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GDC의 여파로 다소 두서없는 서술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아직 시차 적응을 못해 피곤한 관계로 속마음이 튀어나올 수 있습니다.


3월 19일부터 23일까지 미국 샌프란시스코 모스콘 센터에서 GDC2018이 개최되었습니다. GDC(Game Developers Conference)는 게임 업계 관계자들이 모여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고, 네트워킹은 물론, 다양한 강연과 토론이 진행되는 자리입니다. 매년 인벤팀은 샌프란시스코 현지에서 취재, 현장의 다양한 강연을 기사로 전달해 드리고 있지요. 7~800개의 무시무시한 강연 스케줄 덕분에 가장 난이도 높은 컨퍼런스로 유명한데요. 엣헴. 올해는 제가 가게되었습니다.

"GDC 취재기자로 허재민(리테) 기자를 추천합니다. 기자라면 꼭 한번 다녀와야죠"
-올해 GDC2018 안 갈줄 알았던 GDC 전문 취재기자 김규만(3년 연속 확정)


유명한 게임 개발자들을 만나고, 내가 좋아하는 게임의 비하인드 스토리도 들어보고, 다양한 시연 부스도 즐기고, 굿즈도 사고! 즐거운 일만 가득할 것 같은 GDC 희망편...하지만, 4당 5락(4시간 자면 성공하고 5시간 자면 망한다!)의 GDC 스케줄을 과연 제가 소화할 수 있을까요.

마지막으로 결정된 멤버는 이랬습니다. 타자 소리가 멈출 시간 없이 일하는 워커홀릭 수석기자 정페케 님, 작년 GDC2017 취재를 다녀오신 GDC 유경험자 김프란님, 그리고 이제야 입사 1년 차에 접어든 저. 이렇게 세 명이 샌프란시스코로 떠나게 되었습니다. 힘들다고는 해도, 어쨌든 버티고 오면 업그레이드된다는 말에 어떻게든 해내자는 마음으로 떠났지요. (안 돼... 가면 안 돼... S.T.A.Y...)

출장을 앞두고 옆자리 워니님은 작은 선물을 하기도 했습니다. "리테님, GDC 다녀오셔서 희망편이었는지 파멸편이었는지 알려주세요, 호호호."

▲동료기자가 보내준 '이것이 GDC다!'

결론적으로, GDC2018은 정말 기묘한 모험이었습니다. 설마 이렇게 되겠어? 하면 그대로 이루어진 저희의 기묘한 모험. 세 가지 시련과 함께한 모스콘센터 용사들의 GDC2018 취재기를 소개합니다.


첫 번째 시련 - GDC 자체가 하나의 시련이었다
GDC2018 취재기

▲강연취재, 부대행사, 인터뷰 체험까지 3페이지에 걸린 취재 스케줄

세계 최대의 게임 개발자 컨퍼런스, GDC. 그런 만큼 강연 수부터 700개가 넘고, 행사장 규모도 거대했는데요. 어떤 강연을 들을 것인지 일정을 체크하는 회의만 이틀이 걸렸습니다. 정말 듣고 싶어도 겹쳐서 포기해야 하는 강연들도 있었지요. 이렇게 정해진 저의 일정, 글로만 봐도 빡빡해 보였습니다.

길면 길다고 할 수 있고 짧다면 짧은 5일. 힘들어도 이 정도는 버티면 될 거라는 마음으로 비행기에 탑승했습니다. 왠지 공항에서부터 선배들의 얼굴에 핏기가 없어 보이는 것은 제 착각이겠죠.

▲"출발합니다!" GDC 전후의 모습은 어떨까? 라는 마음에서 찍은 사진.

샌프란시스코에 착륙하자마자 느낀 것은 생각보다 춥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보다 따뜻하다고 하여 얇은 옷만 챙겨온 것이 불찰이었는데요. 얼른 우버를 불러 숙소로 향했습니다. 그 와중에 선배들은 비행기 안이 그렇게나 시끄러웠는데 어떻게 쿨쿨 잘 수가 있느냐며... 앞자리 분의 수다스러움에 대해서 툴툴대시더군요.

