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중학교 2학년이었을 때였다.

막 컴퓨터 게임에 빠져든 그 시절, 그 사춘기 시절의 내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게임이 하나 있었다. 연애 시뮬레이션의 원조격인 '두근두근 메모리얼'. 현실에서도 못 해본 연애, 여기서라도 해보자는 생각에 하교도 같이 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다른 여학우들에게 한눈조차 팔지 않았음에도, 그 붉은 머리의 시오리는 내게 넘어오지 않았다. 아니, 눈길은 줬다. 내 촌스러운 행동에도 싫은 내색 하나 없이 난 항상 태학쿤 편이야, 하는 표정과 말투로 나를 안심시키고는 졸업과 동시에 연을 끊어버려서 그렇지.

그냥 시오리가 사이코패스라 생각하고 포기하면 편했을 텐데... 그 시절 그 사춘기 시절의 내겐 그런 호방함이 없었다. 두근두근 메모리얼에선 시오리가 제일 예뻤고, 해피엔딩을 못 보는 건 그냥 내가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 거지 하며 고개를 떨궜다. 게임인 줄 알면서도 자존감은 바닥을 쳤고, 회복되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게 현실이든 시오리든 여자란 내게 어울리지 않는다며 동굴을 팠고,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여자 손잡아 보는 일은 끝내 일어나지 않았다.

이렇듯 당시의 충격으로 게임 속 여캐에겐 본능적으로 거부반응을 갖고, 무슨 장르를 해도 남캐만 고집하던 내게 어느 날 거대한 변화가 찾아왔다. 그러니까... 재작년 지스타 때였다.

조금씩 독창적인 VR 게임들이 등장하던 시기, EVR 스튜디오의 '프로젝트M'은 독보적인 완성도를 보여준 작품이었다. 쩍쩍 갈라진 사막과도 같았던 내 가슴속에 광천수처럼 차오르는 그 미묘한 기분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붉은 머리의 시오리 이후, 여캐를 보며 심장이 뛰는 일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으니까. 얘기치 못한 감정의 변화에 당황한 나는, 지금 봐도 부끄러운 몸짓과 대사를 연달아 쏟아냈고 그 체험 기사에는 많은 인벤 유저들의 'ㅋㅋ'가 달렸던 기억이 난다.

▲ 2016년 지스타 '프로젝트M' 시연 영상.
* 본편이 아닌, 프로토타입이다.


또, '프로젝트M'은 다른 이유에서 유저들의 주목을 받았는데, 주인공으로 보이는 여캐가 모 그룹의 모 남성 래퍼를 닮았다는 게 이유였다. 직접 게임을 플레이해본 입장에서 보자면, 실제론 크게 닮지 않은 것 같은데 주변에서 자꾸 같은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고'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다.

어쨌든 '프로젝트M'은 지스타 2016의 최대 화제작 중 하나였다. B2B홀 특성상 일반 유저들에게 직접 공개되지 않았음에도 그만한 성과를 얻었다는 건 큰 의미가 있다. EVR 스튜디오 기대 이상이었다고 자평했다. 그리고 기자는 그날의 몸짓과 대사 덕분에 EVR 스튜디오와 인연을 맺을 수 있었고, 이렇게 '프로젝트M'의 최신 버전을 직접 체험해보는 자리에 초대도 받았다.

일단, 영상부터 보자. 오늘 최초로 공개된 '최하나'와 '이비'다. 둘 다 '프로젝트M'의 핵심 인물.



참으로 무서운 게임임에 분명하다. 2년 전이나 지금이나 EVR 스튜디오는 '프로젝트M'이 연애에만 매달리는 그런 게임 아니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스토리텔링이 강조된 체감형 어드벤처에 가깝고, 호감도를 올리는 건 부수적인 콘텐츠라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그럼에도 체험 내내 기자의 심장은 2년 전과 마찬가지로 미친듯이 헐떡였다. 이런 기자의 심리적 변화를 개발진의 의도가 아닌, '플레이어가 프로젝트M을 하면서 느끼는 여러 감정 중 하나'라고 슥 넘기니... 참으로 섹시한 기획의도라 부르지 않을 수 없다. 일단, '프로젝트M'을 플레이하며 개인적으로 느낀 소감을 먼저 간단히 적어보겠다.

인터뷰는 그 다음.


