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의 성장을 지켜봐 주세요. 저는 아직 다 큰 게 아닙니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나 들었을 법한 이야기. 그것을 10년 넘은 업계 베테랑, 그것도 손꼽히는 스타 원화가에게 들을 줄은 몰랐다. 이렇게 말하는 거 괜찮냐고 물었지만, 그는 문제없단다. 오히려 애정과 관심으로 더 키워달란다.

유저의 취향을 냉철하게 분석해 가장 적합한 이미지를 그려내려고 하면서도 동네 형처럼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길 바라는 사람. 그림을 통해, 게임을 통해 더 재미있는 게임을 전해주는 게 꿈이라는 사람.

펄어비스에서 또 다른 성장을 그리는 게임 원화가 김범을 만났다. 그리고 그저 게임 출시를 앞둔 이가 아닌 원화가, 게임 개발자. 그리고 사람 김범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잦은 이사로 친한 친구 사귀기가 어려웠던 김범. 그런 그에게 언제나 즐길 수 있는 그림은 친한 친구이자 장난감이었다. 하지만 그저 그림이 친했기에 지금의 직업이 된 것은 아니다. 김범에게는 명확한 목표가 있었다. 게임 원화가라는 목표가.
처음 그림은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어릴 적부터 집안 사정 탓에 자주 이사를 했어요. 친구들하고 친해질 만하면 이사하고. 그러다 보니 혼자 놀 수 있는 것을 찾아봤는데 그게 그림이더라고요.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참 많이 그렸던 것 같아요.

재능은 있는 편이었나요? 지금 생각해보면 어떠세요?

재능이 있다고 스스로 생각한 적은 많이 없었어요. 원하는 그림이 술술 나오면 재능을 느꼈을 것 같은데 항상 작업하면서 막히고, 안간힘을 쓰면서 해야 했던 경험들이 많아서요. 쉽지가 않았네요(웃음).

재능이 아니라면 이렇게 계속 그림을 그린 원동력은 뭘까요?

전에도 몇 차례 밝혔었는데 본격적으로 그림을 시작한 계기는 김형태 대표의 작품을 보면서예요. 그때부터 그냥 그림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게임 원화가가 되기를 꿈꿨죠. 그때가 딱 중학교 3학년 되던 때예요. 그전에도 그림을 그려왔지만, 목표한 바가 확실히 있으니 꾸준히 계속 그림을 그려왔죠. 게임 원화가라는 꿈을 품고요.

미려한 색채와 깔끔하게 떨어지는 인체 비율. 자신만의 확고한 스타일을 찾아낸 김범이지만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적은 없다. 그렇다고 그를 가르친 사람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커뮤니티에서의 날 선 지적은 그 자신을 채찍질하며 성장하는 밑바탕이 되었다.
그림을 전문적으로 배운 적은 없어서 혼자서 이것저것 그리면서 시행착오를 겪었죠. 그러면서 많이 배웠어요. 그림 그리는 분들은 보통 커뮤니케이션 활동 같은 것들을 많이 하잖아요? 요즘이야 SNS를 많이 하긴 하는데 옛날에는 별로 없었죠. 그래서 만화 커뮤니티 같은 데에서 활동을 했죠(웃음). 그런 곳에 그림을 올리면 유명한 분들이나 회원분들이 여러 가지 의견을 주기도 하거든요? 그런 게 일종의 가이드 역할을 해줬어요. 다양한 의견을 통해서 배웠던 것 같아요.

실제로 그림 그리는 법이나 화풍, 스타일도 바뀌고요?

그렇죠. 누군가 ‘여기 인체 비례가 이상하지 않으냐?’라고 하면 ‘그렇구나!’라고 생각해 수정하기도 하고. 유저라고 해야 하나? 커뮤니티 활동하는 분들의 피드백이 도움이 됐죠.

역시 재능이 없으면 못 할 일일 것 같은데.... 그런데 지금은 온라인 활동은 많이 안 하세요. 외부 활동도 경력에 비교하면 늦은 편이었고요. 혹시 신비주의 같은 거였나요?

