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CS에 오랜만에 찾아온 얼굴이 있다. ‘피글렛’ 채광진이다. CG 아카데미 소속으로 올해를 보내고 있던 ‘피글렛’에게 LCS 출전 기회가 왔다.

하지만 반갑게 찾아온 기회가 껄끄러운 패배로 지나갔다. 상대가 100시브즈와 팀 리퀴드였는데, 현재 리그 1위 팀들이었다. 운이 없다고도 할 수 있다. 몇몇 팬들이 그래도 ‘피글렛’의 경기력은 괜찮았다고 평가했지만, 앞으로 그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다.

심하게 마음고생을 하고 있는 ‘피글렛’을 만났다. ‘피글렛’은 지난 비시즌 비하인드 스토리와 자신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아카데미에 있으면서 마음고생이 심할 것 같다.

원래 비시즌 때 한국팀에 들어가고 싶었다. 그런데 어떤 한 명이 나의 이번 해, 크게는 인생까지도 망쳤다. 누군지는 말할 수는 없지만, 이 인터뷰를 본다면 그 사람은 알 거다.

그 사람이 나에게 약속한 게 있어서 비시즌 기간에 어떤 팀도 알아보지 않았다. 한국과 미국을 포함한 어떤 리그 팀도 말이다. 북미에서 비시즌 기간에 선수들끼리 채팅방을 만들어서 정보 교류도 했었는데, 난 아예 거기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내가 너무 순진했을지는 몰라도, 그 사람이 나에게 조금만 빨리 이야기를 해줬더라면 내가 아카데미 팀에 들어갈 일이 없었다.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던 건가?

계약에 관해 이야기를 해보기로 했고, 나에게 테스트를 볼 기회는 무조건 주겠다고 기다리라고 했다. 난 거기에 모든 걸 올인 했다. 워낙 좋아했고 높이 평가했던 사람이라 믿고 기다렸다. 그 팀에 들어가고 싶었다. 그래서 당시에 솔로 랭크를 진짜 열심히 했다. 하루에 20게임씩 하고 그랬다.

그렇게 기다리는 동안 비시즌 기간이 끝나 갔다. 결국 그 사람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 시기를 놓쳤고, 들어갈 팀을 찾을 수가 없었다. 부탁까지 했지만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이미 선수가 다 차 있었다. 한 달 동안 거의 울면서 술만 먹었다. 다행히 막판에 CG에서 연락이 와서 들어오게 된 거다. 이제 그 사람을 정말 싫어한다.


아카데미 계약이라 망설였을 것 같다.

모든 기회를 놓쳐서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미 한국이든 미국이든 알아볼 수 있는 팀이 없었다. 그래도 미국에서 다시 선수 생활을 하면 하나 좋은 게, 이제 내년이면 NA 선수가 된다. 그거 하나 보고 아카데미 팀에 들어왔다.

솔직히 말해 비시즌 기간 때 일만 아니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아카데미에 있으면 누가 관심을 주겠나. 우리 팀밖에 나에게 관심이 없다. 내년이면 NA 선수가 된다고 하더라도, 내 프로게이머 생활에서 이번 한 해가 가장 아까운 시간이다.


이번에 선발로 나서게 됐는데, 어떤 계기로 기회를 받게 된 건가?

팀에서 나와 ‘문-벌칸’ 조합으로 한 번 트라이아웃을 해보겠다고 했다. 그런데 두 번 졌다. 내 생각에는 둘 다 질 수가 없는 게임이었는데 아쉽다.


그럼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건가?

그렇다. 이번 주에 두 판 다 이긴다는 생각으로 왔는데 이렇게 됐다. 오랜만에 LCS 경기에 나서게 돼서 굉장히 설레고 또 하면서 즐거웠다. 앞으로 또 기회가 온다면 꼭 이기겠다.



현재 공동 1위인 팀 리퀴드와 100시브즈를 만나 패배했다. 매치업이 너무 세기도 했다.

나는 매치업이 어려웠는지 모르겠다. 상대 자야-라칸이 1레벨에 체력이 반이 나간 것도 말이 안 되고, 100시브즈의 경기에서 우리가 봇 조합 상성 상 상대 타워를 계속 두드렸다는 게 말이 안 된다. 상대가 강하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다.


‘리라’ 남태유와 함께 출전하지 못했다. 용병 제한 때문이었던 거 같은데, 그 부분이 아쉬울 것 같다.

‘아폴로’가 개인적인 일이 있어서, 내가 한 번 메인 팀에서 스크림을 대신 한 적이 있다. 태유가 진짜 잘하더라. 정글 루트 깔끔하고, 어떻게 갱킹을 해야 하는지도 알고, 태유를 되게 높게 평가한다.


본인이 말한 것처럼 내년부터는 NA 선수가 된다. 북미에서 가치가 높아질 것 같다. 어떤 미래를 생각하고 있나?

내가 예전에 한국으로 부트 캠프를 갔을 때, 속으로 ‘내가 실력이 많이 떨어져 있으면 어떻게 하지’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막상 스크림을 해보니까 라인전을 이기면 이겼지, 지는 경우가 없었다. 아직 한국에 간다고 해도 자신 있다.

내가 봤을 때 라인전을 잘하는 선수가 없다. 요새 한국에서는 정글러가 없으면 절대 싸우지 말라고 피드백을 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난 생각이 다르다. 상대 정글러가 와도 내가 피할 수 있을 정도로만 적극적으로 하는 건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게 잘하는 거다.

