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 이장주 박사

게임의 질병 코드화. 지난 2017년 12월, 세계보건기구(WHO)는 게임중독 및 장애를 국제 질병 분류(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Diseases, ICD)의 개정판인 ICD-11에 등재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ICD-11의 세계보건총회 안건에서는 등재가 제외되어 유예되었지만, 여전히 게임장애를 질병으로 분류하는 데에 확실한 근거가 없다는 점에서 논란은 뜨겁다.

오늘 'NDC2018'에서는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게임에 매달리는지에 대해서 짚어보고, 게임을 병리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왜 위험한지에 대해 들어볼 수 있었다. 이날 강당에 오른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의 이장주 박사는 오늘 강연에서 게임 장애가 왜 문제가 되는지, '게임 장애'라고 일컬어지는 증상의 원인은 과연 게임에 있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게임인지, 아니면 그를 바라보는 사람에 있는지, 문제 자체에 대해 여러 관점에서 바라보고 어떤 부분에서 문제가 있는지 짚어볼 수 있었다.


게임 장애, 문제는 게임이 아닐 수 있다
문제의 원인은 무엇인가? 길을 잃으면 가끔은 멀리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장주 박사는 먼저 아이와 모빌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천장에 모빌을 달고, 모빌과 아이의 발을 실로 연결해두는 실험이다. 아이는 천장에 달아둔 모빌에 닿을 수 없다. 따라서 모빌에 닿고자 몸부림을 치게 된다. 몸부림을 치다가 아이는 자신의 움직임과 모빌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연관성을 찾은 아이의 즐거운 발길질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아이는 금방 흥미를 잃는다.

그럼 이번에는 모빌이 아니라 아이가 움직일 때마다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줘 보자. 이번에는 모빌과는 조금 다르게 음악을 아이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도록 했다. 움직일 때마다 계속 틀어주고, 아이 마음대로 끌 수는 없다. 아이는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즐거워했을까? 아니다. 아이는 짜증을 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아이의 재미는 모빌이나 음악 자체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는 ‘통제감’에 있다는 점이다.

게임 장애를 바라볼 때 게임만을 바라본다는 것은 아이가 모빌을 좋아해서 모빌에 집착한다는 것과 같이 잘못된 생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사람이 즐거워하는 것은 세상을 배우고, 자신이 이를 통제할 수 있다는 쾌감이다. 왜 아이들은 굳이 잘하지도 못하는 숟가락질로 밥을 먹겠다고 고집을 부리며, 왜 젊은이들이 위험한 것을 알면서도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걸까. 룰을 지키기 위해 태어난 사람은 없다. 인간은 자신과 자신 주변의 환경을 통제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태어나며, 능동적으로 살고자 하는 근본적인 무의식을 가지고 있다.

▲룰을 지키기 위해 태어난 사람은 없다

게임이란 경계를 뛰어넘는 연습이다. 나이가 들면서 우리는 우리의 열정이 청소년 시절만큼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이유는 모빌을 능수능란하게 조종할 수 있게 된 아이가 흥미를 잃어버리는 이유를 보면 알 수 있다. 아이가 모빌에 대해서 익숙해지듯이, 우리도 세상을 살아가면서 레벨업을 하고 익숙해지기 때문이다. 이장주 박사는 “유저들이 게임에 대해 불만을 표출하는 이유는 어쩌면 그 게임이 유저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높은 수준의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지 않기 때문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저들에게 더이상 그 게임은 경계를 뛰어넘는 경험을 주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회의 병리 현상,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
병리 현상은 왜 일어나며,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쥐공원 실험'을 중심으로

세상에 대해 미리 연습해볼 기회인 게임. 게임은 현대의 산물이 아니다. 과거 유물 속에서 알 수 있듯이 게임은 인간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이장주 박사는 “게임은 4사 산업뿐만 아니라 5차, 6차, 산업이 존재하는 한 함께할 사람의 기본적 본능이다”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근대로 오면서 생겨났다. 근대사회로 변화하면서 인간 삶에는 급격한 변화가 일어났다. 도시가 만들어지고 도시와 공장에 필요한 노동력을 육성하기 위한 학교가 생겨났으며, 공동체가 해체되고 낯선 사람들이 모이는 사회가 형성됐다. ‘청소년’이라는 개념도 이때 생겨났다. 그전까지는 아이에서 바로 어른이 될 수 있었다. 왜냐하면, 먹고 사는 방식은 전부 부모에게서 배우면 되었고, 부모의 생활방식을 그대로 물려받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장이 생겨나면서 더이상 부모는 교사의 역할을 할수 없었고, 근대적 학교가 생겨나 ‘다 큰’ 아이들을 교육하게 됐다.

