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T T1이 최하위권을 멤돌았다. 이것 만큼 전 세계 LoL 팬들의 귀를 의심케 했던 사건이 없었다. 팀 창단 이후 유래가 없던 연패의 늪에 빠져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언제나 세계 최강 혹은 그 근처에 있었던 SKT T1이었기에 LCK 순위표를 볼 때마다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SKT T1은 칠흑 같이 어두웠던 연패에서 벗어나는데 성공했다. 연패 이후 두 번 연속 승리했다. 이를 두고 많은 사람이 'SKT T1의 부활'을 이야기했다. 팬들은 물론 소속 선수들도 부활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았다. 섣부르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불안한 감도 있다.


5연패
그들은 창단 이후 가장 긴 연패를 겪었다


그동안 SKT T1은 자주 흔들렸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우승을 자주 차지했다. 우승하지 못하면 대부분 준우승이었다. 1등 아니면 2등. 참 꾸준히 잘하는 팀이고 그래서 멋진 팀이라는 점에 반박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SKT T1은 2018년 시작부터 크게 흔들렸다. 이번 스프링 스플릿에 SKT T1은 팀 창단 이후 최다 연패의 늪에 빠졌다. 5연패. SKT T1은 그동안 4연패를 몇 번 겪긴 했지만, 그 숫자를 5로 만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숫자가 4에서 5로 바뀌었고, 모두가 충격에 빠졌다. 코치진과 선수들, 팬들과 이를 예상치 못했던 관계자들까지. 그만큼 흔치 않은 일이 발생했다.

사실 SKT T1의 2018년 연패 당시 경기력을 보고 있지만, '이게 SKT T1이 맞나' 싶을 정도로 이상했다. 당시 솔직한 감정을 그대로 기사에 싣자면, 이게 프로 경기 관전인지 선수들의 랭크 게임 관전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당시 SKT T1의 경기력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중구난방'이었다. 서로 대화를 단절한 채 하고 싶은 것만 각자 하고 있는 듯한 장면이 너무 잦았다. 누군가는 집으로 귀환하다가 허무하게 죽고, 누군가는 라인 상황을 보지 않고 적진에 깊숙하게 들어갔다가 쓰러졌고, 누구는 싸우려 하는데 누구는 도망치려 하고. 팔과 다리가 모두 따로 노는 사람의 춤사위를 보는 것과 같은 기괴함이 느껴졌다.

하나로 통일된 판단을 보일 때면 그 판단 자체가 상황에 맞지 않을 때가 잦았다. 상대가 바론을 치고 있고 탐 켄치를 미끼로 내줬는데 이를 잡기 위해 주요 스킬을 모두 투자했다가 바론도 뺏기고 한타에서도 대패하는 장면도 있었다. 전혀 SKT T1이 했다고 믿기 힘든 판단이었다.


심지어 이들의 경기력은 시간이 많이 지나도 수정되지 않을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실수에 대해 재빠르고 맹렬한 피드백을 하는 것으로 유명한 김정균 감독이 팀 패배 직후에 부스로 들어와 여느 때와 같이 선수들을 다그쳤지만, 나아지는 건 없었다. 했던 실수는 그 다음 세트나 다음 경기에도 그대로 반복됐고, 오히려 다른 실수들이 새롭게 발생하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연이은 패배로 선수들의 눈빛이 변하기 시작했다. 예전 SKT T1은 연패를 겪으면 선수들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하지만 이번 연패는 생각보다 더 충격적이었던 모양이다. 잦은 패배 때문에 지는 것에 익숙해졌던 팀의 선수들에게서 봤던 그 눈빛이 SKT T1의 눈에 드러났을 때. '이 팀은 부활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잠시 들기도 했다.


'블라썸'의 등장
'괴짜' 정글러와 함께 경기력 되찾은 그들


'울프' 이재완이 정글러로 포지션 변경도 시도했고, 지난 스플릿에 소방수 역할을 톡톡히 했던 '블랭크' 강선구가 주전 정글러로 출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SKT T1의 성적은 계속 우울했다. '울프'는 라인전 단계에서의 영향력이 극히 낮았고, '블랭크'는 과거 슬럼프 시절의 경기력으로 돌아간 듯한 모습으로 일관했다. 초반 운영의 설계 단계부터 주도권을 잡지 못하자 SKT T1은 생각보다 훨씬 더 무력했다.


