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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07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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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8X8 묘수풀이의 매력, '인투 더 브리치'

정필권 기자 (Pekke@inven.co.kr)

2012년 출시한 'FTL: Faster Than Light (이하 FTL)'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는 게임이었다. 우주 배경, 시뮬레이션에 로그라이크를 접목한 것도 주목받을 만했고, 크라우드 펀딩으로도 게임을 개발·출시할 수 있고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게임이었다. 난이도는 어려웠지만 조절할 수 있었고, 다양한 퀘스트와 무작위 요소들로 긍정적인 평가를 이뤄냈다. 정말로 '잘 만들어진' 인디 게임의 표본과 같은 작품이었다.

그리고 6년이 지난 지금, 개발사 서브셋 게임즈 (Subset Games)는 간만의 신작 '인투 더 브리치(Into The Breach)'를 선보였다. 자신들의 장점인 도트 그래픽, 압축적인 게임플레이를 그대로 유지한 턴제 전략을 표현했다. 선택과 실패, 성공이 주는 재미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새로운 게임을 탄생시켰다.


왜 '묘수풀이' 인가?
어느 정도의 답이 있는 전략, 압축적인 게임 플레이

'인투 더 브리치'는 턴제 전략 시뮬레이션이지만, 일반적인 게임과는 조금 양상이 다르다. 필드는 스크롤이 없어도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좁고, 조작할 수 있는 유닛은 단 세 개로 한정된다. 넓은 스테이지에서 진행되는 게임이 장시간 플레이하는 바둑에 비견된다면, '인투 더 브리치'는 한정된 상황에서 정해진 순서대로 수를 두는 묘수풀이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준다.

▲ 좁고, 둘 수 있는 수는 적고, 지킬 집들은 많고.

묘수풀이는 결국 대국의 일부를 떼어와, 퍼즐에 가까운 형태로 만들어낸 것이다. 정답이 정해져 있다는 점에서는 퍼즐과 유사하나, 답을 도출해 나가는 과정에서는 깊은 사고를 필요로 한다. 수를 읽어내고 순서대로 배치하는 과정은 대국 전체의 흐름을 알 수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대국 전반, 그리고 당시 포석들의 의미를 볼 수 없다면 묘수풀이는 그저 알 수 없는 수들을 나열한 것밖에 되지 못한다. 장기나 바둑을 모르는 사람이 묘수풀이를 풀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이유기도 하다. '인투 더 브리치'는 이와 같은 면에서 묘수풀이가 가지고 있는 흐름을 그대로 재현한다.

▲ 행동 패턴의 흐름을 알아야 풀 수 있는 '퍼즐'의 일면들

드넓은 반상은 8X8 블록으로 한정되며, 100수, 200수가 넘어가며 생기는 변수는 무작위로 구성되는 환경요소로 대체된다. 말과 한 수의 역할은 서로 능력이 다른 유닛(mech, 메크)들이 대체하게 된다. 지켜야 하는 것들이 사전에 배치되고, 적절한 유닛 배치를 통해 스테이지 클리어라는 정답에 도달해야 한다. 턴 제한도 6턴 정도로 짧다. 콘텐츠는 압축되어 있고 그 안에서 최적의 경로와 전략을 세우는 것이 핵심이다.

물론, 로그라이크 요소를 가져온 만큼, 무수한 실패와 시행착오를 거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다.


미래는 항상 정해져 있다
우리를 괴롭히는 '선택'의 영역

게임을 플레이하며 우리는 계속해서 선택을 마주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인투 더 브리치'는 묘수풀이에 가까운 게임이다. 그렇기에 턴 제한은 빠듯하고 끊임없이 최적의 선택을 해야만 한다. 한 번의 실수는 턴을 무를 수라도 있지만, 두 번은 없다. 유닛의 움직임 하나, 적의 위치, 활용할 수 있는 환경 요소들 등 모든 변수를 한 턴에 고려하는 과정이 요구된다.