이장주 박사는 근대 사회를 적응하기 어려워진 사회라고 표현했다. 사고와 생활 방식에 변화가 생기고 사회가 형성되면서 적응이 어려워진 사람들은 우울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집단과 어울리지 못하고, 내 능력이 초라하게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공동체에서는 서로 다독이며 함께 생활했다. 하지만 낯선 사람들이 모인 사회에서는 이런 역할을 해주는 사람이 없다. 그 빈자리에는 이를 해결해줄 병원이 자리했다.

청소년들은 학교로 들어가 시험을 보면서 예전과 다르게 ‘표준화된’ 인간으로 키워지기 시작했다. 동일한 잣대로 우열을 가리게 되었으며, 본인이 가고 싶은 길을 가지 못하고 붙잡혀있다는 사실만으로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이러한 체계 속에 적응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 부적응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부적응, 병리화하는 것이 맞는가?

근대사회에서는 이러한 부적응자들을 ‘이탈자’로 규정하고 병리적으로 접근해 인간을 표준적으로 만들고자 200년 동안 노력해왔다. 이러한 방법이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서 성공했느냐를 봐도, 우리 사회에 만연해있는 갖가지 병리 현상들을 볼때 실패했음을 알 수 있다.

이장주 박사는 병리 현상에 대하여 ‘쥐공원 실험’을 예로 들었다. 도시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병리 현상은 약물, 특히 알콜 중독이다. 그전까지 약물 중독은 중독자를 따로 격리하고 관리하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쥐 공원 실험을 한번 보자. 약물에 중독된 쥐들을 즐거운 쥐들의 공원에 풀어두고, 쥐들이 스스로 중독에서 벗어났는지를 확인하는 실험이다. 2달 동안 약물에 중독되었던 쥐들은 공원에서 마음껏 원하는 대로 행동할 수 있게 되자 스스로 중독에서 벗어났다.


인간도 똑같다. 병원에서 환자를 치료할 때는 진통제로 헤로인을 사용한다. 여기서 사용되는 헤로인은 마약중독자들이 사용하는 것보다도 더 강력한 성분으로 구성되어있다. 한 달, 두 달 입원해있던 환자가 퇴원하고 나서 마약중독자가 되는가? 결국, 중독의 원인은 마약의 화학적 성분에 있지 않았다. 중독자들에게 약물은 공동체에서, 사랑받는 위치에서 떨어졌을 때 현실을 버티기 위한 적응기제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을 격리해 관리하는 것은 오히려 병리적인 현상을 악화시킬 뿐이라는 것이다. 게임을 하는 아이들을 게임 중독자로 규정해 예방, 치료 센터에 보내는 것. 우리는 이게 옳은지에 대해서 생각해봐야 한다.

게임은 심지어 마약과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럼 아이들은 왜 게임에 매달리는가. 이장주 박사는 “사랑받고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장이 사라진 상태에서 어떤 식으로 행동하라고 요구받았을 때, 사람들은 기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할 수 있을까? 대부분에게는 어렵다. 따라서 (적응기제마저도) 막겠다는 것은 결국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장주 박사는 이어 약물중독에 대한 포르투갈의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포르투갈은 인구의 1%가 마약중독자였으며, 어떠한 대책으로도 해결되지 않았다. 이에 포르투갈은 쥐공권의 사례처럼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다. 약물 중독자들에게 일을 원하면 일을 찾아주고, 사람들 만나고 싶어하면 만나게 해주었던 것이다. 그러자 마약 중독자의 비율이 50% 감소해 현재는 인구의 0.5%로 나타나고 있다.

▲하고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하자, 중독은 사라졌다

이장주 박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돈과 행정력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사람의 입장에서 욕구를 이해하고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럼 만약 게임이 문제라면,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 쉽고 비싼 해결책이냐, 싸고 펀리한 임시 방편이냐. 사람들을 떼어내 관리하는 것. 우리는 이러한 임시방편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 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를 되풀이 하려 하고 있는가? 수많은 게임 중독 예방 센터들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사회제도가 만들어진 후에는 뒤로 돌아가기 어렵다. 사교육이 문제고, 공교육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은 하지만, 우리는 간단하게 사교육을 철폐할 수 없다. 사교육에 종사하는 수많은 사람, 다양한 이해관계와 문제가 얽혀있기 때문이다. 게임 중독 센터도 그냥 없애버린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게임 장애에 대한 우려는 이 부분에도 있다.


