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에서 젊은 피의 수혈은 리그를 더욱 신선하게 만든다. 그리핀이라는 젊은 피를 공급받은 2018 LCK 서머 스플릿은 '역대 최고'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치열했고 볼거리로 가득했다. 스펀지처럼 빠르게 새로운 것을 흡수하며 강해진 그리핀은 기존의 강자들을 꺾고 결승전에 이름을 올렸다. 마치 성장 만화의 주인공처럼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지 궁금증을 자아내는 팀이었다.

우승의 문턱까지 갔지만, 결국 그리핀의 돌풍은 준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그리고 그들은 가혹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최초의 로열로더 타이틀과 롤드컵 직행의 꿈이 무산되고 불과 며칠 뒤에 펼쳐지는 롤드컵 선발전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기분이 이런 것일까.

그리핀에게 모든 것이 가혹한 상황일 수 있지만,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처음부터 그들이 LCK 결승전은 물론 롤드컵 선발전에 진출할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미 그들의 행보 자체가 기적이나 다름없다. 여기서 좌절하지 않고 다시 한번 기적을 만들 차례다.

젠지 e스포츠는 가을만 되면 진정한 힘이 나오는 것처럼 엄청난 저력으로 SKT T1을 꺾고 롤드컵 선발전 2차전에 진출했다. 주전과 후보 선수를 적절하게 기용하며 더 단단한 라인업을 갖춘 젠지 e스포츠, 롤드컵의 디펜딩 챔피언의 면모를 서서히 보여주고 있다.

현재의 분위기와 기세만 놓고 보면 젠지 e스포츠가 그리핀보다 좋다. 하지만, 롤드컵을 향한 두 팀의 간절함의 정도는 우위를 정할 수 없다. 각자의 장점을 최대한 잘 살리는 팀이 값진 승리를 거두고 롤드컵 선발전 최종전에 올라설 것이다.


재도전 나선 슈퍼 루키 그리핀
한타는 여전히 강력... 문제는 후반 집중력




그리핀의 최대 강점은 역시 무시무시한 한타 능력이다. 라인전에서 크게 터지지만 않으면 비슷한 구도에서 펼쳐진 한타에서 높은 확률로 승리한다. 김대호 감독이 지향하는 '콜 없는 한타'가 정말 가능한 것처럼, 5명의 선수가 하나의 유기체처럼 반응하고 움직인다.

결승전 1세트에서도 '역시 한타의 그리핀'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리핀의 놀라운 한타 집중력을 볼 수 있었다. 탑에서 그리핀이 '타잔' 이승용의 자크를 필두로 먼저 싸움을 걸었으나 kt 롤스터가 유연하게 받아치면서 역으로 그리핀에게 좋지 않은 구도가 만들어졌다. 최악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바이퍼' 박도현은 섣부르게 덤벼들지 않고 상대의 핵심 스킬이 빠지는 틈을 노렸다.

완벽하게 이기는 전투 구도가 만들어지자 박도현은 상대의 스킬을 놀라운 집중력으로 회피하며 한타를 쓸어 담았다. 박도현의 원딜 챔피언 숙련도에 대한 물음표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 박도현은 비원딜 챔피언뿐만 아니라 원딜 챔피언도 최고 수준이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했다.



그리핀은 단순히 교전 전투력만 뛰어난 팀이 아니다. '바이퍼' 박도현과 '리헨즈' 손시우가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운영을 통해 이기는 판을 만드는 것. 그것이 그리핀 강력한 한타 비결이다. 지난 결승전 3세트에서 그리핀은 스플릿 운영의 진수를 보여주며 승리를 거뒀다.

스플릿 운영은 스플릿 푸셔 뿐만 아니라 본대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그리핀은 아슬아슬한 선을 잘 유지하며 '소드' 최성원이 수월하게 스플릿 푸쉬를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결국, 바론 둥지 앞에서 이길 수밖에 없는 한타 구도를 만든 그리핀은 kt 롤스터를 상대로 2:1로 앞서 나가는 데 성공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한타에 강점이 있는 그리핀의 약점으로 언급되고 있는 것은 후반 집중력이다. 실제로 정규시즌 40분이 넘어간 경기에서 그리핀이 기록한 승률은 7승 7패로 5할밖에 되지 않는다.

2:1로 앞선 결승전 4세트에서도 그리핀의 후반 집중력이 발목을 잡았다. 시야 확보 과정에서 허무하게 잘리는 실수가 여러 차례 나오면서 게임이 조금씩 비벼졌고, 말파이트를 이용해 억지로 싸움을 걸다가 크게 되치기를 당했다. 결정적으로 상대의 쌍둥이 포탑 앞에서 펼쳐진 최후의 교전에서 타겟팅이 엇갈리면서 마지막 찬스까지 허무하게 놓치고 말았다.

경험이 풍부한 팀이라면 코칭 스태프의 도움으로 선수들의 무너진 멘탈을 최대한 빠르게 추스를 수 있었겠지만, 그리핀은 그러한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경험이 부족했다. 신인 감독답지 않게 항상 냉철한 모습만 보여줬던 김대호 감독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결국, 그리핀은 5세트에서 완패를 당하며 아쉽게 우승컵을 놓쳤다.