- 개발팀이 생각하는 미의 기준이 달라진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캐릭터 디자인이 변했음.
- 현실적이지만, 더 많은 공감할 수 있는 미인형에 가까워짐.
- 지스타 출품 버전의 캐릭터는 과장된 몸짓을 해도 다소 경직된 분위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캐릭터의 동작이나 표정이 훨씬 자연스러움. 눈을 뜬 모양만으로도 그 캐릭터의 성격을 바로 알 수 있을 정도.
- 사람의 감정을 읽을 때 가장 중요한 게 눈인데, 눈으로 전달하는 표현력이 특히 돋보임.
- 최하나와 이비 모두 고등학생인데, 딱 고등학생 같은 행동이나 말투가 인상적.
- 캐릭터 모션이나 인체 비율은 여전히 현실에 가까움.
- 길 가다가 나도 모르게 눈이 가는 예쁜 여자, 딱 그런 느낌을 풍김.(개인적인 소감)
- 예전 지스타 시연 버전과 마찬가지로 전체적인 BGM이 좋음.
- 스튜디오에서 직접 이비를 촬영하는 에피소드가 있음.






박태학 기자(이하 박태학) - 캐릭터 소개 영상 기준으로 이비와 최하나 모두 고등학교 2학년이다. 요즘 고등학생의 마인드라던가 그 특유의 분위기를 표현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고2가 생각하는 고2와 아저씨가 생각하는 고2는 다르니까(웃음).

민동준 PD(이하 민동준) - .....(얼굴을 감싸쥐며 고개를 떨굼)

김재환 대표(이하 김재환) - 옆에 민동준 PD가 작업했다. 그런데 이거 기사로 나가는 건가.

박태학 - 물론이다. 이게 엄청난 작업인데... 유저들은 알 권리가 있다.

구범석 이사(이하 구범석) - PD님이 최종적으로 이끄는 건 분명하지만... 표정이나 대사를 포함한 모든 부분을 PD님이 다 만드는 건 아니다. 사내 작가 팀이나 아트 팀이 따로 있는데 그분들이 많이 노력하신 결과물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최종적으로 PD님 테이스트가 들어가는 건 맞지만...

김재환 - '프로젝트M'의 메인 작가가 여성분이다. 신예인데다 젊으셔서 그분의 스타일이 많이 녹아든 것 같다.

민동준 - 여담으로, 여고생이 패널로 출연하는 유튜브나 팟캐스트를 정말 많이 들었다. 여고생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고, 시대가 우리 때랑은 또 너무 다르니까. 나도 나름대로 노력 많이 했다.

▲ "요즘 여고생의 문화를 이해하고자 다양한 노력을 했다."


박태학 - 원래 첫 질문은 이게 아니었는데 너무 궁금해서 그만 물어봐버렸다. 다시 첫 질문으로 돌아가서... 약 1년 만에 다시 본 것 같다. EVR 스튜디오가 그간 워낙 조용해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하던 차였다.

민동준 - 재작년 지스타에서 프로토타입 버전이 인벤을 통해 처음 공개되고 나서 정말 수많은 일이 있었다. 유저들에게 혼 많이 났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실질적인 도움도 많이 됐다. 사실 프로토타입은 원래 공개할 계획이 없었다. 그런데 인벤에서 제일 먼저 와줬고, 우리 대표님도 감동해서 즉석 취재를 하게 된 거다. 오픈하자마자 부스에 찾아와주니 감동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리액션이 특히 예술이었다.

박태학 - 난 요즘도 기분 우울할 때면 그 기사 찾아보곤 한다(웃음).

민동준 - 덕분에 우리 게임이 많이 알려질 수 있었다. 그부분은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어쨌든, 당시 출품한 '프로젝트M'은 프로토타입이었고 지금 만들고 있는 본편과는 아예 별개의 작품이라 보면 된다. 프로토타입을 선보인 목적은, 플레이어가 우리 게임을 하면서 매끄럽게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지 확인해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플레이 데이터가 쌓일 무렵, 우리가 기존에 생각하던 방법으로는 쉽지 않겠다고 느꼈다.

