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위권 팀의 경기를 보고 있으면 실망스러운 경우가 있다. 패배했음에도 같은 패턴과 실수를 반복하면서 나아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것. 새로운 시도조차 하지 않고 무기력하게 패배했을 때 가장 실망하곤 한다. 현 상황과 관련 없이 바론 지역에서 승부를 보는 운영. 락스 타이거즈 역시 오랫동안 그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고 한다.

특유의 공격성 역시 한계를 보이는 듯했다. 이번 시즌에는 첫 경기에서 SKT T1을 상대로 공격적인 탑 다이브로 화려하게 한 세트를 따냈다. 하지만 마지막 3세트에서 상대의 깔끔한 대처에 번번히 막히면서 길을 잃어버렸다. 그렇게 락스의 공격 방식이 상위권 팀에게는 통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달라진 락스가 27일 경기에서 2위 KT를 꺾는 대이변을 일으켰다. 대처하고 일어설 틈조차 주지 않은 2:0 압승이었기에 더욱 놀라웠다. 단순히 '운영의 락스'라는 표현으로 설명할 수 없었다. 밴픽부터 플레이까지 철저하게 준비해 자신들이 원하는 그림을 완성한 것이다.

락스는 시즌 시작 전만 하더라도 팀원 스스로 '강등권 팀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런 팀이 KT라는 강팀을 꺾기까지 어떤 발전이 있었던 것일까.


락스 원하는 그림을 그리다
메타가 아닌 본질 꿰뚫다




락스와 KT 전에서 킬 관여율 100%에 달하는 조이가 등장했다. 모든 교전에 합류하고 한타 때도 어마어마한 딜을 넣었다. 너무나도 완벽했기에 왜 밴하지 않았을까는 의문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이전 경기들을 살펴보면, KT가 그럴 만 했다. 1라운드 대결에서 '라바' 김태훈의 조이는 KT에게 2전 전패를 기록했다. 특별히 힘을 발휘하지도 못했고, 다른 선수들처럼 조이 OP 설이 나오지도 않았다. 게다가 '폰' 허원석에게는 조이를 카운터칠 수 있는 말자하라는 카드가 있었다. 챔피언 너프 이후 활용하기 안 좋다는 인식 때문인지 밴되는 경우도 드물었다. KSV-진에어 모두 조이로 KT를 상대했지만, '폰'의 말자하에 번번히 조이가 무너지는 장면이 나왔다.

하지만 락스 타이거즈는 달랐다. 티어가 내려간 말자하를 확실히 밴해버리면서 조이를 가져간 것. KT가 자신들의 승리 공식이라고 할 수 있었던 원거리 딜러 집중밴과 '데프트' 케이틀린 공식을 완성하는데 집중하는 사이에 허를 찌른 것이다. '라바'의 조이에 힘을 실어주면서 지난 경기에 대한 편견을 완벽히 뒤집어버렸다.

밴픽은 깔끔하게 플레이로 이어졌다. KT의 핵심인 봇에서 교전이 이러나자 '라바'가 발 빠르게 합류해 킬을 내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KT 봇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상윤' 권상윤의 바루스가 풀리면서 락스가 원하고 KT가 원하지 않은 그림이 나오고 말았다.

이번 시즌 '라바'하면 수많은 상징적인 챔피언이 떠오른다. 롤챔스에서 가장 먼저 꺼낸 갈리오, 시즌 첫 펜타킬을 낸 코르키, 상대를 휘두르는 에코, 단단한 아지르 등 많은 카드를 보유했다. 그럼에도 3연패로 시작했던 조이까지 완벽히 보완한 것이다. 코치진의 밴픽을 완벽하게 소화해낼 수 있는 선수로 거듭났기에 더 대단할 수밖에 없었다.


