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은 반쯤은(혹은 더 많이) 확률적인 요소들로 만들어져 있다. 얼핏 보기에는 그저 상관이 없는 것일지라도, 모든 것은 잘 짜인 시스템을 통해 게임 플레이로 구현된다. 게임을 만드는데 들어가는 수학적인 요소들은 물론이고, 내가 아이템을 먹을 가능성부터, 내 캐릭터의 공격이 적에게 명중하기까지 다양한 공식들에 확률이 적용되어 있다. 고전 TRPG의 명중굴림부터 현재의 게임에 이르기까지 확률은 게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렇기에 게임은 확률이라는 것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유지한다. 예로부터 TRPG는 4면체부터 20면체 주사위를 굴려서 명중부터 내성까지 대부분의 행동을 결정했고, 무대가 컴퓨터와 콘솔로 옮긴 지금에서도 공격과 명중, 치명타 등 많은 시스템은 지금까지 확률의 영역에서 다뤄지고 있다.

동시에 확률은 게임을 플레이하는 목표를 제공하기도 한다. 요즘 게임의 엔드 콘텐츠는 파밍과 성장으로 귀결된다. 무작위로 등장하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우리는 계속해서 게임을 플레이하며, 이를 통해 더 오랜 시간 게임을 즐길 수 있는 동력을 만든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확률'에 고통과 스트레스를 동시에 받는다.

이는 기자 본인은 물론이고 우리의 게임 생활에도 마찬가지다. 개인적으로 오랜 시간 플레이했던 몇 개의 게임들을 살펴보면, 확률이 게임 내부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그것도 긍정과 부정이 혼재된 모습으로 말이다.


확률은 어떻게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가
!감나빗으로 인한 스트레스들

확률의 고통스러움으로 가장 악명이 높은 것은 아마도 'X-COM'이 아닐까. 가까운 거리에서도 빗나가버리는 스톰트루퍼급 사격실력을 갖춘 요원들이 나오는 것은 A부터 Z까지 모든 것이 '확률'을 기반으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게임을 플레이한 사람들이 입을 모아 '어렵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모든 것이 확률에 기반을 둔 게임 플레이에서 기인한다.

X-COM에서의 확률은 주요 콘텐츠인 전투 시스템에서 갑작스레 튀어나오는 제한으로 작용한다. 맞을 것으로 생각했던 총알이 빗나간다든가, 코앞에서도 '!감나빗'이 나오는 것을 두 눈으로 목격하면 답답함에 가슴이 터져버릴 지경. 게다가 후속작에서는 적군 구성과 숫자까지 달라지니, 어려움은 더더욱 심화하고 있다.

어려움을 극복하는 재미가 있는 게임이지만, 가끔은 너무하다 싶은 난이도로 돌변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다만, 확률을 올리기 위해서 엄폐물 파괴나 사각에서의 공격을 이용하는 등 전투의 방향이 보다 박진감 넘치는 방향으로 흘러가기는 한다.

▲ X-COM은 확률을 박진감 넘치는 전투의 전제 조건으로 사용한다

확률에 의한 플레이의 제약은 PS 진영으로 돌아온 시리즈 최신작 '몬스터 헌터: 월드'에서도 마찬가지다. 시리즈 내내 최종 콘텐츠였던 소재를 모으기 위한 반복 플레이와 파밍은 이번 타이틀에서도 모습을 바꿔서 등장했다. 출시 전 "랜덤 박스는 즐거움을 망친다"라고 이야기를 했기에, 무언가 편해질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랜덤' 만이 가득한 최종 콘텐츠가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물론, 오랜 시간 들여서 캐릭터의 성장을 이끌어내는 과정에는 비판을 제기할 수는 없다. 다만, 파밍 과정에서의 확률이라는 요소가 플레이에 커다란 제약이 되곤 한다. 게임을 플레이한 사람이라면 아마 공감을 할 것 같다. 키 아이템이 되는 장식주가 드랍되지 않아서 제대로 써보지 못하는 경험 말이다. 장식주 획득을 위한 보완책은 존재하지만, 결국에 이것 또한 랜덤이기 때문에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는 것은 같다.