지금 우리가 이 건물의 14층, 15층을 쓰고 있다. 15층은 게임의 퀄리티를 더 높이기 위한 작업실이라 보면 된다. 외부에서 그간 작업했던 것들을 사내에서 할 수 있도록 아예 모션캡쳐 렌탈 스튜디오로 개조했다. 캐릭터 얼굴에서 감정을 살려내려면 전문적인 캡쳐 기술과 장비가 필요한데, 이게 코스트가 굉장히 많이 들어간다. 또, 그렇게 많이 들어가면 그만한 결과물이 나와야 하는데, 프로토타입 버전 만들 땐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제조공정을 처음부터 다시 세팅했다. 작년 10월까지 이 작업만 했나?


김재환 - 박태학 기자는 프로토타입을 해봤으니 알 거다. 교감이나 UX 면에서 '정말로 대화하는 느낌'이 나는지 확인해야만 했다. 처음엔 대화를 주력 포맷으로 밀었는데 이게 생각만큼 쉽지 않더라. 자세한 내용을 설명하긴 어렵지만, 내부적으로 대대적인 수정 작업을 거쳤다. 우리는 VR 게임을 만들고 있고, 지금까지 우리와 비슷한 장르의 게임은 없었다. '프로젝트M'의 근간이 되는 기둥을 만드는 게 중요했다.

박태학 - 당시 지스타에 출품한 프로토타입을 기사로 본 유저들의 반응도 꽤 컸던 것으로 기억한다. 댓글을 보고 어떤 기분이 들었나.

민동준 - 이렇게 공개될 거라면 좀 더 준비할걸... 이게 첫 번째 심정이었다. 최초로 공개한다는 게 VR 렌즈를 통해 왜곡된 결과물이다 보니 아쉬움이 컸다고 할까, 어쨌든 화제가 된 건 사실이다. 이후 보도자료 나갈 때 캐릭터가 어떤 분과 좀 닮았다는 이야기도 많았고(웃음). HMD를 안 쓰고 보는 것과 실제 게임 속 모습은 차이가 있지만, 어쨌든 유저들이 그렇게 느껴진다면 그게 맞는 것 아닌가. 사내 디자이너들이 경각심을 느끼는 계기가 됐다.

박태학 - 그런데 이야기를 듣고 보니, 내가 지스타에서 해본 건 프로토타입이라고.

박재욱 이사(이하 박재욱) - 맞다. 그건 프로토타입이었다. 이름은 '프로젝트M: 데이드림'이었고.

박태학 - 그럼 본편의 프리퀄이라고 보면 되나.

민동준 - 스토리나 캐릭터 부분에서 데이드림은 본편과 연결된 게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본편에서 제공해야 할 '경험'을 어떻게 전달할지 테스트하는 게 개발 목적이었으니까. 다만, 본편에 데이드림의 캐릭터가 카메오로 나올 가능성은 열어두고 있다.


▲ 본편의 프로토타입인'프로젝트M: 데이드림'.
VR 경험을 어떻게 전달할지 테스트하는 목적으로 개발됐으며, 본편과 직접적인 연관성은 없다.


박태학 - 그렇다면 본편의 볼륨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다.

민동준 - 게임 속 시간으로 1년가량 플레이하게 된다. 정확히는 고등학교 3학년 시절을 보내는 거다. 전체 내용을 내년에 출시하는 버전에 다 담기는 어려울 것 같고... 3개로 쪼개서 출시할 계획이다. 현실 시간으로 계산하면 전체 볼륨은 약 20시간 정도 될 것으로 예상한다.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길어질 가능성이 있는데, 그냥 스토리만 진행하는 게 아니라 친구들 만나서 밥 먹으려면 알바도 해야 하는 등 이런저런 할 거리가 많다.

또, HMD는 기기 특성상 오래 플레이하면 피로가 금방 쌓인다. 나조차도 지금까지 출시된 VR 게임 중 한 시간 이상 집중해서 플레이한 게 딱 하나밖에 없다. 나머진 30분만 넘어가도 속이 울렁거리더라. 우리도 이 부분을 인지하고 있고, 여러 이벤트라던가 퀘스트 등 부가적인 콘텐츠를 조율할 계획이다.


박태학 - 프로토타입과 본편은 시스템적인 면에서 어떤 차이가 있나.