적극적으로 환경 요소를 활용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점도 게임의 깊이를 늘리는데 영향을 미친다. 게임 내에는 유독 직접적인 대미지를 주기보다는, 적을 밀어내거나 당기는 효과가 부여된 무기와 유닛들이 다수 포진되어 있다. 그리고 적은 단 세 대뿐인 내 유닛이 동시에 상대할 수 없는 수가 등장하며, 체력도 비슷하거나 더 많은 수준으로 설정된다. 즉, 애초에 소수로 다수를 상대하는 시점에서 게임이 진행된다는 의미다.

소수가 다수와 대적해야 하므로, 게임은 필연적으로 주위 환경을 이용한 전략에 메리트를 준다. 화염 대미지를 직접 활용하는 유닛들이 있는 것은 물론이고, 지상형 버크가 물에 빠지면 한 번에 죽는다든가, 얼려서 행동을 일시적으로 멈추는 등 소수 대 다수전을 위한 방법으로 그려지고 있다.

▲ 대표적인 환경요소는 물에 빠뜨리는 '수장'이다

피치 못한 상황에서 무언가를 지키는 것도 결국 선택의 영역에 들어간다. 건물이 2의 피해를 입을 상황에서 파일럿을 포기하고 방어를 할 것인지. 아니면 옆으로 밀어내서 1의 피해만을 입는 건물을 파괴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이렇게 개발사는 순간의 결단이 필요한 딜레마를 계속해서 우리에게 던진다.

게다가 이전에 출시했던 FTL에서도 마찬가지지만, 메리트가 있다면 반대로 어디인가 디메리트가 있는 유닛 특성은 생각할 거리를 배로 늘린다. 디메리트를 어떻게 해서 줄일 것인지도 문제가 되는 것은 물론, 돌진 기능이 있는 메크들은 반드시 부수적으로 피해를 입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 숨겨진 유닛까지 총 9종류의 스쿼드가 제공된다. 그리고 일장일단이 분명하다.

다음 턴이 어떻게 진행될지 알 수 있다는 점도 게임 플레이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적이 어떤 순서대로 공격할 것인지는 플레이어가 미리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게임은 퍼즐 게임과 같은 양상을 보여준다. 적을 이리저리 당겨서 서로 공격하게 하는 선택지를 택할 수 있고, 이를 반드시 활용해야만 게임이 원활하게 진행되기도 한다. 어찌 보면 잘 짜인 퍼즐 조각을 끼워 맞추는 느낌과도 같다.

한치 앞도 모를 것만 같은 미래지만, 사실은 바로 직전의 행위가 만들어낸 결과에 가깝다. 그리고 바로 앞의 상황이 정해지는 것은 곧, 현재 결과의 연장선으로 미래가 항상 정해져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는 게임의 엔딩에서도 마찬가지다.

모든 버크를 물리쳤음에도 주인공들은 같은 시간선에서 살아가지 못한 채, 다시금 새로운 시간선으로의 여행을 반복한다. 오프닝에서 괴수 침공을 막지 못해 시간선을 되돌렸던 시점, 괴수들이 침공을 시작하던 새로운 시간선으로 자리를 옮긴다. 큰 틀에서 보자면 성공이지만, 동시에 실패한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개인의 경험과 안전한 시간축이라는 유·무형의 결과만은 남는다.

▲ 성공은 한편으로는 실패다. 오프닝은 많은 것을 의미한다.


이 개발사가 '실패'를 대하는 방법
당신의 실패는 항상 결과를 낳는다.

전작인 FTL에서 보여줬듯, 서브셋 게임즈는 실패를 새로운 기회로의 연장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시뮬레이션에 로그라이크를 접목함으로써 신선한 시도를 했던 것을 돌이켜보자. 대부분 '와장창'으로 끝나는 게임 플레이에서 플레이어들은 실패를 통해 무언가를 배우는 과정을 겪는다. 주위 환경은 무작위로 구성되지만, 적어도 도전과제와 퀘스트를 통해서 새로운 함선을 얻을 수 있었다.

'인투 더 브리치'에서도 이런 요소들은 마찬가지다. 으레 그렇듯 어떻게 나올 수 없는 전투 상황 속에서 실패는 당연히 따라온다. 실패는 곧 지금까지 쌓아온 결과물들을 모두 잃는 것으로 이어진다. 문제는 크나큰 리스크 속에서 무언가를 남길 수 있느냐다.

