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L e스포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 번째로 선행되어야 하는 건 밴픽 전략이다. 밴픽 전략은 팀 연습 과정에서 선수들이 보인 기량과 챔피언 폭과 같은 것들을 토대로 완성된다. 경기에서 승리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밴픽 전략 다음으로 승리를 위해 필요한 건 선수들의 경기 운영이다. 미리 준비했던 밴픽 전략이 그대로 이행됐을 때, 선수들이 경기 내에서 그 콘셉트를 어떻게 살릴 것인지에 해당하는 것이다. 밴픽 전략이 준비한 그대로 실행됐다고 해도 선수들이 그걸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면 그건 실패한 전략이 된다. 반대로 준비했던 전략 그대로 선수들의 운영이 보태진다면 완벽에 가까운 경기 내용이 이어진다.

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던 팀이 아프리카 프릭스였다. 이들은 지난 15일 열렸던 2018 LoL 챔피언스 코리아(이하 LCK) 스프링 스플릿 38일 차 1경기 진에어 그린윙스와의 대결에 나섰다. 승리한 1세트와 3세트에 바로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밴픽 전략과 선수들의 운영이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졌다. 반면, 2세트에는 이를 잘 살리지 못하면서 패배했다.


아쉬웠던 2세트
돌진 조합... 상대 대처에 무너지다



매번 색다른 조합과 챔피언을 꺼내는 아프리카 프릭스지만, 진에어 그린윙스와의 2세트에는 그 색깔이 더욱 진했다. 진에어 그린윙스 쪽에서 노골적으로 정글 밴 카드를 활용하자 아프리카 프릭스는 마지막 카드로 녹턴을 꺼냈다.

이것만 보면 '어라' 라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뜬금 없는 이야기다. 하지만 아프리카 프릭스는 그 전까지 밴픽 전략에서 녹턴 류의 돌격대장을 뽑을 것이라는 걸 계속 알렸다. 갈리오와 레오나가 그랬다. 물론, 갈리오와 레오나만 조합해도 어느 정도 돌진 조합의 형태가 꾸려지지만 맛이 부족했다. 여기에 아프리카 프릭스는 조합의 맛도 강렬하게 만들고 상대의 '시야를 없앤다'는 전술적인 이점까지 보유한 녹턴으로 낯선 돌진 조합을 완성했다.

'입롤'을 살짝 하자면, 아프리카 프릭스의 조합은 꽤 이상적인 돌진 조합의 형태였다. 일단 라인전에서 주도권을 내주는 픽이 없었다. 봇 라인에서 자야-라칸을 상대해야 하는 트리스타나-레오나 조합이 살짝 밀릴 수는 있지만, 갈리오와 녹턴이 언제라도 합류할 수 있기에 일방적으로 당하진 않을 수 있다. 라인전이 끝나면, 라이즈나 갈리오, 녹턴이 스플릿 푸쉬에 용이해 운영 주도권을 잡기도 수월했다.

한타에서는 어떤가. 일단 녹턴이 상대 시야를 가리고 앞으로 파고든다. 그러면 여기에 갈리오의 궁극기가 보태지고, 레오나가 같이 뛰어든다. 그러면 뒤에서 라이즈와 트리스타나가 열심히 상대를 두들긴다. 불이 켜지면 이미 한타는 끝. 이게 아프리카 프릭스가 그렸던 가장 이상적인 경기 내용이었다.

하지만 아프리카 프릭스의 원대한 계획은 끝내 빛을 보지 못했다. 경기 도중에 자신들이 처음부터 구상했던 조합의 맛을 어느 정도 보여주는데 성공하긴 했다. 그게 승리로 이어지지 않았다. 왜일까. 선수들의 실수가 몇 차례 이어졌던 것도 컸고, 무엇보다 진에어 그린윙스의 조합이 아프리카 프릭스의 것을 카운터하기에 너무 편했다.

아프리카 프릭스의 돌진 조합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그럴싸 했지만, 그들 입장에서는 아쉽게도 진에어 그린윙스의 조합이 완벽한 카운터 역할을 했다. 가만 보면 진에어 그린윙스의 조합은 최근 유행하는 '정석'이면서도 아프리카 프릭스의 노림수를 받아치기에 충분했다.