위기를 맞이한 SKT T1은 정글러 포지션에 강수를 뒀다. 지난 bbq 올리버스전에 신예인 '블라썸' 박범찬을 주전으로 출전시켰다. 일리있는 판단이었다. '울프'도 '블랭크'도 정글 주도권을 잡지 못한다면, 팀의 또 다른 정글러를 투입시키는 건 당연한 수순이니까. 하지만 그는 신예. 그 경기를 지켜보던 팬들은 걱정 반 기대 반의 감정을 모두 지니고 있었다.

결과는 꽤 좋았다. '블라썸'은 공격적인 운영으로 팀에 부족했던 활력을 되찾아줬다. 그는 데뷔전부터 바론도 빼앗고 특이한 위치 선정으로 상대를 당황케 하는 등 눈에 띄는 경기력을 선보였다. 그 다음 KSV전에도 출전해 좋은 활약을 보였던 '블라썸'은 단숨에 팀을 위기에서 구한 선수가 됐다. 팀에 큰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활약했던 '페이커' 이상혁도 자신의 경기력을 끌어 올리는데 성공했다.

사실 '블라썸'의 활약에 놀란 건 다른 이유였다. 신예 정글러가 활약하며 팀의 승리를 이끈 경우는 LCK 역사상 꽤 잦았다. 진짜 놀라웠던 건 '블라썸'이 그동안 SKT T1의 정글러들에게 부족했던 능력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승리했다는 점이었다.

전통적으로 SKT T1의 정글러는 서포터의 역할을 주로 수행했다. '벵기' 배성웅부터 시작된 SKT T1 정글러의 계보에서 그들의 역할이 캐리 쪽이었던 적은 거의 없었다. 시야 장악과 역갱킹, 라인 커버 위주의 움직임이 SKT T1을 거쳤던 정글러들의 주요 역할이었다. 심지어 공격적 정글러의 대표주자로 불리는 '피넛' 한왕호도 SKT T1 시절에는 팀적인 움직임에만 집중했다.

▲ 그 어떤 SKT T1의 정글러도 이런 위치를 연속으로 잡지 않았다. '블라썸' 빼고.

하지만 '블라썸'은 SKT T1의 정글러라고 하기엔 이상한 역할을 하고 있다. 조금 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운영의 정글러. 변칙적인 움직임으로 변수를 창출하는 정글러. 어찌 보면 위기의 SKT T1에게 가장 필요한 정글러였는지도 모른다. 그는 지금까지 SKT T1의 정글러가 가지고 있던 이미지와 상반되는 '괴짜'다.


아직 모른다
'남은 건 경기력 향상 뿐'이라는 생각은 금물


색다른 정글러의 활약으로 라이너들의 장점이 살아나면서 SKT T1은 5연패 이후 기분 좋은 2연승을 거뒀다. 모두가 '부활'이라는 무게감 있는 단어를 슬슬 꺼냈다. 충분히 그럴 만 했다. 현재 SKT T1은 5연패의 늪에서 허우적거릴 때의 SKT T1과는 거리가 멀었다. 반복됐던 실수도 많이 줄었고, 콜 플레이에서의 이질감도 괜찮아졌다. 무엇보다 선수들의 캐리력이 되살아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그렇다면 이제 SKT T1은 모두의 바람대로 부활한 것일까. 앞으로 SKT T1은 최상위권으로의 복귀에 성공하면서 이전 명성을 단숨에 되찾을 수 있을까.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SKT T1의 경기력은 확실히 향상됐다. 단기간 내에 지적받았던 단점들을 대부분 개선했고, 예전 경기력과 캐리력을 되찾아가는 중이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회복 단계다. 하지만 말 그대로 현재 SKT T1은 회복 중이다. 회복을 마친 건 결코 아니다.

개선된 SKT T1의 경기력이 최상위권인 킹존 드래곤X나 아프리카 프릭스, kt 롤스터의 것을 넘어서는 수준이냐고 묻는다면, 확신에 찬 목소리로 '아니'라고 답할 것이다. 그만큼 위의 세 팀, 특히 킹존 드래곤X는 엄청난 기세를 보이고 있으며 스프링 스플릿 우승권에 걸맞은 성적을 내고 있다.

따라서 SKT T1은 '이제 우리에게 남은 건 경기력 향상과 명성 회복 뿐'이라는 안도감과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아직 우리는 한참 부족하며 명성 회복을 위해서는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다짐을 마음 속에 새길 필요가 있다. '괴짜' 정글러가 그 빛을 잃거나 '페이커'와 '뱅'의 캐리력 발휘에 문제가 생기거나 신예들의 변수가 부정적으로 터지는 등. SKT T1은 위의 가정 중에 하나만 발현되어도 다시 무너질 수 있다는 걸 명심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