그렇게 거창한 건 아니고 그냥 가만히 있는 건데(웃음). SNS 같은 걸 할 때는 보통 일을 쉴 때인데 제가 회사 생활을 오래 했잖아요? 일 할 때는 SNS에 집중하기가 어려운 것 같더라고요. 작업물도 프로젝트를 통해 보여주는 편이지 그런 공간을 통해서는 잘 공개를 안 하기도 하고요. 게임을 통해서 제 작업물이나 그림을 보여드리고자 하는 생각들이 많아요.

예전과 달리 온라인에서 작업물에 대한 평가를 활발하게 하는 유저들이 많은데 이런 부분을 신경 쓰시는 편인가요?

당연히 신경을 많이 쓰죠. 안 쓰는 분들은 없을 거 같아요. 저도 그런 부분은 많이 신경 쓰기도 하고 허투루 듣지 않으려고 하죠. 분석을 많이 하려고 해요. 혹시 제가 이해가 잘 안 가는 의견도 잘 넘기지 않고 ‘왜 이런 이야기를 했을까?’라고 분석을 하려는 편이고요. 저는 분석적으로 원화를 하는 편이라서 대략적인 통계라도 내보는데 이런 시각, 저런 시각을 볼 수도 있어요. 그러면서 작업물을 사람들이 만족할 수 있는 쪽에 가깝게 표현을 하려고 노력해요.


분석적인 원화란 어떤 뜻인가요?

음식으로 비유를 하면 요리에는 각각의 맛이 있잖아요? 짠맛, 쓴맛, 단맛. 그림의 디자인이나 표현, 화풍에도 그런 느낌. 즉 맛이 있어요. 보통 음식을 먹는 사람들은 각각의 맛이 어떠니 보다는 맛있냐, 아니냐로 평가를 하죠. 만드는 사람으로서는 그 맛있다는 느낌을 만들기 위해서 여러 가지 재료를 분석해야 해요. 단맛은 이 정도, 짠맛은 이 정도. 그림도 음식과 비슷해요. 저는 음식. 그러니까 그림을 그리는 견해에서 분석하는 거예요.

김범 특유의 스타일이 있는데 그것과 반대되는 내용이라든가, 그런 평가를 받으면 어떻게 하나요?

그런 것은 못 느껴본 것 같아요(웃음).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선호하는 것들은 맛의 특징을 구별할 수 있는 부분인 것 같더라고요. 제 그림은 그런 특징은 갖췄다고 보고 있어요. 그 색 안에서 이제 세밀한 부분을 조정하면서 요리의 맛을 다듬는 거죠. 그러니까 사람들이 식당에 찾아올 수 있는 브랜드는 갖췄다고 보고 메뉴를 만드는 과정에 있는 거예요.

예전에 강의하신 적이 있는데 원화가가 도전해야 할 가장 어려운 장벽이 게이머들의 공감을 얻는 것이라고 했어요. 본인은 어느 정도 수준에 와 있다고 생각하세요?

100점 만점에 60점 정도일까요?

생각보다 낮게 주신 거 아닌가요?

저도 확신이 없어요. 대략 유저가 이런 것들을 좋아하지 않을까 하는 감은 있는데 그게 10점이에요. 나머지 50점은 유저들이 좋아하거나 좋아하지 않을 수 있는 반반 확률이라서 준 점수예요(웃음).


김범의 대표작 하면 역시 ‘마비노기 영웅전’, ‘야생의 땅 듀랑고’, ‘하이퍼 유니버스’ 세 작품인데요. 본인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마비노기 영웅전은 이제 막 업계에 입문한 초기 시절이잖아요. 저한테는 성장의 의미가 더 강한 거 같아요.

전설의 시작쯤 될까요?

그런 건 아니고요(웃음). 입문기였고, 좋은 분들을 따라가며 성장할 수 있었죠. 듀랑고를 작업할 때는 군대 다녀온 후 복귀한 시기였죠. 2년 반 정도 작업했는데 마치 졸업하는 느낌이었어요. 마비노기 영웅전 때부터 같이 했던 분들도 있었고. 본격적으로 디렉터로서 야생의 세계에 뛰어든 게 하이퍼 유니버스예요. 그 전에는 원화가로서의 경험밖에 없었던 제가 여러 가지 개발적인 것들을 하고 디렉팅도 하고. 경험을 쌓았던 프로젝트 같아요. 저 자신도 레벨업 많이 했다고 느꼈죠. 왜 그림 이외의 역량이 있잖아요? 이런 것들이 정말 중요하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디렉터를 하고 나서 어떤 부분 달라졌다고 느끼시나요?

