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미네소타 부두 노동자들이 임금 미지급에 대해 항의하고 있다. (출처 FLSA)

국세청의 국세통계연보를 보면, 연봉 1억 원이 넘는 근로자는 2016년 65만3천 명으로 처음으로 60만 명을 넘어섰다. 다양한 이유로 근로자의 평균 급여는 상승하고 있지만, 노동의 대가를 제대로 지불받지 못하고 있는 근로자도 늘어나고 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7년 8월 기준으로 전국 체불 임금액은 8,909억 원으로 피해 근로자는 21만 9,000명에 이른다. 체불 근로자는 2013년 26만 명에서 2016년 32만 5,430만 명으로 증가세에 있다.

이 중 게임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인지 알 수 있는 통계는 없다. 모바일 골드러시라고 표현되던 초창기 난립 시대도 아닌데도, 임금체불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기사를 각 언론사가 명절만 되면 쏟아내는데도 근절되지 않고 있다. 게임 개발과 지원조직을 모두 포함한 게임 산업 종사자들의 임금체불, 그 끝나지 않은 고통과 대면하고 왔다.

* 취재 과정에서 만난 임금체납피해 근로자들은 임금 받기를 포기했거나 받기 위한 과정에 있습니다. 이들은 임금체불에 대한 현 상황에 대해 억울함을 토로하고 상황이 알려졌으면 좋겠다고 하면서도, 어찌 됐든 간에 돈을 받고서 잊고 싶어 하므로 송사가 진행 중인 기업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원치 않았습니다. 따라서 부득이하게 해당 기사에 등장하는 기업과 인물은 의미 없는 이니셜로 표기합니다.

고용노동부는 근로기준법 제43조의 2항 및 같은 법 시행령 제23조의 3에 의거, 공개기준일(매년 8월 31일) 이전 3년 이내 임금 등을 체불해 2회 이상 유죄가 확정된 체불사업주의 성명, 나이, 체불액 등을 열람 가능한 공공장소에 공개하고 있습니다.




게임 산업에서 임금체불이 일어나는 산업적 배경

흥행 산업에 속하는 게임 산업의 임금체불은 타 산업과 다른 특징을 보인다. 게임 산업은 무형 자산인 소프트웨어(앱 등을 모두 포함한)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기 때문에 자본 의존도가 타산업 비해 매우 낮다. 제조업 같이 공장과 배후부지가 필요하지 않으므로 극단적으로 컴퓨터 한대만 있어도 산업에 진입할 수 있다. 그래서 산업 진입장벽이 매우 낮다.

진입은 쉬운 반면, 수익 발생 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초기 모바일 시장은 개발 기간이 짧아 수익공백기간 (Death valley)가 비교적 짧은 편이었으나 지금은 PC플랫폼 못지 않은 자본, 인력, 시간이 소요된다. 수익공백기간 동안은 오직 투자 유치나, 자본금에 기댈 수밖에 없으며 개발 기간이 예정보다 늘어나면 투자금을 소진, 인건비를 지급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다. 게임 산업 임금체불은 대부분 이렇게 발생한다.

▲ 게임 업계의 매출 규모는 계속 커져왔으나... (2017년 대한민국 게임백서)



임금체불 당하지 않는 최선의 방법은 '탈출'

근로자가 노동의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 상식적인 이야기이긴 하나, "지분을 줄 테니 무급으로 근무해달라. 대박 나면 너 좋은 거", "너 말고 얼마나 사람이 많은데", "야 뭔 돈을 받으면서 일하려고 하냐, 경험 쌓게 해주는데"라는 소리를 듣다 보면, 스스로 권리 행사에 소극적이게 된다.

실제로 이번 취재를 위해 만난 대부분 노동자가 정당한 노동 대가를 요구하면서도 위축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들 중에는 라이트 게이머도 이름만 대면 알만한 기업이나 유명 IP를 가지고 개발, 서비스하는 기업에 근무한 사람도 있었다.

즉, 가장 좋은 것은 근로 환경에 대해 명확히 계약하고 기업 재무건강상태를 제대로 파악하여 임금체불을 당하지 않는 것이다. 다만 흥행산업이기 때문에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으니 임금체불을 당했을 때 피해를 어떻게 최소화하는지가 최선의 선택지다.

개발자 출신인 노무법인 정원의 이춘성 노무사는 "징후가 나타날 때 그만두는 게 사실은 가장 속 편하다. 체불이라는 게 생기면 받기가 어렵다. 안 만드는 게 제일 중요하다" "그러나 이 게임이 대박 날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를 하기 때문에 남아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한다. 그 역시 임금체불을 당한 경험이 있다.

사람 심리라는 게 그렇다. 제삼자가 볼 때는 ‘애초에 대박 날 게임이었으면 돈 냄새 맡은 투자자나 퍼블리셔가 가만히 있었을리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절벽 끝에 내몰린 사람들은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일 것이고 대박에 대한 욕망은 게임으로 투영된다.