▲숙소에 가기 전, 마트에 들렀습니다. 에너지 드링크를 많이 샀다고 생각했는데, 모자라더라고요.

숙소로 오면 따뜻할 줄 알았는데. 함께 방을 쓰게 된 글로벌 인벤의 카엔님이 추위를 이겨내지 못하고 괴로워하고 계셨습니다. 히터를 틀었는데 계속 찬바람이 나오고... 온도도 24도까지밖에 올릴 수 없어서 전화를 해보니...

"그 방은 원래 24도까지밖에 설정이 안 되는 방이에요."
으앜!!


결국 저희가 받은 것은 작은 간이 히터였는데요. 매일 먼저 숙소에 돌아오는 사람이 켜두기로... 매일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하는 작은 일과가 되었지요. 이날 저녁은 글로벌 지사의 비토 지사장님, 카엔님, 아벨님과 함께 '레드 루프(Red Roof)' 아래 있는 음식점에서 간단히 먹게 되었습니다. 뭐랄까, 메뉴가 스테이크에서부터 라멘까지 다양하게 있는데다가 가격도 저렴한 편이고 맛도 평이했지요. 간단하게 설명하면,

미국식 김가네.

아주 맛있는 곳은 아니었지만, 숙소에서 가까워서 좋았는데요. 이곳은 나중에 다시 돌아올 예정이니 그때 다시 다루도록 하죠. 기억해두세요, 레드 루프... 레드 루프...

▲우리의 구원자 '레드 루프', 그리고 아래 음식점, Leann's



다음날, 본격적인 GDC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아침부터 날씨가 우중충한 게 역시나 추웠는데, 내일부터는 비가 올 예정이라고 하더군요. 강연이 시작하기 전까지 프레스 등록을 해야 했기 때문에 조금 일찍 출발했는데요. 우버를 타고 약 30분 정도를 가니 우리가 앞으로 자주 들락거릴 모스콘 센터가 눈에 보였습니다. 먼저 우리가 향한 곳은 프레스룸과 엑스포가 있는 모스콘 노스. 문앞에서 프란님은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뭐라 중얼거리고 계셨어요.


프란 "내가 여길... 다시 오게 되다니..."

오랜만에 오게 되어 너무 반가우신 마음에 중얼거리신듯합니다. 내년에도 꼭 오실 수 있기를 기원해 드리며 2층 프레스룸으로 이동했습니다. 그리고 빠르게 프레스 등록을 마쳤지요. 호텔에서부터 느낀 것이지만, 다들 정말 유쾌하고 친절하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프레스 등록을 해주던 분도 유쾌하게 인사해주더라고요.

"이제 등록은 다 됐어!
뭐!? GDC가 처음이라고?
와우, 반가워. 마지막으로 GDC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장 중요한 경험을 소개할게! 무료 점심이야! 여기 쿠폰!"


▲프레스 명찰과 GDC 천 가방, 그리고 뒤에 보이는 무료 점심 쿠폰

▲지도가 귀엽게 되어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세하게 그려져 있었어요!

친절한 설명을 듣고 바로 첫 강연을 위해 도보 약 5분 거리의 모스콘 웨스트로 향했습니다. 3층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건물로, 2층과 3층에는 강연실이, 그리고 1층에는 다양한 부스가 준비되어있었습니다. 빠르게 첫 강연을 들으러 가볼까요, 첫 강연은, '실패 워크샵'입니다. 시작부터 정말 멋진 주제네요! GDC 1일 차에서는 소규모 개발사의 재치있는 강연 주제가 돋보였고, 2일 차로 접어들자 유명한 게임사들의 강연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GDC의 강연을 쭉 들으면서 수동적으로 강연을 듣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게임 관련 개발자들로서 서로 대화하고 인사를 나누기도 하고, 토론하는 장이 만들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행사를 진행하는 스태프 분들도 게임 관계 종사자인지 학생인지 강연을 들으러 들어오기도 하고 문앞에서 줄 서 있는 사람들과 토론을 하더라고요. 저도 종종 옆자리 분이 말을 걸어와 인사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한국인이니? (안녕하세요) 난 게임 개발자이자 과학자야."
"오, 그렇구나! 난 한국 게임 매체 인벤에서 온 기자야. 근데 한국어 발음이 정말 좋아서 놀랐어!"
"응, 내 전 남자친구가 한국인이었거든. 지금은 남자친구가 없지만 말이야!"