일단 등재, 그리고 연구하자고?
주류가 된 인터넷, 만만한 게임이 도마에 올랐다

▲사회는 여태까지 없던 도구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사람을 원하고 있다.

게임은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도구이기도 하다. 사회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가져온 사람들을 보면 게임과 관련된 인물이 많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과거에는 낯설고 어려운, 그렇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제까지 없었던 도구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장주 박사는 “나이가 들면서 사람들이 보수적이 되는 이유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가 어렵고, 지금까지 쌓아온 것이 아깝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인터넷 장애, 인터넷 중독은 20년도 더 된 개념이다. 인터넷이 널리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학자들은 인터넷을 사용하기 시작한 사람들을 ‘이상한 현상’으로 생각하고 중독이라고 치부했다. 더 나아가 이러한 사람들을 측정할 도구를 만들어 이를 활용해 수많은 연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이장주 박사는 “당시의 문제의식이 틀렸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현재 이 시점에도 여전히 맞느냐. 답은 글쎄요 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이 중독자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장애를 가지고 있게 되는 것이다.”라고 이야기했다.

이제는 인터넷이 아닌 것이 없다. 인터넷 중독이라는 말은 이제 우리나라에서만 쓰는 용어가 됐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사업체는 대기업이 됐다.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삼성 등 주류회사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장주 박사는 이에 대해 “주류를 병으로 만들면 이 세상은 병동인가? 이제 실효성도 명분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류가 된 인터넷, 이제 게임이 그 도마에 올랐다

주류가 된 인터넷의 자리를 제치고 도마에 오른 게 게임이다. 5년 전 연구의 챕터 3에 등재해 화제가 된 ‘게임 중독’. 연구결과에서는 게임중독에 대해 ‘대부분 아시아권에서 거론되는’이라고 언급했다. 게임 산업이 발달한 유럽, 미국 시장에서는 잘 모르겠지만, 아시아권에서 말이 나온다는데 연구가 필요한 거 아니냐, 라는 방식의 접근이다. 이장주 박사는 이를 게임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 변화와 관련된 갈등, 가치 변화의 경계에서 일어나는 헤프닝에 가깝다고 설명한다.


지난 WHO에서는 게임 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하겠다고 발표해 폭탄을 터트렸다. 2018년 5월 등재 예정이었던 게임장애를 포함한 국제표준질병분류 11차 개정판, ICD-11는 현재 유예된 상황이다. 이장주 박사는 이 초안에 포함된 게임장애에 대한 진단기준에 중독의 핵심 증상인 금단과 내성이 제외되어있으며, 중독의 특성을 증명할 수 없었기 때문에 ‘게임 장애(Gaming Disorder)’이라고 분류되어있음을 짚었다. 질병으로 등재하는 데에 있어 이러한 중요한 부분을 포함하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주관적으로 판단할 여지가 많다는 것이다.


먼저 이해와 관련된 용어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중독은 탐닉, 몰입을 뜻하는 어딕션(Addiction)과 유독물질에 대한 인톡시케이션(Intoxication)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게임중독이 어딕션이라면 금단현상과 내성을 동반해야 한다. 게임이 중단될 일은 없다. 이장주 박사는 “만약 게임을 어딕션으로 구분한다면 인류 사회에 대한 모독이다. 게임은 이집트 사회에서부터 어른과 아이가 함께 성취해온 문화다. 이를 병으로 여긴다면?”이라고 설명했다. 만약 중독물질이라면 유저들은 왜 “중독될만한 게임을 만들고 나서 중독이라고 하라”라고 외치는 걸까.


또한, 어딕션으로 구분하기 위해서는 단서조건이 붙는다. 다른 장애로 더 잘 설명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환자의 상태가 우울증이나 ADHD 등 다른 요소로 설명될 수 있다면, 그건 게임에 의한 증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게임 중독이라고 부르는 증상은 대부분 다른 장애로 설명할 수 있으며, 따라서 어딕션이 될 수 없다.


어딕션으로 구분할 수 없으므로 게임 중독은 주로 인톡시케이션으로 분류되곤 한다. 인톡시케이션은 독극 물질이 신체 안으로 들어와 손상시키는 경우를 뜻한다. 여기서 언급되는 논리가 게임에 대한 뇌 손상이다. 그럼 이게 가능한가. 이장주 박사는 “인톡시케이션으로 분류되기 위해서는 심각한 손상이 발견되어야 하는데 그마저도 없다. 게임이 뇌를 손상시킨다면 프로게이머들은 이미 불구가 되어야 한다는 논리다.”라고 덧붙였다. 결국, 근거가 부족하다.