간단하게 표현하면… 협력적인 자세가 됐다고 할까요? 예를 들어 유저의 시각이라든가, 이런 건 사업적인 부분과 관련 있는 게 있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조금은 이해도가 높아졌죠. 함께 일하는 개발자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요청하는 부분이 어떤 것 때문에 필요한지, 이런 부분을 이해하기 시작한 거죠. 그런데 굳이 관리 경험이 있지 않았더라도 게임 업계에서의 연차가 더 쌓이면 생기는 경험을 조금 더 일찍, 직접 경험했다고 봐주시면 될 것 같아요. 또 디렉터로서 유저의 피드백 등을 통계를 확인할 수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일반 원화가보다 실제적인 데이터나 유저 성향의 데이터 등 부분을 더 잘 알게 된 것 같아요.


유저들이 원하는 바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는 거겠죠?

그렇죠. 원화가 초창기일 때는 혼자만의 작업, 자신만의 스타일. 거기에 맞춰져 버려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그것만으로는 안되는 시기가 오거든요. 정해진 메뉴를 준비해놨는데 그걸로는 안 되는 단계에 접어드는 거죠(웃음). 우리 식당은 떡볶이만 있었는데 그 메뉴만으로는 안되는 그런 시기요. 사람들이 저마다 이런저런 요리를 만들어달라고 요구하는 거예요. 이제는 그 입맛에 맞는 것들도 준비해줘야 하는 상황이라서 더 복잡해지고 어려워진 것 같아요.

그럼 업무 형식 말고 그림 내적인 부분은 어떻게 바뀌었다고 생각하세요?

딱히 바뀌었다기보다는 더 능숙해지고 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진 것 같아요. 안정감도 커지고요. 제 그림 스타일이 변했다고 느껴지는 분들도 있을 수 있어요. 만약 그분들이 제 예전 작품, 그러니까 마비노기 영웅전 스타일을 원하시면 다시 그렇게 그릴 수 있어요. 하이퍼 유니버스 스타일을 원하시면 다시 할 수 있고 듀랑고 스타일을 원하시면 그것도 할 수 있어요. 그렇게 제가 할 수 있는 역량을 계속 키워가는 거라고 보시면 돼요.


원화는 게임의 콘셉트를 잡는, 프로젝트의 본격적인 시작 작업 중 하나예요. 그런 만큼 영감을 얻는 것도 중요할 것 같아요.

영감을 얻으려면 뭔가 기준이 필요해요. 그냥 영감을 얻으려면 너무 포괄적이잖아요? 기준을 잡고 시작해야 하죠. 그게 사업 방향이 될 수 있고 유저 타깃층이 될 수도 있고 게임의 스타일도 될 수 있고. 게임 원화가가 아니라 그림만 그렸던 분들은 연관성을 찾지 못할 작은 부분들까지 다 고려해야 해요. 그게 콘셉트에 다 영향을 끼쳐요. 그런 부분들이 적립이 된 다음에야 이미지를 뽑아내거든요? 이때부터 원화가로서 전문가의 영역에 들어서는 거죠. 전문가의 영역.

게임 원화가이기 때문에 사업적인 영향을 맞추고 그다음에 개인적인 영역으로 넘어가는 것이죠?

그렇죠. 떡볶이, 라면 중에 ‘떡볶이를 만들겠다’라고 딱 정하고 어떻게 맛있게 만들지 전문가의 영역에서 정하는 게 콘셉트 단계죠. 뭘 만들지 모르고 음식의 세세한 맛, 설탕은 어느 정도, 이런 것까지는 정하지 못하잖아요? 기준이 떡볶이로 정해졌으면 사람들이 어떤 떡볶이를 선호하는지, 어떤 사람은 이런 취향, 어떤 사람은 저런 취향, 이걸 분석한 다음에 제 색을 넣어서 만들어 낸다는 거죠. 그런 게 없이는 영감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거예요. 기준점이 없이는.