▲ 할머니, 제 장식주는 심안주죠? / "응~ 독주, 독병주, 독주여~"(실화)

최종 파밍을 위한 몬헌 월드의 장신주 시스템은 결국에는 '테이블 확인'이라는 방법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게임 시스템 내부에서 무작위성을 감당하기 어려우니, 기기의 세이브파일을 과거로 돌려가며 확률을 컨트롤하려 한다. 매우 번거로운 방법이지만, 그럼에도 확률을 통제하겠다는 욕구의 발로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확률은 게임 플레이 전반을 아우르는 시스템의 기반이 되어, 문제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작년 12월 출시한 '제노블레이드2'가 예다. 해당 게임은 취향은 갈리지만, 괜찮은 완성도를 갖춘 타이틀이었다. 식상하기는 하지만 몰입도 있는 스토리, 깊이 있는 전투 시스템,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선보였다. 하지만 캐릭터를 획득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 BM으로서 확률이 자리 잡은 형태, '가챠'와 같았기 때문이다.

▲ 번쩍번쩍 빠찍빠찍하더니 블레이드가 나온다. 연출도 가챠와 같다.

제노블레이드2에서는 무기이자 동료인 '블레이드'라는 존재를 '뽑기'를 통해 획득한다. 물론, 어떤 블레이드가 등장할지는 확률에 따라 정해진다. 뽑기로 등장하는 결과물은 공용 일러스트를 사용하는 블레이드가 대부분이고, 개중에는 독자적인 외형과 목소리를 가지고 있는 레어 블레이드도 존재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 둘 사이에는 큰 성능차이가 있다.

차라리 단순한 성능 차이였으면 이해가 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반 블레이드는 성장에 명확한 한계가 존재하고, 몇몇 특성을 제외하면 크게 쓸모가 없는 것들뿐이다. 심지어 레어 블레이드에서만 얻을 수 있는 스킬들도 존재하므로, 무조건 모든 레어 블레이드를 획득하는 것이 이득이 된다. 게다가 이 블레이드라는 존재들은 다른 캐릭터에게 양도되지 않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힐러에게 '딜러용 전설의 대검(획득 시 귀속)'이 나오더라도 울며 겨자먹기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다.

즉, 제노블레이드2에서의 확률은 모두 플레이어가 통제할 수 없는 형태로 작용한다. 레어블레이드를 얻기 위해서 무의미한 시도를 반복해서 해야 하며, 양도할 수 없음에도 어떤 캐릭터에게서 나올지도 알 수 없다. 뽑기를 시도할 때마다 게임은 저장되므로, 과거를 돌리는 것도 불가능하다. 플레이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원하는 캐릭터에게 원하는 블레이드가 나오기를 기도할 뿐이다.

▲ 좌측 일반, 우측 레어 블레이드. 성능은 물론 일러스트와 모델링에 들어간 퀄리티도 다르다.

통제할 수 있는 조건이 크게 의미가 없고 결과물을 원하는 형태로도 조정할 수 없다는 문제는 제노블레이드2가 가지고 있는 심각한 문제로 작용한다. 특정 캐릭터의 유무에 따라서 필드에서 찾을 수 있는 숨겨진 요소들도 달라지고, 전투에서도 원하는 성능을 발휘하지 못해 게임의 난이도가 변하기도 한다.

통제할 수 없는 확률 그리고 게임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시스템은, 결국에는 불합리한 존재이자 결과물로 받아들여진다. 그렇기에 해외 미디어의 리뷰에서도 특유의 시스템은 큰 단점으로 지적됐다.


확률은 우리를 강하게 만든다
고난과 역경을 뛰어넘기 위해서 우리는 확률을 통제한다


확률에 기반을 둔 시스템들은 플레이어에게 있어서는 고난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플레이어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게 되는 순간, 확률은 더는 두려운 개념이자 알 수 없는 것에서 벗어나 통제할 수 있고 효율을 추구할 수 있는 것으로 변한다. 그리고 통제할 수 없던 것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추가적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로그라이크, 그중에서도 다키스트 던전이다.

다키스트 던전은 무작위로 등장하는 적들, 죽음에 대한 막대한 패널티, 전투에서의 불확실성까지 종합적으로 갖춘 게임이다. 보기에는 관리할 것이 많고 불확실성이 기반이 되는 '어려운 게임'에 포함될 만한 게임 플레이를 가지고 있다. 횃불부터 캐릭터들의 스트레스까지 게임 내의 모든 것은 확률에 기반을 두어 진행된다. 그렇기에 다키스트 던전은 플레이어에게 항상 긴장감을 부여하며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맞서는 과정을 겪는다.

