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엔진의 발전으로 인해 이제는 누구나 게임을 만들 수 있게 됐습니다. 혼자서는 물론이고 전문 프로그래밍 지식도 필요치 않을 정도죠. 그렇다고 퀄리티가 떨어지는 게임만 나오는가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정말 잘 만든 게임은 어지간한 상용 게임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입니다.

이렇듯 1인 개발 게임조차도 점차 고퀄리티화되는 이때, 꾸준히 모습을 드러내는 부류의 게임이 있습니다. 바로 'RPG 만들기(일본명 RPG 쯔꾸르, 이하 알만툴)'로 만든 게임들입니다. 얼핏 '알만툴' 게임들은 조잡하다고, 시대에 뒤처진 게임이라고 평가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말 조잡하고 시대에 뒤처진 게임이었다면 지금까지 명맥을 잇고 있을 수도 없었을 테죠.

지금도 '알만툴' 게임들은 꾸준히 나오고 있습니다. 대부분은 단순한 취미, 혹은 재미로 만드는 것일 테지만 그렇게만 치부하기엔 빛을 보는 게임들도 더러 있죠.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숨겨진 명작 '알만툴' 게임들, 함께 만나보시죠.


모자세계 - 2013년 1월 8일 공개
독특하고 참신한 '알만툴' 게임을 원하는 유저에게 추천


'알만툴' 게임이라고 하면 뭐가 떠오르나요? 아마 대부분 비슷할 겁니다. 과거 슈퍼패미콤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2등신 캐릭터, 단순한 턴제 전투, 그리고 호러 게임이 많다는 것 정도죠. 실제로 유명한 '알만툴' 게임 상당수가 2등신 캐릭터가 등장하는 호러 게임이니 이런 인식이 잘못된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모든 '알만툴' 게임이 그런 건 아니죠. 이번에 소개하는 '모자세계'는 앞서 언급한 '알만툴' 게임의 선입견을 부순 대표적인 게임입니다. 우선 그래픽의 경우 'RPG 만들기 VX' 성능의 한계까지 끌어올렸다고 할 정도로 여타 '알만툴' 게임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퀄리티를 보여줍니다.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개성 넘칠 뿐 아니라 직접 만든 애니메이션과 연출도 어지간한 상용 게임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죠.

그렇다고 단순히 그래픽만 좋은 게임도 아닙니다. 스토리와 시스템도 공들인 기색이 역력했죠. '알만툴'이 제공하는 기본 시스템에서 더 나아가 오버소울, 모자, 콤보 등 '모자세계'만의 다양한 시스템을 선보였으며, 왕도적인 판타지에서 벗어난 뛰어난 스토리덕에 이게 정말 '알만툴'로 만든 1인 제작 게임이 맞냐는 평까지 받았습니다.


'투더문'과 '아오오니'의 이례적인 성공 덕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많은 '알만툴' 게임들이 감동을 주거나 호러에만 초점을 맞췄죠. 실제로도 이런 전략은 다소는 성공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모자세계'는 달랐습니다. 묵묵히 RPG의 길을 걸었고 그 결과 일본에서는 2013년 '당신이 고른 무료 게임' 1위를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알만툴' 게임은 거기서 거기라는 평을 자주 듣습니다. 하지만 모든 게임이 그런 건 아닙니다. 심도있는 게임도 더러 있죠. 이번에 소개한 '모자세계'가 그런 대표적인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독특하고 참신한 '알만툴' 게임을 원한다면 이 기회에 '모자세계'를 해보는 건 어떨까요.


원샷 - 2014년 6월 30일 공개
퍼즐을 풀려면 파일을 옮겨야 한다?


2등신 캐릭터가 등장하는 친숙하면서도 독특한 '알만툴' 게임을 원하시나요? 그렇다면 '원샷'을 추천합니다. '원샷'은 신비롭고 몽환적인 분위기와 음악, 도트가 일품인 전형적인 '알만툰' 게임입니다. 플레이어는 구원자의 역할을 맡게 된 주인공 니코를 도와 세계에 태양을 되찾아 주고 니코를 원래 세계로 되돌려주는 게 목표입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얼핏 평범한 게임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랬다면 이렇게 추천하지도 않았겠죠.

