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LoL 챔피언스 코리아 섬머 스플릿 41일 차 2경기는 많은 것이 걸린 대결이었다. 남은 경기 결과에 따라 단독 1위로 결승 직행의 꿈을 이룰 수 있는 kt 롤스터와 포스트 시즌 자력 진출을 건 한화생명e스포츠가 만났기 때문이다. 선수들은 긴장감 넘치는 표정과 함께 부스에 앉았다. 한화생명e스포츠의 탑 라이너 '린다랑' 허만흥은 눈을 감고 가슴 위에 손을 얹은 채 심호흡을 하기도 했다.

결과는 kt 롤스터의 세트 스코어 2:0 완승이었다. 1세트에는 케넨으로 한타를 지배했던 '스멥' 송경호가 MVP를 차지했고, 2세트에는 르블랑 선픽의 이유를 보여줬던 '유칼' 손우현이 가장 빛난 선수로 뽑혔다. kt 롤스터가 자랑하는 '라인전 우위를 바탕으로 한 빠른 스노우볼'을 눈에 띄는 성과로 만들어낸 장본인들이었다.

모든 선수가 제역할을 충실히 해낸 가운데, kt 롤스터의 정글러 '스코어' 고동빈이 이번 숨은 MVP의 주인공이다. 그는 특히 1세트에 킨드레드로 '성환' 윤성환의 트런들을 요리하면서 팀적인 운영에 탄력을 부여했다. 예전부터 정평이 나있던 '스코어'의 정글 심리 싸움은 이번에도 그 면모를 숨김없이 드러냈고, '성환'은 이 때문에 정글 주도권을 완전히 상실했다.

kt 롤스터는 1세트에 미드 아지르를 제외하면 라인전 단계에서 상대 조합을 압박하기 용이한 조합을 꺼냈다. 탑 라인에는 앞서 말했던 것처럼 케넨을 배치했고, 봇 라인에서는 상대 바루스-브라움 조합보다 주도권을 잡기 쉬운 애쉬-탐 켄치로 나섰다.

한화생명은 상대를 끊으면서 주도권을 잡아야 하는 조합을 갖췄다. 초가스와 트런들, 르블랑, 바루스, 브라움 모두 CC 연계에 특화된 챔피언이다. 라인전 단계에서 kt 롤스터가 강하게 라인을 압박하면 '성환'의 트런들이 난입해 CC 연계로 상대를 잡아먹기에 좋았다. 이 때문에 한화생명e스포츠는 '성환' 트런들의 움직임이 중요했고, '스코어'의 킨드레드는 이를 막아주는 역할을 해야 했다.

결과는 모두 아는 것처럼 '스코어'의 완승이었다. 시작부터 '스코어'의 킨드레드가 웃었다. 5분경 양 팀의 정글러는 미드 라인에 개입했는데 '스코어'의 킨드레드가 '성환'의 트런들을 대미지로 찍어 눌러 쫓아냈다. '점멸'이 빠지거나 킬이 나오진 않았지만, 왜 트런들의 카운터로 킨드레드가 손꼽히는지 드러난 장면이었다. 트런들의 E스킬 '얼음 기둥'으로는 킨드레드의 가뿐한 움직임을 막지 못했다.

▲ '저리 가'

'스코어'의 킨드레드는 팀원들이 팽팽하게 라인전을 치르고 있는 와중에도 '성환' 트런들과의 성장 격차를 조금씩 벌렸다. 한화생명e스포츠의 봇 듀오가 '데프트' 김혁규 애쉬의 '점멸'을 빼내면서 주도권을 잠시 챙긴 타이밍에 '성환'의 트런들은 블루 버프를 빼앗으려고 했지만, '스코어'의 킨드레드는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이렇듯 '스코어'의 킨드레드는 소소하게 '성환'의 트런들을 성장 차이로 압박, 심리적 대미지를 입히는데 성공했다.

그의 이러한 심리적 압박은 결국 큰 스노우볼이 됐다. kt 롤스터의 봇 듀오가 상대의 궁극기 연계에 쓰러진 직후에 '스코어'의 킨드레드가 분위기를 다잡았다. '유칼' 손우현의 아지르도 여기에 힘을 보탰다.

14분경 '스코어'의 킨드레드는 '유칼'의 아지르에게 블루 버프를 넘겨주고 곧장 상대 레드 버프 부근으로 들어갔다. 이 움직임은 한화생명e스포츠에게 발각되지 않았다. 정확하게 아군의 제어 와드 쪽으로 '스코어'의 킨드레드가 이동했기 때문이었다. 마침 '라바' 김태훈의 르블랑도 탑 라인 쪽으로 이동해 미드 라인에 공백이 생겼다.

▲ 상대 시야에 걸리지 않고 잠입한 '스코어'의 킨드레드

▲ 위치 노출의 위험 때문에 잠시 수풀 속에서 시간을 끌었다.

