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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3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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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e스포츠의 아이콘, '페이커' 그 이름의 무게

손창식, 유희은 기자 (desk@inven.co.kr)

티 한 점 없는 하얀 옷, 무미건조한 대답, 본분에 충실한 별다를 것 없는 생활. 언뜻 본 '페이커' 이상혁에게 특별함을 찾기란 참 어렵습니다. 오히려 특이한 쪽에 가까운 선수입니다. 그런 '페이커'에게 팬들은 열광하고, 여느 톱스타 못지않은 인기를 누립니다.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LoL), e스포츠 자체를 좋아하는 팬들을 뜨겁게 만드는 그의 화려한 플레이 때문이죠.

그래서 '페이커'는 그 누구보다 피곤한 삶을 삽니다. 많은 인기 속에서 짊어진 그 부담감은 자신도 표현하기 어렵다고 할 정도죠. 어느 날은 '역시 최고의 선수'이면서도 또 다른 날은 '예전만 못한 선수'로 평가받습니다. 그만큼 전 세계 e스포츠 팬들은 그의 플레이에 눈을 떼지 않고, 호평과 혹평을 남깁니다.

많은 사람은 '페이커'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너는 어떤 사람이니?'부터 '그 자리를 지키는 게 어렵지 않니?'까지. e스포츠에 종사하는 관계자들조차 '페이커'의 삶에 다양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페이커'가 느끼는 감정까지도 호기심의 대상입니다. 여러 질문에 '페이커'는 허투루 대답하기보다 한 번 더 생각하고, 현실을 직시했습니다.





올봄은 '페이커'에게 마냥 따뜻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늘 해오던 우승과도 거리가 멀었고, MSI 진출에도 실패했습니다. 많이 어색했습니다. 이 시기면 늘 경기장에 있던 선수가 인터뷰 자리에 나왔으니까요. '페이커' 본인도 이 자리가 많이 어색했을 것 같습니다.

"올해는 MSI에 출전하지 못하고, 쉬게 됐네요. 그래서 작년보다 더 빨리 다음 시즌 계획을 짜고 있어요. 그리고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도 가졌고요. 전체적으로는 잘될 수 있는 방향에 대한 고민을 주로 하죠. 지금 이 상황이 어색하기보다 다른 팀이 그 자리에 있다는 게 썩 좋지만은 않아요. 선수가 지녀야 할 자존심이랄까요.

1라운드까지는 괜찮았어요. 그 뒤로는 많은 부분이 안 좋았고요. 개인적으로는 배운 게 많은 시즌이었어요. 단순히 경기 내적인 부분보다 심리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는 시기였죠. 경기에서 패했을 때, 내 심리 상태가 어떤지 직접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이제 그런 부분을 어떻게 해결해서 잘 컨트롤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거예요."


이번 스프링 시즌, '페이커'에 대한 팬들의 우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팬은 갑자기 무너진 '페이커'를 보며, 믿지 못했습니다. 지난해 롤드컵에서 보여준 에이스의 면모는 온데간데없었고, 귀환하다 상대에게 킬을 헌납하는 등 기초적인 실수를 연발했으니까요. 게다가 팀의 성적과 경기력이 기대치에 못 미치면서 그를 향한 비난은 거세졌습니다.

"귀환 장면에 대해 스스로 피드백을 많이 했어요. 왜 귀환을 하다 끊겼는지 원인을 찾을 때, 안전하지 않은 곳이었다고 결론을 내리기보다 그 상황에서 내가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았나 등 여러 가지를 분석했어요. 혹시 게임에 집중하지 못했을까? 그렇다면 게임에 집중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아 고쳐나가자고 다짐했죠.

저를 포함해서 팀원들이 돌아가면서 부진했기 때문에 멤버 변화의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이전처럼 캐리력을 갖춘 라인이 없었던 게 컸어요. 각자의 문제가 겹쳐서 부진한 게 아닐까 싶어요."


과거만 하더라도 '페이커'는 자신을 향한 비난을 '자극제'라고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나 봅니다. 억측과 비난을 접하면, 혹시라도 자신이 그것을 믿게 될까 하는 마음이 두려운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도 분명한 점은 여전히 '페이커'는 우승 이전에 승리가 우선인 욕심 가득한 프로게이머였습니다. 이전과 다르게 준비했고, 좋지 않은 결과가 나왔지만요.

