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앤드류 배론(Andrew Barron) 보헤미아 인터렉티브 디자인 디렉터

강연자 소개: 앤드류 배론(Andrew Barron)은 2002년 '오퍼레이션 플래시포인트'의 모더로 게임 개발에 입문, 이후 실제 군대에서 사용되는 군사 시뮬레이션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했다. 2010년부터 2011년 사이에는 미 해병으로 복무했으며, 약 7개월간 아프가니스탄에서 파병 생활을 하기도 했다. 전역 후에는 미국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에서 근무하기도 했던 그는 현재 보헤미아 인터렉티브의 디자인 디렉터를 역임하고 있다.

이번 GDC 2018에서는 게임 속에서 '전쟁'을 묘사하는 방법에 대한 흥미로운 강연을 접할 수 있었다.

그 강연을 맡은 사람은 바로 앤드류 배론(Andrew Barron), 엄청난 사실성을 갖춘 밀리터리 시뮬레이션 시리즈, 'ARMA'를 개발한 보헤미아 인터렉티브의 디자인 디렉터다. 뿐만 아니라 그는 다양한 군사 훈련 시뮬레이션 프로그램 개발에 참여하고, 심지어 직접 아프가니스탄에서 파병 복무를 하기도 하기도 했다.

2011년에 배치되어 파병 생활을 했던 헬만드주 상긴 지구는 아프가니스탄에서도 가장 치열한 전투가 빈번하게 발생되는 지역이었다. 당시 그곳에 파병된 미 해병들의 부상률은 20%에 육박했으며, 주변 지역에는 곳곳에 지뢰가 매장되어 있어 지뢰 탐지병을 선두로 한 줄로 행군을 해야 했다.

그렇게 탈레반과의 치열한 전투가 이뤄지던 상긴 지구였지만, 앤드류 배론 디렉터는 대부분의 파병 생활은 주변 지역의 농부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등 민간인을 돕는 일상이 더 많았다고 설명했다. 실제 전쟁 지역은 게임에서 묘사되는 것처럼 온종일 총탄이 빗발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어 앤드류 배론 디렉터는 그때 당시 같이 복무했던 한 해병은 이런 말을 했다고도 밝혔다.

▲ "이건 내가 바란 게 아니야. 나는 좀 더 '콜 오브 듀티' 같은 걸 하고 싶었다고"

앤드류 배론 디렉터는 역사나 저널리즘보다 대중 매체의 스토리나 게임 플레이를 통해 전쟁을 배우는 요즘 시대에서, 보다 현실과 가까운 전쟁의 모습을 묘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작가로서 대중들이 전쟁물에 대해 가지는 기대치를 충족시켜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저 총싸움이 아닌 전쟁의 여러 모습을 대중에게 선보이는 것도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보다 풍부한 스토리가 될 수 있도록 '전쟁'을 묘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앤드류 배론 디렉터는 총 네 가지로 나누어 설명을 시작했다.



■ #1. 죽이는 것 보다는 더욱 전쟁에 초점을 맞출 수 있도록 하자


일반적으로 매체에서 묘사되는 전쟁은 총싸움이 전부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군사작전에서 교전이 게임만큼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통상적인 실제 전투는 3:1 공격 비율이라는 군사 격언을 따르는데, 방어하고 있는 측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그보다 3배 이상의 병력을 사용해야 한다는 의미다. 실제 군사작전은 빠르고 효율적으로 치러야 하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이라는것이 앤드류 배론 디렉터의 설명이다.

이러한 실제 전투를 가장 잘 묘사한 게임 중 하나로, 그는 '아르마(ARMA)' 시리즈를 꼽았다. 아르마3에서 플레이어는 총알 한 발에도 죽음에 이를 수 있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교전을 피하기 위해 더욱 조심하게 된다. 또한 다양한 병과를 통해 총을 쏘는 것 말고도 실제 전쟁과 유사한 양상을 보일 수 있도록 했다.

이어 앤드류 배론 디렉터는 총싸움이 다가 아닌 전쟁을 이야기하기 위해, 그가 과저 제작했던 실제 군사 훈령용 시뮬레이터의 사례를 들었다. 2000년대 초 미국 해병대는 게임 기반 시뮬레이션을 통한 훈련을 많이 진행했는데, 그 중에는 호송대 시뮬레이터도 존재했다. 이 호송대 시뮬레이터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다름이 아닌 방향 지시등이 가장 큰 역할을 했는데, 실제 전쟁에서 호송 차량들은 이 지시등을 통해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때문이이었다.