개발 직군 A씨는 “1년 넘게 만들었어요. 어떻게 해서라도 출시를 하고 싶었어요. 돈도 돈이지만, 커리어 관리 차원이 더 컸던 거 같아요. 이대로 무너지느니 조금 참아보자는 생각도 있었고요. 주위 동료들이 하나씩 사라질 때도 이를 악물고 버텼어요. 나중에는 쌀 살 돈도 없어서 제3금융권을 이용했어요. 전 그래도 혼자라서 그나마 버틸 만 했지만, 가정이 있는 직원들은 정말 바라보기 힘들었어요.”라고 4개월의 무급 노동을 회고했다. A씨의 게임은 결국 출시되지 못했고, 임금체불 건을 포함, 지리한 법정공방을 2년째 이어가고 있다.

일반적으로 임금 체불은 몇 가지 징후 이후에 일어난다. 취재를 진행하면서 만난 사람들의 백이면 백, 체불은 항상 급여를 분할 지급하거나 지급 기일이 늦어지는 것부터 시작했다.

근로기준법 43조에는 급여를 한 달에 한 번 이상 정해진 날 지급하도록 명시되어 있다. 이는 근로자가 한 달 생활을 예측하고 예측 가능한 범위 내에서 경제생활을 영위하게끔 하기 위해서다. 직장인들은 월급날과 휴일이 겹치면 그 전에 급여가 들어오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월급날에서 하루라도 지급이 밀리면 임금체불이 성립하기 때문이다.

급여를 분할 지급하거나 기일이 조금 늦어지는 이 시기의 회사는 회사 임원의 자본 투입 등 가수금하는 방법으로 세금이나 임대료 등을 정산하고 남은 잔액을 직원에게 지급한다. 직권폐업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아직은 세금을 잘 내는 단계다.

보통 이러면 다음 달에 차액분이 전액 지급하기도 하나, 수익 창출을 할 수 없는 개발사는 별도의 투자를 받거나 임원의 가수금 외에는 임금을 줄 여지가 없다. 사실상 이때 탈출하는 게 근로자로서는 가장 타격이 작다.

▲ 징후가 보인다면 어서 빨리 나가도록 하자

그러다 대표는 어느 날 직원들을 모아 놓고 이런 이야기를 한다. “지금 회사가 어려우니까, 월급을 줄 수가 없다. 그런데 이거면 이겨내고 출시하면 우리 고생을 보상받을 수 있을 거야” 혹은 “지금 추가 투자 건에 관해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다. 이번 달만 넘겨보자”라고. 피해자들은 입을 모아 “우리만 그런 게 아니구나, 어디 메뉴얼이라도 있어요?”라고 나에게 물어볼 정도로 비슷한 경험을 공유했다.

이 단계부터는 누가 봐도 명확한 체불이 시작된다. 더는 경영진의 개인 재산 투입이 어려워진 지경으로, 보유액이 없거나 세금, 임대료 등을 단 몇 달간만 정산할 수 있는 최소 금액만 남아있는 상태다. 따라서 언제 급여를 받을지 모르는 상태다. 제조업 같은 경우 부동산, 재고, 기계 등 자본을 처분하여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지만, 게임 산업은 특성상 추가 투자 유치를 제외하고는 방법이 없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건강보험료, 국민연금 미납 통지서가 집에 도착했음을 알게 된다. 이 통지서는 4대 보험료를 회사에서 납부하지 않고 있으니 당사자가 기업에 확인해보라는 안내다.

한 업체 지원조직에 몸담았던 B씨는 아직도 등기우편이 도착했다는 소리만 들으면 몸이 굳는다. “석 달 정도 월급을 못 받았을 때에요. 부인 걱정시키기 싫어서 어떻게든 변통해서 월급을 집에 가져다주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집에 등기가 오면서 아내도 알게 됐어요. 많이 울더라고요. 그다음부터는 등기라는 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거 같아요”

이쯤 되면 사실상 갱생의 가능성이 ‘0’에 수렴하는 단계다. 사무실 임대료를 내지 못해 보증금이 잠식되다 보니 잔여 보증금과 임대료를 상계하고 남은 금품으로 작은 사무실로 이전하기도 한다. 통상적으로 상기 단계를 거치는데 반년에서 8개월 정도가 소요된다.

거액의 투자금으로 유명한 A사 퇴직자 C씨는 “처음엔 그러더라고요. 회사 힘드니까 다음 달에 주겠다, 그러다가 다음 달에는 전액도 아니고 되게 적은 금액이 찍히더라고요. 그리고 그 이후에는 또 한 푼도 안 주고. 그렇게 6개월이 밀렸어요. 투자받으면 주겠다고. 그런데 투자받으니까 뭔 기준을 세워서 누군 주고 또 누군 조금 주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나왔죠. 뭐. 근데 알고 보니까 첫 임금 체불이 시작된 지점에서 3년을 법에서 인정해주더라고요. 계속 체불 당해오면서 그 3년 중의 일부가 이미 사라진 거죠."라고 말했다.

임금채권은 민법상 단기 채권으로, 소멸시효가 3년이다. 따라서 아무리 오래 재직하였어도 청구 가능한 범위는 청구한 날 기준으로 역으로 3년 내 것만 가능하다.

가장 중요한 건 제때 ‘탈출’하는 것이다. 체불이 시작된 상황에서 경영진들이 하는 흔한 거짓말이자 대부분 대표가 하는 "지금 위기를 같이 넘기면 절대 잊지 않을 것이며, 지금 고생을 상쇄할 보상을 지급하겠다”라는 이야기를 절대로 믿지 말라고 전문가들은 충고한다.