게임과 관련한 대화에서부터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강연 전에는 이런 대화의 장 덕분에, 강연 중에는 유익한 내용과 다양한 질문과 답변덕분에 지루할 틈이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이거, GDC 생각보다 즐거운데? 라고 생각이 들 정도였지요. 강연 내용도 재밌지만, 직접 유명한 개발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어 설렜습니다.

▲근엄하신 자태의 로드 브리티쉬, 리차드 게리엇

3일 차, 4일 차에 접어들면서 정말 함께 공유하고 싶었던 강연들이 많았습니다. 기사를 작성하면서 현장의 유쾌한 유머까지 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어 아쉬울 때도 있었죠. 700개 이상의 강연 중에서 고르고, 또 고른 강연기사들, 이건 꼭 놓치지 마세요!


▲모스콘 웨스트 1층, 사람들이 만나는 장소이기도 했지요.

▲'니어: 오토마타'의 요코오 타로 디렉터와 타카하시 디자이너 강연이 끝나고,

▲혹시나 해서 사진 줄에 섰는데, 운 좋게도 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엑스포 현장에서는 다양한 부스들이 준비되어있었는데요,

▲무료 팝콘과 맥주가 있다는 말에 에픽게임즈 부스를 찾아가봤습니다!

▲라마를 탈 수도 있었지요!

▲"제가 한번 타보겠습니닷!"

▲"으어어엌"

강연 외에 인터뷰나 외부 취재 일정이 있을 때에는 시간 맞춰 이동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어쨌든 한국이 아닌 미국인만큼 얼마나 먼 거리인지, 걸어갈 수 있는 곳인지 잘 알아보고 가야 하니까요. 괜히 삭막한 골목에 접어들면 조금 무섭기도 했습니다. 알고 보니 아주 안전한 골목이었지만 괜히 생존 신고를 하기도 했지요.

"취재 끝났고, 잘 살아서 모스콘으로 복귀 중입니다."

▲행사장이... 여기 어딘가에 있다고요...?

▲앗! 여기구나! 사실 밖에서 봐도 티가 안났던...

▲외부 행사 외에도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합니다(쇼파에 앉고 싶다...).

▲"강연 다 끝나셨어요?" "응, 밥 먹고 호텔로 가자."

▲점심은 주로 푸드코트에서 해결했지만,

▲저녁에는 맛있는 것을 먹으러 갈때도!

취재 일정이 끝나면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와 기사 작성을 시작합니다. 영어로 진행된 강연을 듣고 워딩을 하고 기사로 만들어내는 것은 생각보다도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업이었습니다. 빠르게 처리해 하루 기사 세 개를 쓰겠다는 목표는 자연스럽게 무너지게 되었지요. 저녁 여덟 시쯤에 돌아와 정말 쉬지 않고 일했는데도 새벽 네 시가 되어서야 두 개를 완성할 수 있었어요. 세시 전에는 자야 한다는 룰이 있었는데 맞추지 못했지요.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니 침대가 마치 늪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빠르게 일어나 조식을 위해 내려갔지요. 아무리 피곤해도 먹긴 먹어야 해요. 근데, 정말 미국 김가네에서도 느낀 것이지만, 왜 채소가 없는 걸까요? 조식 바는 제게 외치는 듯했습니다. "넌 지금 과일을 먹었잖니. 그 오렌지 주스로 말이지."

▲채소가 없어서 유일한 과일인 멜론으로... 제발.내게.채소를.줘.