한 회사에서 긴 이력을 쌓은 김범은 다음 선택지로 펄어비스를 선택했다. 그는 아직은 기대하는 바를 증명해야 한다고 조심스레 이야기했다. 김범은 그러면서도 김대일 의장과 함께함에 대해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설 즈음에 펄어비스 합류 소식을 들었어요. 펄어비스에서는 어떤 일을 하시게 되나요?

온 지 얼마 안 됐어요. 이제 3개월 정도 됐는데 일단은 신규 프로젝트에 집중하는 쪽이 될 거예요. 그렇더라도 회사에서 저에게 다양한 역할을 기대할 수 있고, 저도 여러 가지를 선보이면서 회사에 적응해나가는 단계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펄어비스 입사 계기 같은 게 있을까요?

대우를 잘해주신 것도 있어요. 하지만 그런 차원에서 보기보다는 기회를 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김대일 의장님 이력은 제 개인 경험상 말이 안되거든요(웃음). 검은사막 모바일까지 개발 이력을 보면서 너무 궁금했어요. 같이 일을 한다면 어떨까 하는 부분들요. 또 펄어비스가 가진 가치관 같은 것도 경험해보고 싶었고요.

게임업계의 레전드를 바라보는 원화계의 차기 레전드쯤으로 보면 될까요?

그런 건 아니에요(웃음). 전설적인 관장이 있는 도장에 권법을 배우려고 온 수련생? 아 이렇게 봐도 되겠네요. 만화 원펀맨하고 비교하면 김대일 의장님이 사이타마고 제가 제노스 정도?

펄어비스 하면 검은사막을 떠올리는데 의상 같은 작업에 참여하기도 하나요?

신규 프로젝트에 집중하는 상태지만 검은사막 작업은 어느 정도 지원하는 부분이 있어요. 의상도 있고.

검은사막의 경우 기존의 작품 스타일에 맞추는 방향인가요? 아니면 김범 스타일을 살리는 방향인가요?

어느 한 방향이라기보다는 교집합을 만들어야겠죠. 저는 뭘 하든 제 느낌이 나오니까요(웃음). 제 색이 나온다고 하면 거기에 검은사막이 지금까지 갖춰놓은 아트 스타일이나 이런 것들을 해치지 않을 만한 중간 점을 찾아내서 잘 녹여내는 방향이 될 거예요. 김범이 검은사막 작업을 지원한다 하더라도 검은사막의 기존 범주 안에 포함된다는 느낌으로 생각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 위 이미지는 김범이 작업 중인 검은사막 발키리, 워리어 의상 컨셉입니다. 단 의상은 실제 제작 시, 해당 원화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이미지는 클릭 시 확대됩니다.

누군가를 존경하며 따른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경계해야 하는 것으로 꼽힌다. 자신만의 또렷한 색 없이는 수많은 지망생 사이에서 눈에 띌 수 없다는 평이 많기 때문이다. 김범은 누군가의 스타일을 따르면서도 자신의 색을 내는 것도, 경쟁력을 가질 수도 있다고 응원한다.

하지만 김범은 게임 원화가가 되려거든 그림 외의 전문성 확보를 잊지 말라는 현실적인 조언도 더했다.
김범의 원화를 보고 게임을 플레이한다는 유저가 있을 정도로 팬이 많아요. 그런 관심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감사한 마음이 크죠. 거기에 보답해야겠다는 부담감도 크고요. 이제는 단순히 그림만 잘 그리고 디자인만 잘 나와서는 안 되는 단계가 된 것 같아요(웃음). 단순히 원화가로서 그림 잘 그리고 이런 것보다는 재미있는 게임을 통해서 보여주는 거요. 그런 것들을 통해서 행복감을 드리면 좋겠는데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게임 팬들만 아니라 원화가 지망생들도 김범을 바라보며 화풍을 연습하기도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기분이 묘하죠. 제 스타일이라는 것이 게임 업계 쪽에, 아이덴티티를 가지게 됐다고 해야 하나? 김형태 대표의 작품이 김형태 화풍으로 자리를 잡았듯 작게나마 저에게도 생긴 느낌이어서 기쁜 마음이 크죠. 그리고 저는 이게 여러 스타일로 파생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김형태 대표 화풍 중에 꾸엠님이란 원화가가 계시잖아요? 물론 부부이기는 하지만요(웃음). 그분의 작품이 같은 계열 안에서도 다른 느낌이 있잖아요. 어떤 분들은 그저 따라 하는 느낌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그 화풍 안에서 새로운 느낌, 더 발전된 느낌으로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봐요. 개인적으로 어떤 새롭고 훌륭한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면서 기대되기도 해요.

