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
2018-09-12 17:36
댓글 :
12

올드스쿨 RPG의 기준점, '발더스 게이트' 시리즈

정필권 기자 (Pekke@inven.co.kr)

하나의 작품이 장르의 근간과 형태를 규정했다는 것은, 그 게임이 당시에는 혁신적이었거나, 인기가 있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이러한 작품들은 당시 게임들의 형태를 주도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후 게임들에도 매우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리고 굵직굵직한 타이틀이 많은 RPG 역사 속에서도, 최근 게임에 많은 영향을 미친 게임 시리즈가 있다. 1998년 출시된 '발더스 게이트'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바이오웨어를 RPG 명가로 만든 작품,'발더스 게이트' 시리즈는 당시 RPG 장르에서는 새로운 기준점을 만들기 시작한 타이틀이다. 방대한 포가튼 렐름 세계관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는, 두고두고 회자할 개성 있는 인물들을 낳기도 했다. 더불어, 수많은 선택과 플레이어에게 미치는 결과들은 이후 게임들에 있어서는 하나의 기준점이 됐다.



발더스 게이트, 왜 전설이 되었나
바알 사가의 드라마, 압도적인 텍스트량, 수많은 선택지

바이오웨어가 어드밴스드 던전 앤 드래곤(AD&D)의 룰을 따라서 만들어낸 '발더스 게이트'는 현재의 바이오웨어를 만들어낸 작품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RPG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었던 JRPG와는 다른 모습, 그리고 같은 시기 북미권을 주름잡던 '울티마'와 비교해서도 다른 모습으로 게이머를 사로잡았다.

제작에 사용한 '인피니티 엔진'도 물건이었다. AC, THAC0 내성굴림과 같은 초심자에게 복잡한 D&D의 룰을 게임에 맞게 재구성했고, 조금은 느릿한 전투에 박진감을 부여하기 위한 노력도 있었다. 실시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턴제에 가까우며, 라운드 개념과 한 턴이라는 개념을 전투 애니메이션을 통해서 자연스레 표현했다. 실제로는 턴에 기반해서 움직이지만, 애니메이션은 끊기지 않는다. 덕분에 D&D룰을 모르고 있더라도 플레이에는 지장이 없었다. 일단 공격을 하는 것으로 보였고, 기저에 있는 구체적인 시스템은 차차 알아가면 되는 부분이었으니까.

▲ 룰 자체를 모른다면, 게임은 확실히 복잡하긴 했다.

전투 시스템은 매우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지만, 전략적인 활용 면에서는 탐구할 만한 측면이 있었다. 조작해야 하는 캐릭터가 매우 많았던데다, 사실상 턴제 게임이었던 만큼 일시 정지 기능은 필수적으로 이용해야만 했다. 한 캐릭터마다 세밀한 명령을 내리고, 결과를 지켜보며, 위급한 상황에서 다시금 일시 정지하여 명령을 내리는 과정이 반복된다.

지금 시점에서 보자면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유도라고는 하기는 어렵지만, 선택과 결과라는 면에서는 매우 인상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비선형적인 게임은 플레이어에게 계속해서 선택을 강요한다. 퀘스트를 진행하면서 말로 풀어나갈 것인지. 아니면 목표를 훔치거나 죽이는 것으로 해결할 것인지. 해결 방법은 플레이어가 어떠한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있다.

▲ 선택과 결과는 동료와의 관계에서도 제시된다.

더불어, 모든 선택에는 결과가 따른다. 플레이어의 선택은 D&D 특유의 성향 시스템과 맞물리면서 이야기 진행, 선택지, NPC의 반응 등 복합적인 부분에서 영향을 미친다. 성향에 따라서 동료 NPC의 대사와 반응이 달라지기도 하고, 그간 어떤 선택을 해왔는지가 누적되어 게임의 엔딩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선형적이지 않으며, 결과는 항상 달라지고 그간의 선택에 따라서 미래는 변화한다.

게다가 게임 내에는 수많은 퀘스트와 인물이 존재했고 이와 얽힌 이야기들이 너무도 많이 존재했다. 게다가 선택에 따른 결과는 플레이어의 성향을 결정지었고, 퀘스트간 서로 얽혀있기도 했다. 그래서 게임 또한 CD 4장에 이를 정도로 볼륨을 자랑했다. 포가튼 렐름의 일부 지역에서 벌어진 이야기였지만, 기저에 있는 수많은 설정과 이야기들은 당시 게이머들이 '파이어 와인'이라는 하나의 커뮤니티를 만들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 정말 독특했던 캐릭터 '민스크 & 부'. 2회차 가서야 클래스가 레인저라는 걸 깨달았다.