이날부터 깨달았습니다. GDC가 힘든 이유를 말이죠. 기사를 정리할 시간은 별로 없고 들을 강연은 많았으며, 중간마다 외부 취재와 인터뷰를 해야 했고, 저녁에 돌아와서 기사를 작성하고... 그리고 그 다음 날은 피곤할 수밖에 없었지요. 알고리즘으로 정리해본다면 이런 모습일 겁니다.

▲간단한 GDC의 알고리즘

▲알고리즘 반복에 따른 변화...

▲알고리즘 반복에 따른 변화2 - GDC 1일 차(좌) GDC 4일 차(우)

▲발랄했던 그들은,

▲격렬하게 괴로움을 표출하기도,

▲말없이 방전되기도 했습니다.

▲에너지 드링크는 모자랄 수 밖에 없었어요. 정말 계속 마시게 되거든요.



두 번째 시련 - 드디어 GDC 종료! 36시간의 기묘한 귀국길
모스콘 센터 용사들의 기묘한 귀국길

GDC기간 내내 추적추적 오던 비. 놀랍게도 마지막 날인 금요일에는 비가 그치고 오후가 되자 해가 쨍쨍 맑은 날이 되었습니다. 정말 저희의 기분을 대변하듯 딱 GDC기간에만 비가 내렸지요. 금요일에는 오전에만 섹션이 준비되어있고 엑스포도 3시면 정리가 되기 때문에 저희도 일찌감치 짐을 챙겨 숙소로 가 기사를 마무리했습니다.

그 다음 날은 출국일로, 비행기는 밤 11시 30분으로 예정되어있었습니다. 그런 만큼 자유시간에 샌프란시스코의 유명한 여행지, 피어39(PIER39)로 향했는데요. 이날도 날씨가 아주 좋아서 파란 하늘이 저희를 반겨주는 것만 같았지요. 미세먼지 없는 하늘이라니, 예전에는 당연했던 것들이 어찌나 값지게 느껴지던지. 많은 곳을 돌아다니지는 않았지만, 햇빛을 받으니 기분전환이 된 반나절이었습니다.

이때는 몰랐죠. 이제부터 저희는 기묘한 모험을 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이제부터는 시간별로 소개해 드립니다. 정말 믿기지 않는 모험이었거든요.

▲GDC가 끝나고 활기를 되찾은 그들. 왠지 다들 얼굴이 부어서 동글동글 해졌네요.

▲날씨가 정말, 정말 좋았던 피어39


▲직접 담을 수 있었던 배스솔트. 이때는 몰랐습니다. 이 배스솔트가 저를 계속 괴롭힐 줄은...



3월 24일 토요일 8:00PM

배가 고프지 않아 저녁은 패스하고 짐을 찾아 공항으로 가기 위해 숙소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짐을 찾는 와중에 발랄한 직원은 제게 살갑게 말을 걸기도 했지요. "오마이갓! 아이 러브 유얼 헤얼~" 하고 말이에요. 미용실은커녕 머리빗은 지도 오래되어 순간 다른 사람한테 한 말인가 한참을 넋 놓고 있었죠. 한국의 미용실에 대한 설명을 잠깐 해주다 보니 어느새 공항 셔틀버스 시간. 공항에 도착해 짐 검사를 하는데 어랏? 저희의 가방이 줄지어 검사대에 오릅니다.

"이 가방 누구 겁니까?"
"저희 거에요."


아니, 가방에 들은 것이라곤 기라델리 초콜릿이랑 담요 같은 것밖에 없는데. 알고 보니 문제가 된 것은 아까 구매한 배스솔트였습니다. 의심스러운 알갱이들이니 검사대에 오른 것이죠. 우리가 모두 하나씩 구매한 만큼 모두 한 번씩 검사를 받게 되었고, 제 차례가 되었습니다. 먼저 검사대에 공개된 것은 기라델리 초콜릿.

▲핫초코도 정말 맛있었던 기라델리(Ghirardelli)! 초콜릿 사느라 사진 찍는 것도 잊었네요! (사진출처:foodology)

"초콜릿이 아주 위험하지. 그렇고말고. 살이 찌고 건강을 해친다고?"

