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차드 게리엇 (Richard Garriott), 로드 브리티쉬, 현 포탈라리움 대표

"준비됐나요? 그럼 로그인을 해 봅시다"

MMORPG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만들었던 게임. 그리고 과거부터 현재까지 전설로 남을 개발자들을 여럿 배출했던 게임. 또한, 게임을 플레이했던 이들의 무용담이 아직 회자되고 있는 게임. 1997년 서비스를 시작하여 지금까지 서비스를 유지하고 있는 '울티마 온라인'의 창조자들이 GDC 2018 에서 한자리에 모였다.

게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게임 업계에 몸담은 사람이라면 게임의 역사에서 이들이 남긴 커다란 흔적들을 부정하기는 어려웠으리라. 로드 브리티쉬 '리차드 게리엇 (Richard Garriott)'부터 '스타 롱(Starr Long)', '라프 코스터(Raph Koster)', '리치 보겔(Rich Vogel)'은 자신들이 제작한 '울티마 온라인'의 개발 과정을 되돌아보고, 그 속에서 얻은 경험을 전 세계의 개발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다.


먼저, 스타 롱(Starr Long)은 울티마 온라인이 기획 단계에 들어간 1994년을 회상한다. 24년 전, 컴퓨터의 성능은 지금과 비교하면 매우 조악한, 성능이 낮은 물건이었다. CPU는 33MHz, 16MB 램, 1MB 메모리를 가진 16비트 그래픽 카드, 250MB밖에 되지 못하는 하드디스크까지. 지금 우리가 손에 들고 다니는 모바일 기기보다 한참 떨어지는 성능의 것이었다.

"지금은 네트워크 속도가 2,500배 빨라졌고, CPU는 4코어에 1,000배가 넘는 속도를, 램의 용량은 1000배, 그래픽 카드의 메모리는 8,000배가 늘었죠. 지금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핸드폰의 용량이 당시 기기보다 10배는 더 많을 겁니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하는 속도는 점차 빨라지고 있던 시점이었습니다."

울티마 온라인을 개발하려던 이들에게 결정적인 영감을 줬던 것은 '둠(DOOM)' 이었다. 최초로 멀티플레이를 지원했던 둠은, 당시 파티 기반의 멀티플레이 게임을 구상하고 있던 스타 롱에게 커다란 충격을 줬다. 그의 표현대로 '영감이 로켓과 같이 날아온' 셈이었다.

▲ 스타 롱 (Starr Long), 현 포탈라리움 최고 경영자

둠의 멀티플레이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게임을 플레이하는 이유가 됐다. 멀티플레이를 통해 사람들은 게임을 오랜 시간 플레이했고, 새로운 경험을 얻을 수 있었다. 둠의 등장은 이들에게 있어서는 자신들의 꿈을 현실에 구현하기 위한 적절한 사례가 됐다. 멀티플레이를 활용할 수 있는 기술들이 입증됐고, AI 보다 사람들과 함께 게임을 할 때, 더 즐거운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리차드 게리엇은 둠의 등장 이후 본격적으로 개발 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다고 언급했다. 대규모 멀티플레이 게임이 될 것이며, 게임의 설계부터 AI와 마케팅 등 기술적인 계획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를 EA에 전달했지만, 개발 승인이 나지는 않았다. 총 4번의 시도 동안 이들이 들었던 대답은 항상 "NO." 였다.


"하지만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허락이 떨어질 때까지 여기서 안 내려 갈 거라고 했죠. 그리고 결국 승인을 받았습니다. 당시 다른 게임들의 예산과 비교해서 매우 적은 규모(25만 달러)만을 요구하고 온갖 소리를 지르기까지 했고요. 그리고 결국에는 우리가 만들어낸 계약서에 'Yes'라는 글자를 받아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개발은 순탄하지 않았다. 이전까지 아무도 MMORPG라는 것을 상상하지 못하던 완전히 새로운 개념이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지원을 받을 수도 없었다. 개발 공간은 공사 중이던 건물의 5층이었고 늘 먼지가 가득했다. 리차드 게리엇과 라프 코스터는 이때를 회상하며 '먼지가 참 많았다'고 돌이켰다. 컴퓨터를 공사 먼지에서 보호하기 위해서 플라스틱 장벽을 세워야 할 정도였다.