발더스 게이트의 유산들
네버윈터 나이츠, 아이스 윈드데일,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

발더스 게이트 시리즈는 작품성, 상업성 모든 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기록했다. 정식 넘버링 작품인 '발더스 게이트'와 '발더스 게이트2: 섀도우 오브 앰' 모두 판매량이 200만 장을 넘었으며, 확장팩까지 포함하면 시리즈 전체로 500만 장이 넘는 판매량을 달성했다. 개발사인 바이오웨어에 있어서도 의미가 크다. 판매량은 물론, 준수한 평가를 기록하면서 RPG의 명가로 거듭나는 계기가 됐다.

이는 '디아블로'로 ARPG가 태동하던 1998년, 정통 RPG의 부활을 알린 기념비적인 작품이라는 해석도 해볼 수 있다. AD&D 판권이 회수된 시점에서 정말 오랜만에 등장한 게임이자, 선택과 책임. 그리고 모험과 굵직한 시나리오 등 깊이 있는 플레이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발더스 게이트 시리즈가 게임 역사에 이바지한 또 다른 지점은, RPG 장르를 평가하는 기준으로 '스토리'와 '시스템'의 조화를 만들어 냈다는 점이다. 발더스 게이트 이후로 비선형적 네러티브는 평가 기준으로 자리 잡았고, RPG를 판단함에 있어서 새로운 기준점이 되기도 했다. 그렇기에 출시 이후 2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올드스쿨 RPG를 꼽을 때마다 계속해서 언급되는 것이리라.

철저한 세계관과 턴제를 실시간처럼 표현하는 기교는 이후 게임들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인피니티 엔진을 이용하여 블랙아일 스튜디오가 제작한 '아이스 윈드 데일', '플래인 스케이프: 토먼트' 등 게임사에 족적을 남길만한 게임들이 뒤를 이었다. 시간이 한참 지난 현재 시점에서도, '올드스쿨(old-school) RPG'라고 부를 수 있는 게임들은 대부분 발더스 게이트의 외형과 시스템 등을 받아들여 제작됐다.

▲ 블랙아일 스튜디오의 '토먼트'도 명작으로 손꼽힌다.

바이오웨어가 정립한 발더스 게이트의 구성은 이후 3D로 만들어진 '네버윈터 나이츠'의 기반이 되기도 했다. 지금은 세계적 시리즈로 자리매김한 CDPR의 '위쳐'도 첫 작품을 네버윈터 나이츠2의 오로라 엔진으로 제작했으니, 큰 틀에서는 발더스 게이트의 유산이라고 볼 수 있는 셈이다.

이후 몇 년간 새로운 게임들이 계속해서 자리하면서, 발더스 게이트로 대표되는 장르는 점차 사양길에 들어섰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수많은 정신적 계승작이 출시되며 명맥을 이어나갔다. 바즈테일 시리즈를 만든 브라이언 파고의 '웨이스트랜드2', 발더스 게이트의 후계자를 자처한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 울티마와 발더스 게이트의 장점들을 담아내고자 한 '디비니티 시리즈', 플레인 스케이프: 토먼트를 계승한 '토먼트: 타이드 오브 누메네라'까지. 당시 게임들의 특징을 계승한 작품들은 꾸준히 출시되고 있었다.

▲ 옵시디언 엔터테인먼트의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가 대표적.


명작은 시간이 지나도 명작
빔독의 리마스터, 현세대로 다시 태어나다.

초기 '발더스 게이트'의 퍼블리셔였던 '블랙 아일 스튜디오'는 모회사 인터플레이가 재정난에 휩싸이면서 2003년 수명을 다했다. 2000년대 초반 RPG를 대표하던 퍼블리셔이자 스튜디오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으나, 이후 개발자들은 다른 개발사로 흩어져 새로이 개발하는 게임들에 영향을 미쳤다. 개발사인 바이오웨어는 '메스 이펙트', '드래곤 에이지' 시리즈를 제작하면서 RPG 장르를 대표하는 개발사로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발더스 게이트는 2013년 빔독(beamdog)은 현재 게이밍 환경에 맞게 개선한 '발더스 게이트: EE'를 시장에 출시했다. 엔진을 개량하고 최신 해상도에 맞게 게임을 수정하여, PC는 물론 모바일의 고해상도에서 구동할 수 있도록 개선했다. 인핸스드 에디션이라는 말 그대로, 시스템 면에서도 일부 편의 기능이 추가되어 게임을 보다 완성도 있게 갈무리했다.

