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사에 강력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민감하신 분은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스토리는 게임을 플레이하면 왜 이 퀘스트를 수행해야 하는지 왜 이걸 해결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배경이 되는 만큼, 이래저래 어려운 상황을 자주 제시하곤 한다. 어려운 상황이어야 할 것도 많아지고 해야하는 이유도 확실해지니까. 시련을 겪은 주인공이 문제를 해결해나가면서 성장하고, 이를 통해 유저는 성취감을 느낀다. 고난과 시련은 빠질 수 없고, 우리의 게임 속 캐릭터들은 오늘도 열심히 고군분투하고 있다.

극한의 상황에서, 치명적이고 비극적인 사건들을 겪고, 있는 대로 너덜너덜해지는 게임 속 캐릭터들. 그들이 가는 곳은 끔찍한 상황이 일어나고, 그들의 사랑하는 사람들은 모두 죽거나 사라지거나 배신하게 되며, 주변에는 목숨을 노리는 요소들만이 존재한다. 게임을 진행하고 플레이하면서 그들은 기구한 운명 속에 구르고, 구르고, 구른다.

▲물론 이런 분들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 정도면 행복하게 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 싶을 정도로 그들은 선택하거나 운명적으로 휩쓸려 기구한 삶을 살기도하고, 그냥 일하러 갔다가 아포칼립스를 마주하기도 하며, 게임 진행 내내 여러가지 방식으로 죽으며 고통받기도 한다. 배경 스토리와 처한 상황만 생각해봐도 불쌍한 마음에 눈시울을 붉히게 되는 게임 속 캐릭터들을 만나보았다.


"운명과 선택으로 인한 안타까운 삶"
메탈 기어 솔리드 - 더 보스 / 아웃라스트 - 마일즈 업셔

메탈 기어 솔리드 - 더 보스



"이미 내게는 남은 것이 없다. 원한과 후회조차도."

메탈 기어 솔리드3의 더 보스는 코브라 부대의 대장이자 스네이크를 키워낸 스승이다. 전투의 기술은 물론, 작전에 임하는 마음가짐과 철학 또한 확고한 군인으로, 그녀가 스네이크에게 "단 한 가지, 절대적으로 믿을 수 있는 것은... 임무뿐이다"라고 말한 부분이나 "어떤 명령이라도 복종한다. 그것이 군인이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그녀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마지막 전투에서 절대적인 악은 없다며 담담하게 독백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면 처절할 정도.

그녀의 철학만큼이나 그녀의 삶은 처절할 정도로 '군인'답다. 나라를 위해 연인을 죽여서 미션을 완수해야 했고, 그나마도 배 속에 잉태하고 있던 아들까지 현자들에 의해 적출당해 빼앗긴다. 그럼에도 '유산'을 획득하기 위한 미 정부의 연극에 가담해 볼긴 대령에게 합류한 배신자의 오명을 쓰게 되었으며, 핵병기를 쏜 범죄자 취급을 받게 된다. 마지막에는 임무를 받은 제자에게 죽기까지.

"10분 안에 나를 쓰러뜨리면 도망갈 수 있다, 잭. 인생 최고의 10분이 되도록 하자."

모든 것을 빼앗겼음에도 나라를 위해 자신까지 희생한 군인. 나라와 현자들은 그녀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것을 빼앗고 마지막까지 추악한 오명을 씌워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지게 만든다. 스네이크만이 에바를 통해 진실을 전해 듣게 된다.

나라에 의해 구르고 구른 더 보스. 그녀의 마지막에 대한 진실이 비밀이 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더욱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창세기전 - 살라딘



"좋은 왕이 되어야 한다."

메탈 기어 솔리드의 더보스처럼, 창세기전 3의 살라딘 또한 그가 가졌어야 했던 것들, 그리고 사랑했던 이들을 모두 잃은 기구한 운명의 캐릭터다. 팬드래건의 왕자로 왕위를 물려받았으나, 숙부에게 폐위되어 동생과 함께 투르로 끌려가게 된다. 감옥에서 동생을 돌보며 고통스럽게 살아가다가 탈옥을 시도하나 실패. 동생 대신 총알을 맞고 사망 직전에 이르고 버려진다. 권력도 목숨도 잃어버렸으나, 간신히 샘물의 힘으로 목숨은 건진다.