'원샷'은 특이하게도 게임 내에서만이 아닌 게임 밖에서도 다양한 상호작용이 이뤄집니다. 예를 들면 퍼즐의 힌트가 바탕화면에 표시된다던가 퍼즐을 풀려면 게임을 설치한 폴더 내에 생성된 파일을 직접 이동해야 하는 식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플레이어가 일종의 신으로서 주인공 니코를 도와주는 거죠. 여기에 게임을 종료할 때면 플레이어의 행동에 반응해 말을 거는 등 기존 '알만툴' 게임에선 보지 못한 독특한 메커니즘을 보여줍니다.

이런 독특한 메타픽션 요소는 '원샷'의 고유한 특징이 됐고 입소문 끝에 2016년 12월 9일 스팀으로 리메이크되는 영광을 차지했습니다.


모든 게 특별할 필요는 없습니다. '원샷'의 그래픽은 익숙하며, 스토리 역시 평범합니다. 하지만 게임을 진행하는데 필요한 퍼즐에 특별함을 담았습니다. 덕분에 플레이 시간은 짧지만 여러 분기마다 참신함을 느낄 수 있었죠. 여운이 남는 이야기, 독창적인 퍼즐을 자랑하는 게임 '원샷'이었습니다.


라쿠엔 - 2017년 5월 11일 출시
'투더문'의 로라 시기하라가 선보이는 아름답지만 슬픈 이야기


'알만툴' 최고의 성공작 '투더문'의 OST를 담당한 로라 시기하라가 이번에는 직접 게임을 만들었습니다. '라쿠엔', 소년이 엄마와 함께 낙원(일본어 라쿠엔)을 찾는 이야기를 그린 게임입니다.

'라쿠엔'의 가장 큰 특징은 '투더문'과 마찬가지로 비전투 어드벤처 게임이란 점입니다. 얼핏 아쉽게 느껴질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라쿠엔'은 기발한 던전들과 다양한 퍼즐, 짜임새 있는 스토리로 무장해 이런 단점을 극복했습니다. 여기에 '투더문'을 통해 정평이 난 가슴을 울리는 BGM은 여전해서 '라쿠엔'이 가진 이러한 단점들을 메우기 충분할 정도죠.

오랜만에 찾아온 감동과 여운을 가진 '알만툴' 게임 '라쿠엔'입니다. 과연 소년은 엄마와 함께 낙원으로 갈 수 있을까요? 그리고 모자가 향하는 낙원은 정확히 어떤 곳일까요? '라쿠엔'의 아름답지만 슬픈 이야기, 꼭 직접 해보시길 바랍니다.


이니그마 완전판 - 2014년 5월 7일 공개
한여름 밤에 즐기기 좋은 매력적인 호러 게임


한여름의 무더위에 지친 이 시기에 딱 맞는 '알만툴' 게임이 있습니다. 인디 게임 개발팀 AV 미디어랩이 개발한 호러 게임 '이니그마'입니다.

'알만툴'에서 호러는 가장 인기 있는 장르입니다. 덕분에 살짝만 찾아도 수많은 호러 게임이 나오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호러 게임들은 '아오오니', '이브' 등의 아류작에 불과한 실정입니다. '알만툴'의 한계로 인해 기존 성공작을 답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문제는 그렇기에 '아오오니', '이브'를 뛰어넘는 게임들이 거의 나오지 않는다는 거였죠.

하지만 '이니그마'는 달랐습니다. 화려한 일러스트, 자체 제작한 사운드, 심도 있는 스토리로 무장했으며 여기에 캐릭터마다 성우를 도입하는 등 어지간한 상용 게임 못지않은 퀄리티를 보여줍니다. 그러면서도 시야의 제한을 두는 등의 시스템을 넣어 이전의 '알만툴' 호러 게임이 가진 일차원적인 호러의 한계에서 탈피하고자 노력했습니다.