▲ 아니야... (출처 MBC 무한도전)

장기적인 관점에서 고생으로 게임이 대박을 친다면 그에 못지않은 보상을 받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솔깃할 수 있는 발언이나, 현실적으로 그러한 경우는 거의 없다. 언제가 될지 모를 대박을 기다리면서 카드빚, 대출이자, 심지어 사채를 끌어 생계를 유지하는 건 결국 본인에게만 부담이 간다는 점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

앞서 말한 징후들이 발견되면 체불 금액이 400만 원을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퇴사를 선택하는 게 좋다. 400만 원 이라면 소액체당금 제도로 상대적으로 쉽게 체불금품을 손해 보지 않고 전액 회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춘성 노무사는 "희망 고문에 속지 말라”라고 충고한다. ”해당 사업장에 오래 머물러서 돈이 나올 것 같으면 애초에 임금체불을 하지 않으니, 괜히 좀 더 상황을 지켜보자는 생각을 하지 말고 차라리 나와서 실업 급여를 받으면서 다른 직장을 알아보는 게 정신적 스트레스가 덜하다”라는 설명이다.

임금체불은 실업급여 인정사유로 4대 보험에 가입되어 있고 직장 생활을 180일 이상 하고, 1년 내 실업 급여를 받은 기록이 없다면 무난히 받을 수 있다.

회사를 그만둔 경우에도 일반적일 때에는 급여를 지급받을 수 있다. 근로기준법 제36조는 ‘사용자는 근로자가 사망 또는 퇴직한 경우에는 그 지급 사유가 발생한 때부터 14일 이내에 임금, 보상금, 그 밖에 일체의 금품을 지급하여야 한다. 다만, 특별한 사정이 있을 경우에는 당사자 사이의 합의에 의하여 기일을 연장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여기서 ‘특별한 사정’을 해석함에 있어 대법원은 “기업이 불황이라는 사유만으로 사용자가 근로자에 대한 임금 등을 체불하는 것은 허용되지 아니한다. 그러나 모든 성의와 노력을 다했어도 임금의 체불이나 미불을 방지할 수 없었던 것이 사회 통념상 긍정할 정도가 되어 사용자에게 더 이상의 적법행위를 기대할 수 없거나 불가피한 사정이었음이 인정되는 경우, 그러한 사유는 구 근로기준법36조 위반죄의 책임조각사유가 된다(대법 2008도5984)”라고 해석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추후 주겠다는 식의 요청에 적극적 반대 의사를 보이지 않았다면 근로자의 암묵적 합의에 따른 동조건 만족으로 보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탈출 타이밍을 놓쳤다면?

체불을 당하면 우선 회사를 나가기 전 체불을 증빙할 수 있는 서류를 챙겨야 한다. 체불을 증빙할 수 있는 서류는 크게 3가지로 ‘근로계약서’, ‘대표이사의 체불금품 확인서’, ‘통장 거래 내역’이다.

근로계약서는 실제 해당 사업장에서 근로했음을 입증하는 강력한 서류이자 근로조건을 구체적으로 적시한 문서라 체불금품 산정에 기준이 된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면, 사업장 내 출퇴근 지문기록인식장치, 근무일지, 업무 이메일, 컴퓨터 이벤트 로그 등 실제로 근무했는지 등의 자료를 확보해야 한다.

게임 개발사에 다니던 원화가 사회 초년생 D씨는 애초에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 면접을 본 다음 날부터 나오라고 해서 6개월간 회사에 다녔고 그중 3개월 치를 체불 당했다. 수습 기간이 종료되고도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 나중에 임금이 안 나오자 퇴사한 D씨는 밀린 임금지급을 요구했지만, 회사 대표는 "네가 우리 회사 다녔다는 서류가 어딨냐?"라는 식으로 나왔다. 이런 경우가 있기에 실제로 근무했는지의 자료를 확보해야 한다.

E씨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개인 음악 제작 외주를 생업으로 삼는 E씨는 어떻게 만들라, 편집해달라는 실질적인 '업무지시'를 받으며 업체 사무실에 출퇴근하면서 결과물을 만들었다. 그러나 클라이언트는 결과물이 마음에 안 든다고 보수 지급을 차일피일 미뤘다. 이 회사가 임금체불로 문제가 되자 사업주는 E씨를 '도급근로자'라는 이유로 밀린 임금지급을 거부했다.

E씨는 "여차여차해서 체불금품확인원을 받기는 했는데, 이 업체가 사업 기간이 6개월도 안돼서 어떻게 할 수도 없었어요. 뭐 종잇조각이죠. 그 사람은 처벌을 받기는 했는데, 벌금도 적었고, 지금은 다시 게임 업계에서 일하고 있더라고요."라고 말했다.


대표이사의 체불금품 확인서는 대표이사가 자신이 실제 체불을 했음을 인정하는 자인서다. 대부분의 상식적인 선에서 행동하는 대표들은 자인서에 서명을 하나, 하지 않는 대표들도 있다. 통장 거래 내역은 해당 사업체에서 근로하면서 임금을 받았음을 입증하는 증거이자 체불 시작 시점, 금액을 산출하는 증거로 쓰인다.