웃으며 초콜릿을 흔들어 보이던 검사대 아저씨는 그다음으로 담요를 꺼내...려는데 우르르 리스테린 다발이 검사대에 흩뿌려졌습니다.

"너, 이 자식... 얼마나 (입 냄새가) 심했으면... 힘내라."

아니, 아저씨 아니에요. 아니라고요. 잠시의 헤프닝이 있었지만 우리는 무사히 수속을 마치고 푹 잠을 잘 거라며 수면유도제까지 사서 비행기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3월 24일 토요일 11:00PM

드디어 탑승 시작 시각. 하지만 비행기 점검 문제로 지연되고 있다는 소리에 다시 대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 어차피 늦은 시간 비행기, 여유롭게 마음을 가지자는 생각으로 다음 공지를 기다렸습니다.


3월 25일 일요일 12:30AM

드디어 비행기에 탑승했지만, 여전히 항공기에 결함이 있어 이륙은 늦어지고 있었습니다. 오토... 랜딩... 시스템이었나, 어떤 시스템의 문제가 있는 것이었는데, 조금 기다리면 이륙하겠지라는 마음으로 기다렸습니다. 피곤했던 모스콘센터의 용사들은 모두 수면 유도제를 먹고 곯아떨어졌지요.



3월 25일 일요일 3:30AM

한참 자다가 일어나니 비행기는 아주 고요했습니다. 아니 이륙하는 느낌도 없었잖아? 대단한걸. 하고 보니 아직 우리는 샌프란시스코였습니다.

"손님 여러분, 비행기 결함문제 때문에 이륙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이에 비행기 전원을 모두 껐다가 켠 후 이후에도 해결되지 않을시 결항할 예정입니다."

기장님, 그게 무슨 소리요... 집에 보내주시오... 잠시 극심한 피로를 느꼈지만 어쨌든 될 거라는 마음에 다시 눈을 감았습니다. 비행기 재부팅이라니, 이런 경험은 또 처음 해보니 즐겁게 받아들이면 될 거라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서요.

▲안돼요... 싫어요... 집에 가고 싶어요...


3월 25일 일요일 6:00AM

"리테님 일어나요. 우리 결항됐대요."

비행기 안에서 6시간가량 앉아 대기한 후에야 결정된 결항. 사람들의 불만은 당연히 엄청났고, 제대로 된 방송이 없어 분위기는 아수라장이었습니다. 한국어에서 영어는 물론 중국어와 일본어까지 승객들의 외침이 시작했으며, 환승 문제가 있는 승객, 다음날 출근해야 하는 승객 등 각자의 사정이 있는 사람들로 가득했지요. 결국, 오후 5시에야 비행기가 이륙할 수 있다는 소식. 환불을 받을 수는 없으니 저희는 호텔로 인계해주기를 기내식을 먹으며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기다리다, 기다리다, 초토화

3월 25일 일요일 9:00AM

한참을 기다렸으나 정신없는 와중에 호텔에 인계해줄 것 같은 기미도 보이지 않자, 결국 우리의 머릿속에 떠오른 말 하나.

자력구제가 최고다.

▲스스로 살아남아야 한다. 줄이 생기기를 기다리면 늦는다. 줄을 직접 만들어야 한다.

그래, 스스로 구하지 않으면 아무도 우리를 돌보지 않는다는 생존의 법칙을 떠올리며 우리는 우리가 묶었던 호텔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아침에 체크인할 수 있는 방이 없었고, 호텔 직원의 "레드 루프라고, 거기 음식점 위에 호텔이 있어, 거기 한번 가봐"라고 조언에 따라 우리의 김가네, 레드루프로 향했습니다.

"물론 방 있지, 너희 각자 하나씩? 너희 가족아니니?"
"아니, 어딜봐서... 우린 가족도 친구도 아닌 비즈니스적 관계야."
"오우, 알았어."


그렇게 무사히 방을 구하고 정말 기절한 듯 쓰러져있으니 금방 시간이 지나가더군요. 체크아웃할 때 정말 안쓰럽게 쳐다보던 프론트 직원들은 잊혀지지 않습니다.