하지만 게임은 캐릭터가 받는 스트레스를 최저한으로 관리하고, 주차(Week)가 증가하는 중반부터는 RPG에서 시뮬레이션과 유사한 형태로 장르의 비중이 달라진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플레이어가 게임에 익숙해질수록 로그라이크에서 효율만을 좇는 '악덕 고용자 시뮬레이터'로 양상이 변화한다. 전투에서 확률이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맞지만, 전투 외적인 곳에서 확률을 통제하려는 시스템들이 작용하는 것이다.

▲ 다키스트 사업장은 기업 내 정신재해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는 기벽이 괜찮은 캐릭터들만을 육성하고, 영웅들의 긍정적인 기벽을 강화하며,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등 게임 시스템 내부적으로 높은 무작위성을 '통제할 수 있는' 방향으로 시스템이 설계되어 있기에 발생하는 일들이다. 그러므로 시간이 지나 플레이어는 자연스럽게 불확실성을 줄여나가기 시작하며, 확률을 자신에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용하기 시작한다. 기벽이 괜찮은 1군은 각종 의료 혜택과 레어 장비를 지급하고, 반복 작업용 3군 영웅은 정신병에 걸리면 해고하는 것도 다 이런 이유에서다.

확률이 지배되면서 게임의 난이도가 확연하게 줄어드는 사례들도 있다. 턴제 전략에서 명중 확률을 올려주는 스킬이나 장비를 지원함으로서 플레이어가 고민하고 선택하는 과정을 통해 확률을 통제할 수 있도록 한다. 때로는 캐릭터의 스킬이 방어나 회피를 100%로 만드는 기능을 하기도 하며, 이를 통해 게임의 난이도를 조절한다.

생각해보라. 보스전에서 명중 확률이 20%밖에 되지 않는데, '할 만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겠는가. 아니면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겠는가?

▲ 슈로대의 정신기는 소수가 다수와 대적하는 발판이 된다. 안 그랬으면 난이도가 엄청났을 것이다.

시스템 내부에서 작용하든, 외부에서 확률이 표기되든 간에 확률은 결국 플레이의 제한에 본질이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다만, 게임 내에서 보완할 방법을 갖추는 것이 반드시 필요해진다. 심지어 무작위로 정해지는 던전 디자인이 특징인 로그라이크 게임이라고 할지라도, 플레이어의 노력을 보장할 수 있는 장치(NPC 구출 등)들을 갖춰 두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기에 확률은 지배할 수 있어야 한다.
확률을 거부할 수는 없다. 다만 보완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앞서 말했듯이, 게임과 확률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확률은 우리가 게임을 플레이하는 모든 과정에서 영향을 미친다. 또한, 플레이어들은 무작위로 설정된 게임 내의 환경을 제어하는 과정을 통해서 쾌감을 느낄 수 있다.

우리는 게임 내에서 치명타 확률을 올리고, 생존을 위해 회피와 방패막기 확률을 확보하고, 효율을 위해 캐릭터의 장점을 끌어올리는 등 '확률을 지배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을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확률은 더이상 제어할 수 없는 무언가가 아니라, 통제할 수 있는 것으로 인식이 변한다. 잘 쓰면 목표와 재미를 줄 수 있는 것으로 가치가 재정립 된다.

결국, 유의점은 '적절한 곳에 써야 한다'는 점이다. 게임 플레이에 제한을 두는 방식이 아니라, 100%는 아니더라도 유저들로 하여금 통제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작동해야 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확률을 이용한 시스템이 게임 플레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침에도, 통제의 여지가 없다면 피로도가 급격히 증가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게임 내부의 확률이 아닌, 외적인 확률로 말미암은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 시점이다. 그렇기에 더더욱 게임 내에서의 확률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시스템 속에 녹아들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주사위는 '다이스 갓'의 손이 아니라 플레이어가 어떤 방향으로 던질지를 고민할 때에 즐거움으로 변할 테니까.

▲ 확률, 다이스라는 무작위성은 '다이스 갓'이 아닌 플레이어의 손 위에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