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플랫폼에서 다른 플랫폼으로의 이식. 또는 IP를 활용해서 새로운 게임이 출시된다고 했을 때, 우리는 기대를 하기 마련이다. 적어도 원작 게임이 어떠한 모습을 보여줬고, 어떠한 가치를 가졌는지를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니까. 게다가 그 소식이 아주 큰 행사에서 공식적으로 공개되었다면 기대감은 더더욱 커지기 시작한다.

지난 E3 2018, 베데스다의 브리핑에서 공개된 '엘더스크롤 블레이즈'는 무릇 게이머들의 기대를 모으기 충분했다. 엘더스크롤이 모바일 플랫폼으로 자리한다는 놀라움과 더불어, 이렇게 큰 자리에서 공개할 정도의 게임이었다는 의미였으니까. 엘더스크롤 시리즈에서 우리가 경험하고 느꼈던 감정을 모바일에서도 볼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할 만 했다.

하지만 이후 2달여의 시간이 지난 게임스컴 2018, 베데스다의 부스에서 시연된 엘더스크롤 블레이즈는 부푼 기대감을 한 번에 앗아갔다. 단순히 게임을 못 만들어서가 아니다. 시리즈의 연장선이라면 기대할 만한 또는 반드시 필요한 요소가 게임에 제대로 들어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우리가 엘더스크롤 블레이즈에서 기대했을 만한 것들에는 '자유로운 플레이', '자유로운 이동과 전투' 정도로 요약될 것이다. 모바일이라는 분명한 한계를 고려하더라도, 본질적인 부분에서 매우 어색하게 게임이 구성되어있다. 엘더스크롤 블레이즈는 바로 이 지점에서 플레이어들의 기대를 배신하기 시작한다.

게임의 주요 콘텐츠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퀘스트, 정복, 제작의 세 요소가 엘더스크롤 블레이드의 핵심이다. 퀘스트는 스토리를 따라가며 플레이하는 것을 의미하고, 정복은 던전 탐험을 통한 육성과 보상 획득, 제작은 자신만의 마을을 건설하는 과정이다.

▲ 주요 콘텐츠는 건설, 정복, 제작 세 가지다.

시연에서는 세 요소 중에서 퀘스트와 정복의 중심이 되는 전투만을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게임은 여기서 우리의 기대를 단번에 꺾어버린다. 간단한 튜토리얼을 마치면 바로 던전을 탐험하기 시작하며, 드라우그를 상대하기 시작한다. 매우 짧은 시간, 전투를 돌입하는 과정에서 바로 어색함이 묻어나온다. 사실상 인카운터라고 봐도 무방한 전투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엘더스크롤 시리즈의 전투는 일인칭에서 오는 몰입감이 특징이다. 때로는 적 다수를 상대하더라도, 일인칭으로 진행되므로 빠르게 반응하기 어려운 면이 있었다. 자칫하면 적은 항상 다수로 덤볐으며, 그렇기에 적을 상대할 때의 어려움과 긴장감, 몰입감을 보여줬다.

엘더스크롤 블레이즈는 여기서 큰 오류를 범했다. 일인칭이라는 전투 방식을 가져왔으나, 조작의 편의성을 생각해서인지 적들이 한 명씩 덤비는 구조다. 심지어 플레이어를 인식하면 천천히 앞으로 걸어오고, 조금 시간을 두고 UI가 전환되면서 전투가 시작된다. 이 과정이 부드럽지 않고 뚝뚝 끊어지면서 몰입감은 바로 타격을 입는다.

적이 여럿일 경우에는 적 하나와 전투를 하는 동안, 다른 적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차라리 보이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공방을 주고받는 와중에 뒤에서 멀뚱멀뚱 기다리는 것이 뻔히 보여서 더더욱 의구심이 든다. 다음 차례를 착하게 기다리는 드라우그라니.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전투 시스템 자체는 잘 만들어 졌기에 실망감과 아쉬움은 늘어난다. 터치라는 입력 방식을 활용한 일인칭 전투, 가로 세로 화면을 전환하며 플레이할 수 있는 설계, 공방을 주고받는 것의 긴장감은 모두 빛을 잃는다. 기술력이 아무리 좋아도 근본적인 몰입이 부정되었는데, 무슨 소용일까?

▲ 잘 만든 그래픽도 전투 시스템도, 기대감도 한 번에 의미를 잃었다.

아마도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낼 전투 부분에서 이런 상태라면, 앞으로의 결과는 쉽게 그려진다. 기존 팬들은 물론이고 신규 게이머들도 좋은 평가를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어떻게 보자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테지만, 더 자연스럽게 전투 돌입을 보여줄 방법은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더 걱정을 보내는 지점은 게임의 출시일이 1주일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게임의 근본적인 설계에 문제가 있기에, 분명히 고쳐지지 않은 상태에서 출시될 것이 분명하다. 물론, 출시 이후 게이머들의 평가가 어떻게 이어질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이 게임은 '무엇을 살려야 하는가'를 고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단순히 시점이나 그래픽만이 원작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원작이 보여준 가치에 있다. 게임의 기술력은 놀라운 수준이나, 포인트를 잘못 짚은 셈이다. 부디 출시 이후에라도 더 개선되기를 바랄 따름이다.



8월 21일 개최되는 게임스컴(GAMESCOM) 최신 소식은 독일 현지에 나가 있는 정필권, 김강욱, 석준규 기자가 생생한 기사로 전해드립니다. ▶ 인벤 뉴스센터: https://goo.gl/gkLq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