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과 프랑스 파리에서 펼쳐졌던 2018 미드 시즌 인비테이셔널(이하 MSI)가 중국 LPL 대표 RNG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약 한 달 동안 진행됐던 대회에 각 지역 1위팀이 모두 출전해 자웅을 겨룬 결과였다.

총 14개팀, 교체 멤버까지 합쳐 84명의 선수들이 출전했던 대회인 만큼 수많은 관전 포인트와 재미요소가 발생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베테랑 선수들도 있었고, 색다른 챔피언과 조합으로 승리를 쟁취한 팀들도 있었다. 예상 외의 선전을 보이면서 승리가 예상됐던 팀에게 패배를 안겨준 경우가 이번 대회에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다양한 스토리가 공존했던 2018 MSI. 대회 전체를 관통했던, 그래서 팬들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아있을 이슈들을 핵심 키워드로 정리해봤다.


#LPL
중국이 3년 만에 되찾은 MSI 왕좌


▲ 2015 MSI 우승을 차지했던 EDG

MSI는 지난 2015년에 처음 진행됐던 대회다. 햇수로 따지면 4년 차, 그 시작과 비교하면 현재 MSI는 훨씬 커진 규모와 위상을 자랑한다. 하지만 수많은 전설에는 언제나 잊혀지지 않는 시작이 있는 법이다. MSI 역시 마찬가지다.

2015 MSI는 미국에서 진행됐고, 주요 지역 리그 1위팀들만 출전해 꽤 단촐한 모습이었다. 플레이-인 스테이지의 형태로 진행된 일종의 예선전은 와일드카드전의 이름으로 따로 진행됐다. LCK의 SKT T1과 LPL의 EDG, EU LCS의 프나틱과 NA LCS의 TSM, LMS의 ahq와 함께 와일드카드전을 통과했던 베식타스가 대결을 벌였다.

당시 SKT T1의 포스는 엄청났다. 모두가 SKT T1의 우승을 점쳤고, SKT T1은 2015 MSI에서 그 평가를 인정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경기력을 자랑했다. 그 바로 뒤를 EDG가 쫓아왔다. SKT T1과 EDG의 본선 성적은 5승 0패와 4승 1패, 팽팽한 구도였다. 그래도 여전히 팬들 대부분이 SKT T1이 우승할 것으로 예상했다.

4강에서 SKT T1이 프나틱에게 세트 스코어 3:2로 아슬아슬하게 결승으로 향하고 EDG는 ahq를 세트 스코어 3:0으로 완파했을 때부터 살짝 불안감이 감돌았다. 그리고 결승전에서 EDG가 SKT T1을 상대로 풀세트 접전 끝에 승리하면서 반전 드라마를 완성했다. 당시 EDG는 '폰' 허원석과 '데프트' 김혁규를 품고 MSI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그 후로 LPL은 MSI와 인연을 이어가지 못했다. 2016년과 2017년에 진행됐던 MSI에서는 2015년의 설움을 폭발시키기라도 하는 것처럼 SKT T1이 우승을 독차지했다. LPL은 2년 연속 MSI 결승전에 참석하지 못하며 완패의 쓴 맛을 삼켰다. LPL이 LCK의 유일한 대항마라는 이야기도 쏙 들어갔다.

하지만 LPL은 2015년 이후 약 3년 만에 다시 한 번 MSI의 주인공이 됐다. 이번에는 오로지 중국 선수들로만 구성된 팀인 RNG가 주인공이 됐다. 손대영 총감독과 '하트' 이관형 코치 등 한국 코치진이 함께 했지만, 경기에 나서는 선수들은 모두 중국인이었다. 소위 '순혈' 중국팀이 MSI의 우승팀으로 우뚝 섰다. 2015년에 LPL이 LCK를 꺾고 우승했던 그때 그 순간 그대로였다.