"요즘에는 도움이 안 될 것 같아서 잘 안 봐요. 과거에는 댓글을 보면서 자극도 받고, 배움도 얻었거든요. 그런데 지금 시기에 보면 심리적으로 진짜 그런 말들을 믿게 될까 봐 일부러 피해요. (새로운 자극은 어디서 받나요?) 남들보다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잖아요. 그래서 특별히 어떤 곳에서 새로운 자극을 받으려고 하지는 않아요. 보통 최정상에 위치한 선수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우승을 많이 했기 때문에 동기부여가 안 될 거라는 생각은 편견인 것 같아요. 저는 우승보다 승리 자체가 우선이기 때문에 계속 자극을 받아요."

이전 시즌에는 정말 빡빡하게 준비했어요. 마음가짐도 그랬고요. 올해 스프링 시즌 전에는 그때보다 느슨하고, 다른 방식으로 준비를 했어요. 그렇게 플레이도 해봤고요. 결과적으로 좋지 않았지만요. 그래서 팬분들이 걱정하시는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변화를 주면서 플레이하는 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많은 도움이 됐어요. 프로게이머 생활을 당장만 바라볼 수는 없으니까요.

"안 좋은 반응들을 접하면 스스로 그렇게 믿을 것 같아서 최대한 주변을 신경 쓰지 않으려고요. 만약 그 말이 사실이더라도 최대한 긍정적이고, 자신감을 갖추는 게 급선무에요. 2014년보다 지금이 더 안 좋지만, 이미 안 좋았던 시절을 경험해봤으니 그때처럼 되지 않게 남은 시즌에는 잘해야죠."




잠시 나눈 대화를 통해 '페이커'가 평범하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다 지난 롤드컵에서 보였던 눈물이 문득 떠올랐고, '페이커'는 평소 어떤 선수인가 물어봤습니다.

"(지난 롤드컵에서 패한 뒤)울지 않았나요(웃음)? 우는 장면도 다 나갔고...... 메모장은 그냥 켜진 것 같아요. 패배 장면을 가리려고 한 건 아니었고요. 그때 SNS로 많은 분이 위로를 해주셔서 정말 감동했어요. 그런데 감정이라는 게 한순간이라 그때의 감정을 다시 표현하기가 어렵네요. 그래도 그런 응원이 더 열심히 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특별할 게 없을 거예요. 직접 같이 지내본 선수들도 평범하게 느끼지 않을까요? 특별히 일탈을 생각해 본 적도 없고, 남한테 해가 되거나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부분은 조심하죠. 짜여진 룰 안에서 생활하는 걸 잘 지키려고 하고요. 그런데 늦잠도 자고, 지각은 많이 해요(웃음). 그리고 욕도 하고요. 많이는 안 하고, 요즘에 좀 해요(웃음)."


그리고 '페이커'를 향한 빼놓을 수 없는 질문, 연봉. 최근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언급될 정도로 '페이커'의 연봉이 화제였습니다. 항간에는 수십억의 고액임에도 불구하고, 용돈을 받아 쓴다는 소문도 돌았죠. 과연 '페이커'는 무엇을 하고 싶고, 미래에는 어떤 계획을 하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용돈을 받지는 않고, 카드를 사용하는데 돈을 거의 쓰지 않죠. 부모님이 관리하시기도 하고요. 프로게이머를 그만뒀을 때, 재산이 많을수록 좋잖아요. 제가 무엇을 하든 돈이 필요하니까요. 당장 무엇을 할지 정하지 않았지만, 차차 좋아하는 일을 알게 되면 구체적으로 계획을 짜려고요.

취미는 딱히 없어요. 독서도 취미라고 말하기 어려워요. 좋아한다기보다 필요에 의해서 책을 보거든요. 마음의 평화를 찾으려는 마음도 있고, 독서를 하다 보면 취미를 찾을 수도 있지 않겠냐는 생각에 말이죠."


"결혼이라...... 김정균 감독님이 먼저 하지 않을까요. 감독님이 어떤 이유로 빨리한다기 보다 제가 늦게 할 것 같아서요(웃음). 이상형은 음...... 제 키 정도의 여성분을 만나고 싶어요(페이커의 키는 176cm 입니다).