2세트에서는 또 다른 락스만의 카드가 등장했다. 메타와 맞는다고 볼 수 없는 '키' 김한기의 쓰레쉬가 등장한 것이다. 무난한 플레이로는 절대 승리할 수 없는 챔피언이라는 의식이 강했다. 그런데, 한발 먼저 움직이고 발 빠르게 합류하면서 상대 쉔보다 활약하는 장면이 나왔다. 논타겟 CC를 보유한 쓰레쉬지만, 미리 자리 잡고 일방적으로 핵심 딜러인 '폰-데프트'를 낚아채는 데 성공했다.

이렇듯 락스 타이거즈는 단순히 1티어라는 상징을 넘어선 플레이를 선보였다. 브라움-타릭-알리스타와 같은 챔피언이 대세픽이지만, 그 이상을 선수들의 역량으로 넘어선 것이다. 관계자들이 쓰레쉬 픽에 의문을 가질 때 락스 타이거즈는 확신이 있었다. '키'는 MVP 받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고 했고, 코치진 역시 그를 믿어줬기에 나올 수 있었던 장면이었다. 이렇게 예상하지 못한 플레이를 펼칠 수 있는 팀이기에 락스 타이거즈의 남은 경기가 더욱 기대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락스 앞에서 '정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
더욱 매서워진 '호랑이'의 공격 본능



락스 타이거즈의 KT 전은 화끈함 그 자체였다. 방송사에서 다시보기를 돌려볼 틈조차 주지 않고 몰아쳤고 사방에서 교전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렇게 일방적으로 공격하는 경기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락스 팀원들의 플레이에서 가장 무서운 점은 선수들이 점멸과 궁극기를 쓰는데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는 것이다. 화끈한 공격의 연속에 상대가 대처할 틈이 없었다. 바론을 가져간 1세트 대치 상황에서 '상윤'의 바루스가 과감히 앞점멸-궁극기로 '데프트'를 끊어버렸다. 2세트에서는 '성환' 윤성환의 세주아니가 타겟팅 CC를 시전하는 것처럼 엄청난 적중률과 패기로 상대를 압도한 것이다. 이를 피하더라도 '키' 쓰레쉬의 사형 선고가 날아와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 소환사 주문으로 '정화'를 들지 않았던 '폰'의 선택이 결과적으로 잘못된 것이었다.

▲ SKT T1 전 1세트 역시 '정화'는 없었다



이런 장면은 이전 SKT T1 전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 SKT T1이 승리했지만, '성환' 세주아니의 맹공에 소환사 주문으로 '회복'을 든 '페이커' 역시 초반 교전에서 고전했다. 다음 2세트에서 세주아니가 나오자 '정화'를 들었으니까. 그만큼 1세트에서 보여줬던 '성환'의 플레이가 세주아니의 무서움을 일깨웠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 락스 '성환' 세주아니의 기세가 KT 전 2세트까지 이어진 것이다. '폰' 역시 '페이커'와 마찬가지로 이 정도일 줄은 생각도 못 할 만큼 락스 타이거즈의 공격력이 막강했다.

어제 경기만 보면, 락스를 상대할 때 정화는 필수 소환사 주문이 된 느낌이다. 상대가 생존기를 쓰기도 전에 락스의 CC기가 수도 없이 들어오기 때문이다. 더욱 매서워진 락스 타이거즈의 과감한 공격의 끝은 누구도 쉽게 예상할 수 없을 것이다.

락스 타이거즈는 오래전부터 시즌 초반에 패배를 기록하다가 후반 뒷심을 발휘해온 팀이다. 작년 스프링 역시 막판 저력으로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나 했지만, 작은 차이로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지 못한 기억이 있다. '상윤-린다랑-성환'과 강현종 감독이 함께 아프리카 프릭스에서 활동하던 시절. 포스트 시즌에 올라가긴 했지만, 더 높은 곳에 올라가 보진 못했다.

올해는 그들의 절실함이 승리가 될 수 있을까. '상윤'은 KT 전을 앞두고 "어떤 팀을 만나든지 무조건 승리해야만 한다"고 락스의 절실한 마음가짐을 표현한 바 있다. 가장 까다로운 상대 중 한 팀을 꺾었고, 이제 포스트 시즌을 향한 막판 스퍼트를 할 차례다. 그들의 종점이 어디일지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