민동준 - 앞서 말했듯 '프로젝트M' 개발 초기에는 NPC와의 대화에 중점을 뒀다. 여기에서 정보를 얻어 조금씩 스토리의 윤곽이 드러나는데, NPC마다 주는 정보의 양과 질이 다르기에 최대한 많이 만나도록 유도했다. 또, 각 NPC는 실제 사람처럼 호불호 성향을 갖고 있었다. 예를 들어 콜라를 좋아하는 NPC에게 콜라를 선물하면 더 많은 이야기를 해주고, 약속 어기는 걸 끔찍히 싫어하는 NPC랑 지내다가 한 번 약속을 어기면 이후 스토리 진행도 좀 바뀌는 시스템이었다.

그런데 프로토타입 출시 이후 반응을 보니, 훨씬 볼륨이 큰 본편을 이 방식으로 만들긴 좀 어려울 것 같았다. 그래서 적정 플레이 구간에 맞춰 주력 콘텐츠를 하나씩 제공하고, HMD를 착용한 유저라도 능동적으로 반응할 수 있도록 구조를 바꿨다.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하는 구간, 침착하게 유심히 살펴야 하는 구간이 구분되어 있는데, 그 둘의 밸런스를 맞추는 데 주력했다.


박태학 - '프로젝트M'의 전반적인 스토리가 궁금하다. 지금까지 공개된 건 체험 위주였으니까.

민동준 - '이안'이라는 이름의 주인공을 플레이하게 된다. 이안은 고등학생 시절 어떤 사건에 휘말리게 되고, 그 사건으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만다. 슬픔에 잠긴 이안은 10년간 사건의 원인을 쫓지만, 그 역시 결국 뜻하지 않은 죽음을 맞이하고 '프로젝트M'은 바로 그 이안의 죽는 시점에서 시작하는 작품이다. 죽은 줄 알았던 이안이 눈을 뜨니 10년 전 고등학생 시절로 돌아가 있었고 몇몇 기억을 잃기는 했으나, 약 1년 후 큰 사건으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된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다. 고3 과정을 다시 보내는 이안이 자신을 불행으로 몰아넣은 그 사건의 원인을 밝힘과 동시에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막는 이야기다.

박태학 - 확실히 연애 시뮬레이션은 아닌 것 같다.

김재환 -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우리가 만드는 건 스토리 기반의 VR 어드벤처다.

민동준 - 우리도 좀 더 멋있는 장르명이 뭐가 있을까 고민했는데... 딱히 떠오르는 게 없더라(웃음).

박태학 - 실제로 해봐야 알 것 같은 게임이다.

민동준 - '프로젝트M'과 비슷한 VR 게임이 뭐가 있는지 찾아봤는데, 정말 거의 없더라. 그래서 꼭 직접 해보는 게 중요한 게임이다. 설명만 들으면 미니게임 다양한 테마파크형 게임으로 보일 수 있는데, 그건 아주 작은 요소다. 전혀 새로운 형태의 AI 로직도 들어가 있고 그 외 여러 신선한 요소가 많다. 따라서 최소한 가상세계에서 1~2일 보낼 수 있는 콘텐츠를 준비한 후 '우리 게임은 이렇습니다'라고 소개할 계획이다. 지금은 그냥 게임에 나오는 캐릭터 인사시키는 단계고.

박태학 - 그 말대로 직접 해보지 않고 게임의 외형만 놓고 본다면, '프로젝트M'은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에 가까워 보인다. 의도와는 별개로 '프로젝트M'은 출시 직전까지 해당 장르의 게임들과 비교가 될 것 같은데.

민동준 - VR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을 만든 분들은 그 나름대로의 목적을 띄고 만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캐릭터와의 연애 요소보다는, VR에서 나오는 특징적인 경험을 주고자 했다. 연애 시뮬레이션으로 보이진 않을까... 그걸 내부적으로 고민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하지만, 우리 결론은 '다 괜찮다' 였다. 연애 시뮬로 보인다면 그렇게 불러도 괜찮고, 휴먼 다큐로 보인다면 그렇게 보아도 괜찮다. 우리가 HMD를 통해 유저들에게 제공하고 싶은 감정은 '위로'였다.

박태학 - 위로?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민동준 - 예전 IR 자료에 썼던 표현이기도 한데, 요즘은 우리 스스로 위로해줄 만한 게 없다고 생각한다. 지근거리에 있는 분들에게도 그런 표현을 들어본 적이 없다. VR 장비, 그리고 우리가 만든 캐릭터로 삶에서 위로받는다는 기분을 유저에게 전달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충분히 경쟁력이 있는 게임이라고 본다. 그렇다고 '프로젝트M'이 신파극이라는 건 아니지만(웃음).