특히, 시야의 제한을 둔 건 '이니그마'로서는 신의 한 수였다고 할 정도입니다. 사람은 정보를 얻을 때 대부분 시각에 의존합니다. 그런데 시야가 제한된 상황이라면 플레이어는 청각에 집중하게 되고 이런 상황에서 '이니그마'의 자체 제작한 사운드가 플레이어를 심리적으로 더욱 옥죕니다. 단순히 쫓고 쫓기는 게 전부가 아닌, 치밀한 스토리와 그걸 보완하는 시스템으로 심리적인 공포를 극대화한 연출이라고 할 수 있죠.


이렇듯 호러 게임이 가진 태생적인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도전을 한 '이니그마'입니다. 단순히 쫓기는 잔인한 연출이 전부인 '알만툴' 호러 게임이 질리셨다고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완성도 높은 호러 게임 '이니그마'를 추천합니다.


베스타리아 사가 - 2016년 9월 5일 공개
'파이어 엠블렘'의 아버지 카가 소죠가 만든 1인 제작 SRPG


'베스타리아 사가'는 엄밀히 말해 '알만툴' 게임은 아닙니다. 정확히는 'SRPG 스튜디오'라는 툴을 이용해 만든 게임이기 대문이죠. 하지만 이 역시 '알만툴'의 한 부류인 만큼, 이 자리를 빌려 소개하고자 합니다.

'베스타리아 사가'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파이어 엠블렘'의 아버지 카가 소죠가 만든 게임이란 점입니다. 그것도 혼자서 말이죠. 하지만 퀄리티는 우습게 볼 수 없습니다. 카가 소죠가 정립한 '파이어 엠블렘' 시리즈의 특징을 집대성한 게임이랄 수 있을 정도죠.

실제로도 단순한 여타 '알만툴' 게임과 달리 '베스타리아 사가'는 상당히 코어합니다. 제작자 본인부터가 "SRPG를 잘하지 못 하는 사람은 클리어할 수 없다"고 호언장담할 정도죠. 한번 죽은 동료는 살릴 수 없으며, 특정 캐릭터를 강제로 써야 하는 미션이 있어서 원하는 캐릭터만 키울 수도 없습니다. 심지어는 무기 내구도도 정해져 있어서 좋은 무기도 조심스럽게 써야 할 정도입니다.


흔히 '알만툴'이기에 한계가 명확하다고, 어쩔 수 없이 퀄리티가 낮은 게임을 만들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베스타리아 사가'는 달랐습니다. 카가 소죠가 구상한 모든 게 들어가 있습니다. 게임은 어려운 게 제맛이라는 분들이라면 꼭 해보시길 바랍니다.


피학의 노엘 - 2016년 4월 14일 공개
한 편의 만화와 같은 전기 어드벤처


'피학의 노엘'은 '허백의 꿈', '잘 부탁해요 야도코 씨' 등 고퀄리티 '알만툴' 게임으로 일본에서 유명한 2D 디자이너 겸 개발자 카나오(カナヲ)의 신작입니다.

이 게임은 여러 면에서 도전적인 게임이랄 수 있습니다. '알만툴' 게임이 대부분 도전적인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요? 얘기를 들어보시면 이해가 될 겁니다. 바로, '피학의 노엘'의 장르에 대한 부분 때문인데요. 얼핏 RPG로 보이지만 '피학의 노엘'은 전형적인 비주얼 노벨에 가깝습니다. 탐색과 퍼즐, 액션 파트 등 다양한 요소가 존재하지만 별다른 공략 없이도 한 번에 클리어할 수 있도록 난도가 낮습니다. 이런 요소들은 어디까지나 스토리에 이입을 돕기 위한 장치에 불과하기 때문이죠.

'알만툴'에서 보기 드문 이러한 특징과 카나오의 일러스트 덕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2016년 4월 14일 1화가 공개된 '피학의 노엘'은 입소문을 탄 끝에 만화책과 소설로까지 만들어지고 이후 스팀으로까지 출시하게 됩니다.


현재 '피학의 노엘'은 8화까지 나왔으며, 스팀 혹은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즐길 수 있습니다. 과연 노엘의 복수는 성공할까요? '알만툴'의 한계는 없다는 걸 증명한 게임 '피학의 노엘'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