이후 할 일은 체불임금을 계산하는 것이다. 진정 내지 고소하기 전 자신의 금액을 알아둘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산이 어렵기도 하고 번거롭기도 해서 보통 전문노무사의 힘을 빌리기도 한다.

가장 먼저 하는 경우는 통상 시급을 계산하는 일이다. 주 40시간제 근무하는 근로자는 1달 소정근로시간은 209시간이다. 따라서 통상 시급이 얼마인지 모르는 경우, 근로계약서나 급여명세서 항목에 기본급을 209로 나누면 통상 시급이 된다.

회사 수당이 복잡하여 계산이 번잡하면, 연장ㆍ야간ㆍ휴일ㆍ연차 수당을 제외한 모든 수당을 합하여 209로 나누면 통상 시급이 나온다. 다만, 이는 1일 8시간 주 5일을 기준으로 하는 계산으로 회사에 따라 다를 수도 있다.

그 외 수당은 근로기준법 제57조 ‘사용자는 근로자대표와의 서면 합의에 따라 제56조에 따른 연장근로, 야간근로 및 휴일근로에 대하여 임금을 지급하는 것을 갈음하여 휴가를 줄 수 있다’에 의거한다. 다만, 보상휴가는 가산휴가를 더해서 지급하여야 하는데, 연장 근로를 4시간 했으면 보상 휴가로 주어지는 시간은 6시간이다. 4시간만 쉬었다고 하면 2시간분 수당을 따로 청구할 수 있다.

탄력적 시간제 등의 방법으로 평균하여 근무했다면 회사는 연장근로수당을 지급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평균 근무시간이 40시간이 넘거나 야간(20:00~06:00)에 근무했다면 회사는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근로기준법 제51조) 연장근로 신청서를 발부하는 회사도 있으나 통 게임 산업에서는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다.

이 계산은 포괄임금 근로계약을 했을 때 해당하지 않는다. 게임산업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포괄임금은 급여를 계산할 때 미리 법정 제수당을 월급에 포함하여 지급하는 약정이다. 즉 야근하든 하지 않든 월급에 야근 수당을 포함하여 주는 급여제도로 보통 포괄임금계약 내역은 근로계약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법정제수당의 산출근거는 근로기준법 제50조, 제53조, 제56조 3가지뿐이다. 연장ㆍ야간ㆍ휴일 법정 제수당은 중복이 가능하므로 각 항목을 따로 계산한 후 서로 더한 값에 통상 시급을 곱한 값이 미지급 받은 법정 제수당이다.

계산이 끝났으면 이제 청구를 하러 갈 차례다. 사실 청구 단계는 매우 간단하다. 돈을 달라고 말하고, 상대방이 돈을 주면 끝이다. 그런데 돈이든 감정이든 엮이기 때문에 지지부진한 아주 지루한 싸움이 되는 것이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사용자와 근로자 간에 끝내는 문제다. 예시 문자처럼 보내서 해결되는 경우도 존재한다.

안녕하세요 저는 귀사에서 퇴직한 OOO입니다. 제가 계산해보니 연장근로수당 X원, 야간 근로수당 X원 휴일근로수당 X원이 입금되지 않았습니다. 혹시 제 계산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으니 별도 계산한 내역이 있으면 제게 보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연락을 기다리겠습니다.

이렇게 연락을 보내면 크게 3가지 반응이 돌아온다. 연락을 받고, 계산 내역서를 보내주고, 언제까지 주겠다고 답하는 경우. 혹은 좀만 기다리라고 하는 경우. 아니면 아예 묵묵부답인 경우. 보통 “힘드니까 좀만 기다려 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퇴직 근로자 F씨는 위와 같은 문자를 보냈더니 “넌 나가서도 분위기 흐리냐. 너 혹여라도 지금 있는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아라, 사활을 걸고 개발하는 사람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칠까 무섭다. 미꾸라지 같은 게 들어와서 물을 망치고 있어”라는 답변을 받았다. 그는 일말의 정을 떨쳐내고 노동청으로 발길을 돌렸다.

회사에서 밀린 임금을 지급할 의사나 능력이 없다면 고용노동부 노동청으로 찾아가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이다. 다만, 고용노동부 진정이나 민사소송 등을 진행하게 되면 감정적 문제는 둘째 치더라도 시간이 늘어나 고통이 배가 되는 경우도 생기는 것을 배제할 수는 없다.

임금체불에 대한 법적 대응 방안은 크게 민사소송과 고용노동부 진정ㆍ고소가 있다. 진정이란 근로자가 임금체불과 같은 사용자의 근로기준법 위반사항을 근로감독관에게 알리고 체불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관련 조처를 해 달라고 요구하는 의사 표시다.

근로자는 사업장을 관할하는 지방고용노동청에 진정서를 제출하면 되는데 진정서에는 기본적으로 진정인의 인정사항 및 피진정인(사업주)의 인적사항 및 사업장 소재지 등을 써넣어야 한다. 진정 내용에는 체불임금액, 기간, 미지급사유 등을 기재한다.

▲ 진정서 서식은 고용노동부 민원마당 331호 서식에서 다운 가능하다

그럼 2주 내에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받게 된다.

