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대홍 서울예술대학교 디지털아트 부교수

[강연자 소개] 현재 서울예술대학교 디지털아트 부교수로 재직 중인 김대홍 강연자는 12년간 기능성 게임을 개발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예술공학센터 부센터장도 역임 중이며, 유니티 마스터로서 학생들과 유니티 엔진을 활용한 기능성 게임을 제작하기도 했다.

게이미피케이션, 게임화라는 단어는 최근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고 있다. 얼마전 샤넬이 '퐁'을 응용하여 마케팅에 활용한 것은 물론, 아웃도어 브랜드에 이르기까지 게이밍 경험을 마케팅 면에서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상태다. 교육에만 활용되던 과거에서 더 많은 분야로 영역이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의 관심과는 별개로 지속적인 결과물은 되지 못한다. 그리고 플레이어의 성장이나 교훈 등도 남기지 못한 채 소비품과 같이 잊혀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게이미피케이션은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며, 결과적으로 어떤 것을 추구해야만 할까?

12년간 시리어스 게임을 개발해 온 김대홍 서울예술대학교 교수는 '유나이트 서울 2018' 현장을 통해 시리어스 게임 제작 경험을 되돌아보며, 어떠한 것들을 고민했고 어떻게 해결하려 했는지 전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게이미피케이션이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는지를 정리하려 했다.



■ 시리어스 게임, 인생의 전환점이 되다

강연자가 첫 번째로 소개한 결과물은 시각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오디오 게임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시각 장애인을 위한 게임으로 디자인된 것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색다른 게임을 위해서 프로토타입을 구상한 것이 아이디어의 시작이었다. 시각 요소 제외하고 손과 머리를 추적해서 움직임을 인식시키기로 하고, 시각 요소가 빠진 자리는 게임환경을 전달하기 위한 오디오가 대체하는 형태였다.


프로토타입은 영국의 민화 '잭과 콩나무'를 오디오를 통해 구현하여, 사용자가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게 했다. 조작은 구상대로 트래킹을 이용했으며, 이에 따라 에어 기타를 치거나, 동작을 인식하는 형태로 게임을 시연할 수 있게 됐다. 독특한 아이디어 때문이었을까. 많은 사람이 게임을 칭찬했고 지도교수의 제안에 중학교에서 게임을 시연하는 기회도 얻을 수 있었다.

문제는 그 학교가 '시각 장애인 학생을 위한 학교' 였다는 점이다.


강연자는 이때까지 한 번도 시각 장애인을 위한 콘텐츠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디오 요소를 부각한 게임은 다른 이에게는 시각 장애인을 위한 게임으로 비쳤다. 당시에는 '게임이 폭력적이지는 않을까'하는 걱정에 교사들이 먼저 시연을 진행했고, 호평을 받아 학생들에게도 게임을 시연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이 기회는 스스로 많은 깨달음을 줄 수 있기도 했다. 강연자는 당시에 있었던 일을 회상했다. 게임을 시연하던 도중, 한 학생은 '도끼질을 해라'라는 이야기에 제자리에서 점프만을 했다. 당연한 이야기다. 해 본 적이 없으니 도끼질을 하라는데도 어떻게 표현할 수 없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이야기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생전 해본 적이 없는 행위가 될 수 있었다. 이를 간과했던 것이다.

이 순간은 강연자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게임으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구나". "게임으로 사람에게 이익을 줄 수 있겠구나", "내 결과물이 생각하지도 못한 분들에게 재미를 줄 수 있겠구나"를 생각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현재까지 영향을 미쳤고, 강연자가 시리어스 게임을 제작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 강연자는 기능성 게임, 진지한 게임들을 계속해서 제작했다. 디즈니와의 협업으로 어떻게 물이 정화되는지 설명하는 게임을 만들기도 했고, 백악관 아카이브에서 자료를 받아 링컨 대통령의 일대기를 게임에 녹여내기도 했다. 이외에도 학생들의 용돈을 만드는 게임 등 많은 것들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최근 2년간에는 뇌졸중 환자를 위한 재활 게임을 개발했다.