#우지 #RNG
저주에서 벗어난 '우지'와 RNG



모든 스포츠 종목에는 우승의 문턱에서 매번 좌절하는 팀이나 선수에게 '저주'라는 표현이 따라붙었다. e스포츠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스타크래프트 시절에는 홍진호가 대표적이었고, LCK에서는 '스코어' 고동빈이 그랬다. 이번 MSI 우승을 차지한 '우지'와 RNG도 2위의 저주가 항상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우지'는 팬들보다 프로게이머와 전문가들 사이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선수였다. 남다른 피지컬과 뛰어난 캐리력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지'는 우승과 거리가 먼 프로게이머였다. 그의 하이 커리어는 준우승이었다. 국제무대에서는 물론 LPL에서도 '우지'는 결승전 패배로 우승 트로피를 손에 넣지 못했다. 하지만 2018 MSI 우승을 통해 '우지'는 드디어 LPL 우승 뿐만 아니라 국제무대에서도 1인자가 됐다.

'레클레스'나 '한스사마' 뿐만 아니라 '프레이' 김종인이 MSI 전에 진행됐던 인터뷰에서 '우지'를 최고의 원거리 딜러로 꼽았을 때 팬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지'는 국제무대에서 항상 상대팀의 집중 견제에 시달리면서 자신의 캐리력을 마음껏 드러내지 못한 채 무너졌다. 한 마디로 보여준 것이 너무 적었다.

이번에는 달랐다. '우지'는 RNG 팀원들과 함께 처음으로 국제무대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대회에 출전했던 모든 팀이 '우지'가 자리잡은 RNG의 봇 라인을 의식했지만, 이번 '우지'는 그 전략에 또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라인전부터 거의 모든 봇 듀오를 상대로 압도적인 모습을 자랑하면서 캐리력을 마음껏 뽐냈다.

그가 속한 RNG도 팀 창단 이후 최초로 국제무대 우승 트로피를 손에 넣었다. 항상 LPL 전통의 강호라는 평가가 있었지만 국제무대에서의 RNG는 자신들의 힘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했다. 하지만 2018 MSI 우승을 통해 RNG는 한 단계 업그레이드에 성공했다는 평가다. '우지' 뿐만 아니라 RNG의 하이 커리어가 이번 MSI로 갱신됐다.


#EU>NA
또 북미보다 오래 생존한 유럽



LoL e스포츠에서 유명한 라이벌 구도는 LCK와 LPL도 있지만, 그보다 역사가 조금 더 오래된 전통의 라이벌이 있다. EU LCS와 NA LCS다. 이들은 시즌1부터 이어온 신경전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북미와 유럽 팬들 뿐만 아니라 전세계 LoL e스포츠 팬들이 주목하는 대결이기도 하다.

하지만 라이벌 구도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북미는 항상 유럽보다 성적이 좋지 않았다. 지난 2016 MSI에서 CLG가 준우승을 기록, 유럽의 G2보다 높은 성적을 내기도 했고, 2017 리프트 라이벌즈에서는 북미가 유럽을 꺾긴 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유럽이 북미보다 국제무대에서 더 좋은 활약을 보였다.

이번 2018 MSI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유럽의 프나틱은 4강 진출에 성공했고 북미의 팀 리퀴드는 그룹 스테이지에서 탈락했다. 프나틱의 기복있는 경기력이 나오고 팀 리퀴드의 막판 저력에 나오면서 두 팀은 4위 결정전에 나섰는데, 여기서 프나틱이 팀 리퀴드를 꺾었다. 유럽은 이번 MSI에서 북미보다 상위 라운드 진출에도 성공했고, 직접적인 대결에서도 웃었다.

이쯤 되면 해외 커뮤니티인 레딧을 비롯한 각종 LoL 커뮤니티에서 유행하는 지역 간 '부등호' 놀이에서 유럽이 북미를 또 이겼다고 할 수 있다. 유럽 팬들은 당당하게 이 표현을 적으며 호탕하게 웃을 것이다. 'EU > NA.'