고용노동부 알림
[Web 발신]
XXX 진정 관련 출석요구
일시: 언제 몇 시
서울지방고용노동청서울XX지청 근로감독관 OOO

진정서를 제출하면 담당 근로감독관이 진정인과 피진정인을 출석하게 해서 필요한 조사를 시행하고 법 위반 사항이 확인되면 시정지시(임금지급명령)를 내리는데 시정완료 시에는 행정 종결이 되지만, 미시정 시에는 범죄사건부에 등재하고 검찰에 송치한다.

고소는 범죄의 피해자가 수사기관(지방고용노동청)에 범죄사실을 신고함으로써 형사처분을 요구하는 의사표시다. 진정이 사용자의 부당한 행위에 대해 고용노동부가 조사해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요청하는 절차라면, 고소는 사용자가 근로기준법을 위반했으니 법에 따라 사용자를 형사처분해달라는 절차다.

밀린 임금은 별도 민사소송으로 받을 수 있다. 사실 노동청은 시정을 요구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형사 절차를 수행하는 곳이다. 따라서 근로자는 근로감독관이 발급해준 체불금품확인원을 가지고 민사소송을 진행할 수 있다.

월급이 400만 원 이하면 대한법률구조공단의 구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고, 400만 원이 넘으면 자력으로 민사를 진행해야 한다.

▲ 400만 원 이하 월급을 받고 있었다면 대한법률구조공단의 구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체불금품확인원 접수 후 일반적인 진행 절차는 먼저 임금체불을 한 사업주가 가진 재산을 다른 곳으로 빼돌리는 경우를 대비해 사업주의 재산에 대해 가압류를 하기도 한다. 참고로 임금체불 사업주의 재산이 없을 때는 강제집행이 불가능하다.

이를 위해 사업주 소유의 부동산 등기부 등본을 발급받아 확인하는 방법이 있다. 그리고 사업주의 재산이 확인되면 실제로 밀린 임금을 청구할 수 있도록 소송을 제기해야 하는데 밀린 임금이 2000만 원 이하인 경우 소액재판제도를 활용할 수 있다. 소액재판은 6개월 이상 소요되는 일반민사소송과는 달리 30일 정도면 판결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더욱 신속한 절차라 할 수 있다.

또한, 체불금액이 400만 원 이하일 경우에는 소액체당금 제도를 이용해 볼 수 있다. 소액체당금제도는 회사가 고의로 임금을 체불하고 버티는 경우, 나라에서 대신 밀린 임금을 지급하고 국가가 대신 돈을 받아주는 제도다. 보통 구조공단 서비스를 통하거나 지급명령제도 등으로 채권에 대한 법원의 증빙이 확실하다면, 간단한 서류로 400만 원 한도에서 체불된 임금을 보전받을 수 있다.

회사 측에서 정말 너무 여력이 없어서 임금체불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특히 유동성이 문제가 되어 임금을 지급하지 못하다 도산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도 임금채권보장법상 체당금 제도와 근로기준법상 최우선 변제로 구제를 받을 수 있다.

임금채권보장법상 체당금은 밀린 임금을 국가에서 지급하여 근로자의 생계의 안전을 도모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제도로, 파산 등의 신청일, 즉 퇴직기준일 1년 전부터 계산, 3년 범위 안에 드는 포함되는 퇴직자를 구제하는 제도다.

최우선 변제는 ‘최종 3개월분의 임금’, ‘재해보상금’을 다른 모든 채권에 가장 먼저 변제를 하는 것으로 사용자의 도산, 파산으로 청산절차에 따른 변제 시, 근로자의 일반 임금채권에 대한 우선 변제가 무의미할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인정하는 제도다. 강제집행, 배당요구 종기까지 배당청구, 배당표 확정 전 임금채권 입증을 통해 받을 수 있다.


근로감독관에게 가는 건 좋지 않다?

많은 근로자가 잘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고용노동청은 특수사법경찰기관이고 근로감독관 역시 임금 체불 등에 관한 한 ‘특별사법경찰’이라는 것이다. 근로기준법을 비롯한 노동관계법은 형사법에 속하므로 위반 시 형사처분을 받게 된다. 그래서 근로감독관은 수사권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근로감독관에게 가는 것 외에는 사실상 다른 방법이 없다.

근로감독관은 게임 산업 종사자가 그렸던 임금체불 만화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그린 만화라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받았는데 이 만화에는 근로감독관의 모습이 굉장히 부정적으로 그려져 있다. 피해 근로자들도 같은 상황을 겪었다고 했다. G씨는 "솔직히 아무것도 모르고 어리바리하고 있는데 근로감독관이란 사람들이 고압적으로 나오면 우리는 더 위축되죠. 법도 잘 모르고... 그냥 하라는 대로 하는 거죠. 공무원들 뭐 불친절한 게 하루 이틀인가요."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가장 큰 문제는 법을 잘 모르는 피해자들을 두 번 울리고 있다는 점이다. 2017년 청주노동인권센터는 고용노동부 청주지청에 민원을 제기한 129명을 면접 조사한 결과 일부 근로감독관들이 민원인들에게 기만ㆍ월권행위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진정취하요구'와 '기만합의권고'가 대표적이었다. 행정편의주의다.