만약에 모든 선수들이 정글러가 있을 때만 공격적으로 하고, 없으면 뒤로 빼고, 이렇게 하면 상대 입장에서는 너무 뻔해서 쉽다. 약간의 리스크를 짊어지고 경기를 잘하는 게, 진짜 잘하는 거다.

그래서 최근에 중국이 한국을 이긴 것 같다. 옛날 한국 실력이 아니다. 요새 그리핀이 변칙적으로 잘한다. ‘타잔’이 어디 갈지 예측이 안 되고, 세 라인 모두 자기들이 라인전을 이긴다 싶으면 과감하게 스노우볼을 굴린다.

다른 한국 팀들은 정글러가 없으면 아무것도 안 한다. 너무 안전하게만 하려고 하고, 보기에 좋게만 하려고 하는 것 같다. 그리핀을 보고 배워야 할 것 같다.


실수에 대한 비난이 두려워서 그런 것 아닐까?

나 같으면 한 번 죽어도 두 번 죽이려고 노력할 거다. 많은 리스크를 짊어지라는 게 아니다. 최대한 리스크를 줄이고, 그 선에서 공격적으로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냥 아예 아무것도 안 하려고 한다. 그러니 게임도 지루해지고, 그냥 한타만 한 번 이기면 게임이 기운다.



어려운 시기를 거치고 있다. 좌절하고 포기를 하고 싶기도 했을 것 같은데, 그럼에도 계속 선수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는 이유가 있는지?

은퇴하기 전에 한 번이라도 우승을 더 한다거나, 롤드컵에 나가고 싶어서 계속하고 있다. 그래야 마음 편하게 코치를 하든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여기 와서 우승을 한 번도 못 하고, 롤드컵도 한 번도 못 갔다. 솔직하게 많이 짜증이 난다.

나를 잘 이용했으면 우승하기 쉬웠을 것 같은데, 참 아쉽다. 나를 제대로 이용한 팀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라인전을 이기면 그걸 이용해서 굴려줄 사람이 없었다. 여기 처음 와서 지낸 2년이 가장 아쉽다.

내가 이기적인 선수가 아니다. 팀에게 최대한 도움을 주려고 한다. 나는 제어 와드도 3개씩 사고 그런다. 그저 팀이 이기는 최선의 방향을 봤던 거다.


앞으로도 선수 생활 의지가 강한가?

게임을 그만할까라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다. 특히, 이번에는 더 많이 했다. 하지만 내가 승부욕이 정말 세다. 내가 생각하기에 내 실력이 은퇴할 실력이 아닌 것 같다. 만약에 상대를 못 이기겠다는 생각이 들면 지금이라도 그만뒀을 거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은퇴해야겠다는 마음이 종착지에 닿지는 않았다.

전 세계 사람들이 나를 본 지가 오래됐다. 13년도에 롤드컵에 같으니 벌써 5년이 지났다. 은퇴를 하더라도 내가 살아있다는 걸 다시 증명하고 은퇴하고 싶다. 그래야 마음이 편할 것 같다.



솔로 랭크 점수를 잘 올리지 못해서, 한국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그것 때문에 ‘피글렛’에 대한 의구심이 컸다.

맞다. 잘 못 올린다. 그런데, 나는 롤드컵 우승했을 때도 다이아몬드1이었다. 심지어 NA에서도 다이아몬드1이었던 적이 있다. 프로가 되기 전에는 솔로 랭크를 잘했는데, 지금은 굳이 점수를 올리고 싶다는 마음이 크지가 않다. 솔로 랭크와 실력이 비례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NA 선수가 한국 서버에서 1등을 찍은 적이 있다. 그렇다고 그 선수가 대회에서 잘하는 건 아니었다. 다음 시즌에 꼴찌를 했던 걸로 알고 있다. 그 선수를 비난하는 게 아니라, 솔로 랭크가 실력과 그렇게 큰 관계가 없다는 말이 하고 싶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인성하면 나 아닌가(웃음). 내가 인터뷰할 때 워낙 솔직하게 말을 해서 욕을 많이 먹었다. 난 가식을 떠는 것보다 솔직하게 말하는 게 좋다. 요새 인터뷰들이 다 재미가 없더라. 좋게, 재밌게만 봐주셨으면 좋겠다.

사실 나도 좀 사리고 싶다. 이제는 욕먹는 게 좀 지겨울 법도 하지 않나. 근데 그게 안 된다. 나를 좋아하는 팬분들 중에 나의 거침없는 부분을 좋아하는 분들이 있는데, 나는 그분들이 좋다(웃음).

이번 인터뷰도 욕을 먹을 수 있겠지만, 가능하다면 좋은 욕을 해주시면 좋겠다. 재미난 욕 같은 건 좋다. 부모님만 건들지 말아 주셨으면 한다(웃음).

내년에 미국에 있을지, 한국으로 돌아갈지 모르지만, 만약에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진짜 날 것의 인터뷰를 생방송으로 보여드리겠다.


갑자기 ‘임프’ 구승빈 선수 생각이 난다.

진짜 언제 한 번 경기에서 만나보고 싶다. 그때만큼 재미있던 때가 없었다. 당시에 ‘임프’도 그랬지만, '얘한테는 죽어도 안 져' 이런 생각으로 게임을 했다. ‘임프’ 이후로 그런 생각이 드는 선수가 없다.

안 좋았던 건 이미 다 풀었지만, 진짜 술 한잔하면서 이야기하고 싶다. 그때는 서로 못 죽여서 안달 났었지만, 이제는 모두 웃으면서 이야기를 하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만나도 “내가 더 잘해”라고 서로 말할 것 같긴 하다. 하지만 그러다가도 “그래. 맞아”라고 그냥 넘기면서 웃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