상대 아지르가 블루 버프를 들고 있는 것을 확인한 한화생명e스포츠도 '스코어' 킨드레드의 위치를 대강 파악했을 것이다. 하지만 '스코어'는 그 예상을 뛰어넘었다. 수풀 속에 잠시 숨어 상대의 방심을 유도했던 것. 수풀 속에 숨어있던 '스코어'의 킨드레드는 '성환'의 트런들이 레드 버프 사냥을 위해 W스킬 '얼음 왕국'을 시전하는 걸 확인하자마자 그쪽으로 진입했다. '유칼'의 아지르 역시 함께 이동했다. 그리고 이어진 깔끔한 스킬 연계에 이은 킬 포인트. 이 장면으로 '스코어'의 킨드레드는 조금씩 벌려놨던 정글러 간 격차를 더 눈에 띄게 만들었고, 반대로 '성환'의 트런들은 다급해졌다.

▲ '유칼'의 아지르와 함께 급습 성공

더 큰 사고는 그 직후에 터졌다. 이번에도 '스코어'의 킨드레드가 심리전에서 '성환'의 트런들을 압도한 결과였다. 상대 정글러의 움직임을 예측하고 이를 제대로 받아치면서 '성환'의 트런들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이번에는 '마타' 조세형의 탐 켄치가 이를 도왔다.

15분 20초 쯤에 한화생명e스포츠의 봇 듀오가 상대를 타워 안으로 깊숙하게 밀어넣은 채 '성환'의 트런들을 불렀다. 봇 1차 타워 다이브 설계였다. 하지만 이는 kt 롤스터가 파놓은 함정이었다. '마타'의 탐 켄치는 삼거리 수풀 바깥 쪽에 제어 와드를 설치해 '성환'의 트런들을 유혹했다. 다이브를 시도하려던 트런들이 제어 와드를 보면 이를 파괴하리라는 예측 플레이였다. 그리고 '스코어'의 킨드레드 역시 그 부근에 숨어서 대기 중이었다.

▲ kt 롤스터가 파놓은 함정에 '성환'의 트런들이 걸려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성환'의 트런들은 함정인 줄도 모른 채 제어 와드를 파괴하려고 했다. 그러자 kt 롤스터는 순간적으로 트런들을 급습해 확실하게 쓰러뜨렸다. '데프트' 애쉬의 궁극기와 함께 잘 성장했던 '스코어'의 킨드레드가 화력을 뿜어냈다.

▲ '성환'의 트런들은 다시 한 번 쓰러졌다.

▲ 당시 양 팀 정글러 간 CS 수급량 차이. 성장 격차는 심각해졌다.

kt 롤스터에게는 후반에 좋은 아지르와 케넨이 있었기에 속도를 내야 했던 한화생명e스포츠도 여러 차례 반격을 위한 시도를 보였다. 협곡의 전령을 챙긴 뒤에 미드 1차 타워를 파괴했고, 분위기는 내준 상황에서도 라인을 잘 관리하면서 역으로 압박을 가했다. 하지만 그들의 시도는 잘 성장한 '스멥'의 케넨과 '유칼'의 아지르에게 무력화됐다.

'스멥'의 케넨과 '유칼'의 아지르가 잘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도 '스코어'의 킨드레드가 '성환'의 트런들은 내내 압박했기 때문에 나온 결과였다. 한화생명e스포츠는 최근 폼이 좋았던 '성환'의 트런들이 '린다랑'의 초가스와 '라바'의 르블랑을 도와 상대 라이너의 성장을 억제하는 그림을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성환'의 트런들은 '스코어'의 킨드레드가 선보인 심리전 때문에 완전히 말려버렸고, 한화생명e스포츠는 힘을 쓰지 못했다.

1세대 프로게이머이자 정글러로 포지션을 변경했던 '스코어'와 '앰비션' 강찬용은 LCK를 대표하는 운영형 정글러로 손꼽힌다. 좀 더 이 구분을 세분화해보자. '앰비션'은 상대 정글러의 동선을 계속 파악해주면서 라이너들에게 안정감을 심어주는 역할이다. '스코어'는 초중반까지 정글 심리 싸움을 통한 강한 압박에서 강점을 드러내는 정글러다.

한화생명e스포츠와의 1세트에서 '스코어'는 자신의 강점인 심리전을 단 두 번의 장면으로 간단명료하게 설명했다. '성환'의 트런들은 '스코어'의 덫에 딱 두 번 걸려들었을 뿐인데, 정글 주도권을 완전히 잃었다. 그만큼 '스코어'의 심리전은 상대하는 입장에서 엄청난 압박감을 느끼게 한다. 그의 이러한 강점 때문에 '스코어'의 별명이 '신인 정글러 학살자'인 건 아닐까. 심리전의 대가 '스코어'는 정글에 사는 한 마리의 여우라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