▲ FTL에서도 마찬가지로 다뤘던 것들이다.

로그라이크에서 죽음은 곧 영원한 실패를 의미했다. 세이브 로드는 허용되지 않았고, 실수했다면 큰 대가가 따랐다. 던전의 끝자락에서 무언가를 가지고 올 수 있는 것은 오직 특정 분기에서만 허용되는, 만나기 어려운 행운과 같은 특권이었다. 하지만 인투 더 브리치에서는 실패의 끝자락에서, 다음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일말의 기반이 제공된다.

'인투 더 브리치'에서는 세이브와 로드는 지원하지 않으나, 실패하더라도 큰 리스크를 떠안게 되지는 않는다. 다른 시간선, 타임라인으로 이동하면 그만이다. 곤충들의 공세에 게임오버를 당하던, '아 답이 없다'고 판단해서 다른 타임라인으로 옮기든 간에, 육성한 승무원 1명은 보존할 수 있다.

또한, 무수한 실패와 도전을 통해 새로운 요소들을 해금하는 것을 장려한다. FTL에서 퀘스트를 통해 함선을 해금하는 구조는 도전과제를 이용한 점수로 대체되었으며, 당연하게도 도전과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도와 실패, 시행착오가 수반된다. 실패는 곧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작게나마 유용한 경험과 결과를 남기고 극복할 수 있는 대상이 되는 셈이다.

▲ 실패해도 소중한 무언가는 남길 수 있다


서브셋 게임즈가 생각하는 '로그라이크'
실패에 대한 리스크가 아니라 무작위를 극복하는 즐거움에 대하여

전략 시뮬레이션에 로그라이크 장르를 접목하는 시도를 보여줬던 서브셋 게임즈는 이번 '인투 더 브리치'에서도 로그라이크에 전략을 섞는 선택을 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자신들이 추구하는 로그라이크 장르의 장점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드러낸 것처럼 보인다.

이들이 보는 로그라이크의 장점은 단순히 어렵고, 실패에 대한 큰 리스크를 부여하는 것이 아니다. 높은 난이도를 통한 반복,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서브셋 게임즈의 시선에서 로그라이크의 본질은 무작위성 속에서 결과를 통제할 수 있을 때의 즐거움이다. 그렇기에 극복하기 막막한 '매우 높은 난이도' 보다는 플레이어가 고민을 통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난이도, 조절할 수 있는 난이도를 택했다.

어려움은 장르적인 특징을 관통하는 것이 아니라, 무작위와 초기화에 따라오는 것으로 본다. 결국, 중요한 것은 '무작위'를 통한 반복에도 새로움을 줄 수 있는 구조, 영구한 죽음에도 자그마한 보상이 남는 구조다. 무작위성에서 태어난 변수가 많은 요소는 플레이어가 조절할 수 있어야 하며, 결과적으로 누구나 서서히 로그라이크에 적응할 수 있는 장치로 작동한다.

▲ 난이도 조절은 게임을 시작하며 언제든 설정 가능.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로그라이크를 활용하던 서브셋 게임즈는 이번 신작에서도 무엇이 핵심인가를 정확하게 담아냈다고 평가하고 싶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게임 구조에서 식상함을 주지 않기 위해 노력한 흔적들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단 두 명으로 구성된 조촐한 팀임을 고려하면, 이는 놀라운 완성도다. 그래서 '인투 더 브리치'는 더욱 가치가 있다. 조금 더 생각할 거리를 담아내는 게임 디자인, 로그라이크의 장점을 가져온 것은 한 턴 한 턴을 숙고하는 매력으로 완성됐다. 전반적인 볼륨이 부족한 것은 아쉽지만, 200MB도 안 되는 저용량, 가격을 생각해보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들이다. 통제할 수 있는 무작위가 주는 즐거움은 여느 AAA 게임 못지않으니 말이다.

▲ 그래서 나는 오늘도 '실패'를 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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