▲ 웹툰 '임금체불 시뮬레이션'에서 표현되는 근로감독관

백엔드 개발자인 H씨는 "노동청에 갔다 오고 3일쯤 지났나? 사장이 집까지 와서 취하해달라고 했어요.막 울고불고 그러길래 해줬거든요. 그런데 안 주더라고요. 몇 달 후에 다시 노동청에 갔더니 한 번 취하한 건 또 진행할 수 없다네요? 고소하면 된다고 해서 고소를 진행했는데 좀 그렇더라고요. 이런 거 현장에서 알려줬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 많이 했죠"라고 말했다.

반면, 근로감독관들은 진정과 고소가 한 사람이 처리할 수 있는 역량을 넘어서 버렸기에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지방노동청산하 지청 중 노동자의 출입이 잦은 곳의 근로감독관 A씨는 "하루에 4~5건을 혼자서 처리해야 하는데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인원과 예산이 부족하다."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B 감독관은 "집에까지 일 들고 가서 하는데 그런 매도는 억울하다. 우리 스스로 근로기준법에 맞게 근무하면 관련 일은 멈출지도 모른다"라고 거들었다.

2014년 고용노동부에서 연구용역한 '근로감독관 업무개선 방안 연구'에 따르면 한국의 근로감독관은 1만 명당 0.65명으로 영국 0.93명, 프랑스 0.74명에 비해 크게 모자라지 않았으며 일본 0.53명, 미국 0.28명보다 좋은 수준이었다. 다만, 근로감독 업무가 효율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감독 분야가 지나치게 넓고 많아져 상당 수준의 업무 부하가 걸린다고 분석했다.

이런 현상은 이른 시일 안에 나아지지는 않을 것 같다.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6월 1,282명인 근로감독관을 500명 충원(산업안전감독관 포함)한다고 밝혔다. 현 정부가 증원할 공무원 17만 4천 명 가운데 얼마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대선 당시 더불어민주당 국민주권선대위 일자리위원회는 근로감독관 1천 310명의 증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신고사건 처리와 업무영역 확대, 감독 강화까지 반영하면 충원 규모는 정원 기준 1천489명, 실무인력 기준 1천657명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노동연구원 보고서 작성 기준인 2014년보다 근로감독관 정원은 2016년까지 30명 정도 늘었을 뿐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단체로 진정을 진행하기를 권고한다. 아무래도 많은 사람이 엮여 있다면 근로감독관이나 검사도 좀 더 중대한 사안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럴 환경이 안 된다면, 노무사를 이용하거나 개인이 관련법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가는 방법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지분 준다는 약속을 받고 무급으로 일했는데, 임금체불이 성립하나?

게임 산업은 스타트업이 꽃피기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다. 젊은 도전자들과 유통 장벽이 낮은 시장,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근무 환경 등. 스타트업은 초기 투자 시점에 이익이 없어 임금 대신 지분을 주고 동업관계를 맺는 일이 더러 일어나고는 한다. 모바일 골드러시가 한풀 꺾인 지금은 수그러들었지만, 그때 당한 임금체불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대기업에 다니다가 스타트업 초창기 멤버로 들어간 M씨는 한자릿수의 지분을 약속받고 임금은 추후 논의하자고 하는 대표의 '말'을 믿고 8개월을 근무했다. 스타트업은 원래 그런 줄 알고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 근무 중간마다 임금에 대해 합의를 하려고 했지만, 대표는 차일피일 미뤘고 그러던 와중 게임은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시장에서 사라졌다.

그래서 M씨는 진정을 넣었으나 대표는 사무실이 없어 카페나 자택에서 근무한 4개월은 인정 못 하고, 사무실에서 근무한 4개월만 인정한다고 했다. 노동청도 M씨가 업무지시 받은 메신저 기록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머지 4개월에 대해서 고용노동부는 I씨를 근로자로 인정하지 않고 내사종결시켜버렸다.

근로자임을 입증할 자료가 없고 지분을 따로 받는 것에 동의했으며 지각, 조퇴, 외출 시 별도 제재가 없었다는 이유로 그를 '동업자'로 판단한 것이다. 고용인-피고용인 관계가 아니라 동업자 관계일 경우에는 근로기준법상으로 문제가 없다.

M씨는 "어렸어요. 함께 시작해 커간다는 말에 혹해서 '지분'을 약속받고 무급으로 일했거든요." 보수가 없는 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내 회사 같았으니까요. 당시 대표의 말이 정말 꽃같이 들리더라고요. 나도 정말 대박을 낼 수 있지 않을까? 나도 이정웅처럼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요. 새벽 1시에 메신저 안 본다고 온갖 쌍욕을 먹으면서도 '대박 나면 지분이 있잖아'라고 스스로를 이해시켰던 내가 바보 같아요."라고 답했다. 오히려 지금 M씨는 업체에 명예훼손 고발을 당해 검찰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 근로계약서는 꼭 챙겨야 한다.



임금체불은 왜 근절되지 않는 것일까?

얼마나 빈번한 일인지 노무사만큼이나 해당 절차에 대해 빠삭하게 알고 있는 개발자들도 있다. 보통 체당금이 뭔지 모르는 게 일반적인 근로자지만 이미 몇 번의 체불을 당해본 근로자는 체당금 개념과 필요서류 등등을 모두 꿰뚫고 있는 일도 있다. 이토록 빈번한 일이 왜 근절되지 않는 것일까.