먼저 진에어 그린윙스 역시 갱플랭크와 탈리야 등 상대의 글로벌 운영에 버금가는 스킬들을 가지고 있었다. 상대의 빠른 합류와 싸움 유도에 충분히 대처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녹턴이 소규모 난전에서 강하다곤 해도 '영토' 안에서의 스카너만큼 강력하진 않다는 점도 진에어 그린윙스에게 좋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했던 건 상대 녹턴과 갈리오, 레오나가 뛰어들 때, 진에어 그린윙스 역시 갱플랭크와 스카너, 라칸의 궁극기로 이를 얼마든지 받아칠 수 있다는 점이 컸다. 불이 꺼지면 진에어 그린윙스는 자신들 주변에 갱플랭크의 궁극기를 뿌리고, 스카너가 뛰어든 상대를 무력화할 수 있었다. 여기에 탈리야의 E스킬 '대지의 파동'만 깔아둬도 상대는 뛰어들다가 큰 대미지를 입었다.

10분 30초경에 열린 드래곤 지역 한타에서 아프리카 프릭스 조합의 강점과 진에어 그린윙스의 반격이 잘 드러났다. 한타에서는 아프리카 프릭스가 승리했지만, 진에어 그린윙스의 조합이 이를 얼마나 잘 받아칠 수 있는지 드러난 장면이기도 했다.

▲ 한타 승리에도 어쩐지 조금 불안했다.(출처 : OGN 중계 화면)

한 명도 쓰러지지 않고 한타 대승이 나올 것 같았던 예상은 빗나갔다. 실제로 아프리카 프릭스는 '모글리' 이재하의 녹턴을 잃었고, 갈리오를 제외한 다른 챔피언들의 체력 상태도 그리 좋지 않은 채로 한타 승리를 차지했다. 분명히 아프리카 프릭스가 전과를 올린 한타 장면이었지만, 성장 기대치가 더 좋았던 진에어 그린윙스의 조합이 시간이 지날수록 얼마나 더 상대의 노림수를 잘 받아칠 수 있을지가 더 기대됐다.

아프리카 프릭스 역시 속도를 올리기 위해 계속 궁극기 콤보로 싸움을 열어 좋은 성과를 올렸다. 하지만 진에어 그린윙스가 몇 번 받아치면서 아프리카 프릭스의 속도전에 제동이 걸렸다. 오히려 진에어 그린윙스가 먼저 싸움을 열면 아프리카 프릭스는 이렇다 할 반격을 하지 못한 채 후퇴했다. 아니나 다를까. 시간이 지날수록 진에어 그린윙스가 승기를 굳혔고, 아프리카 프릭스의 전략은 실패로 끝났다.

아프리카 프릭스가 속도를 최대한 끌어 올리지 못했던 이유는 두 가지였다. 먼저, 아프리카 프릭스는 자신들이 준비했던 노림수를 몇 차례 성공시키긴 했어도 이를 통해 승기를 굳히지는 못했다. 오히려 중요한 순간마다 먼저 끊기거나 이니시에이팅 주도권을 허용해 무너졌다. 그리고 진에어 그린윙스의 조합 형태가 돌진 조합과 글로벌 운영에 용이한 아프리카 프릭스의 조합을 카운터하기에 너무 좋았다. '모글리'의 녹턴과 '투신' 박종익의 레오나가 '그레이스' 이찬주 탈리야의 E스킬 한 방에 녹아버리는 장면이 위의 설명들을 한 번에 요약해준다고 하겠다.



완벽했던 1, 3세트
기대했던 모든 걸 해낸 아프리카 프릭스



2세트에는 준비했던 걸 완수하지 못했지만, 아프리카 프릭스는 1세트와 3세트에 완벽한 승리를 차지했다. 선수들의 경기력을 믿은 밴픽 전략과 기대치에 완벽하게 부응했던 선수들의 경기력과 운영이 잘 맞아 떨어진 결과였다. 그리고 1세트와 3세트는 밴픽과 운영의 시너지가 완벽할 때 어떤 파괴력이 나올 수 있는지 증명된 경기이기도 했다.

1세트에 아프리카 프릭스는 '기인' 김기인에게 피오라를 쥐여줬다. 후반 스플릿 푸쉬 과정에서는 피오라가 카밀을 압도하지만, 챔피언 범용성의 차이 때문에 피오라는 상당한 부담을 갖는 챔피언이다. 그럼에도 자신있게 '기인'에게 피오라를 준 이유는 뭘까. 바로 갈리오와 탐 켄치의 존재 때문이다. 이들은 피오라의 초반 약한 라인전과 후반 스플릿 푸쉬 모두를 도울 수 있는 픽이다. 스카너가 자크보다 더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는 극초반만 잘 넘기면 피오라가 활개칠 수 있는 판이 깔릴 수 있었다.