충분히 고통받은 인생, 투르의 성녀 세라자드와 연인 관계가 되고 내전에 승리하는 등 그의 삶은 회복하는 듯 흘러간다. 하지만 팬드래건과의 평화 회담을 진행하는도중 살라딘이 형이라는 사실을 알 리가 없는 동생 버몬트 대공은 평화 회담을 이용해 셰라자드를 포획하고, 셰라자드는 살라딘에게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럼에도 동생인 버몬트 대공을 용서하고, "좋은 왕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건네는 살라딘. 동생 버몬트 대공의 웃음섞인 울음소리를 끝으로 살라딘은 사실상 다시만난 동생과 연인을 잃어버리게 된다.

살라딘의 삶은 그의 노력과는 별개로 운명적으로 파괴된다. 이후 파트2에서의 행적에서 비극적으로 엇갈리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움만이 남는다. 더 보스도 살라딘의 이야기는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 선택하며 살아가기 때문에 대단하고, 그만큼 더욱 안타깝게 다가온다.


"그냥 일하러 왔는데 저한테 왜 그러세요..."
아웃라스트 - 마일즈 업셔 / 바이오하자드 - 레온

아웃라스트 - 마일즈 업셔



참된 기자의 표본, 마일즈 업셔의 취재기 '아웃라스트'에서 마일즈는 끊임없이 고통받는다. 물론 그가 자초한 일이기는 하지만, 마지막까지 극한으로 치닫는 그의 운명은 기구하기만 하다. 그러게 야밤에 왜 혼자 딱 봐도 무섭고 위험한 정신병동에 잠입하는 건지. 익명의 제보를 받고 진실을 캐내기 위해 마운트 매시브 정신병원에 잠입한 마일즈 업셔. 그의 손에는 캠코더 하나만이 쥐어져 있었고, 그만큼 도망 다닐 수밖에 없는 답답한 상황에 처한다.

정체 불명의 존재 월라이더를 숭배하는 신부와 환자들로부터 도망치고 미쳐버린 박사에게 손가락이 잘리는 등 불운에 불운을 더하는 고통을 겪으며 마일즈는 점점 정신적으로 한계에 도달하게 된다. 무사히 살아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은 사라진 지 오래. 변이된 환자들에게 던져지고 맞으면서도 멀쩡하게 영상을 찍는 모습을 보면 역시 참기자.

반격할 수 있는 수단이 없기 때문에 고통받을 뿐인 마일즈의 최후 또한 안타깝기만 하다. 출구에서 군인들과 마주하게 되면서 순간적으로 구조하러 온 건가? 싶지만 바로 총을 겨누고 난사하는 군인들. 왜? 어째서?라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마일즈는 월라이더의 숙주가 된다. DLC에서는 그의 모습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아아, 진실을 파헤치러 왔지 잡아먹히러 온 것은 아니었는데.

정신병동을 돌아다니며 온갖 무서운 환자들에게 고통받으면서도 마지막까지 해야 할 일을 해내나, 그에게는 비극적인 결말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공포영화를 보면 언제나 생각하는 것이지만, 역시 그냥 일찍 죽으면 차라리 덜 괴로웠을 것. 구르고 구르고 마지막까지 구르고 있는 마일즈 업셔의 취재기, '아웃라스트'는 불운 그 자체다.


바이오하자드 - 레온



어느 회사나 조직이든 신입들은 따뜻한 애정으로 가르쳐주는 것이 일반적이나, 바이오하자드의 레온에게는 신입 환영식이 아닌 따뜻한 좀비들의 관심만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경찰학교를 막 졸업하고 라쿤시티에 개정 받은 신입 경찰 레온은 첫날부터 좀비에게 난장판이 된 도시를 마주하게 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레온의 임무 '첫날' 징크스는 바이오하자드4에서도 이어진다. 본격적으로 엄브렐라를 추적하기 위해 정부기관의 요원으로 활약하던 그는 대통령 일가의 경호 임무를 받지만 뭘 하기도 전에 대통령의 딸이 납치되어 급작스럽게 구출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좀 정상적으로 임무를 수행하고 싶어도 서프라이즈 이벤트 없는 첫날은 레온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듯하다.

시즌이 거듭될수록 늘어가는 것은 피지컬과 맷집뿐. 이리저리 구타당하고 날아가고 던져져도 멀쩡하다. 강력하지는 않을 순 있어도 구르고 구를 만한 내구력은 있다. 이와 별개로 그를 따라다니는 솔로 플래그도 기구한 그의 운명에 짠 내를 한술 더한다. 잘생기고 피지컬이 뛰어나면 뭐하는가.