해당 게임은 중소 업체가 제작한 기구를 컨트롤러로 삼는다. 이 기구는 사람 손에 부착하여 손동작을 인식하고 무언가를 조작하는 훈련을 하기 위한 기계다. 개발자들은 훈련 과정에서 뇌졸중 환자들이 재미를 느끼며 훈련하게 하고자 했다. 강연자는 이를 위해 2년간 50여 개의 게임을 만들었다. 약 1개월에 1~2개의 게임을 만들어내는 셈이었으며, 일종의 미니 게임으로 여러 개를 제공해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다.

2년간 뇌졸중 환자를 위한 재활게임을 만들면서 강연자는 몇 가지를 느낄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먼저 '게임은 실재와 허구의 조합'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게임을 통해 일종의 판타지를 받아들이고, 꿈꾼다.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영웅이 될 기회이기도 하다. 우리의 현실은 지루하므로 판타지를 접하며 일상에서 탈피한다.


하지만 환자들에게는 우리의 일상이 판타지였다. 누군가는 남편을 위해서 저녁상을 차리는 것이 판타지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가족과 같이 여행을 가는 것이 판타지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판타지는 우리의 현실에 있었다. 그리고 이를 게임에 담고자 했다.

환자들의 판타지는 재활 게임의 요소들로 재탄생됐다. 요리가 판타지인 환자의 재활을 위해서 손목만으로 요리 과정을 체험하는 게임, 알프스 산맥을 비행하는 게임, 무언가를 쥐거나 놓치는 과정을 담은 게임 등이 2년간 환자들에게 제공됐다.



■ 어떻게 시리어스 게임이 될 수 있는가?

제작 과정에서 어떤 점을 중요하게 생각했는지를 설명하기 전에, 강연자는 김난도 교수가 방송에서 했던 말을 예시로 들었다. 김난도 교수는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일'을 방청객에게 묻는다. 그리고 '성장'이 이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이라는 답을 내놓는다.

인간이 본질적으로 재미있어 하는 것은 성장하는 일이라는 이야기다. 우리가 플레이하는 게임도 결국에는 성장의 과정이 핵심이다. 점수, 아이템, 계급 등이 높아지는 것에서 게이머들은 즐거움을 얻는다. 플레이어가 성장하는 느낌을 계속해서 받고 있을 때, 게이머는 게임을 계속해서 플레이한다.

시리어스 게임도 본질적으로는 마찬가지다. 여느 게임과 마찬가지로 성장을 목적에 둔다. 다만, 게임 내적인 성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 시리어스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의 성장을 목적에 둔다.


최근 게임화를 의미하는 게이미피케이션을 차용하는 회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면면을 살펴보면 포인트와 점수, 배지 등으로 대표된다. 많은 사람이 게이미피케이션에 이러한 요소들을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 기대감에 가득 차 포인트와 배지를 받더라도 '받아서 뭐에 쓰지?'라는 의문이 드는 순간, 사람들은 떠난다. 결국, 게이미피케이션이든 시리어스 게임이든 '어떻게 더 잘 만들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만 한다.

강연자는 이와 관련하여 게임화(Gamify)를 정의하면서, 크게 네 가지를 생각하며 만들었었다고 설명했다. 첫 번째는 '사람을 참여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의 참여는 '재미적 요소'와 '심미적 요소', '게임적 사고' 등을 기준으로 했다.

재미적 요소는 이벤트 자체에 내재된 흥미 요소를 의미한다. 안전보다는 위험한 것, 평범한 것보다는 희한한 것 등을 보여주는 것이다. 심미적 요소는 말 그대로 미학적으로 관심을 끄는 요소를 말한다. 일반적인 도시 배경보다는 야경이, 야경보다는 높은 곳에서 구름이 드리운 도시에 사람은 더 관심을 표한다. 인간은 심미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요소도 타겟층이 무엇을 원하고 필요한지 모르면 소용이 없다.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동시에 어떻게 지속적인 동기를 부여하는지가 관건이 된다.