인터넷 중독을 다시 생각해보자. 한국 인터넷 자료원에서 발표한 인터넷 중독률 그래프를 보면, 매년 그 수가 줄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인터넷이 당연시되는 현시점에서 인터넷 중독률이 떨어진다. 이장주 박사는 “그럼 인터넷이 착해진 건가? 아니다. 인터넷에 대한 적응력이 생겼다는 것을 뜻한다. 인터넷에서 무엇을 해도 더이상 끌리지 않는다는 거다. 사람들은 환경에 적응해 자신의 유능함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는 인터넷을 봐도 알 수 있다. 게임에서도 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게임을 병리화하려는 과정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중독의 이 두 가지 의미를 혼용하며 사용하고, 필요한 요소만을 가져와 쓰고 있다는 점이다. 어딕션은 시간과 관심으로 치유해야 하며, 인톡시케이션은 신체적인 뇌 연구를 기반으로 한다. 실제로 게임을 중독물질로 구분하고 ‘디톡스’하겠다는 사업에 100억 원 이상이 투자되고 있다.

이장주 박사는 “게임이 연탄가스처럼 사람을 병들게 한다는 관점인데, 근거가 있냐 없냐에 대한 연구가 계속되었다. 결론적으로 드러난 것은 ‘근거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니 이제, 중독물질은 아니지만, 비슷한 효과가 있다는 논리로 다른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게임이 문제냐, 사람이 문제냐.

이제 나오는 절충안 중의 하나는 기준이 통일되지 않으니 연구가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먼저 진단명으로 등록하자는 주장이다. 이장주 박사는 “이 말은 화살을 쏘고 나서 과녁을 그리자는 말과 다름없다. 아무 데나 쏘고 과녁을 그리면 100% 명중이다. 만약 회사에서 사람을 뽑는데 일을 잘할지 모르겠지만 일단 뽑고 보자는 논리로 채용한다고 생각해봐라. 나중에 일을 잘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마음대로 해고할 수 있나? 아니다. 이 주장은 논리적으로 모순이다.”라고 설명했다.

▲일단 등재하고, 연구하자는 말은 화살을 쏘고 나서 과녁을 그리자는 말과 다름없다

반대로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지만 진단명으로 등록되지 않은 사례도 있다. 자살이다. 이장주 박사는 “반복적으로 자살 시도하는 사람들이 많다. 오히려 자살이야말로 자살 증후군 정도로 진단명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없다. 그렇다고 연구가 안 되고 있나? 아니다. 진단명이 없어서 연구가 안된다 것은 말이 안 된다. 내가 받아들이기 어려우니까 그냥 못하게 해줘, 라고 밖에 해석이 안 된다.”고 이야기했다.


"요즘 젊은 것들이란"
젊은이들이 타락해 사회를 망친다, '도덕적 공황'

이어 도덕적 공황에 대한 설명이 이루어졌다. 도덕적 공황은 젊은이들이 도덕적으로 타락해 사회를 망칠 것이라는 생각에 기반을 둔다. “요즘 젊은 것들이란.” 사실 이 문장은 어느 세대에나 나왔던 말이다.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를 탐탁지 않아 한다. 기존 사회와 다른 젊은이들의 사고방식과 행동이 문제고, 왜 그럴까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문제의 원인’으로 거론된 것은 게임만이 아니다. 만화가 아이들을 망친다, 록음악이 아이들을 망친다, 그다음에 거론된 것이 게임이다.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나쁜 것으로 여겨지면 확증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진다. 이장주 박사는 “나쁜 놈이라고 생각하면 나쁜 면만 찾아보게 되고, 거기서 자유로울 사람은 없다”고 설명했다. 게임은 또한, 정치적 희생양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이에 관한 연구결과도 있다. 퍼커슨 코웰이 게임 학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젊은이들에 대해 부정적일수록, 게임에 대해 부정적일수록,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을수록 게임에 대해서 부정적인 견해를 보인다. 이장주 박사는 “이 연구결과를 보면, 객관적인 관점에서 연구가 진행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임 자체가 아닌 성향의 문제다. 색안경의 끼고 있지는 않은가에 대해서 연구해봐야 한다.”라고 이야기했다.