#더블리프트 #에보스
패배에도 오래 기억될 그들의 이름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북미는 이번에도 국제무대에서 망신을 당했다. 라이벌인 유럽보다 성적이 좋지 않았던 것은 물론, 이번에도 기대했던 팬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줬다. 매번 '이번 북미는 다르다'는 평가가 있었지만, 그 '이번 북미'도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상위 라운드 진출에 실패한 팀 리퀴드에서 가장 돋보였던 건 '더블리프트'였다. '더블리프트'는 국제무대에만 출전하면 안일한 플레이로 팀의 패배를 이끄는 주범으로 여겨졌다. 시야가 전혀 없는 지역까지 나가서 CS를 수급하다가 끊기는 것을 두고 몇몇 팬들 사이에서 '더블리프트 포지션'이라는 표현이 유행할 정도였다.

하지만 2018 MSI에서 '더블리프트'가 보여줬던 경기력은 팬들의 찬사를 받기에 충분했다. 팀이 승리할 때는 말할 것도 없고, 패배한 경기에서도 '더블리프트'가 끝까지 분투했다. 무너지는 팀 리퀴드를 끝까지 지탱했던 건 모두의 예상을 벗어나 전성기 그 이상의 실력을 뽐냈던 '더블리프트'였다. NA LCS 결승 직전에 불운한 개인사를 겪었던 선수라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의 집중력이었다.

그룹 스테이지에서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하긴 했지만, 베트남 대표팀으로 출전했던 에보스 e스포츠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들이 기록한 성적은 2승 8패로 최하위에 머물렀다. 하지만 특유의 화끈한 플레이스타일로 LoL e스포츠 팬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특히, 거의 모든 경기에서 봇 라인을 방치하고 탑과 정글, 미드 라인에서 스노우볼을 굴리는 운영이 꽤 매서웠다는 평가다. 그리고 모든 '언더독'의 로망인 '고추가루 뿌리기'에도 성공했다. 그들은 그룹 스테이지 말미에 프나틱을 상대로 승리, 끝까지 자신들의 이름을 알렸다.


#순간이동
이젠 원거리 딜러도 '순간이동'을?


▲ MSI 말미에 꽤 흔했던 장면(출처 : OGN 중계 화면)

LoL e스포츠가 오랫동안 진행되고 있는 만큼 매해 새로운 메타가 탄생하거나 기존의 메타가 더욱 세분화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이번 MSI에서는 원거리 딜러가 '회복'이 아닌 '순간이동'을 자주 활용해 팬들에게 색다른 충격을 선사했다.

시작은 '프레이'였다. 그는 RNG와의 그룹 스테이지 경기에서 최근 유행하고 있는 '쌍여눈' 이즈리얼에 '순간이동'을 끼얹었다. 이즈리얼은 첫 번째 '여신의 눈물'과 '광휘의 검' 타이밍부터 라인전과 전투력이 한층 상승하기 때문에 그 타이밍에 '순간이동'으로 빠르게 라인에 복귀해 강점을 극대화하는 선택지였다.

상위 라운드로 갈수록 원거리 딜러가 '회복' 대신에 '순간이동'을 활용하는 빈도수가 크게 증가했다. RNG와 킹존의 결승전에서는 '우지'와 '프레이' 모두 4세트를 제외하면 '순간이동'을 들고 경기에 나섰다. 자신의 챔피언이 이즈리얼이 아니라도 '점멸' 말고는 죄다 '순간이동'이었다. 아마 봇 라인전이 네 번의 세트 내내 중요했던 만큼 라인 관리에서 조금이라도 이득을 취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봇 라인전에 한정해서 원거리 딜러들이 '순간이동'을 활용했던 건 아니었다. 봇 라인전이 끝나고 미드 1차 타워를 서로 압박할 때, 소규모 교전이 열리기 직전에도 원거리 딜러는 '순간이동'으로 전장에 합류했다. 랭크게임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의 라인 관리와 합류 속도를 요하는 대회 경기였기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각 지역의 섬머 스플릿은 MSI와 또 다른 패치 버전으로 진행될 것이다. MSI 후반부를 수놓았던 원거리 딜러 '순간이동' 메타가 대회 경기에서 계속 이어질 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