여러모로 행복할 수 없는 레온. 좀비 바이러스가 즐비한 세계에서 누가 행복할 수 있겠느냐마는 좀비에게 치이고 작업 걸다 차이고 이리 던져지고 저리 구르는 그의 모습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와 함께 동료 잃기 전문 크리스도 함께 고통받는 모습을 보면 고통뿐인 바이오하자드라고 할 수 있겠다.


"자네, 얼마나 더 창의적으로 죽을 수 있나?"
다크소울 - 주인공 / 데드 스페이스 - 아이작

다크소울 - 주인공



"YOU DIED"

다크소울에서 캐릭터가 플레이하게 되는 주인공. 앞서 등장한 많은 캐릭터들이 아무리 굴러봤자 다크소울만큼은 덜 비참할지도 모른다. 우리의 주인공은 잡몹에게도 종잇장처럼 죽으니까. 불의 유지를 이은 선택받은 불사자나 잇지 못하고 무덤에 묻힌 재의 귀인이나 보스몹이나 잡몹이나 모두 평등하게 죽이고 죽어간다.

만만하게 봤던 잡몹을 처리하다가 죽는 것은 물론, 싸우다 떨어져 죽기도 하고, 한 대만 더 때려야지라는 마음에 거의 다 잡은 보스에게 사망하기도. 플레이하면서 공격하는 것보다 이리저리 살아남기 위해 구르기를 더하는 기분이 드는 것은 보너스. 침착하게, 그리고 빠르게, 매 순간 긴장하며 플레이를 해야 하는 만큼 인내심이 부족하다면 너무나도 힘들어진다.

다시 생각해보면 플레이하는 내가 불쌍한 건지 내 손에 의해 고통받는 주인공이 불쌍한 건지 헷갈릴 정도지만, 그 극악의 난이도 덕분에 사랑받는 게임인 만큼 앞으로도 주인공은 수없이 죽어갈 예정이다. 다크소울 속의 '죽음'은 그 자체만으로 중심 콘텐츠니까. 죽음을 겪으면서 극복하거나 다양한 방법으로 죽거나 죽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등 플레이는 '죽음'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난이도가 높다는 말 자체도 죽음이 주변에 도사리고 있다는 말이 아니겠는가.

데드 스페이스 - 아이작



"하지만 지구는 내일을 얻겠지."

수많은 데드씬을 양성해낸 불운의 아이콘 아이작 클라크. 평범한 엔지니어였으나 계속된 네크로모프와의 전투와 디멘시아 현상으로 고통을 받았으며, 계속해서 받을 예정으로 보인다. 마치 코난이 가는 곳마다 살인사건이 일어나듯 그가 가는 장소는 언제나 꿈도 희망도 없는 사건들이 일어난다.

엄격하신 아버지와 자상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아니, 실종된 아버지와 사이비 어머니 슬하에서 자라난 아이작은 힘든 유년 시절을 지내게 된다. 우주선 설계사가 되고 싶었던 그가 꿈을 이루기 위해 학교에 진학하려 하자 어머니는 학비를 모두 사이비에 탕진해버리기도. 원했던 대로 엔지니어가 됐으나, 그의 연인인 니콜이 근무하고 있던 이시무라호가 네크로모프 사태로 인해 실종되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그의 불행이 시작된다.

마커에 의해 연인도 잃고 동료도 잃고 멘탈도 잃고 건강도 잃고 목숨까지 자주 빼앗기는 아이작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지구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나 '데드 스페이스3'을 보면 그의 노력은 아무래도 물거품이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환각인지 실제인지 이제 헷갈릴 정도로 극한으로 치닫게 되는 와중에도 지구를 구하기 위해 노력하나...

EA가 개발사 비세럴 게임즈를 폐쇄하면서 '데드 스페이스4'의 개발은 기대하기 어려워진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지난 7월 전 비세럴 게임즈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데드 스페이스4'에 대한 계획을 언급하면서 희망은 남아있지만. 만약 신작이 나오지 않는다면 '데드 스페이스3'에서 희망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엔딩이 마지막인 것으로 될 가능성이 높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기구한 운명의 아이작. 제발 신작에서 그의 이야기가 계속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