▲ 라프 코스터(Raph Koster), 독립 디자이너, '재미이론'의 저자

이렇게 열악한 환경 속에서 꾸려진 8명짜리 작은 팀은, 울티마 온라인의 뼈대를 이루는 요소 대부분을 만들었다.비록 개발 인력은 얼마 없었으나, 매우 파워풀한 팀이었다. 이들은 울티마 6엔진으로 프로토타입을 제작하며 다양한 요소들을 기획했다.

초기 멀티마(Multima)로 명명된 프로젝트에서는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디자인됐다. 플레이어들의 활동과 연계되는 경제 시스템, 제작 시스템 등이 창발적으로 튀어나왔다. 물론, 모든 아이디어를 게임 내에는 구현하지 못했지만, 프로토타입을 만들면서 이야기된 다양한 주제, 상호 연계가 되는 복잡한 시스템, 1m 해상도의 4㎢의 세계 등 당시의 시스템 디자인은 울티마 온라인을 만들어 내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천신만고 끝에 프로토타입을 완성하고 테스트를 진행해야 하는 시점이 왔지만, 당시 이들은 여러 문제에 봉착했다. 당시에는 온라인으로 대용량 파일을 전송하기가 어려웠고, 테스트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결국 플레이어들에게 디스크를 전달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당시 팀은 CD 제작과 발송을 위한 자금조차 부족한 시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리차드 게리엇은 이 위기를 참가를 원하는 사람들에게서 비용을 받는 것으로 해결했다.

"당시 저희는 게임을 만드는 데 이미 예산을 다 써버린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베타 버전 참가를 원하는 사람들에게서 5달러를 받는 것이었죠. 이 5달러는 CD를 제작하고 발송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었습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맨 처음 시도했던 얼리 엑세스 정도가 되겠네요."


그리고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울티마 온라인의 베타 참가자는 5만 명을 기록했으며, 이들 모두가 각각 5달러를 내고 베타 테스트에 참가했다. 당초 예상이었던 3만 명을 훌쩍 뛰어넘은 큰 성공이었다. 그리고 이 소식을 들을 EA는 울티마 온라인에 본격적인 지원을 하기 시작했다.

EA는 이전까지 개발하던 울티마9의 개발을 잠시 중단하고 울티마 온라인에 개발진을 투입했다. 8명이던 팀원은 50명으로 늘었지만, 이들은 온라인 개발 경험이 전혀 없는 인력들이었다. 심지어 다른 프로젝트로 투입되는 것은 프로젝트의 취소를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에 울티마9의 개발진들은 이를 달갑게 여기지 않기도 했다.

한편, 팀의 크기가 커지면서 이후 다른 MMORPG에도 사용될 수 있는 기틀이 발명되기도 했다. 계정 시스템으로 유저들에게 고유 코드를 부여하는 구조, 신용 카드와 연계하여 결제할 수 있는 결제 프로세스, 심리스 서버와 샤드, 로그인 서버로 나뉘는 서버 구조 등 대규모 멀티 플레이에서 사용되는 기술들의 기반이 구축되던 시기를 맞이하게 됐다. 이전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MMORPG라는 개념이 탄생했고, 1997년 울티마 온라인은 서비스를 시작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전설은 시작됐다.

▲ 리치 보겔(Rich Vogel), 현 certain affinity 기술 및 공유 서비스 최고 책임자

런칭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이들은 런칭 이 얻었던 교훈들을 이와 같이 추억한다. 첫 번째는 '준비되기 전까지 출시하는 않는 것'. 당시에는 런칭에만 목표를 뒀지만, 런칭 이후에 신경 써야 하는 부분들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어있는 서버에 유저들을 유입하거나, 사람이 몰리는 서버를 관리하는 '인구 관리에 신경을 쓸 것', '장기적인 계획을 세울 것'. 마지막으로는 '클라이언트를 믿지 말 것'을 당부했다.