물론, 출시 초기에는 떨어지는 완성도로 혹평을 받았던 것이 사실이지만, 꾸준한 업데이트를 통해서 이를 개선하려 노력 중이다. '발더스 게이트2: EE'는 올해 5월 패치를 통해 한글 패치를 적용했고, 최근까지 자잘한 문제들 (폰트 크기, 세이브 오류)등을 수정하고 있다. 출시한 지 5년이 지났음에도 꾸준히 게임을 개선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할만하다.

▲ 늦지만 그래도 꾸준히 개선 중.

현재 빔독이 출시한 '발더스 게이트: EE'는 1과 2 모두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기록하고 있다. 지금까지 3천 개가 넘는 평가가 등록되었으며, 약 85%의 플레이어들이 게임에 호평을 남겼다. 같은 장르의 게임을 평가하는 기준을 새로이 정립한 게임, 발더스 게이트는 20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도 많은 게이머에게 자신들의 가치를 전하고 있다.

그렇기에 아직 시리즈를 해보지 않은 사람일수록, 발더스 게이트 시리즈를 플레이할 이유는 충분하다. RPG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아로새긴 명작은 시간이 지나도 명작일 테니까.

▲ 빔독이 만든 DLC는 평이 그닥이다. 본편 두 개만 해봐도 충분하다.

SNS 공유

코멘트

새로고침
새로고침

인벤 최신 핫뉴스

[뉴스] '지스타 2018' 총 관람객 23만 5천 명 기록, 전년 대비.. [10] 정필권 (Pekke@inven.co.kr) 11-18
[뉴스] 요시다 나오키 P/D, 팬페스티벌은 모험가들에게 보답하.. [20] 문원빈,김혜나 (desk@inven.co.kr) 11-18
[동영상] 게롤트가 왔다?! 'CDProjektRED' 개발자들과의 만남 [2] 정재훈 (Laffa@inven.co.kr) 11-18
[인터뷰] 인디, PC게임에 친화적인 폴란드에 대한 이야기를 듣다 [2] 허재민 (Litte@inven.co.kr) 11-18
[인터뷰] CDPR이 게임 잘 만드는 이유? "우린 항상 배고프니까" [4] 박태학 (Karp@inven.co.kr) 11-18
[동영상] 작지만 가장 밝게 빛나는 지스타의 별, '인디 게임'을.. [0] 강승진,윤홍만,김규만,김수진 (desk@inven.co.kr) 11-18
[인터뷰] 이재홍 위원장 "스트리머, 저작권 보호 의식 가져야" [13] 이두현 (Biit@inven.co.kr) 11-18
[뉴스] '세계 3위' 캐나다 디지털 게임 산업을 주목해야 하는.. [0] 김규만 (Frann@inven.co.kr) 11-18
[인터뷰] "컨셉과 세계관을 녹여 하나의 경험으로" 뮤즈 대쉬의.. [1] 허재민 (Litte@inven.co.kr) 11-18
[뉴스] 각양각색의 카탈루냐 개발자들과 진행한 릴레이 인터뷰 [0] 허재민 (Litte@inven.co.kr) 11-18
[인터뷰] 아스텔리아 "순위 경쟁보다 오래도록 사랑받는 게임이.. [11] 윤홍만 (Nowl@inven.co.kr) 11-17
[포토] '트하~' 지스타 트위치 부스에 '페이커'와 '울프'가 떴.. [19] 유희은 (Youii@inven.co.kr) 11-17
[포토] 화면 밖으로 나온 '최애캐'들! 지스타와 함께한 코스프.. [7] 남기백 (Juneau@inven.co.kr) 11-17
[포토] 한국 팬들 어서오세요! CDPR '위쳐 테마 팬 이벤트' 현.. [0] 양영석 (Lavii@inven.co.kr) 11-17
[포토] 매라갓부터 샤이까지! 스트리머와 함께 즐긴 '제닉스 .. [1] 정수형 (Camfa@inven.co.kr) 11-17
인벤 방송국 편성표
명칭: 주식회사 인벤 | 등록번호: 경기 아51514 | 등록연월일: 2009. 12. 14 | 제호: 인벤(INVEN)
발행인: 서형준 | 편집인: 강민우 | 발행소: 경기 성남시 분당구 성남대로 331번길 8, 17층
발행연월일: 2004 11. 11 | 전화번호: 02 - 6393 - 7700 | E-mail: help@inven.co.kr

인벤의 콘텐츠 및 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으므로,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Copyrightⓒ Inven.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