▲ 실제 전쟁에서는 방향 지시등 하나까지도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 #2. 하나의 전쟁에서 다양한 전투를 보여주도록 하자

▲ 전쟁에서 갈등은 하나만 존재하지 않는다

앤드류 배론 디렉터는 아프가니스칸에서 복무할 당시 민간 협상 전문가로서 활약했다. 주로 돈가방을 들고 다니며 지역 조직과의 협상을 하는 임무를 했다고 밝힌 그는 부패경찰과 지역 사회의 갈등을 보며 하나의 전쟁 안에도 다양한 갈등 관계가 존재하고 있음을 깨달았다고 전했다. 예를 들어, 아프가니스탄은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안에서 다양한 대립 구도를 가지고 있다. 또한 이들 사회에는 일종의 '복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가 있어, 미군을 이러한 복수의 도구로 사용하는 시도를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갈등의 피라미드'를 통해 하나의 전쟁을 다루면서도 다양한 갈등과 대립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설명했다. 아주 세계적으로 얽혀있는 갈등에서부터 지역 간의 갈등, 그리고 개인적인 갈등에 이르는 이러한 요소를 잘 활용할 수 있다면 전쟁을 더욱 풍부하게 묘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갈등을 가장 잘 나타낸 작품으로 드라마 '왕좌의 게임' 시리즈, '크루세이더 킹즈2', 그리고 '위쳐3' 등을 꼽았다. 또한 그는 복잡하게 얽혀있는 갈등과 대립 관계는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는 낯설 수 있지만, 플레이를 통해 이러한 구조를 차츰 알아가게 되면서 큰 재미를 느끼게 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 #3. 전쟁은 매우 복잡한 선택의 연속이다

세번째로 앤드류 배론 디렉터는 전쟁을 일컬어 "무조건 옳은 일을 해야 하지만, 과연 옳은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상태"라고 설명하며 플레이어들에게 이러한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예를 들어 당신이 속한 호송대가 육교 밑을 지나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육교에는 호송대가 지나가기를 살폈다가 폭탄을 던지려는 테러리스트가 민간인으로 위장해 호송대를 주시하고 있다. 이윽고 호송대가 육교 밑을 지나갔고, 폭탄이 터졌다. 당신은 소중한 전우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얼마 후, 당신의 호송대는 또 같은 육교 위에서 지난번과 똑같이 생긴 민간인을 발견한다. 이 때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과연 육교에 서 있는 사람의 존재만으로 적대 행위를 보였다고 간주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냥 일반인일수도 있지만, 빠른 결정을 하지 않으면 또 다시 당신 혹은 동료의 생명이 위협을 받게 된다."


21세기 현대전에서 이런 상황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앤드류 배론 디렉터는 게임에서 이토록 어려운 결정을 내리게 하는 요소를 잘만 활용한다면 플레이어에게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전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어 그는 '스펙옵스: 더 라인'의 사례를 들어 이러한 요소를 정말 잘 활용한 게임이라고 전했다. 게임 도중 플레이어는 성난 군중에 둘러싸이게 되고, 옆에서는 부상당한 동료가 어서 군중들을 죽이라고 소리친다. 이 때 플레이어는 민간인을 향해 총을 발사할 것인지를 선택해야만 한다.

놀랍게도 실제로도 이러한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취해야 할 행동을 훈련시키는 방법이 존재한다. 바로 아주 작은 양의 무력 공격을 통해 군중들을 무력화시키는 시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와 같은 상황에서라면 민간인에게 총을 쏘기 전에 공중에 위협사격을 가하는 것이 될 수도 있겠다.

▲ 호송대를 지키기 위해, 당신이 해야 할 '옳은 일'은 과연 무엇인가?


■ #4. 전쟁에서는, 민간인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는다


마지막 조언을 남기고 잠시 침묵한 앤드류 배론 디렉터는 자신이 아프가니스탄에 복무할 당시 이야기를 통해 네 번째 조언의 사례를 설명해 나갔다. 약간은 터부시되어있는 주제이지만, 실제 전쟁이 이런 모습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위 사진은, 탈레반이 지역 민간인들에게 '근처에 폭발물이 매설되어 있으니 피해서 가라'고 알리는 표시다. 우리가 처음 그곳에 도착했을 때 시민들은 이 표시를 우리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얼마동안 지내면서 신뢰를 얻다 보니 시민들로부터 이 표시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지만, 그 이후 탈레반은 시민들에게 더 이상 표시를 남기지 않고 폭발물을 매설하기 시작했다"

"얼마 후, 평소와 같이 순찰을 돌던 지역에서 어린아이가 지뢰를 밟고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또 몇 주 뒤에 같은 집을 순찰했는데, 이번에는 다른 아이가 지뢰를 밟아 다리가 잘려나가고 말았다. 아이의 부모는 소리를 지르면서 아이가 죽어가는 것을 보고 있었고, 당시 분대장이 달려가 아이를 치료하고자 했지만 결국 아이는 과다출혈로 죽고 말았다"

"사망한 아이들이 밟은 지뢰는 물론 아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미 해병이 해당 지역을 순찰한다는 첩보를 입수한 탈레반이 심어놓았던 지뢰였고, 만일 해병들이 그 지역에 주둔하지만 않았어도 이 아이들은 살아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앤드류 배론 디렉터는 이러한 주제를 잘 활용한 게임으로 '디스 워 오브 마인'을 꼽았다. 전쟁 속 민간인의 삶을 그린 게임으로서 상당한 호평을 받은 바 있는 게임이다. 그는 어쩌면 이러한 무거운 주제 또한 게임에서 잘만 활용한다면 플레이어들에게 다른 시선으로 전쟁을 바라보는 방법을 알려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