비슷한 화풍이라도 자신만의 색을 내면 경쟁력이 있다고 보시는 거죠?

네. 그리고 많은 분이 그런 독특한 색을 낼 수 있다고 보고 있어요.


게임 원화 시장이 포화상태라고들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또 지망생들은 꿈을 이루는 데 있어 어떤 부분을 고려해야 할까요?

현실적인 말을 하자면 원화가를 꿈꾸는 분들이 옛날보다는 훨씬 많아지고 시장도 커졌어요. 예전의 음지 문화나 인디 성격보다는 표면에 많이 올라가 있다고 봐요. 그리고 이제는 게임 산업의 전문 디자이너로서 단순히 그림을 잘 그리는 것만으로는 안된다고 보시면 될 거 같아요. 그림을 잘 그리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보고요. 기본이 갖춰진 상태에서 사업적으로나 거대화된 게임 사업에 걸맞은 전문화된 연습. 이런 부분에서 경쟁력을 길러야 할 것 같아요.

게임을 만들고 회사에 소속될 수 있는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거겠죠?

네. 전문성이라는 말로 대신할 수 있을 거 같아요. 흔히 아티스트라는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요. 물론 이 표현이 가지는 숭고한 가치가 있어요. 하지만 게임 원화가는 내 그림의 가치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설득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소비자인 유저가 원하는 바를 파악하고 거기에 맞출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럼 본인은 게임 개발자와 게임 원화가, 어느 쪽으로 불리길 원하세요?

당연한 얘기지만 사람들이 둘 다 같이 불렀으면 좋겠어요. 또 어떻게 불려도 부끄럼 없이 잘 했으면 좋겠고요. 원화가는 이미지를 눈으로 보이게 표출하는 직업이잖아요? 게임의 표지 역할을 담당하는 면에서 원화가로서 알려지는 것도 중요하다고 봐요. 그렇게 게임을 알리는 게 게임 개발자나 동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부분도 있고요. 여기에 개발자가 지녀야 할 능력이 더해지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죠. 쉽지가 않은 일인 것 같아요.

게임 쪽에 스타 원화가가 줄어든다는 평이 있던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게임 업계의 역사가 짧잖아요? 저는 그중에 기회가 있어서 드러난 거고. 시간이 지나면 스타 원화가는 앞으로도 많이 생길 거라고 봐요.

지켜보는 원화가가 있나요? ‘김범이 찍었다’든가.

그렇게까지는 절대 아니고요(웃음). 그래도 원화나 그림을 봐도 대단하다고 느껴지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그런 분들도 아직 기회가 오지 않았을 뿐이지 기회가 생기면 얼마든지 이름을 알릴 수 있는 분들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마비노기 영웅전이라는 기회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제 이름을 알리지 못했을 거잖아요?

그럼 반대로 원화가로 자신의 회사와 게임까지 만든 김형태 대표를 보면 어떤 느낌이 드나요?

존경스럽죠. 후배들한테 존경을 보이는 선배 세대 중 한 분이고요. 어떤 평가를 받든 후배 원화가 입장에서는 앞서가는 분들이 잘 되면 힘이 되고 그래요. 저도 그렇게 원화가를 시작하는 분들에게 힘이 되는 모습을 보여드리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뚜렷한 목적이 있었지만, 진로에 대한 고민은 김범도 있었다. 특히 꾸준히 그림을 그려오던 그에게 군대에서의 생활은 자신을 돌아보게 했다. 오랜 고민 끝에 그의 비전은 그림이 아니라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는 것에 있음을 김범은 깨달았다. 그리고 그는 그 방법이 여전히 그림에 있음을 함께 떠올렸다.
처음부터 게임 원화가라는 구체적인 꿈을 가지고 이루셨어요. 그런데 이 일 말고 다른 직업을 해보고 싶다던가 생각한 적 없나요?