▲ "유저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게임을 만들고 싶다."


박태학 - 자, 이제 좀 아픈 곳을 찔러볼 때다. 솔직히 말해 '프로젝트M: 데이드림'의 캐릭터는 게임에서나 볼 수 있는 환상 속 미인은 아니었다. 뭐랄까, 좀 현실적인 여성이라고 해야 할까. 어떤 유저가 쓴 댓글이 하나 기억난다. '가상현실인데, 꼭 외모를 현실적으로 만들어야 했나' 이런 내용이었다. 실제로 많은 유저들에게 모 래퍼를 닮았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 현실감 넘치는 캐릭터를 만든다는 게 장단점이 있는 건데, 여기에서 나온 단점을 지적받은 셈이다.

민동준 - 아마 유저들은 데이드림의 캐릭터가 '현실적으로 생겨서' 싫은 게 아닐 것이다. 예를 들자면, TV 속 연예인처럼 현실임에도 판타지처럼 생긴 사람들 많은데, 왜 굳이 옆집에 살고 있는 애처럼 만들었어? 이런 의미가 아닐까. 그래서 본편은 좀 더 판타지를 가미했다. 물론, 현실적인 범위 안에서.

구범석 - 난 데이드림 버전을 갖고 여러 외국 게임쇼를 다니며 다양한 현지 피드백을 받았다. 국내 유저들의 반응과는 달리, 외국인들은 꽤 호의적인 평가를 보냈다. 동양 여성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른 것도 있겠고, 한국에서 고등학생 시절을 겪은 적이 없다 보니 미적 기준보다는 체험에서 온 경험 측면에서 피드백을 많이 주더라.

김재환 - 사실 기사로 나간 데이드림의 캐릭터는 VR 기기의 미러링으로 인해 왜곡이 심해진 상태였다. HMD를 쓰고 보는 캐릭터와는 다르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당시 기술적 한계도 있었다. 그냥 얼굴 만든다고 끝난 게 아니다. 표정도 다양해야 하는데, 당시 우리는 표정 만드는 기술이나 노하우가 부족했다. 게다가 데이드림 버전은 스캔을 받은 얼굴 모델과 캐릭터를 연기한 모델이 다른 사람이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원래 목표로 했던 결과물과는 좀 다른 방향으로 나온 점도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겪었던 시행착오들이 쌓이고 쌓이면서 본편을 만드는 양분이 되었던 것 같다.

민동준 - 첫 티저 영상 캐릭터를 공개했을 때와 데이드림 버전의 캐릭터 공개됐을 때 유저들의 반응이 많이 달랐다. 개인적으로는 캐릭터 디자인의 차이도 있지만, 우리가 대중에 공개한다는 걸 인식하고 폴리싱 작업을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도 꽤 난다고 본다. 당초 티저 영상은 유저들에게 공개할 목적으로 작업했고, 데이드림의 캐릭터는 바이어나 업계 관계자 외에는 공개할 계획이 없었다.

박태학 - 뭔가 내가 굉장한 실수를 한 것 같은데(웃음).

박재욱 - 그런 의미가 아니다(웃음). 티저와는 달리 지스타에 출품한 데이드림 버전은 당초 유저들에게 공개할 생각이 없었기에 작업 프로세스부터 달랐다.

박태학 - 개발자 입장에서 섭섭한 마음은 없나. '프로젝트M'과 같은 스타일의 게임이라면, 그냥 어디 게임 캐릭터1, 게임 캐릭터2가 아니지 않나. NPC 하나 만들 때도 외적으로 정말 많은 정성이 들어가야 하니까.

박재욱 - 더 잘 만들라는 마음에서 해준 말 아닌가. 우리만 잘하면 된다.

김재환 - 유저들은 보이는 그대로 평가한 것뿐이다. 박재욱 이사 말대로 우리가 더 잘하면 해결될 일이다. EVR 스튜디오가 생길 때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은 마음가짐이 하나 있다. MMORPG 캐릭터처럼 과장된 비율 같은 건 지양하자. 실제 현실에 가까운 느낌이 들도록 디자인하자는 것. HMD를 썼을 때 보이는 캐릭터와 벗었을 때 보이는 사람이 똑같은 인체 비율을 보이도록 만들고 싶었다. 아까도 말했듯, 데이드림을 만들 땐 노하우가 부족했고 지금은 다르다. 1년간 개발 파이프라인을 개발한 것은 물론, 디자이너들도 많은 경험을 쌓았다.