우선 임금체불이 범죄라는 인식이 사회에 형성되어있지 않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임금체벌 관련 범죄는 뉴스에 나오지도 않고 처벌도 약하다. 나아가 직권폐업 당하지 않기 위해서 세금은 꼬박꼬박 내면서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건 사업주의 양심뿐만 아니라 제도에도 문제가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피해자들은 임금체불을 해도 '배 째'라는 식으로 물방망이 처벌만 받으면 끝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앞서 언급했듯 근로기준법을 비롯한 노동관계법은 형사법에 속하므로 위반 시 형사처분을 받게 되는 엄연한 범죄행위다. 그러나 '형사처벌'이라는 거창한 단어와 달리 계속해서 임금체불로 고발을 당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벌금 몇 푼에 끝나는 경우가 다반사다. 심지어 체불 임금보다도 적은 벌금을 내고 '내 할 일은 다 했다'는 식으로 나오는 일도 있다.

프론트엔드 개발자인 J씨는 자신이 사업하게 되면 꼭 임금체불을 할거라는 우스갯소리를 했다. "4년 동안 몸담은 회사에서 그만두기 1년 전부터 월급이 제대로 안 나오더라고요. 안 되겠다 싶어서 나간다 했더니 사장이 뭐라는 줄 알아요? '권고사직으로 실업급여는 받게 해줄게. 대신 퇴직금은 퉁치자. 어차피 나랏돈인데 너도 좋고 나도 좋잖아'라고. 아니다 싶어서 진정했더니 근로감독관이 적당하게 합의를 보라는 거에요. 싫다고 그랬죠. 그렇게 검찰에 송치돼서 끝나는 줄 알았는데, 벌금 몇 푼 내고 끝나더라고요? 게다가 제가 못 받은 임금은 민사로 다시 진행해야 하고. 결국, 민사로 가압류 걸었는데 회사에 돈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돈을 미리 빼돌린 것인지 어찌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진짜 지쳐서... 전 꼭 나중에 임금체불하는 사업주가 될 거에요."

J씨의 이야기는 왜 임금체불이 근절되지 않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종합선물세트다. 임금체불은 기본적으로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으면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反意思不罰罪)이다. 즉 사업주는 진정, 수사 과정에서 눈물과 온정에 호소해 위기를 모면할 수 있다. 물론 그 이후에 돈을 줄지 안 줄지는 전적으로 사업주의 양심에 달려있다.

▲ 상업영화에도 임금체불이 등장할 만큼 빈도수가 적은 범죄는 아니다. (출처 영화 베테랑)

임금 지급능력이 없는 예도 있지만, 있어도 처벌 수위가 낮아 악의적으로 지급하지 않는 경우도 빈번하다. 임금체불 법정형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이다. 2015년 대법원 자료를 보면 당해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기소된 사건에서 정식재판을 받은 5,482명 가운데 1심에서 실형을 받은 사람은 7%에 불과한 데 비해 집행유예와 벌금형은 53.2%였다. J씨는 2천만 원 정도 체불이 확인됐지만, 검찰은 200만 원짜리 약식기소하는 데 그쳤다. 고용노동부는 실형과 집행유예 그리고 벌금형을 제외한 39%의 피해 근로자들이 체불 임금 받기를 포기했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체불이 끊이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기업이 얼마만큼의 재산을 가졌는지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임금을 받기 위해 민사소송을 진행할 때 근로자는 사업주를 상대로 가압류를 건다. 그런데, 가압류는 임금을 체불한 법인을 상대로만 가능하므로 기업에 재산이 없다면 말짱 꽝이다.

민사소송 특성상 회사를 대상으로 추심은 가능해도 사업주에 대한 추심은 불가능하기에 생기는 문제다. 사실상 상장사가 아니면 투명하게 법인 유보자금을 알 방법이 없기에 사업주는 손쉽게 자신의 배만 불릴 수도 있다. 비상자사나 유한회사는 외부 감사의 의무가 없다.

즉 실제로 돈을 지급할 의무가 있는 이에게 책임을 부과할 수 있는 입법적 토대가 마련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 뉴욕주는 2011년부터 '임금절도예방법(Wage Theft Prevention Act)'을 시행하고 있다. 이 법은 임금을 체불한 사업주가 이행 명령에 불응했을 때, 사업주가 재산을 빼돌리는 것을 막기 위해 10일 안에 사업주 재산목록을 공개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한국에서는 다른 근로자의 임금을 물어봐도 무방하다는 내용으로 유명한 캘리포니아주의 '공정임금법(A Fair Day’s Pay Act)'은 사업주가 체불임금 지급을 회피하려고 재산을 은닉하거나 위장폐업한 뒤 신규 창업을 하는 것을 막는 내용을 담고 있다.

