적인 움직임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곳에는 '페이커' 이상혁과 '뱅' 배준식이라는 걸출한 스트라이커들이 존재했다. 락스 타이거즈 시절처럼 한왕호의 깜짝 플레이와 캐리가 굳이 필요하지 않았다.

결국, 한왕호는 자신에게 낯선 백업 포지션을 맡게 된다. 아무리 자신이 잘 다루던 챔피언이더라도 새로운 방법으로 접근해야 했고, 적극적인 플레이보다 상황에 맞는 움직임이 우선시 돼야 했다. 팀의 케어를 맡아야 하는 입장이므로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철저하게 배웠다.

자신의 커리어에서 SKT T1은 가장 많은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팀이다. 아이러니 하지만, 한왕호의 실패한 시즌을 꼽으라면 2017년이다. 본인의 판단은 '해야 하는 것'이었으나, 팀의 생각은 달랐기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한왕호가 가지고 있던 색은 사라졌다.

SKT T1은 시야 장악, 라인 관리에 상당한 공을 들인다. 팀이 불리하더라도 '페이커'와 '뱅'이 캐리할 수 있는 수준이 돼야 본격적으로 전장에 나선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변수 창출보다 매뉴얼대로 움직여야 강팀이 된다는 팀의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표면적으로 스프링 스플릿과 MSI의 결과만 봤을 때, 충분히 활약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한왕호는 메타의 변화에 휘청거리며, SKT T1에 완벽하게 적응하지 못했다. 급기야 2017 서머 스플릿에서는 SKT T1을 제외한 5위권 팀들과의 대결에 나서 2승 10패(정규 시즌 기준)를 기록한다. 그리고 경기 지표면에서도 LCK 내 아홉 번째에 머물어 모두의 기대와 달리, 장밋빛 길을 걷지 못했다.



■ Chapter 3. 한왕호가 겪은 성공과 실패, 킹존 드래곤X를 진화 시키다.



2년 동안, 한왕호는 극과 극의 분위기에서 성공과 실패를 맛봤다. 그러나 재능은 금세 다시 꽃을 피웠다. 함께 호흡을 맞췄던 '프릴라' 듀오와 재회하는 동시에 본격적으로 LCK 경험을 쌓기 시작한 '칸'-'비디디'와 한 팀을 이루게 된다.

2017년 기준으로 킹존 드래곤X의 색깔은 강한 라인전을 밑거름 삼아 봇 라인에 영향을 주는 기본적인 패턴이었다. 거기에 '칸'이 사이드 운영을 주도하는 그림이었기 때문에 큰 틀로 따졌을 때, 다른 팀과 운영 부분에서 차이는 없었다. 대신 킹존 드래곤X는 선수 개개인의 피지컬을 바탕으로 임기응변에 뛰어난 모습을 보여 우승할 수 있었다.

모두가 공평하게 준비를 갖춘 싸움이 아닌, 빠르고 복잡한 상황에서의 강함. 한왕호에게 가장 잘 맞는 옷이었고, 더욱 성장한 모습으로 팀에 빠르게 녹아들었다. 놀랍게도 한왕호는 팀에 합류하자마자 락스 타이거즈 시절이 아닌, SKT T1의 운영을 킹존 드래곤X에 입혔다.

실패에서 가장 많은 것을 배운다는 말이 있듯이 한왕호는 킹존 드래곤X를 빠르며, 기계적인 운영을 할 수 있도록 바꿨다. 분명 과거의 킹존 드래곤X는 자신들이 가장 잘하는 플레이와 조합을 고집했다. 그러나 2018 스프링 스플릿에서 보여주고 있는 운영은 '현재 상황에 맞는 최선의 플레이'다.

우선 한왕호는 팀이 어떤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제시하며, 라인 관리 같은 기본적인 부분에 섬세함을 더했다. 그리고 변수가 발생하는 전투보다 싸우지 않고, 유리하게 흘러가는 움직임을 취한다. 최근 경기에서 한왕호는 상대 정글러의 체력 관리에 따라 적극적인 카운터 정글 혹은 시야 장악으로 정보 전달과 팀원 보호를 동시에 해낸다. 자연스럽게 상대 정글러와의 성장 격차도 벌어지고 말이다.

어느새 한왕호는 락스 타이거즈에서 보여줬던 폭발력과 SKT T1의 잘 짜여진 운영을 모두 터득하면서 완성형 정글러에 다가가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늘 배워야 하는 위치에 있던 한왕호가 킹존 드래곤X의 중심에서 팀원들을 이끌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