물론, 이번에 공개한 본편 캐릭터들 역시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캐릭터가 우리 개발진의 종착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출시 직전까지 다듬고 또 다듬으면, 언젠가 유저들도 우릴 인정해줄 거라 믿고 있다.



▲ '프로젝트M'의 캐릭터. 프로토타입 시절과 비교해 많은 발전이 있었다.


박태학 - 정식 출시 기준으로 등장인물은 총 몇 명인가.

김재환 - 이번에 공개된 최하나와 이비, 그리고 아직 공개하지 않은 히로인 '미아'가 있다. 그리고 주인공 외 스토리에서 높은 비중을 가진 남자 캐릭터도 1명 더 공개할 예정이다. 주인공까지 합치면 핵심 인물은 5명 정도라 보면 될 것 같고, 그 외에도 많은 NPC가 등장한다.

최하나와 이비는 성격이 완전히 상반되는 캐릭터라 유저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해 먼저 공개하게 됐다. 이 둘이 시작이고, 앞으로 순차적으로 공개하려고 한다. 단순히 홍보성 보도자료나 영상이 아닌, 인스타그램 같은 사진 한 장이 될 수도 있다. '미아'가 공개될 때 유저가 기존 캐릭터보다 더 가깝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다방면으로 고민 중이다.


박태학 - 최하나가 공연하는 영상을 보면, 주인공 '이안'이 로봇으로 나온다. 의도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민동준 - 유저가 저 자리에 있다는 걸 암시하는 요소다. 사실 이안이 주인공이라는 것 자체도 개발자 입장에서는 너무 많은 정보를 준 셈이다.


박태학 - 출시 후 새로운 시나리오나 캐릭터를 DLC로 낼 계획도 있는지 궁금하다.

민동준 - 계획은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단계는 아니다. 일단 본편에 모든 인력이 집중되어 있는 상황이라.

박태학 - 개발 과정에서 몇 차례 여주인공 배역을 오디션으로 뽑기도 했다. 모델을 선정할 때 가장 중점적으로 본 게 무엇이었나.

민동준 - 캐릭터 설정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외형인지가 중요했다. 어쨌든 난 PD이다 보니 내 기준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번에 공개된 최하나와 이비는 이미 개발 초기부터 설정이 다 잡힌 상태였다. 이 설정에 완벽하게 매칭되는 인물을 찾는 게 정말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최하나와 이비와 매칭이 되는가 안 되는가를 떠나서 우리와 함께 일해준 모든 모델분들은 각자의 매력을 가진 아름답고 멋진 분들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당초 계획했던 캐릭터를 만들어야 하는 입장이라, 회사 내부에 매우 정밀한 얼굴 스캔 장치를 구축했고, 스캔 이후에도 디자이너들이 세세한 수정 작업을 했다. 최하나에 가까운 선, 이비에 가까운 눈매로. 날카로운 유저분들이라면 우리가 어딜 손댔는지 아마 알 수 있을 거다.





박태학 - 출시 시기는 어떻게 잡고 있나.

김재환 - 2019년 내로 꼭 출시할 계획이다. 스팀 바이브, 오큘러스 리프트, PS VR로 만나볼 수 있다. 다만, 세 플랫폼에서 동시 출시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박태학 - 작년에 차이나조이에 출품했다. 현장에서 직접 듣고 보면서 중국 VR 시장을 많이 배웠을 것으로 보이는데, 국내와 비교하면 어떤 분위기인지 설명 부탁한다.

김재환 - HMD 하드웨어부터 관련 콘텐츠까지 전반적으로 VR 업계에 투자를 엄청 많이 하더라. 콘텐츠만 놓고 본다면, 참신한 시도가 엿보이는 작품도 많았다. 어쨌든 아직 VR 시장이 초기 단계인 만큼, 중국 게임사들도 감을 잡으려 노력 중이란 걸 느꼈다.

박태학 - 오랜 시간 VR 게임을 만들었고, 동시에 VR 시장을 오랜 시간 관찰한 입장에서 볼 때, 앞으로 VR 시장이 어떻게 될 것 같나. 단순히 '이제 좋아질 거다'가 아닌, 좀 더 구체적인 상황도를 그려봤을 것 같은데.

