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인 2016년 10월 7일, 중앙대 산학협력단은 보건복지부 정신건강기술개발사업단에 하나의 보고서를 제출했다. '인터넷 게임 중독의 공중보건학적 모델개발 및 폐해실태조사'라는 긴 이름의 이 보고서는 2014년 12월부터 2016년 8월까지 약 1년 9개월에 이르는 시간 동안 진행된 연구의 최종 결과물로, 총 1억 원의 금액이 연구비로 지원되었다.

여기까지는 흔히 있을 수 있는 사례다. 정부기관이 실태 조사, 혹은 주장의 근거로 쓰기 위해 전문 연구기관에 연구를 의뢰하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하지만 이 `근거`로 쓰일 보고서에 문제가 있다면 상황이 달라진다. 정부기관의 움직임은 실제로 삶을 변하게 하고, 산업을 흔든다. 움직임의 반향이 큰 만큼, 그 움직임의 근거가 정확한지는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순서일 테다.

보고서의 연구가 시작되기 두 달 전인 2014년 10월, 보건복지부는 `2014년 중독예방 광고 제작/송출 계획안을 작성해 발주했고, 2015년 2월, 4억 원에 가까운 예산을 들인 끝에 광고가 게시되었다. 광고 안에는 게임 중독자는 환청을 듣고 환영을 보는가 하면, 수시로 불안증을 느끼고 노인을 폭행하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당연히 게이머들은 말도 안 되는 표현이라며 불만을 표했고, 게임업계 또한 비난의 목소리를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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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보건복지부가 광고를 제작한 근거로 제출한 문서는 미래부와 한국정보화진흥원의 `인터넷중독 실태조사(2013)`를 기반으로 했다. 하지만 확인 결과, 이 문서는 객관적인 분석이 아닌, 어떻게든 게임 중독을 심각한 문제로 만들고자 하는 자의적 해석과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논리적 허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번엔 그때와 다른 보고서이지만, 이 또한 걱정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보건복지부는 게임 중독을 다룸에 있어 이 보고서를 참고할 테고, 2015년 광고 사건 때와 같은 말도 안 되는 계획의 근거로 활용될 가능성이 충분했다.

369페이지에 이르는 보고서를 쭉 살펴보았다. 논리적인 허점은 없는지, 필요 이상의 자의적인 해석이 곁들여지진 않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보고서를 다 살펴본 후, 감상은 한 문장으로 나타낼 수 있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시작부터 틀려먹은 연구설계
인터넷, 게임이 사람을 '사망'케 한다?

먼저, 이 연구보고서는 설계부터가 잘못되었다. `인터넷, 게임 중독`을 공중보건학적으로 접근한다는 것부터 말이 되질 않는다. 이러한 접근은 인터넷, 게임 중독을 `보건`의 문제로 규정해야만 가능한 접근이며, 여러 중독 모델에서는 `질병 모델`에 가깝다. 하지만 인터넷, 게임을 `질병 모델`로서 분류할 것인가는 아직도 논쟁이 진행 중인 사안이며, 이를 질병이 아닌 `선택 모델`로서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 또한 심리학 포럼을 통해 발표되고 있다.

보고서의 내용만 살펴보면 이미 인터넷, 게임 중독은 질병이자 보건의 문제로, 보건복지부가 관리해야 할 중독 물질의 하나다. 누구도 그렇다고 정의하지 않았고, 누구도 그렇다고 정의할 수 없음에도 이미 이를 기정사실과 같이 기술해놓은 것이다.

연구진의 시선은 아래 이미지에서도 잘 드러난다. 보고서는 알코올과 인터넷을 `유사한 맥락`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 근거가 `합법적으로 구매해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코올과 인터넷은 물질의 존재 여부부터 차이가 날 정도로 동떨어져 있다. `합법성`만으로 유사성을 주장하기엔 근거가 빈약하기 짝이 없다.

▲ '합법'적이기에 알코올과 같다?

그뿐만 아니다. 보고서에서는 용어가 수시로 혼용되며, 앞서 말한 것 외에도 정확히 규정되지 않은 사안조차 기정사실로 기술했다. 이는 연구 목표에 관한 기술에서부터 드러난다. 보고서에는 인터넷, 게임 중독에 대한 공중보건학적 조사모델 개발의 연구목표 항목에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인터넷 중독 문제는 사회의 안전을 위협하는 공공의 문제로, 중독을 중독 폐해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포괄적 접근 방법이 필요함에 따라, 개인(host)의 의사결정과 행동 결정 요인, 유발물질/행위 측면에서 매체(agent)의 특성, 그리고 환경적 측면을 모두 아우르는 모델을 개발."