"설마 또 비행기가 결항되겠어?"
"또 모르는 일이야, 얘. 또 몰라. 결항되면 돌아와. 오늘까진 너희 방이니까!"
"오우... 그런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레드 루프, 다시 돌아온다고 말씀드렸죠?

3월 25일 일요일 14:00PM

공항에 도착, 우리는 다시 절차를 밟기 시작했습니다. 아뿔싸. 배스솔트. 다시금 우리의 가방은 검사대에 올랐고 익숙하게 그 과정을 지켜보았으나 이번에는 조금 달랐습니다. 알람이 울려서 몸수색하게 되었는데요. 열심히 온몸을 수색해주던 관계자분의 민망한 표정도 잊혀지지 않네요.

"네 카메라가 알람을 울려서, 너 정밀 검사를 해야 해. 온몸을 수색할 거고, 괜찮니? 몇 분 동안 서 있을 수 있니? 건강상 문제는 없고? 개인 방이 필요하니?"


3월 25일 일요일 17:00PM

다섯시 비행기, 다시 또 연착입니다.

▲힘들어도 밥은 꼭 먹습니다!


3월 26일 화요일(한국 시각 기준) 12:40AM

무사히 이륙하자 사람들은 모두 박수를 쳤고 한참 자고 일어나니 곧 착륙시간이었습니다. 드디어 고국의 땅을 밟을 수 있는 것인가. 우리가 인천에 내린다면 나는 도쿄를 지날 때부터 설렐 거야. 인천 상공에 비행기가 도착하는 것이 보이자 슬슬 스트레칭을 하며 내릴 준비를 하게 되었지요.

"승객 여러분, 짙은 안개로 인해 착륙할 수 없는 관계로 제주 공항으로 회항하게 되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뭣이!

▲아니, 어딜가는 거에요...?

▲모든 화면에 떠있는 제주도...

▲해탈한 두 분. 자력구제로 빠르게 버스에 탑승, 호텔 접수까지

▲그럼에도 다음날 그들의 모습은 기력이 없었다.

3월 26일 화요일 13:45PM

제주도를 거쳐 돌아온 인천공항. 착륙 때는 모두 경건한 마음으로 숨죽이며 기다렸고, 비행기의 바퀴가 땅에 닿는 것이 느껴지자 모두 박수를 치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승객들 얼굴도 외울 지경이더라고요.

너무나도 기묘했던 귀국길. 우리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자력구제가 최고라는 것뿐. 빠르게 짐을 챙기고 빠르게 나와 우리는 각자 집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감상에 젖은 페케님이 저희에게 괜스레 애정표현을 했지만, 저희는 쿨하게 끄덕일 뿐. 우리는 비즈니스적 관계니까요.

▲한 비행기 세 번 타보셨나요? 같은 항공기, 같은 자리, 다른 느낌.
심지어 우리가 자리에 넣어둔 땅콩도 그대로 남아있었던...

▲정말 마지막 날에는 환호성을 지르며 탑승했습니다!

▲비즈니스 관계의 그들


마지막 시련 - "그럼 넌 내년 GDC 가는 거야!"
내년 GDC가 기다려집니다!

힘들다, 힘들다 했지만 자유롭고 유쾌한 행사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드는 GDC 출장이었습니다. 시간표에서 강연을 골라 듣고 공강 때 쉬기도 하면서 오랜만에 대학생 때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도 만끽할 수 있었지요. 강연이 시작하기 전에 스태프들, 강연을 위해 줄을 선 사람들, 다음 강연의 강연자까지 옹기종기 모여 수다를 떨던 시간이 정말 즐거웠던 것 같아요. 서로 무슨 일을 하든 게임과 관련한 사람들인 만큼 대화의 소재는 끊이지 않았거든요. 그리고 아무리 힘들었어도 뭐, 이런 건 익숙하잖ㅇ...

페케, 프란   "익숙해? 그럼 넌 내년 GDC 가는 거야!"

▲이상 너무나도 즐거웠던 GDC 취재 후기, 마무리합니다! 아하하하 너무 즐거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