게임을 병리화해야 하는가. 기준이 모호한 상태에 질병으로 분류된다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긴다. 먼저 ‘거짓 양성’의 문제가 있다. 남자에게 ‘배가 나오셨군요, 입맛도 없으시다고요? 그럼 당신은 임신입니다!’라고 진단하는 것과 같은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준이 모호한 상태에서 작성된 WHO의 게임장애 기준은 게임 외에 그 어떤 것을 넣어도 의미가 통한다는 문제가 있다. 게임 대신 ‘반려동물’을 넣고 자신의 반려동물에게 많은 지출을 하는 사람에게 동물중독이라고 부를 수 있고, ‘종교’를 넣어도 말이 되며, ‘자녀’를 넣어 세계 대부분의 어머니들을 자녀중독자로 만들 수도 있다. 결국, 근거가 모호한 게임 질병 코드화는 사회적인 비용을 증가시켜 사회의 편익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장주 박사는 또한, 노시보(Nocebo) 효과를 언급했다. 무엇이라고 규정하느냐에 따라서 접근법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게임은 왜 장애로 봐야 하는가. 만약 나쁜 습관으로 명명한다면 해결주체가 개인과 가정이 되며, 다른 해결책이 나올 수 있다. 만약 개인의 취향으로 분류한다면 성향의 문제일 뿐이다. 어떤 것으로 간주할 것인지, 어떻게 접근했을 때 가장 올바른지를 따져보고 정할 문제를 일방적으로 병리적 현상이라고 규정한다면 실제로 부정적인 영향만 줄 것이라는 것이 이장주 박사의 설명이다.


게임의 질병 코드화는 비단 의학계에서만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게이머들도 게임 장애를 말하는 경우가 있다. 왜냐면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이장주 박사는 “아프면 혜택을 본다. 관심을 받으며, 의무에서 벗어난다. 여러 가지 의무에서 벗어나려고 악용하는 사례가 나타날 수 있는데, 이에 대해 감내할 수도 없는 상태에서 ‘게임 때문이다’라고 규정하는 것은 무책임하다.”라고 설명했다.


이장주 박사는 게임 질병 코드화의 가장 큰 문제는 게임 산업에 혐오스러운 질병 산업이라는 낙인을 찍을 수 있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낙인이 찍히면 무의식적으로 혐오의 대상이 된다. 이장주 박사는 4차 산업의 중심에 있는 게임의 가능성을 간과하고 아무런 근거 없이 혐오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장주 박사는 “9.11테러 이후 사람들은 비행기를 안 타기 시작했다. 비행기가 추락하는 것을 보았으니까. 그러자 반대로 자동차로 인한 사망률이 급증했다. 조금만 부정적인 인식이 생겨도 사람들은 기피한다. ‘상한 부분만 떼고 먹으면 되지’라는 것은 판매자의 생각일 뿐이지, 소비자 입장에서는 ‘왜 그걸 먹어?’가 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게임의 질병코드화, 이득을 보는 것은 누군가?

그럼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누군가 손해를 보면 반대로 누군가는 이득을 본다. 이는 비단 게임 질병 코드화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어디서든 일어나는 현상이다. 이장주 박사는 여기서 중재자로서 정치의 역할을 강조한다. 그는 “게임 장애와 관련된 논쟁에서 정치권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적극적으로 양측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지 책임감 있는 이야기로 이야기해야 한다. 중재 비전 전망을 내놓고 해결해야 할 정치권은 지금 손을 놓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장주 박사는 “게임은 인간의 본능이다. 내가 아직 가지지 않은 능력을 키우고 다른 이들과 어울리는 사회적, 문화적 성취를 가져다준다. 이러한 게임이 병이 되는 사회는 가능성이 없는 사회와 다르지 않다. 중단되어야 한다.”고 진단했다. 만약 게임에 대한 과몰입이 정말 장애라면 과학적으로 명료하게 진단하고 사회적 편익에도 맞는 방향으로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미래를 바라봤을 때 문화적으로 좋은 영향을 줄 것인가에 대해서도 확실한 상태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마지막으로 386 컴퓨터로 양자 컴퓨터를 재단하지 말라고 이야기했다. 386 컴퓨터의 지식을 양자 컴퓨터에 적용할 수 없듯이, 옛날의 사고방식과 선입견으로 현대에 진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장주 박사는 또한, 게임 질병 코드화에 대해 외부의 탓으로 돌릴 것이 아니라 게임 산업 내부적으로도 진단해봐야 하며, 게임사가 미래지향적인 청년들과 함께 도전해야 할 퀘스트를 만들고 새로운 레벨을 디자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다 당당하게 게임 외의 틀로 사고를 확장시키고 사회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게임 산업의 역할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게임 장애를 제자리로. 게임 장애는 게임 서비스가 원활하지 않다는 의미로만 쓰여야 하고, 그것만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