자녀가 프로게이머를 한다고 하면 반대할 거예요. 제가 프로게이머를 한 이유는 남들이 쉽게 경험하지 못하고, 특별하면서 특이하기 때문이거든요. 그래서 다른 일을 추천하고 싶고, 계속 고집을 피우더라도 설득해보려고요. 먼 이야기지만요."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페이커'의 인기는 대단합니다. 최근에는 공중파에서 조명하기도 했고, 과거에 호나우두와 같은 전설적인 축구 스타 역시 '페이커'와 만났습니다. 그만큼 '페이커'를 향한 관심은 끊이지 않고, 본인은 어떻게 느끼는지 들어봤습니다. 그리고 화제의 아시안게임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공중파에서 언급되긴 하는데, 아직 특별한 느낌은 없어요. e스포츠 산업 자체가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꼭 제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방송에서 주목을 받지 않았을까요? 아시안게임을 보면 확실히 e스포츠가 발전할 일만 남은 것 같고, 선발되기 위해 더 잘해야겠다는 의지가 생기더라고요."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아시안게임에 나간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죠. 대신 다섯 명이 가서 밥만 먹고 돌아올 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정말 잘할 수 있도록 더 많이 노력해야겠죠. (본인을 포함해서 직접 멤버를 뽑아본다면요?) 2017 올스타 멤버가 되지 않을까요. 아, 조금은 바뀔 수 있겠네요. 구체적인 언급은 피할게요(웃음)."

"우승 가능성은 아직 잘 모르겠네요. MSI만 봐도 해외 선수들이 워낙 잘해서 저희도 많이 잘해져야죠. (정말 MSI에서 킹존 드래곤X가 상당히 고전했어요. 갭이 좁혀졌다고 봐야 할까요?) 갭이 좁혀진 건 모르겠고, 킹존 드래곤X가 제 실력을 못 냈어요. 물론, 언제든지 해외팀이 이길 수는 있어요. 그래도 킹존 드래곤X가 아직은 패할 타이밍이 아니라고 봤거든요. 아무래도 다른 팀들이 올라왔다기 보다 킹존 드래곤X 스스로 부진했던 게 경기력 차이를 만든 것 같아요."



전과 같았으면 '페이커'는 그래도 다시 정상에 오를 수 있다며, 호언장담했을 겁니다. 다만, 잠시 생각을 하더니 현재는 자신감과 확신이 없다고 했습니다. 게다가 점차 부담을 느끼는 시기라고 속내를 내비쳤습니다. 이제는 '페이커'라는 이름이 무거울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원래 압박을 잘 안 받는데, 올해는 압박이나 부담을 조금 느껴요. 부담이라는 게 다른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려다 생기잖아요. 그래서 그냥 흐름대로, 내 플레이를 펼치는 게 좋다고 느꼈어요. 대외 활동에 대한 부담감은 오히려 좋게 작용해요. 그런 거는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줘야 한다는 부담감이잖아요. 그게 제 인생을 바르고, 옳게 만들어준다고 믿어요."

"현재의 저는 4위 정도의 미드 라이너에요. 2014년이었으면 팀 성적과 별개로 저 자신을 1위로 평가했을 거예요. 그런데 이번 시즌에는 워낙 안 좋아서 상위권으로 평가할 수가 없어요. 솔직하게 자신감도 없고요. 다시 노력해야 하는데, 잘할 거라는 확신이 없어요.

점점 나이가 들면서 피지컬이 떨어졌다는 느낌은 아닌데, 감정적인 부분에서 어려움이 따랐어요. 표현하기가 어렵네요. 어렸을 때는 저에 대한 확신이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스스로 낮게 평가하게 돼요.
(슬프게 들리네요. 혹시 과거에 공개된 계획표와도 연관이 있을까요. 2018-19년이 공백이었잖아요.) 그 계획표는 짧은 시간 동안, 아무 생각 없이 그린 거예요. 언제나 우승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공백으로 놔둔 거고요. 특별한 의미는 없어요."

"저는 정말 노력을 많이 해야 최대치까지 오르는 타입이에요. 그래서 노력파라는 말이 와닿지 않아요. 누구나 자신의 최대치까지 노력을 하잖아요. 지금의 저는 다른 것에 관심을 가질 수 있고, 꾸미고 싶은 나이이기도 해요. 하지만 그런 사소한 부분에 신경 쓸 여력이 없어요. 이번 롤드컵에 꼭 진출하고 싶거든요.

할 수만 있다면 우승도 하고 싶고요. 앞으로 남은 기간 최대한 노력해서 좋은 결과를 얻고 싶어요. 확신이 없다고 했지만, 결국 확신이란 것도 노력에서 생기기 때문에 제가 노력하면 원하는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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