▲ (출처 TLNT)

한국에서도 새로운 논의가 시도되고 있다. 고용노동부가 2016년 말 개최한 전문가 토론회에서 일부에 국한된 체당금제도를 전체 임금체불로 확대/개편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또한, 도산하지 않은 기업에도 체당금을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아울러 사업자의 '도덕적 해이' 예방을 위해 사업주 처벌을 강화하고 체불사업주 사전 가압류 조처 등을 해야 한다는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이후 고용노동부는 시민정책 제안ㆍ진정을 진행, 3천233건 중 68.1%를 채택했다. 채택된 제안ㆍ진정에 따라 2018년에 '임금체불 예방 및 체불청산에 관한 법'을 제정해 법원 판결 전에 임금체불 사실이 확인되면 체당금을 선지급하기로 했다. 또한, 부당노동행위 근절을 위해 관련 법 개정을 통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되는 기존 처벌 수위를 높이기로 했다.


고통과 책임은 직원의 몫이 아니다

이춘성 노무사는 개발자들의 인식 변화도 동반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사탕발림에 놀아나서는 안 된다. 임금 체불은 범죄고 당신은 희생자다. '스톡홀롬 신드롬'도 아닌데, 사업주의 힘듦에 동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당신은 다키스트 던전의 영웅 노예가 아니다. 하물며 영웅은 마을에 돌아오면 휴식이라도 취하지. 당신의 노동 대가는 반드시 받아야 한다."

그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온정주의 때문이다. 임금체불의도가 있는 사업주는 그냥 달라고 할 때는 미동도 안 하다가 진정서를 내거나 고소를 진행하겠다고 하면 그제야 눈물, 콧물 빼면서 "조금만 기다려줘"라고 이야기하면서 결국 주지 않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 또, 이직이 비교적 편하다는 산업 특성도 '그냥 잊고 말지'라는 식으로 흐르게 되는 원인 중 하나다.

피해 근로자들이 잊지 말아야 하는 것 중의 하나는 임금체불이 발생하였을 경우, 14일이 지났을 시부터 신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 임금채권의 법적 소멸 기간을 주의해야 하는데 임금채권은 민법상 단기 채권으로, 소멸시효가 3년이다. 따라서 아무리 오래 재직하였어도 청구 가능한 범위는 청구한 날 기준으로 역으로 3년 내 것만 가능하다. 즉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이야기다.

임금체불을 당하면서까지 게임을 놓지 못하는 이유로 '개발자의 명예'도 있다. 개발 중 게임이 대박 나면 보상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정상적인 판단을 불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K씨는 "돈 달라니까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네가 잘만 들었으면 이런 상황이 없었을 것이다' 지금은 헛웃음만 나오는데 그때는 그게 정말 잘 못 해서 그런지 알았어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지금 게임 산업에 환멸을 느끼고 인터넷쇼핑몰 구축 업체에서 디자이너로 활동 중이다.

▲ "근로자는 다키스트 던전의 영웅 노예가 아니다"

취재 과정에서 한 명의 근로자로서 분노를 경험하기도 했다. 가장 분노했던 건 임금을 주지 않은 대표의 어처구니없는 행태였다. 한 중견 회사의 대표 B는 "아 몰라, 그냥 교도소 가면 되는 거 아니냐?"라는 식으로 피해 근로자들의 어이를 다시 한번 빼앗기도 했다.

B 대표는 지금도 고급 외제 승용차를 보유하고 있으며 호텔 바에서 한 잔에 25,000원짜리 칵테일을 즐기고 있다. 박탈감은 근로자들을 더 힘들게 하고 있다. 심지어 폐업한 회사도 아니다.

B 대표의 회사는 과거 구글플레이 매출기준 100위권 안에 몇 주간 게임을 밀어 넣은 적이 있다. B 대표의 회사와 비슷한 규모를 가진 중견기업 C는 150~200위 권 사이 게임을 3개 서비스하고 있는데 현재 20명의 월급을 무리 없이 주고 있으며 많지는 않아도 위로ㆍ축하금을 적게나마 챙겨주는 수준으로 기업 활동을 영위하고 있다. 즉 B 대표의 의도 자체가 불순하다고밖에 볼 수 없다.

B 대표의 이야기를 듣기 전, 다른 회사 D 대표가 폐업 후 개인 회생 신청도 하지 않고 어떻게든 직원들 월급을 챙겨주기 위해서 분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라 충격은 더 컸다.

일한 대가를 받지 못한 것도 억울한데, 자신의 삶을 피곤하게 만든 사람이 떵떵거리고 사는 모습을 보면 상대적인 박탈감이 들 수밖에 없다. 살인은 어떤 식으로도 정당화하기 힘들지만, 매년 발생하고 있는 임금체불 관련 살인사고가 끊이지 않는 데에는 업주의 비도덕성이 전혀 관계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이런 이야기를 배 째라는 식으로 임금 체불 중인, 아직도 경영 중인 회사 앞에서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보이지도 않는 사업주를 향해 "대표님! 그냥 월급 좀 주시면 안 돼요?"라고 외쳐버렸다. 그러자 옆에 있던 피해 근로자가 웃으며 말했다. "저도 마음 같아서는 불매 운동이라도 벌이고 싶은데, 돈 받으려면 그렇게도 못해요. 많이 벌면 금방 줄지 모르잖아요. 혹여라도 회사 이름은 공개하고 그러지 말아 주세요"라고.

이처럼 피해자가 오히려 고통스러워지는 절차의 개선과 법률정비가 조속히 필요한 시점이다. 그렇다면 사업주의 인식개선은 자연스레 따라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