스탠포드 대학의 캐럴 드웩(Carol Dweck) 교수는 사람의 동기부여 목표 지향점에는 '평가목표'와 '학습목표'의 두 가지가 있다고 설명한다. 어떤 사람은 결과를 더 신경 쓰는 유형이고, 어떤 사람은 과정을 중요시한다는 것이다. 이를 고려해서 시리어스 게임에서의 '지속적인 동기 부여와 보상 체계'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게임에서는 칭찬이나 점수, 플레이의 연장, 표현, 레벨업과 같은 '파워' 등 다양한 요소들을 보상으로 제공한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결과 위주의 보상체계다. 동시에 유한하다는 특징을 갖게 되며, 무한히 줄 수는 없다. 보상을 줄 수록 보상의 가치는 점차 하락한다. 그리고 보상점이 한계에 다다르는 순간, 게이머들은 게임에서 이탈하게 된다.


이는 곧 외재적인 보상 체계의 문제점이다. 보상 체계가 공정하거나 투명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게임에 조종당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다 보면 과정에서의 중요한 학습 과정을 놓치게 되고, 보상이 없으면 행동도 함께 사라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레벨 디자인은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사항이다.

때문에 학습으로 늘어나는 지루함과 게임의 난이도 사이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 최적의 재미를 확보하는 디자인을 해야만 사람이 떠나지 않기 마련이다. 강연자는 이러한 단점을 측정 보상을 통한 피드백으로 극복하려 했다. 참여자가 자신이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구조를 설계하고자 했고, 게임에 적용했다.


세 번째로는 '학습을 촉진하는 것'이다. 이 주안점은 전문가들의 도움으로 해결했다. 지금까지 게임을 제작하면서 전문가들의 도움은 지속해서 이어졌다. 경제 관련된 게임을 만들 때에는 경제 관계자의 도움을 받았고, 뇌졸중 환자를 위한 게임을 만들 때에는 병원과 업체들의 자문을 구했다. 이들은 게임에 대해서는 모르더라도, 어떻게 효과적으로 치료하고 접근할지는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문제가 해결되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요구됐다. 결과물이 즐겁게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는지 확인하는 것은 중요한 과정이다. 기능성 게임을 활용해서 좋은 결과를 얻었던 폭스바겐의 'The Fun Theory'가 대표적인 예다. 폭스바겐은 계단을 피아노 건반으로 만들거나, 쓰레기통에 센서를 달아 소리가 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무언가에 재미를 줄 수 있는 이런 시도는 더 많은 계단 이용, 공원 쓰레기 75% 감축이라는 긍정적인 결과를 낳았다. 이렇듯 실제로 문제를 해결한 결과물이 있었는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강연의 마지막 부분에서 강연자는 "게임은 아직 4대 악(惡) 중 하나로 취급받는다"는 것에 부정적인 의견을 전했다. 재미만을 추구하는 것에서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12년간 자신이 제작해 온 게임들. 그리고 제자들이 만드는 긍정적인 콘텐츠들이 악의 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시각 장애인에게 게임을 시연한 전환점에서 시작하여 지금까지. 강연자는 자신의 경험을 되돌아보며 "어떠한 문제 해결에서 게임의 방식을 접목하는 것은 많은 장점과 가능성이 있다"고 전한다. 특정 타겟층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하게 아는 것은 성장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는 곧 사회를 성장시킬 수 있다고 강조하며 강연을 마쳤다.



강연 중간에는 서울예술대학교 학생들이 유니티 엔진을 이용해 개발한 자폐 아동을 위한 게임이 소개됐다. 해당 게임은 자폐 아동이 무언가를 껴안고 있을 때 긍정적 반응을 보인다는 점에서 착안했다. 촉각 반응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자폐 아동들을 위해서 닌텐도 스위치 조이콘의 HD진동 기능을 활용했고, VR과 입체 사운드를 이용해서 보다 게임에 몰입할 수 있도록 기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