이번에 그리핀이 상대하는 젠지 e스포츠는 롤드컵 우승을 경험한 세계 최고의 팀이다. 젠지 e스포츠가 밑에서 올라왔지만, 상대적인 경험과 준비 시간 등을 고려할 때 젠지 e스포츠의 우세가 예상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리핀은 끝까지 집중력을 유지해야만 강적 젠지 e스포츠를 꺾고 다시 한번 롤드컵에 도전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가을만 되면 강해지는 젠지 e스포츠
단단한 라인업으로 더 강해지다




젠지 e스포츠에게 가을만 되면 더욱 강해지는 DNA가 있는 것이 아닐까. 롤드컵이 펼쳐지는 가을만 되면 각성한 경기력을 발휘하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그러한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재작년 롤드컵 선발전에서는 kt 롤스터를 상대로 19:0의 상대 전적을 뒤집고 롤드컵에 진출했고, 작년에는 롤드컵 선발전을 뚫고 롤드컵에 진출, 킹존 드래곤X를 비롯한 강팀들을 모두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가을의 전설'이라는 말이 젠지 e스포츠에게 유독 잘 어울린다.

이번 시즌 13승 5패라는 호성적을 기록했지만, 와일드카드전에서 패하며 시즌을 일찌감치 마무리한 젠지 e스포츠. 아쉬움이 가득한 한해였지만, 아직 가장 중요한 농사가 남아있다. 젠지 e스포츠가 3년 연속 롤드컵 결승전에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여전히 열려있는 상황이다.

젠지 e스포츠 입장에서 호재가 정말 많다. 가장 큰 호재는 '크라운' 이민호와 '하루' 강민승의 폼이 오르면서 선수 기용 폭이 더 넓어졌다는 점이다. 스타일이 전혀 다른 두 명의 미드라이너와 정글러를 상황에 맞게 교체 출전 시킬 수 있기에 젠지 e스포츠는 더 다양한 전략을 시도할 수 있고, 젠지 e스포츠를 상대하는 팀은 머릿속이 더 복잡해진다.

2017 롤드컵 우승 주역 중 한명인 '크라운' 이민호는 공백이 무색할 정도로 능수능란한 경기력을 선보이며 팀의 롤드컵 선발전 1차전 승리를 이끌었다. 4세트에서는 라이즈로 뚝심있게 스플릿 푸쉬를 하며 팀에게 큰 이득을 안겼고, 5세트에서는 리산드라로 시종일관 '페이커' 이상혁의 아칼리를 압박하며 라인전과 한타에서 맹활약했다.



그동안 초반 갱킹에 특화된 모습을 보여줬던 '하루' 강민승은 중후반 운영에서도 결코 부족하지 않다는 것을 경기력으로 증명했다. 특히, 마지막 5세트서 '블랭크' 강선구의 카운터 정글을 침착하게 받아치며 초반부터 정글 싸움을 압도하는 장면은 롤드컵 선발전 1차전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였다.

아시안게임에서 다소 아쉬운 활약을 펼쳤던 '룰러' 박재혁이 자신감과 기량을 어느 정도 회복했다는 점도 젠지 e스포츠에게 큰 희소식이다. 금메달을 놓치고 아쉬움에 눈물을 쏟았던 박재혁, 작년 롤드컵 결승전 MVP인 그가 이번 롤드컵 선발전에서도 다시 한번 에이스의 면모를 보여줄 수 있을지 기대된다.


3:2 박빙의 상대 전적
가장 중요한 건 주도권 싸움




그리핀과 젠지 e스포츠는 섬머 스플릿 정규시즌에 각각 1승씩 주고받았다. 1라운드는 그리핀의 2:1 승리, 2라운드는 젠지 e스포츠의 2:0 승리였다. 조금 더 자세히 보면, 1라운드는 모두 40분 이전에 끝났고, 2라운드는 모두 50분이 넘어가는 장기전이었다. 두 팀의 강점을 쉽게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단기전은 그리핀의 우세, 장기전은 젠지 e스포츠의 우세가 예상된다.

그러나 현재 메타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초반 주도권을 싸움이다. 주도권을 먼저 잡은 쪽이 끝까지 유리함을 가져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대놓고 후반을 바라보는 조합은 더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됐다. 주도권은 곧 밴픽에서 비롯된다. 명장 최우범 감독과 돌풍의 아이콘 김대호 감독의 치열한 밴픽 싸움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최근 가장 핫한 챔피언으로 떠오른 우르곳의 활용 여부도 밴픽 싸움의 주요 관전 포인트다. 미드와 탑 스왑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낮은 레벨 단계에서 막강한 전투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여러모로 활용도가 높다. 경기가 후반으로 갈수록 힘이 빠진다는 단점이 있지만, 초반 바위게 싸움에서 아군 정글러에게 큰 힘을 실어주는 챔피언이기 때문에 풀릴 경우 선픽으로 기용될 가능성이 높다.

화제의 챔피언 아칼리도 있지만, 젠지 e스포츠가 리산드라로 아칼리를 완벽하게 봉쇄하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그리핀 입장에서 섣불리 꺼내기 어렵다. 반대로 젠지 e스포츠가 아칼리를 꺼낼 경우 그리핀의 대처가 궁금해진다. 많은 것이 걸린 두 팀의 대결을 놓치지 말고 지켜보자.


■ 2018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 한국대표 선발전

2차전 젠지 e스포츠 vs 그리핀 - 14일 오후 5시(강남 넥슨 아레나)
-5판 3선승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