토씨 하나 빠짐없이 정확히 이렇게 기술되었다. 이미 연구 목표를 정하는 과정에서 인터넷 중독을 `공공의 문제`로 규정했다. 또한, 연구 배경 항목에는 게임 중독이 자해와 폭력, 살인 등의 범죄행위를 일으키며, 사회 전반에 걸쳐 위험성이 높다고 기술해 놓았다. 나아가 인터넷, 게임 중독이 과다한 사용 때문에 탈수와 영양결핍 등으로 인한 사망 사고를 초래한다고도 말하고 있다.


이는 누가 봐도 지나치게 과장된 묘사이며, 참고문헌 또한 없거나 근거 없는 주장에 그친다. 이 과정에서, 그리고 보고서 전체에서 '인터넷 중독'과 '게임 중독'은 혼용되며, 서로에 대한 확실한 구분이 이뤄지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알다시피, 게임과 인터넷은 전혀 별개의 개념이다.


중구난방 연구 방법
낡은 척도, 내맘대로 해석, 말과 다른 실험군 선정

설계부터가 애매한 이 연구는 방법 또한 옳지 않았다. 먼저, 해당 보고서는 `Young 척도`를 이용해 설문조사 표본의 중독 위험군을 분류했다. 문제는 이 Young 척도가 연구 종료 당시로써도 20년 전인 1996년에 정해진 척도라는 점이다. 인터넷 인프라를 두고 분류할 때, 20년 전과 지금은 비교조차 하기 힘들다. 결과적으로, 중독자 군과 중독 위험군은 현실의 상황에 맞지 않게 과다 분류되었다.

게임 중독 구분을 위해 사용된 `IGUESS` 척도 또한 객관성을 입증하기 힘들다. `IGUESS` 척도는 2013년에 DSM-5를 모델로 국내 연구진이 만든 자가 보고식 선별 척도인데, 아직 일반 인구를 대상으로 하는 타당화 연구가 진행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설령 되었다 해도 국제기관에서 공인되는 다른 일반적인 척도가 있는데 왜 굳이 이 척도를 사용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이렇게 IGUESS 척도를 이용해 나온 결과는 6.1%의 중독군, 그리고 93.9%의 일반군이다. 하지만 보고서는 Young 척도를 앞에 인용해 "10명 중 7명이 인터넷 중독의 위험이 있다"라고 기재했다. 의도적인 과장이 의심되는 부분이다.


그뿐만 아니라 보고서는 아주 기본적인 부분에서도 오류가 발견된다. 보고서에는 실태조사를 위한 설문지가 참고자료로 실려 있는데, 이 보고서 내에 기재된 게임의 이름부터 엉터리인가 하면, 선정된 게임들도 설문 조사 당시(2015년 9월)로써는 너무 오래된 게임이거나 유행을 훌쩍 넘긴 게임들이었다. 정작 2015년 9월에 유행하던 게임들은 선정된 게임 목록에 이름을 찾을 수 없었다.

단순한 오타로 볼 수도 있으나, 몇 번의 검수를 거쳤을 최종 보고서에서 이런 오입력이 보인다는 것은 연구진이 게임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전혀 없음을 드러낸다. 해당 표기들은 게임을 오래 즐기는 코어 유저가 아닌, 가볍게 즐기는 이들이라도 충분히 수정할 만한 부분이었다. 인터넷 게임의 폐해를 보고하는 연구진이 인터넷 게임을 전혀 모른다는 방증이다.


실험군의 선정 또한 이해할 수 없다. 연구진은 기존 연구가 `청소년에 집중되어 있다`라고 비판하며, 일반 성인까지 실험군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정한 실험군이 `청소년과 대학생`인데, 정작 한국 청소년정책연구원은 대학생을 청소년의 범주로 분류한다. 대졸자 이상의 성인들의 인터넷, 게임 이용도 일상이 된 현 세태와는 전혀 맞지 않는 실험군 선정이다.

게다가 연구 결과를 보면 일반인(대학생)의 경우 중독 위험군과 중독군 모두 이용 콘텐츠가 `메신저, 커뮤니티, SNS, 웹툰, 영화, TV 시청`에 몰려 있었고 게임은 언급이 아예 없다. 인터넷 중독은 몰라도 게임 중독은 20세가 지나면 알아서 해결되는 것일까?



'타당함' 없이 나열된 결과
아무런 검증 없이 해석된 제멋대로의 연구 결과

결과적으로, 이 보고서는 잘못된 세태 파악을 기반으로 잘못된 방식으로 연구된 결과물이다. 애초에 `게임은 위험하다`라는 전제를 머릿속에 깔고 작성된 것이 눈에 띌 정도인 데다, 이 `위험`에 대한 객관적 근거 없이 결과를 과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보고서에서 말하는 게임 이용자들의 한 달 평균 지출 비용은 17,370원이다. 누구도 한 달에 2만 원이 안되는 이 금액을 사용한다고 중독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평균 이용 시간은 하루 3시간이 채 안 되는데, 하루 여가 중 이 정도 시간을 할애한다고 이를 중독이라고 보는 것도 애매하다. 애초에 이를 중독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근거 자체가 모호하니 말이다.

