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과 참신함. 모바일 게임 업계 만년의 화두다. 대부분의 개발사는 익숙함을 좋아한다. 앞선 성공사례가 있기에 실패 가능성이 작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유저들도 대부분 익숙한 걸 좋아한다. 순위권에서 오르내리는 게임들 역시 대부분 비슷한 장르의 게임들인 게 이를 증명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익숙함만이 능사란 얘기는 아니다. 익숙함은 대중적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자칫 잘못하면 몰개성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참신함 역시 비슷하다. 새롭다는 건 개성적이라고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이 역시 과하면 거부감이 든다. 익숙함이란 건 중요하기 때문이다. 결국, 개발사는 게임을 만들 때 익숙함과 참신함 사이에서 절묘하게 줄타기를 해야할 필요가 있다.

하이디어는 이러한 줄타기에 능한 개발사다. 전작인 '언데드 슬레이어'는 당시 모바일 게임에선 드문 액션성으로, '로그라이프'는 슈팅에 RPG를 녹여낸 독특함으로 화제가 된 바 있다. 그랬던 하이디어가 이번에는 SRPG에 로그라이크를 섞은 신작 '인간 혹은 뱀파이어'를 들고왔다. SRPG라는 익숙함에 로그라이크라는 새로움은 끼얹은 것이다.

하이디어가 SRPG에 로그라이크를 끼얹은 이유는 단순하다. 바로, 전투의 재미를 주기 위해서다. 사실 국내 모바일 RPG 중에서 전투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건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대부분 자동전투로 진행되도록 만들어졌고 실제로 수동조작보다 효율이 높은 경우도 더러 있다. 대신 이런 게임들은 전투의 재미 대신 수집하는 재미, 성장하는 재미, 그리고 보는 재미에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인간 혹은 뱀파이어'는 달랐다.

보는 재미, 수집하는 재미를 유지하되 그동안 간과했던 전투하는 재미도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걸 위한 로그라이크였다.


'인간 혹은 뱀파이어'는 일종의 튜토리얼을 겸한 스토리 모드와 모험 모드로 나뉘어 있다. 여기서 핵심은 모험 모드다. 아이템을 파밍하는 것에서부터 소환 재료를 모으는 일 등을 행할 수 있는데 매번 스테이지가 변하는 게 특징이다. 일반적인 수집형 RPG의 경우 특정 재료나 아이템을 얻기 위해 해당 스테이지를 반복하는 경우가 많지만 '인간 혹은 뱀파이어'는 다르다. 어느 정도 일정하게 나오기는 하지만 로그라이크답게 매번 변화한다.

참신함은 이뿐만이 아니다. 게임의 제목이기도 한 요소로 동료를 인간 혹은 뱀파이어로 변화시킬 수 있다. 이는 단순히 종족이 바뀐다는 얘기가 아니다. 인간은 약하지만 성장이 가능하다. 즉, 위기를 헤쳐나가면서 점차 강해진다. 물론, 이는 반대로 죽음의 위기가 항상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인간은 죽으면 영구적으로 사라지기에 모험 중에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반면, 뱀파이어는 성장이 멈추는 대신 죽지 않는다. 죽음은 단순히 전투불능 상태일 뿐으로 캠프에서 부활할 수 있다. 죽음에 대한 리스크가 없기에 한층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대신 성장이 불가능하니 언제 뱀파이어로 만들지 고민해야 한다.

이런 독특함으로 무장한 '인간 혹은 뱀파이어' 답게 주인공 역시 특이하다. 우선 주인공은 스펀지와도 같다. 어떤 직업도 선택할 수 있고 스킬도 자유자재로 배울 수 있다. 그렇기에 제약도 존재한다. 주인공이 스킬을 배우기 위해선 해당 직업의 동료가 있어야 하고 그 스킬을 가졌어야 한다. 동료를 인간 혹은 뱀파이어로 할지 고민하는 것처럼 주인공 역시 어떤 직업을 선택하고 어떤 스킬을 배울지 고민해야 한다.

▲ 동료를 뱀파이어로 바꿀지 인간으로 남길지, 선택은 유저의 몫이다

이렇듯 '인간 혹은 뱀파이어'는 시종일관 선택의 순간에 놓이고 제약이 산재해 있다. 하지만 이 선택과 제약이 거북하지는 않았다. 선택과 제약을 강제했다면 자칫 거부감이 들 수도 있었겠지만, 하이디어는 이 모든 걸 자유롭게 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성장이 멈추는 뱀파이어의 경우 동료를 극한까지 성장시킨 후 뱀파이어로 만들어 최강의 동료로 삼을 수도 있고, 주인공 역시 어떤 직업도 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이처럼 참신함으로 무장한 '인간 혹은 뱀파이어'지만 그렇다고 마냥 새로운 게임이냐고 하면 그건 아니다. 자동사냥이 있어서 어느 정도 스펙이 된다면 자동사냥으로 손쉽게 클리어할 수도 있고 기존의 수집형 RPG처럼 동료를 모으는 요소, 구경하는 재미 역시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인간 혹은 뱀파이어'만의 독특한 그래픽과 분위기에 힘입어 어지간한 모바일 게임과 비교해 더 눈이 즐거울 정도다.

▲ 새로움으로 무장한 '인간 혹은 뱀파이어'지만 기존의 재미 역시 놓치지 않았다

'인간 혹은 뱀파이어'는 기존의 수집형 RPG와는 확실히 달랐다. 완전히 새로운 게임은 아니지만, 옆에 놔두고 봐도 모를 정도로 비슷한 게임들과 비교하면 자기 색이 명확한 게임이다. 이는 외견만을 뜻하는 게 아니다. 물론, 얼핏 보기만 해도 분위기부터 확연히 다른 건 사실이지만, 그보다는 게임의 핵심적인 부분에서도 차별점을 갖췄다.

특히, SRPG 답게 전투의 재미를 살릴 점은 개인적으로 큰 강점으로 여겨졌다. 전투 자체가 재밌으니 과한 얘기일지도 모르지만, 자동전투를 거의 배제하고 오롯이 유저가 직접 조작하는 방식만을 밀어붙였어도 충분히 시장에 통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만큼 잘 만들고 재미있게 꾸몄다.

동료의 직업이 다양하니 전투에서도 좀 더 조합의 중요성이 대두되며, 스킬을 쓰는 모션과 연출도 여느 대형 개발사의 게임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다.

▲ SRPG 답게 전사, 마법사, 궁수 각 직업별 특징이 명확하다

매번 독창적인 시도를 접목했고 호평받은 하이디어다. 다만, 이러한 차별점이 무조건 강점이 되는 건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새로움이란 건 진입장벽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대중적인 분위기, 그래픽, 시스템을 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도 이러한 진입장벽만 해결한다면 '인간 혹은 뱀파이어'가 획일화된 수집형 RPG 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올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