문제가 나오기는 했으나, 당시 울티마 온라인의 등장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그리고 동시에 게임을 개발한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상상할 수 없었던 문제들을 만날 수 있는 시기였다. 리치 보겔은 서비스에 필요한 부수적인 작업들이 게임의 70%를 차지하고 있다고 과거를 되돌아봤다.

"게임을 성공적으로 출시했지만, 사실 지금까지 우리가 게임을 만든 것은 30% 정도만 된다고 생각합니다. 게임을 유지하고 서비스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행착오와 고민의 과정이 필요했어요. 이게 나머지 70% 정도를 차지합니다."


실제로 서비스를 시작하고 나서는 그야말로 '예상할 수 없었던' 몇 가지 사건들이 발생하기도 했다. 플레이어들이 선택할 수 있는 자유도가 높았고 처음으로 시도한 것들이 많은 게임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가장 먼저 PK로 인한 문제들이 수면위로 올라왔다. 머더러들은 RP를 즐기는 유저들을 학살하기 시작했고, 많은 이들이 유령이 된 상태에서 "ooOOoooOOooo"를 연발하고 있었다.

다음으로는 현거래로 인한 문제들도 발생했다. 얻기 어려운 아이템을 이베이를 통해 판매하거나, 골드를 구매하는 등 게임 디자인 외적인 부분에서 통제할 수 없는 사건들이 나왔다. 심지어 어떤 플레이어들은 아이템을 판매하기 위해서 타인을 죽이기 위한 집단들을 구성하기까지 했다.

▲ "RP다! 잡아!" / "PK다! 튀어!"

한편으로는 서비스를 진행하고 나서야 '커뮤니티의 중요성'을 깨닫기도 했다. 울티마 온라인은 100만 명 정도의 인구가 플레이하고 있었고, 각자의 삶을 영위하는 공간이 됐다. 하나의 게임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다른 삶을 살 수 있는 또 하나의 세상이기도 했다.

때문에 패치노트가 미치는 영향을 판단하고, 커뮤니티와의 의사소통을 중요하게 여기게 됐다. 패치노트는 단순한 오류의 수정이나 기능의 추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법률이자 규칙으로 작용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다양한 커뮤니티와 소통함으로써 새로운 문제를 발견하고 수정하는 데 많은 도움도 받을 수 있었다.


커뮤니티에 신경 쓰고 이들과 소통하면서 훗날 많은 이들이 참여하는 전설과도 같은 일화들이 세상에 태어나기 시작했다. 울티마 온라인 세상을 배경으로 많은 영웅담이 쏟아졌으며, 그중에는 트린식 남문에서의 전투를 묘사한 'Siege of Trinsic', '브리타니아의 헐크 호건', '은행 대신 무인도로 보내버린 마법사' 등 온갖 사건들이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됐다.

울티마 온라인에서 가장 유명한 살인사건 '로드 브리티쉬 암살'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 다들 언제 나오나 기대했던 '그 사건'

강연의 마지막에서 리차드 게리엇과 라프 코스터는 당시를 회상하며 로드 브리티쉬를 죽인 'Rainz'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라프 코스터는 리차드 게리엇의 캐릭터가 사망하여, 다른 유저들처럼 "oooOOoooOOoo"를 말하게 되었을 때, 플레이어가 울티마 온라인이라는 판타지 세계의 진정한 주인이 되었다고 봤다. 또한, 플레이어들이 규칙을 파괴하는 행위를 통해 즐거움을 느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설명하며 강연을 마쳤다.

"로드 브리티쉬의 사망은 큰 이슈가 되었습니다. (리차드 게리엇: "이날 전까지는 불멸일 것으로 생각했으니까요.") 그리고 한편으로는 권력이 옮겨가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우리가 가장 기뻐했던 순간 중의 하나기도 했고요. (리차드 게리엇: "잠깐... 뭐?") 이날, 판타지 세계를 지배하던 통제자는 죽었습니다. 그리고 로드 브리티쉬가 죽으면서 규칙은 자유를 얻었습니다."

"이로써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힘은 리차드 게리엇이 아니라, 게임을 플레이하는 플레이어들에게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게임을 플레이했던 바로 여러분들에게 말이죠. 로드 브리티쉬를 죽여준 데에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Rain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