보고서 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중독률`이라는 단어 또한 그 실체가 모호하다. 일반적으로 공중보건학에서는 `유병률`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는데, 인터넷 게임의 경우 유병률을 조사할 수 없다. 인터넷 게임 중독 자체가 아직 정의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독률`은 이 `유병률`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개념으로 유추되는데, 말이 좋아 자의적 해석이지 학문적으로는 타당성이 없는 개념이다.

▲ '중독률'은 없는 단어다

또한, 연구 결과에 대한 타당성 검토도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음주 폐해에 따른 지역사회체계모델`을 참고해 인터넷, 게임 중독분야에 이를 적용하고자 하고, 나아가 지역 사회 조례 제정의 기반을 닦으려는 시도는 보이지만 실제로 연구에서 주장하는 지역 간 중독 유병률의 차이가 타당한가에 대한 검토가 없다.

그리고 꾸준히 주장하는 인터넷, 게임 중독의 위험의 `실체` 또한 없다. 중독군에 해당하는 인원들이 실제로 무슨 문제를 일으켰는지, 혹은 어떤 잠재적인 위험을 가졌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인터넷, 게임 중독이 위험하고 사회에 해악을 준다고 기술하면서 실질적으로 어떤 위험이 있는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척도 상 점수가 높은 이들이 상시 그런 상태인지, 혹은 일시적인 상태인지에 대한 검증도 없고, 아무 문제가 없을 정상군에도 자기 설문식 설문을 도입해 과장, 혹은 축소 응답의 위험성도 안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한 타당성 검증도 이뤄지지 않았다.

▲ 또 이런 결과물이 나올지도 모른다.

종합해볼 때, 이 보고서는 첫 단추부터 잘못되었다. 폐해에 대한 실태 조사는 실질적으로 어떤 폐해가 일어났는지를 명확히 파악해야 하고 이에 대한 객관적인 결과와 분석이 함께해야 한다. 하지만 보고서는 어떤 것이 `폐해`인지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 애초에 그것이 폐해인지 아닌지도 정의되지 않은 상황에서 보고서 제목을 `폐해`로 정의해버리니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이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을 테다.

첫 단추가 잘못되니 그 이후로도 줄줄이 허점만 드러난다. 정의할 수 없는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자의적인 개념을 도입했고, 시대와 맞지 않는 측정 척도를 이용해 과장된 결과를 유도했다. 과거 조사의 실험군이 잘못되었다 비판하면서 자신들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자가당착에 빠졌고, 게임 이름조차 오기입해 연구의 전체적인 신뢰도를 바닥으로 끌어 내렸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는 무얼 말하고자 하는지조차 파악하기 어렵다. 연구의 마지막에는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했다`라고 기술해 두었는데 어디서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할지 모를 정도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이 보고서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다. 이 보고서가 보건복지부의 차후 계획의 기반 자료로 쓰이고, 이로 인해 게임 산업과 생태계에 영향이 오리라는 것이 진짜 문제다. 게임업계는 계속해서 규제와 편견에 맞서 왔다. 혐오 산업, 중독 산업이라는 멸칭도 감내해오며 버텼다. 말 그대로 버텼다. 참고, 사죄하고. 그게 게임업계가 취할 수 있었던 단 하나의 액션이었다.

게임업계가 이런 주장에 맞설 수 없었던 이유는 하나였다. 말을 해도 통하질 않으니까. 어처구니없는 일을 어처구니없다고 말해도 상대는 어처구니가 뭔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게임`, 그리고 `인터넷`이라는 개념에 대한 이해도가 다르고, 보이는 것이 다르며, 이런 업계를 대변해줄 목소리도 찾기 어려웠다.

▲ 비슷한 맥락의 이 연구에는 지금까지 7억 원 가까운 연구비가 지원되었다.

게임업계가, 관계자들이 이런 연구를 반대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체계적이고 검증된 연구가 이뤄진다면, 쌍수 들고 환영할 이들이 게임업계 관계자들이다. 게임업계는 그간 `게임 중독`이라는 이 정의되지 않은 개념으로 인해 마음고생을 이어왔다. 차라리 정확한 정의와 관련 법, 제도가 갖춰진다면, 차라리 그 법과 제도에 맞춰 게임을 개발하는 것이 마음이 편할 정도다. 연구도, 조사도, 실태 파악도 좋다. 하지만 국고를 써가며 진행하는 연구라면, 그 격에 맞게 철저히 진행하는 게 진정한 `공익`을 위한 길이 아닐까?