그리고 아프리카 프릭스는 봇 라인에서 '크레이머' 하종훈 케이틀린의 W스킬 '요들잡이 덫'과 함께 기분 좋은 출발을 알렸다. '테디-레이스'를 라인전 단계부터 꽁꽁 묶은 아프리카 프릭스는 상대의 탑 3인 다이브를 빠른 합류로 받아치면서 승기를 일찌감치 굳혔다. 이 때문에 진에어 그린윙스의 카밀과 스카너는 초반부터 자신들이 해야할 것을 하지 못했고, 반대로 아프리카 프릭스는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면서 상대를 압박해 승리했다. 밴픽 과정부터 기대했던 모든 것을 선수들이 그대로 해내며 얻은 완승이었다.


3세트에 아프리카 프릭스가 선보인 밴픽 전략은 기묘했다. 안정성을 추구하는 LCK 팀들 답지 않게 조커 카드를 두 개 동시에 꺼냈다. 미드 라인에서는 '쿠로' 이서행의 애니비아가, 봇 라인에는 '크레이머'의 징크스가 등장했다.

사실 아프리카 프릭스의 의도는 뻔했다. 자크보다 초반 영향력이 뛰어난 스카너가 바삐 움직이면서 주도권을 잃기 쉬운 탑과 미드 라인을 도와줘야 했다. 그러면 역상성이 발동되어 갱플랭크가 사이드 주도권을 잡고, 애니비아가 갈리오보다 빠르게 움직일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애초에 전제 조건 자체가 성립되기 너무 힘들었다. 스카너 혼자 이를 모두 행하기엔 부담감이 너무 커 보였다.

그럼에도 아프리카 프릭스는 밴픽 전략에서 그렸던 흐름을 완벽하게, 아니 그 이상으로 완수했다. 이번에도 상대 탑 1차 타워 다이브를 막으면서 아프리카 프릭스의 승리 공식이 시작됐다. '기인'의 갱플랭크가 상대 자크의 패시브까지 뽑아내며 최대한 버티는 사이에 '쿠로'의 애니비아와 '스피릿' 이다윤의 스카너가 전장에 당도해 상황을 역전시켰다. 여기에 미드 라인에서 나온 또 한 번의 킬. 이로 인해 진에어 그린윙스는 조합의 강점을 완전히 상실했고, 아프리카 프릭스는 불가능할 것 같았던 탑 라인과 미드 라인 주도권을 확실히 틀어 쥐었다.


양 팀의 3세트는 갱플랭크와 애니비아, 징크스로도 속도전이 가능하다는 걸 아프리카 프릭스가 일깨워준 경기이기도 했다. 한 번 발이 풀리자 아프리카 프릭스는 느릿느릿 움직이는 것 같은 챔피언들로도 운영에 속도를 붙일 줄 알았다. 카밀을 압도하는 갱플랭크와 갈리오보다 빠른 애니비아라는 현실감 없는 내용을 현실로 만든 아프리카 프릭스는 '햇바론'을 깔끔하게 섭취하고 그대로 경기를 끝냈다. 23분 8초. 근래 보기 힘든 속도전이었다.


비단 아프리카 프릭스 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그동안 밴픽 전략과 경기 내 운영이 맞아 떨어졌을 때 엄청난 시너지를 선보였던 경기는 많았다. 그리고 반대로 밴픽 전략이 경기 내 운영과 완전히 동떨어져 실패로 끝난 경기도 자주 나왔다.

그만큼 코치진의 역량이 드러나는 밴픽 전략과 선수들의 경기력이 온전히 담긴 경기 내 운영 간 조화가 중요하다. 아무리 밴픽이 기가 막혀도 선수들이 그 조합의 강점을 끌어내지 못한다면 그건 의미없는 전략이 된다. 그리고 선수들이 아무리 뛰어나도 밴픽 전략부터 밑그림이 망가지면 패배하기 딱 좋다.

그리고 그걸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이 이번 진에어 그린윙스전에 나섰던 아프리카 프릭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