김재환 - 우리는 처음 이 시장 뛰어들었을 때부터 좀 길게 봤다. 최소 5년에서 길게는 10년까지. VR이 완전히 대중화되려면 그 정도 시간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재작년에 메이저급 HMD들이 속속 출시되면서 VR에 대한 기대치가 엄청 올라갔지만, 이후 시장 상황이 체감될 만큼 변하지 않자 작년을 기점으로 기대치도 빠르게 식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모두가 시장이 형성되는 과정의 일부라고 보고 있다.

VR은 게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분명 다른 산업 군에서도 이 기술을 활용하게 될 텐데, 아직 바이블이라 부를만한 게 안 나왔고, 그쪽에서도 계속 이런저런 테스트를 해보는 중이다. 왜, 옛날에 오페라가 유행하던 시절에 영화라는 포맷이 딱 나왔을 때도 모든 감독들이 다 영화에 특화된 기술을 바로 쓴 것은 아니지 않나. 새로운 문법이 등장하면 이를 배우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아직 VR 시장은 초기 단계다. 적어도 난 그렇게 본다.


구범석 - VR 게임들이 본격적으로 출시된 지 이제 2년밖에 안 됐다. 그런데 대다수 유저들은 20년 정도 숙성된 결과물을 원한다. 우리 PD는 이걸 '생수파는 일' 같다고 했다.

박태학 - 무슨 뜻인가.

구범석 - 지금이야 생수 사 먹는 게 어색하지 않지만, 과거에는 '무슨 물을 돈 주고 사 먹어?'라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VR 게임도 마찬가지다. 그렇게까지 돈 써서 해야 할 정도인가, 라고 대다수 유저들은 생각한다. VR이 뭔지는 알지만, 아직 체험해보지 못한 유저들도 많다. 개인적으로는 VR 관련 디바이스나 콘텐츠가 실제 생활에 더 깊숙하게 들어오길 바라고 있다.

▲ '프로젝트M'AR 이모지 앱 플레이 영상.
다음주 수요일에 앱스토어로 출시될 예정이다.


박태학 - 지금까지 성공한 VR 게임들을 보면 시뮬레이터나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캐주얼 게임이 대다수다. 집에서 진득하게 즐기는 코어 게임이라 부를 만한 신작은 아직 손에 꼽는 상황인데, '프로젝트M'이 VR 시장에서 어떤 게임으로 자리 잡길 바라는지.

김재환 - 우리 스스로 말하긴 좀 부끄럽지만... 왜, 이런 말이 있지 않나. '젤다 하려고 스위치 샀다', '헤일로 하려고 엑스박스 샀다'는 말. 우리도 '프로젝트M' 하려고 HMD 샀다는 말 듣는 게 목표다.

박재욱 - 유저들한테 무슨 말 들으려고 그런 게임들과 비교를...

박태학 - 나도 목표는 높이 잡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비유가 나쁘지 않았다.

민동준 - VR 장비가 비싸다는 인식이 있는데, 사실 좋은 카메라 렌즈 하나 가격도 안 된다. 콘텐츠만 좋다면 시장은 반드시 열릴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정말 진정성 담아서 개발하는 팀이라는걸, 유저들이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그것만으로도 우리에겐 큰 동력이다.

박재욱 - 우리나라에 이런 코어 VR 게임을 만드는 회사가 있다는 것 자체에도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거고.

박태학 - 그럼 마지막으로... EVR 스튜디오의 궁극적인 비전을 들어보고 싶다.

김재환 - 우리는 그... 파이오니어(개척자)라고 생각한다. 유저가 VR 디바이스에서 느낄 수 있는 경험을 극대화해서 제공하는 게 첫 번째 목표다. 그리고 향후에는 사람과 감성적으로 교감하고, 또 위로해줄 수 있는 캐릭터들이 넘치는 회사로 만들고 싶다.

박재욱 - 요즘 대세가 이렇다더라, 해서 거기로 갈 생각은 없다. 우린 처음에 모였을 때부터 '먼저 해보고 시행착오 엄청 겪고, 그러면서 부족한 점 하나씩 채워가는 회사'를 목표로 했다. 이래야만 다른 게임사와의 차이가 더 선명해진다고 믿는다. 앞으로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을 거다.

▲ 좌부터 EVR 스튜디오 민동준 PD, 김재환 대표, 구범석 이사, 박재욱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