줄곧 그림만 그리다 군대에 갔는데 통신병이 됐어요. 그런데 이 일이 재미있더라고요(웃음). 작업하러 가면 소초장들이 와서 반겨주고, 뭐 수리해주면 ‘와, 최고다’라며 칭찬도 해주고. 저한테는 나름의 인생의 경험이었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게 뭘까 진지하게 고민도 했어요.

어쩌면 이 자리가 아니라 전화국 같은 곳에서 뵈었을 수도 있겠네요.

그럴지도 몰라요(웃음). 저도 고민을 해봤는데 저는 제가 뭘 하든 사람들이 좋아해 주면 거기서 행복함을 느낀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중에서도 제가 가장 잘 하는 게 그림이고, 그림을 통해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뭔가를 해주고 싶었어요.

원화가가 아니라 다른 일을 해도 그림과 관련된 일을 하겠다는 거겠죠??

네. 그건 제가 다른 일을 해도 똑같았을 거예요.


그럼 마지막으로 펄어비스 게임 원화가 김범으로서, 그리고 김범 개인으로서의 목표를 듣고 싶어요.

펄어비스는 장래가 더 유망한 회사고 저에게 좋은 기회를 주었죠. 제가 큰 힘이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펄어비스를 유저들이 사랑할만한 회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또 팬 여러분들이 다양한 의견과 진심 어린 조언을 거침없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저는 인터넷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서 성장해 왔어요. 여러 다양한 사람들의 피드백을 통해서 그림을 그려왔고 그런 환경에 익숙하죠. 여러분이 편하게 의견을 줄 수 있는 친근한 원화가로 봐주면 좋을 것 같아요. 서슴없이 얘기해주시는 이런 부분들에 충분히 공감하고 보답하는 좋은 이미지를 선보일 수 있도록 할 테니 기대해주셨으면 합니다.

개인적으로는요?

구체적이진 않겠지만 성장이 목표에요. 사람들이 알아주고 좋아해 주기는 하는데 아직은 얼굴이 알려진 정도. ‘어, 내가 아는 사람이네’ 정도라고 생각하거든요. 알아봐 주시는 만큼 결과도 있어야 하고, 게임 개발에서의 결과나 이력. 이런 부분들도 확실히 보여드려야 해요. 그런 것들을 쌓아 ‘단순히 내가 아는 얼굴’, 그 이상이 되는 게 목표입니다.

인터뷰 말미 그에게 게임 팬들을 향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를 물었다. 그는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며 이렇게 답했다.


조금 놀라웠다. 혹시 지금의 성과나 경력이 모자라는 것이냐고 슬쩍 묻자 그는 크게 손사래를 쳤다. 김범은 그림을 처음 배웠던 그때처럼 따끔한 조언과 쓴소리를 듣길 원했다. 더불어 그는 더 좋은 작품으로 그런 이들까지 만족할 수 있는 작품으로 보답하겠다며 포부를 드러냈다. 또 그런 성장을 팬들이 마치 친한 형, 동생의 마음으로 응원해주기를 바랐다.
제가 어렵게 느껴지거나 존경스러운 원화가로 비치는 것은 원하지 않아요. 그게 맞는다고도 생각하지 않고요. 팬 여러분이 저를 철저히 평가해주시면 더 좋은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뭔가 유저들이 ‘너를 키워줄게’라는 마음으로 지켜봐 주셨으면 해요(웃음).

우상이 되기보다는 친구 같은 느낌을 원하시는 건가요?

제가 잘되면 유저분들도 기분 좋아지는 그런 느낌 있잖아요? 우리 형, 혹은 우리 동생이 ‘이렇게 잘됐어’ 하면서 애착을 가지는 거요. 유저분들이 직접 키워주신다는 느낌으로 제가 성장하는 것을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게임 유저에게 인정받을 때만큼 솔직하고, 진심으로 기쁠 때도 없는 것 같거든요. 처음부터 저를 좋아하는 분들에게 좋은 의견을 듣는 것도 값어치 있고 좋긴 하지만요. 그런 날카로운 지적이 제가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니 많은 의견 편하게 주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